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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께 함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찬양해 주신 우리 기드온 찬양대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계속해서 미셔널 주기도문 강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여러분 이 기도는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주세요. 그런 정도의 표현이 아닙니다. 이 기도는 우리가 어떤 순서를 마무리할 때 드리는 그런 마무리 의식 같은 기도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교 미시오데이의 핵심을 다루고 있는 기도이면서 기독교 문명사 전체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오늘 읽은 오늘 우리가 드리는 첫 번째 기도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기도는 하나님의 전략이 세상을 구원하고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전략이 그대로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주기도문을 가지고 기도를 할 때 그냥 주기도문을 외웁시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가지고 구절 구절을 곱씹으면서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선교 전략 구원 전략이 오늘 이 말씀 한 구절에 들어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가 케네스 스콧 라투렛 박사는 초대 기독교 초대 기독교부터 지금까지 기독교 확장의 역사를 어떻게 기독교가 확장되는데 어떤 원인이 있었을까 그것을 연구하면서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독교가 확장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 속에서 새로운 명예를 얻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교회가 부응하고 기독교가 온 세상에 확장되는 주요한 요인이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 하나님의 이름이 새로운 명예를 얻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으로 확장돼 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 순간 하나님의 선교가 이루어집니다. 복음이 전해집니다. 교회가 부응합니다. 랄프 윈터 박사는 기독교 문명 운동 이 랄프 윈터는 기독교 문명 운동이라는 말을 하나님의 선교를 그렇게 표현을 했어요. 기독교 문명 운동은 그게 뭐냐? 곧 하나님의 이름이 회복되는 과정이다.
선교가 뭐야?
선교는 하나님의 이름이 회복되는 과정 이런 뜻입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서구 문명은 기독교 문명과 더불어 찬란한 꽃을 피웠어요. 물론 그리스, 로마 문명이 있었지만 그래도 2천년 동안 기독교 문명이 서구 문명을 주도했습니다. 이 땅에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흘렀고, 수많은 성도들의 땀이 가득한 땅입니다.
물론 역사에 굴곡과 부침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역사입니다. 유럽 어디를 가도 교회가 있고 유럽의 모든 절기와 문화에는 기독교의 흔적이 다 깊이 들어 있어요. 하나님을 높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문명이 2천년 서구 문명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그 가운데 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냐 이거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또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자신들 중심에서 밖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서구 사회는 더 이상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유럽과 프랑스, 특별히 프랑스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이 세속화가 급속한 곳이고, 무신론이 계몽주의 이론으로 강했던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하나님의 이름은 점점 무시되고 때로는 조롱받기도 합니다.
이런 시점에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오늘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그중에서 첫 번째 기도,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하는 이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이 땅에서 다시 거룩 함을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는 그날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여기에 세우셨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오늘 이 자리에 모아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명예가 다시 회복돼야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다시 이 땅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는 순간이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왜 우리가 여기 있는가 다양한 여러 가지 이유와 목적으로 와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명예가 하나님의 이름이 다시 회복되고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중요합니다. 이름이 뭡니까?
여러분 이름은 성경에서 그 존재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 이름 안에 그 사람의 그 존재 인격의 전 존재가 들어 있어요. 역사가 히스토리가 들어 있어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부르고 열국의 아비라는 뜻을 붙여주셨어요. 아브라함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것이고, 그 아브라함 안에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격체의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사례를 부르셔서 열국의 어미 사라라고 불러주셨어요. 사라라는 이름 안에 사라의 모든 존재가 들어있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은 너무나 크고 무한하신 분이시지만은 그 이름 안에 하나님에 관한 하나님의 인격과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내용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는 것은 그래서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이 돼요.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면 하나님께서는 니가 나를 멸시하는구나 이렇게 보신다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하나님은 십계명에 명시하셨어요.
