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석소위의 신상과 약력***
이강석은 1957년 3월 26일, 이승만대통령의 83세 생일에 맞추어서 양자로 입적되었다.
부부였던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사이에 소생이 없었다.
이승만에겐 전처인 박승선(朴承善)과의 사이에 이봉수(鳳秀)란 아들이 있었지만 미국
체류중에 병사했으며 이승만은 그 죽은 아들을 늘 잊지 못했다고 한다.
아들에 대한 이승만의 집착과 이기붕의 장남인 이강석소위에 대한 프란체스카의 애정
으로 이강석은 이승만의 83세 생일에 맞춰서 양자로 입적된다.
양자 입적후 이강석과 관련된 추문 역시 들끓었다.
이강석은 경기고 졸업후 서울대 법대를 다녔으나 부정편입 으로 말들이 많았다.
서울대 법대생들이 동맹휴학에 돌입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이강석은 서울대 법대 중퇴
하고 육사16기로 입교했다가 관절염 때문에 중도에 탈락한후 육군보병학교 속성장교
양성과정인 갑종간부후보생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된 이강석 권력도 역시 막강했는데 이를 근거로 대표적인 예가
어느 청년이 이강석을 사칭한 '가짜 이강석 사건'을 들을 수 있다.
1959년에 미국유학 5월25일 미국 포드베닌 보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마치고 귀국했다.
1960년 이승만정권에 민중들이 항거한 4·19혁명으로 이승만대통령이 하야성명을 발표
한지 이틀후 4월28일 경무대 36호실서 아버지 이기붕,어머니 박마리아 동생 이강욱을
권총으로 쏘고난 뒤 자신도 자살했다.
이기붕 일가족 자살에 대해 당시 경무대경호실장 곽영주가 이승만의 하야를 막기위해
여론을 무마시키고자 그를 비밀리에 살해했다는 설이 있으나 알 수 없다.
((이글은 육사12기 출신 이영진씨(예비역 대위)가
미국 LA에서 신동아 편집실에 보내온 수기를 발췌한 것이다.
****우리 휘문61회 동문들께 지나간 세월의 가십도 흥미거리 이기에 올려 봤습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어찌 됐든간에....
이강석소위 처지가 이해 안가는것도 아니었지만 기분은 역시 우울하고 좋지 않았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머리를 짜내고 있는데 마침 도미(渡美)유학시험 소식이
나의 귀에 들려왔다.
나는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했고 전두환·노태우 두 선배와 함께 유학길에 오른다.
나는 유학준비를 위해 하루8시간 꼬박 영어만 공부하는 육군부관학교(陸軍副官學校)
의 군사영어반 46기로 들어갔다.
학교가 위치한 대구로 떠나가기전 직속상관인 이근양(李根陽·육사 3기) 대령의 호출을
받았다.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참모총장 백선엽(白善燁) 대장께서 이중위를 보자고 하시는데 이강석소위에 대한 얘기
를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 하겠는가?
글쎄 무슨말씀 하실지 몰라도 솔직하게 제가 느끼고 있는 그대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물러나왔다.
솔직하게 라는 말은
참모총장께서 물으면 후배에게 자리를 빼앗겨 기분 나쁘다는 말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다음날 오전 나는 참모총장의 호출을 받았다.
나는 할말을 머리속에 정리하고 참모총장실문을 노크했고 창가의 집무책상에 앉아있던
참모총장은 의자에서 일어나는가 싶더니 곧장 문쪽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응 그래 그래...
그동안 수고가 많았어!
뭐 미국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그래 가거든 공부 열심히 잘하고 그저 그말씀 한마디 뿐이었다.
이강석 소위에 대한 말씀도 없었고 내게 말할 기회도 주시지 않았다.
백선엽참모총장은 준비했던 공로표창장을 내손에 주고 부관 낭독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옆방 대기중인 나의 직속상관인 본부사령 이근양대령과 의장대대장 송용익소령을 불러
기념사진 찍고 손을 내밀었고 육군참모총장과 악수 한번하고 방을 물러 나왔다.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걸린 시간이 채 10분도 되지 않았다.
참모총장실에서 나오자 밖에 서 있던 부관(소령)이 흰 봉투를 하나 건네주기에 엉겁결에
받아들고 나온후 부대로 돌아와 봉투를 꺼내 봤더니 돈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육군중위 한달치 봉급의 2~3배 되는 액수였던것같다.
나는 그날 밤
돈의 출처를 설명하고 동기생 전병일(田炳日) 중위와 또 한사람 방문객 동기생등 셋이서
함께 서울시내의 비어홀을 닥치는 대로 순례했다.
봉투속의 돈이 바닥이 날때까지 전부 마셔 버렸다.
말썽 부리지 않아서 고맙네만 육사라도 나왔으니 너 그래도 이만한 대접을 받는 줄 알아!
그날밤 마셔됐든 맥주잔 마다 떠 올랐던 백선엽총장의 환상이 눈에 아른 거렸다.
이 때문에 마음에 받은 상처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이강석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일의 자초지종 이다
5 편은 "전두환, 노태우와의 인연" 이 올려 집니다.
첫댓글 어찌보면 이강석소위의 짧은 생이 안타깝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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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권력자의 양자로 입적까지 하고...
잘 보고 있습니다
이강석소위야 말로 부모님 잘 못만난 죄로 젊음을 마음껏
누리지도 못하고 영원히 돌아올수 없는 길을 스스로 선택
한것이 무척이나 안타깝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