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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본부간부회〉 남자부 활동체험
2023년 1월 18일
가고시마(鹿児島) 신세기현 현남자부장
이자코 노부타카(居迫伸孝) 씨
신심(信心) 외길인 아버지를 이어 사회를 재건
一, “아버지가 심근경색(心筋梗塞)으로 쓰러지셨다.”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2014년 말이었습니다.
당시 가나가와(神奈川)에서 대형 기계 제조업체에 근무하고 있던 저는 서둘러 가고시마(鹿当時島)에 있는 본가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병상에서 마지막까지 싸우시다 새해가 밝았던 1월 9일, 가족과 동지들의 기원에 감싸여 편안하게 영산으로 떠나셨습니다.
아버지는 신심(信心) 외길의 분이셨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금속가공회사가 리먼 쇼크로 수 십 억엔의 부채를 안고도 사원들의 인생을 지키려고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제목(題目)을 부르시며 열심히 일을 계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감상에 잠길 새도 없이 ‘아버지 회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저에게 밀어 닥쳤습니다. 살아생전의 아버지를 생각하자,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솟구쳐, 고민 끝에 저는 회사를 계승할 결의를 했습니다.
一, 그러나 현실은 엄해 향후 몇 개월 안에 경영자금이 소진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 제 자신도 경영자로서는 명백히 실력 부족. 저는 혼자 아버지가 남긴 회사의 회생 계획을 움켜쥐고 쉬지 않고 계속 일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을 정처 없이 전력 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본가의 불단(佛壇)방에서 밤새 제목을 불렀습니다. 한심스런 자신이 분해서 눈물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기원이 깊어지면서 생각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이케다(池田)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나의 애제자 이자코 다이사쿠(居迫大作) 군의 대승리의 인생을 상찬하며”라는 전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인생을 선생님께서는 ‘대승리’라고 상찬해 주셨다. 나도 절대 질 수 없다. 반드시 승리해 부자(父子)의 승리를 선생님께 보고 드리고 말겠다! - 제 자신의 제목(題目)이 서원(誓願)의 기원으로 바뀌었을 때, 몸속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힘이 솟아올랐습니다.
一, 바쁜 일속에서 남자부의 활동에도 시간을 열어 참가. 멤버나 우인,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를 깊게 했습니다. 학회활동(學會活動)의 자세는 자연스럽게, 일에도 통해 재차 종업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과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원래, 만들기에 대한 열의와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술력은, 타사에 뒤지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로인해 개인기만 돌출, 전체 흐름이 막혀 생산라인에 정체가 생긴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조속히, 사내에 ‘생산관리과’를 신설. 코스트와 성과를 전 사원과 공유해, 모두가 하나가 되어 목표에 도전할 수 있도록 궁리했습니다.
점차, 직장에 단결이 생겨나 고객으로부터도 기쁨의 소리가 다수 전해지게 되어, 경영은 착실하게 궤도를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도산 위기를 벗어나기는커녕 2년 후에는 흑자로 전환하기까지 회복. 기원한 대로 경영재건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박수)
2019년에는, 회사가 가고시마현 경영품질협의회의 경영혁신추진상을 수상. 게다가 20년에는, 지역의 경제를 견인하는 기업으로서 경제 산업성으로부터 ‘지역 미래 견인 기업’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박수)
당초 제가 회사를 잇는 것에 비판적이었던 한 임원에게서도 “정말 열심히 잘 해누었다. 과연 사장님이네.”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퇴직하실 때까지 제 편이 되어 회사의 중핵을 계속해 맡아주셨습니다.
一, 제 책상 서랍에는 아버지께서 남기신 수첩이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매일의 학회활동의 모습이나 동지와 이야기한 기쁨이 빽빽이 적혀 있습니다.
그 글씨를 볼 때마다 ‘오늘도 아버지에게 지지 않고 싸우자’는 생각이 솟구칩니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회사를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미래에 ‘빛나는’ 회사로 키운다. - 그것이 지금의, 저의 맹세입니다.