너는 내 이름을 너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망령되이 일컫는 자는 죄 없다 아니하리라 강조하셨어요. 반드시 그 문제는 묻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그 인자하시고 자비가 넘치시는 그 하나님께 죄를 그분이 다시 죄를 반드시 물어야 될 만큼 중요한 문제가 뭐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때에 일컫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가볍게 사용하고 거짓되게 사용하는 것 그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왜 그 이름 안에 하나님 존재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는 거예요. 그 이름을 망령 때 일컫고 그 이름을 때로는 조롱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격이 된다 이런 말씀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거룩히 여기지 않습니다. 왜 세상이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들은 함부로 가볍게 거짓되게 그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사실 알고 보면 이건 굉장히 무례한 일이고 두려운 일이거든요. 하나님께서 인자와 자비가 넘치시고 은혜가 넘치시고 오래 참으시고 또 참으셔서 그렇지 우리가 과거에 그런 경험도 했지만 이슬람에서 섬기는 그들의 하나님 알라와 그들의 선지자 모아마을 함부로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서구에서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함부로 얘기하는 사람도 그 말을 발소를 못해 왜 두려우니까 테러가 두렵고 옛날에 우리가 많은 테러가 있었지만 그중에 엡도 샤글리 엡도라는 그 테러가 있었어요. 그 저널리스트들을 향해서 그 선지자에 대해서 잘못된 표현을 했다는 거예요. 잘못 그리고 망령 때 일컬었다 이렇게 본 거예요. 그러니까 테러하고 나니까 그다음부터는 사람들이 공포 속에서 함부로 말을 못하는 거예요.
근데 우리 우리가 믿는 우리 주님,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너무나 쉽게 망령된 말을 합니다. 그건 우리의 착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은혜와 사랑으로 기다리시고 덮으시기 때문에 그런 거지 만약에 하나님께서 원칙대로 한다면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선교가 뭐냐?
세상에서 짓밟히고 있는 이렇게 짓밟히고 있는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 여러분 선교입니다. 물론 이슬람처럼 우리도 무력을 쓰자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 이렇게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 유럽 사회는 하나님의 이름이 무시되고 하나님의 명예가 짓밟히고 있어요. 그들은 하나님을 억압하는 신이라고 묘사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유럽인들을 억압한 적은 없습니다. 왜곡된 그 중세 교회가 왜곡된 제도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억압한 거예요. 하나님은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너희가 자유케 되리라. 사도 바울은 너희가 자유케 되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라 말씀하셨어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진정한 자유예요. 억압 아닙니다. 인간의 자유를 제한한 날아 빠진 권위 체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왜곡된 인간들이 잘못 만들어낸 그 종교 체계일 뿐이에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서 자유를 주신 분이라 이거예요.
그런데 서구 세계는 그런 세상을 경험한 후에 하나님을 왜곡되게 생각하고 그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허구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에요.
하나님은 없어 포이에르바크라고 하는 사람이 이 신학자면서 철학자인데 이 사람이 어느 날 이 유럽의 기독교 사회를 이렇게 관찰하다 보니까 하나님이 없더라 이거예요. 왜 하나님이 없냐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없고 사람들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그 이글거리는 욕망, 그런 욕망을 해결해 주는 하나님만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을 보니까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망을 공중에 투영해 놓고 그것을 신이라고 하는 신, 마치 요슬램프의 지니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부르면 내가 원하는 거, 내 욕구를 채워주는 하나님 안 채워주면 삐지는 성도, 시험 되는 성도 그 하나님은 도대체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었던 거예요.
거기서 기독교 무신론이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은 허구다. 그 모든 책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서구 사회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밥상머리에서 하나님 얘기하면 결례가 되는 사회 정치 얘기하고 하나님 얘기는 하지 말라 이거야.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이 문제를 진짜 심각하고 가슴 아프게 맞이해야 돼요. 아무리 불효자라도 우리가 인간적으로 불효자라도 누군가가 내 부모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격화시킨다면 마음속에 그 아픔이 있고 아쉬워하고 또 방어도 하고 변호도 해야 되는 거예요. 그게 인간의 도리인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의 부모 이름을 모독하고 조롱할 때 아무 감정이 없이 아이고 뭐 그래요? 우리 부모는 원래 그런 인간이에요. 그러면 그건 완전히 불효자라 이런 거예요.
그리스도인의 자세도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리스도인의 자세도 최소한 세상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때에 일컬을 때 최소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하고 요즘 좀 서운한 관계가 있다 할지라도 최소한 거기에 맞장을 치면 안 되는 거예요. 거기에 찬성 댓글을 달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최소한 지켜야 될 선이 있어요. 그리고 조금만 양심이 있다면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주시고 그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하나님 우리가 도대체 하나님께 서운할 게 뭐가 있습니까? 모든 걸 주셨는데
어쨌든 그래도 인간이니까 서운하다 쳐요. 그래도 최소한 그분의 이름이 조롱받고 모독에 처할 때 가슴 아파하고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그분을 변호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직경에는 가야 되는 그게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생각을 합니다.
