알프레트 되블린(1878~1957)의 대표작인《베를린 알렉산더 광장》(1929)은 대략 1928년 베를린을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삼으며, 주인공인 프란츠 비버코프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한 전과자가 새로운 삶을 얻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하지만 줄거리 자체보다 서술 방식의 측면에서 훨씬 더 다채로운 특성들을 지닌다.
이 작품은 흔히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즈》(1922)에 비견되곤 한다. 특히 독특한 문체 덕분에 그렇다. 게다가 모더니즘 계열의 실험적 요소들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은 뜻밖에도 상당히 재미있는 범죄소설의 줄거리 구조를 보인다. 어떤 평론가는 이것을 아에 '범죄 이야기'로 규정하기도 한다. 알렉산더 광장에 경찰 본부가 있기 때문에 제목도 그렇게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렇게 보면 프란츠 비버코프 이야기가 여러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쉽게 이해가 된다.
이 작품은 화자의 역활이 제한되어 있는 서술 방식에도 불구하고 매우 많은 장면들이 치밀하고 정교하게 서술되어 있다. 특히 인물의 내면이나 심층 심리의 표현은 정신과 의사 되블린의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지식과 이해를 보여준다. 현란한 기법들을 동원해 독자를 어지럽게 만들어서 인간 심리에 대한 자신의 이해 부족이나 아이디어의 고갈을 감추는 종류의 작가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많고도 풍부하다.
한편으로는 고단한 삶의 현실이 매우 치밀하게 추적되고 있는데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비적인 세계가 등장한다. 공동묘지에서 죽은 이들과의 대화 장면이 그렇고, 형사들에게 쫓기는 프란츠의 머리 위에서 재잘대는 참새 다섯 마리 이야기도 그렇다. 이들은 죽은 범죄자들로 프란츠를 폭로할 방법을 궁리 중이다. 그뿐인가, 무시무시한 천사 두 명이 베를린 거리를 배회하는 프란츠를 보호하는 장면도 그렇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철학적이고도 기상천외한 것이다. 마지막에 프란츠는 죽음에 직면하여 죽음과 직접 대화를 나눈다. 이런 초현실적이고 신비로운 장면들은 심오함과 설득력을 함께 지니고 있다.
9권까지의 각 권에서 각각의 장에 들어가는 표제어 또는 표제문은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일부는 작가가 붙인 것이고, 일부는 시에서 인용한 것, 일부는 성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것 없이는 텍스트의 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에 대한 것인지 불확실해지는 경우도 몇 번 있다.
주인공 프란츠는 4년 동안의 옥살이를 마치고 석방되어 세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에게 이 세상은 너무 두렵고도 낯설다. 그는 큰 기쁨으로 잽싸게 도시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동안 그를 가두었던 감옥의 문 앞에서 망설인다. "바야흐로 형벌이 시작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프란츠의 느낌은 맞았다.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이야기가 꽤 진행된 다음에야 우리는 그가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4년 동안 형무소 생활을 했는지 알게 된다. 죄가 없지는 않지만 죗값을 이미 치른 전과자로서 프란츠는 한 가지 중대한 결심을 한다. 곧 "착실하게 살겠다"는 결심이다. 하지만 그가 결심했다고 해도 세상은 그가 착실하게 사는 일을 그렇게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대도시는 냉정하고, 가난한 사람은 너무 많다. 그는 사회주의 동지들을 떠나 나치당의 기관지를 파는 일을 시작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물건들을 들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팔아서 고단한 일상을 버티며 겨우 베를린에 정착했다. 하지만 곧바로 동료인 뤼더스의 고약한 배신을 격는다. 프란츠는 칩거하여 술만 퍼마시며 여러 주를 보낸 끝에 다시 일어선다.
이어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범죄 집단의 범죄 행각에 동참하고는 깜짝 놀라 저항하다가 심각한 자동차 사고를 당해 오른 팔을 잃는다. 몸의 일부를 잃는 이런 사고를 당하고도 프란츠는 굳건하게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젊고 순수한 창녀 미체를 애인으로 얻는다. 그녀는 외팔이 프란츠를 위해 돈을 벌지만, 그를 향한 그녀의 사랑만큼은 순수하다. 다만 이 작품에서 누구 하나 완전한 순수성을 지닌 인물은 없다. 너나할 것 없이 누구나 흔들리는 인간들이다. 현실의 우리가 그렇듯이.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지만, 프란츠는 자신을 해친 동료 라인홀트에게 자기 쪽에서 먼저 접근을 하고, 이런 프란츠에게서 도전과 자극을 받았다고 느낀 라인홀트는 최후의 결정적인 일격을 가한다. 프란츠는 애인과 더불어 삶의 마지막 미련까지 잃어버린다. 그는 죽기를 원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죽음과 대면하면서 중대한 깨달음을 얻고 삶으로 되돌아온다. 이렇게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드디어 처음부터 원하던 대로 "착실하게" 살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앞서 이미 말한 대로 줄거리가 단속적이고 화자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프란츠의 행동 일부가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천천히 그의 의식 안으로 들어가 그의 처지에서 상황을 거듭 생각해보면 몇 가지 비밀이 풀린다.
프란츠는 가구 운반 노동자로 범죄를 저지른 끝에 옥살이를 한 이른바 '지하 세계' 가까이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약점도 많지만 진짜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육체적으로 강인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우직하나 강한 인물이다. 비겁하지 않고 남을 뒤에서 공격하거나 밀고 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강인함을 몹시 중요하게 여기면서 상당한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오로지 강인함만을 중시한 그의 자부심이 그에게 불행을 불러들인다. 그는 자신을 해친 라인홀트에게 자기 쪽에서 접근한다. 전에도 이 위험한 범죄자의 사생활에 간섭하고는 잘난 척하다가 불행한 일을 당하더니, 이제 다시 그의 앞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프란츠의 태도에는 남자들 사이의 자부심과 시시한 경쟁심이 작용하고 있다. 이런 경쟁심이 그 자체로 꼭 나쁜 것은 아닐지 몰라도 프란츠는 상대가 위험한 범죄자라는 사실을 볼 눈이 없었던 탓에 그토록 큰 불행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야 그는 사람이 착실하게 살려면 자신의 의지뿐만 아니라 친구를 가려 사귀어야 한다는 것, 자신의 자부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형편도 살필 줄 아는 세심한 배려와 눈길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듣고 보면 평범한 진리다. 하기야 진리 중에 평범하지 않은 것이 어디 그리 많던가. 어쨌든 이제야 그는 자신의 강인함뿐만이 아니라 허약함도 수긍하게 된다.
출처 : 알프레트 되블린,《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시공사), 작품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