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왜 늘리려고? 2023.05.23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2월 1일 국회의원 수를 현행 300명에서 330~350명으로 늘리자고 느닷없이 제안했었습니다. 세비 동결을 전제로 지역 소멸, 세대 갈등 해소를 위해 비례대표를 확대하자는 것이었는데요, 국민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비례대표를 거든 게 특이했습니다.
2020년 총선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민주당의 비례용 제2 위성정당인 열린민주당의 1번으로 당선된 김진애 의원은 당 내외의 사퇴 압박을 받았습니다. 도시계획학 박사인 김진애 의원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고 물러났고 비례 2번 최강욱, 3번 강민정 의원에 이어 4번 청와대 대변인 출신 김의겸 ‘흑석 선생’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었죠. 그는 청담동 술 파티, 주한 EU 대사 발언, 자당 당무회의 왜곡 등 사회부 기자 출신이라고 믿기 어려운 숱한 걸음마를 보여오다가 당 대변인에서 물러났습니다.
비례대표는 개별 후보자가 싫건 좋건 특정 당을 찍으면 정당이 사실상 임명한 사람을 의회에 진출시키는 거죠. 아직도 부정선거 논란이 진행 중인 21대 총선에서는 연동형 비례제에 의해 신현영, 윤미향, 양원영(양이원영), 김병주, 이수진, 김홍걸 씨 등이 더불어시민당으로 당선돼 민주당으로, 윤주영, 조수진, 조태용, 신원식, 지성호 씨 등은 미래한국당으로 당선돼 국민의힘에 합류했습니다.
김 의장은 국회의원들의 이해가 얽힌 선거법을 300명 정원 그대로 전원회의에 넘겨 논의했는데 그는 여전히 10명의 증원을 바라고 있답니다. 국민의힘이 증원에 절대 반대입니다. 299명에서 현행 300명으로 1명을 늘리는 데도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헌법 41조 2항은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로 규정합니다. ‘200인 이상’이라면 200명대로 인식하는 게 상식이지 300명이나 350명으로 보는 건 어불성설 아닌가요.
국민은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론조사에서는 늘 증원 반대가 높죠. 심지어 의장 안이 나오자,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조사한 결과 국민 57.7%는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했고 동의는 29.1%에 불과했습니다. 현재 국회의 생산성으로 볼 때 국회의원 증원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 의장은 불쑥 제안하기에 앞서 치밀한 여론조사를 선행해서 국민의 뜻을 살폈어야죠. 물론 많은 정치학자는 전문성 확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찬성합니다. 자신들의 영역도 넓어질 테니까요.
안철수 의원은 2012년 무소속 대선 후보 시절 국회의원 100명을 줄이면 예산이 2천~4천억 원 감소한다고 말했죠. 지금 조경태 의원이 100명을 줄이자고 합니다. 5선 국회의원에 도지사 두 번, 자유한국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은 지난 3월 국회의원은 150~200명의 지역구 의원만으로 하는 게 타당하다고 했습니다. 국가 부채건 뭐건 상관없이 크고 많아야 좋다는 건지, 좌파인 문재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2015년 4월 국회의원이 400명은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21대 의원으로 청와대 출신을 18명이나 배출한 것처럼 자리가 많이 필요했나요. 요즘 이런 국회의원도 있나 싶게 신인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사건은 자질 문제로 볼 때 상징적입니다. 그는 상임위 시간에도 코인 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나 국회의원의 위상을 추락시켰습니다. 이는 이해충돌, 정치자금, 뇌물 등의 범법 의혹 여부를 떠나 청렴, 국익 우선 등 헌법이 정한 국회의원 의무의 위반입니다. 국민의힘과 정의당은 그의 의원직 사퇴나 제명을 요구합니다.
증원 논란을 보며 나는 21대 국회가 과연 무엇을 했나 묻고 싶습니다. 의사와 첨예하게 직역 갈등을 유발하는 영역 독립화 논란의 간호사법, 남는 쌀을 강제 매수해 결국엔 사료나 알코올로 만들고 싶은 듯한 양곡관리법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죠.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사장의 선출을 시민단체에 맡기는 듯합니다. 거대 야당의 단독플레이가 너무 잦습니다. 헌법상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막는 법을 만들어 거대 야당 법률안을 무조건 통과시키겠다는 황당한 발상도 합니다.
반면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 시절 만든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소액 임차인의 범위와 최우선 변제액을 정해 놨지만, 폭등한 주택 값에 비해 현재의 보장 금액은 너무 미흡합니다. 서울의 경우 소액보증금 범위는 그 돈으로 아파트 4분의 1채의 전세나 얻을까 말까 한 1억 6,500만 원이고 최우선변제액은 5,500만 원입니다. 임대인에 대해선 대체로 모든 세입자가 무력하기 마련인데 소액만 보호하고 그보다 큰 전세금은 방치해도 된다는 건가요? 인천광역시는 전세 사기 직격탄을 맞은 미추홀구에서만 피해가 2,484가구 2,002억 원 규모라고 밝혔는데 자살자가 줄을 이었습니다. 절박한 상황이죠.
국회의장은 4전 5기 식으로 여야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게 하여 전세사기 피해자를 보호하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에 합의해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라고 합니다. 모처럼 민생 문제를 미봉책으로나마 해결하는 모습이죠. 보증금 미반환은 사기냐 아니냐, 범위를 두고 논란이 일었는데 적용 대상 기준 보증금은 3억 원으로 하고 시·도별 여건에 따라 5억 원까지 확대할 수 있으며 특별법은 2년간 적용한다고 합니다. 그 후엔 어떻게 될까요?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을 조정하여 정당의 지역 편향성을 완화하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그건 의석수를 늘리는 정치공학적인 제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국민의 의식이 바뀌어야죠. 선거법은 선출 방법을 놓고 막판까지 줄다리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의원 수가 늘어야 특권이 줄어든다고 주장하지만, 국민들에게는 특권의 총량 증가일 뿐입니다.
나는, 무보수 명예직이라면 몰라도 국회의원 정수 증원의 발상이 이 시국에 어떻게 국회의장에게서 나왔는지 의아합니다. 국가부채 1,000조 원(공무원 연금 포함 2,326조 원),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자신들의 밥그릇 창출로 비치는 모습을 보는 국민이 불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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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