21세기는 유럽 선교의 시대입니다. 우리가 유럽에서 어떤 선교를 하겠어요?
우리보다 아무리 요즘 유럽이 다운되고 있다고 해도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들이에요. 이 사람들 탁월한 문명을 가지고 있어요.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여기서 무슨 선교를 합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교는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 하나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 하나님에 대한 평판을 새롭게 회복하는 사역 그건 우리가 할 수 있어요. 그 일을 하는 것이 유럽의 선교입니다. 여기 우리가 가난한 자들, 우리가 나가서 바파도 하고 뭐 여러 가지 하지만 사실은 국가라는 시스템이 너무너무 잘하고 있어요.
우리가 그걸 해서 얼마나 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하겠어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니까 해야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정말 여기서 정말 우리가 21세기에 유럽에서 디아스포라 코리안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이 할 수 있는 선교는 하나님의 왜곡된 이미지를 회복시켜주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이 아니었구나.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구나.
우리가 뭔가 잘못 알고 있구나.
그리고 실제로 프랑스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프랑스인들도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성경을 몰라요. 성경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여기에 두신 줄로 믿습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될까요?
우리가 기도할 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렇게 기도하잖아요. 어떻게 일이 이루어지냐 이거예요. 우리를 통해서입니다.
하나님 이름이 거룩해지세요 거룩해지세요 그러면 거룩해지나요?
그분은 원래가 거룩한 분이에요.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삿대질한다고 하나님 영향을 받는 분 아니에요. 다만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 하나님의 이름이 회복되는 거예요. 그 일은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 기도회는 가로 열고 하나님의 이름이 가로 열고 우리를 통해서 가로 닫고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이게 정확한 번역이 되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의 평판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별거 아닌 것 같고 교회 하나하나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세상 사람들은 저와 여러분을 보고 우리 교회를 보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평판이 우리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거예요. 저 인간을 보니 하나님은 별거 없네 그럴 수도 있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보니까 이 사람이 교회를 나간대요. 교회를 나가서 성경에 있는 이 우리 하나님을 믿는대요. 하나님의 자녀래요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어요. 너희의 착한 행실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 크리스천들은 착해야 됩니다. 기도 열심히 하고 봉사하고 종교적 행위는 열심히 하는데 인간성이 더러워 어디 가서 자꾸 사기쳐 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않아 그러면 누가 욕 먹냐 하나님이 욕을 먹으셔요.
하나님이 특별히 요즘은 SNS 시대이기 때문에 막 순식간에 다 퍼져버려 세상에 여기서 오늘 내가 한 얘기가 오늘 몇 시간 후에는 미국에서 한국에서 소문이 퍼져버립니다. 소문 빨라요. 참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어요. 근데 이제 이렇게 유튜브 같은 걸 보다 보면 여러 프로그램들 나오잖아요. 근데 안 좋은 프로그램 안 좋은 어떤 얘기를 하는 프로그램 어떻게 저런 사람이 저럴까 하는 이제 그런 걸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그거 찍었는데 뒤에 십자가가 있어 십자가 안 보이는 데서 좀 찍어. 조금 아니 그 정도도 못합니까?
그런데 그러고 이제 저는 목사니까 이 사회 지탄을 받을 만한 어떤 일이 돌아가는데 저 사람이 크리스천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이거 아니나 다를까 어떤 최악의 경우에는 자기 교회 다닌데 제발 그 말이라도 안 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물론 반대로 정말 훌륭하고 선한 삶을 살고 많은 기부를 하고 또 나라의 명예를 높이는 어떤 금메달을 땄던가 뭐 이런 데 은연 중에 그것도 너무 노골적으로 막 이렇게 하면 반발도 있지만 은연 중에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걸 딱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면 마음이 뿌듯해요. 사람들이 야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이 참 성실하구나 참 훌륭하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그 감정,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 이거예요.
그거의 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아침에 하루를 출발하면서 이 기도를 드려야 됩니다.
하나님 오늘도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또 이 기도를 하고 출발하면 그날 아무래도 사는 게 굉장히 쫄깃쫄깃합니다. 야 이거 함부로 할 수 없고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하루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기도는 여러분 매우 적극적인 기도입니다. 제 삶을 하나님 제 삶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명예를 보존하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데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투랩 박사가 초대교회가 확장되는 데 부흥하는데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성도들의 거룩한 생활과 사랑의 실천 그것이 강력한 요인이 됐다는 거예요.
초대교회는 교리를 통해서 부흥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에 고대 교부 시대의 교리가 만들어진 것은 이단이 나왔기 때문이에요. 신앙을 왜곡하는 이단 그리고 너무 박해가 심하니까 이 신앙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교리를 만들었어요. 그러나 그 교리가 기독교를 보호는 했지만 교리가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되는 데 역할을 한 건 아니에요. 그 역할은 하나님의 성령이 하신 것이고 성령이 뭘 통해서 하셨느냐 성도들의 아름다운 삶을 통해서 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소수자들이었고 변두리 사람들이었어요. 사회 변두리에 밀려난 사람들이 권력자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들의 삶은 거룩했고 존경받았고 아름다웠습니다. 나무랄 데가 없었어요. 초대 교인들을 박해하면서도 그들은 감동했어요.
저 사람들은 내가 때리고 박해하지만 우리하고는 좀 다른 사람들이야.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결국은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세상의 문명이 변화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로마가 변했어 로마는 오늘날 미국이 엄청난 그 힘을 가지고 호령하고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보면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 그러지만 그 로마의 문명과 로마의 업적에 비길 수 있을까 인류에 나타난 정말 어마어마한 문명이 로마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강대국이었습니까? 그리고 복음이 기독교 복음이 예수님 오셔서부터 그때 예수님이 오셨지만 로마에서는 재정이 시작돼 황제정이 그래서 팍스 로마 하나가 시작이 진행이 된 거예요.
세계를 장악하는 모든 면에서 그것이 어떻게 변두리에서 십자가에 죽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그 변두리 사람들에 의해서 어떻게 이런 문명이 기독교 문명으로 바뀔 수 있을까 그런데 바뀌었어요.
무력이 아니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하고 존경받고 아름다웠던 삶이었어요. 이 땅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몸짓 결정 행동 삶 하나하나가 뭐 내가 오늘 뭐 이렇게 살아가는 게 그게 도대체가 무슨 의미가 있냐 아닙니다.
우리 우리 교회가 드리는 예배 하나 우리가 주고받는 대화, 일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발걸음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서 여러분 이 프랑스라고 하는 그리고 유럽이라고 하는 이 서구사회라고 하는 문명의 어떤 변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같이 여기 동양에 유색 인종이 와가지고 요즘은 이런 표현도 하면 안 되겠지만 와서 그렇다고 우리가 뭐 불어를 잘해요. 우리가 뭐 사실 유럽 사람들이 요즘은 문명이 이제 유럽도 요즘 어렵다고 하지만 이 사람들 선진국 아니에요.
근데 이 사람들이 예수 믿는 우리들을 통해서 어떤 변화가 있을까 변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 이 기도를 드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 세상을 바꾸는 일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선교 전략은 고도의 선교 전략이 아니었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가지고 이렇게 계획을 짜고 이렇게 이건 정말 내가 비밀이다. 이렇게 해라. 그럼 세상이 바뀐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어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오늘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나를 통해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 선교가 이루어진다. 세상이 바뀐다. 거룩히 여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세상,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는 문명 공동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예배 여러분 이것을 실현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미시오데입니다. 그리고 우리 이것이 교회의 비전이어야 되고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가 돼야 됩니다.
역사의 종말에 주님은 재림하실 것입니다. 재림하실 때 주님의 어린 양 보좌 앞에 우리 모두 모여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될 것입니다. 열방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그 순간이 역사의 오메가 포인트예요.
우리는 그 순간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선교의 최종 목적은 여러분 가서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구원하고 선한 일을 하는 거 그게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선한 일을 하고 그들을 구원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세상을 만드는 그것이 선교의 목표이고 그것이 이루어진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이름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비루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인간이 창조주를 그렇게 대하는 거예요. 죄인인 우리가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그렇게 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절에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그의 이름이 다시 회복되고 존중받고 거룩히 여김을 받는 일을 일에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한 주간 동안 크리스천으로서 선교적 삶을 산다고 대단히 나는 오늘 순교해야 돼.
그런다고 선교가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한 주간 살아갈 때 사람들이 딱 보고 아이고 저 사람 괜찮은 사람이네. 그런데 예수 믿는데 이 말 한마디만 들으면 한 주간 선교적 소임을 다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