“굳이 고뇌 많은 숙명을 짊어지고 묘법(妙法)의 위대함을 증명하고자 이 세상에 출현(出現)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용보살(地涌菩薩)의 사명에 눈을 떠, 광선유포(廣宣流布)에 끝까지 살아가면, 전환할 수 없는 숙명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이 이케다 선생님의 지침을 가슴에 품고 앞으로도 사명의 땅 가고시마(鹿児島)에서 성의를 다해 지역에 신뢰를 넓히고 개가(凱歌)의 인생을 당당하게 돌진해 나아가겠습니다. (박수)
〈제12회 본부간부회〉 여성부 활동체험
2023년 1월 18일
가나가와(神奈川) 하다노욱일현(秦野旭日県県) 시라유리장
아오야마 아유미(青山真弓) 씨
성실과 도전의 길을 걷는 인정(認定) 간호사
一, 저는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의사인 남편, 6살의 아들, 3살인 딸 이렇게 4인 가족입니다. 어머니는 저를 임신 중에 창가학회(創價學會)에 입회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간호사를 목표로 한 것은 지역 조직에서도, 간호사그룹인 시라카바회(白樺會)에서도 분투하시는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선천성 신장병을 가진 여동생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동생이 열심히 병과 싸우는 모습에, 몹시 학회를 싫어하셨던 아버지도 입회. 여동생은 마지막까지 생명의 불꽃을 태우고 5살에 사명의 인생을 마쳤습니다. 임종(臨終)의 편안한 표정에 여동생의 꿈이기도 했던 간호사가 꼭 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一, 염원하던 간호사가 되어 처음 배속된 것은 구강외과였습니다. ‘섭식(攝食, 음식 섭취)·연하(嚥下, 삼켜서 넘김)장애’라고 하는, 식사나 회화(會話)가 여의치 않은 상태의 환자를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통감. 직장환경이나 인간관계도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 ‘청년부간부회’에서 이케다(池田) 선생님과 처음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격려하시는 스승의 모습에 선생님의 제자로서 제 자신이 사람을 격려하는 사람이 되자고 결의했습니다.
서투른 사람도 포함해 전원이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직장으로, 라고 마음을 정해 창제(唱題). 상대가 어떻든 성실한 행동을 하고 눈을 보며 인사. 여자부(당시)에서도 벗의 격려에 온 힘을 쏟는 가운데, 제 모습을 본 친구가 학회의 이해가 깊어져, 첫 홍교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박수)
자신의 일념(一念)이 정해지면 주위도 바꿀 수 있다. 저는 더 나아가 병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환자의 재활 상황의 개선에 도전, 방대한 의료 기록을 다시 읽어, 새로운 대처를 학회에서 발표. 그렇게 실력을 갈고 닦은 10년, 병원 최초가 되는 섭식·연하장애 간호의 인정(認定, 공인) 간호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박수)
이후, 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간호를 항상 유념해 왔습니다. 설암 수술 후, 식사와 회화가 잘 되지 않아 주변에 계속 짜증을 내며 재활치료도 거부하던 환자 분에게 매일 격려의 말을 계속해 건넸습니다. 처음에는 쌀쌀맞은 반응이었지만 재활도 거쳐 처음으로 밥을 한입 먹을 수 있었을 때, “매일 당신이 격려해주었기 때문이야.”라는 감사의 말이. 성의(誠意)는 반드시 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一, 2017년, 시라유리(白百合)장(=반담)의 임명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결심한 것은 미입회였던 남편의 입회였습니다. 결혼 초부터 남편은 종교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창제에 도전하며 ‘이렇게 대단한 신심(信心)을 모르다니 아깝다’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남편은 이케다 선생님을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과 같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VOD(비디오 온 디맨드)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선생님의 스피치를 시청하자 그 말과 행동에 감동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후 스피치를 차례차례 시청하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지구(地區)의 남자부원들이 동지들의 격려로 몰라볼 정도로 성장하는 모습을 본 남편은 의사로서도 이것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진심으로 경탄했습니다. 당시 한 살이던 아들이 어본존(御本尊)에게 손을 맞추려는 모습에도 마음이 움직여 남편은 마침내 2018년 2월 11일, 상쾌하게 입회할 수 있었습니다. (박수)
입회 전, 사물을 비관적으로 파악하는 일도 많았던 남편이, 학회활동(學會活動)에 힘쓰는 가운데, “이케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라며, 지금은 남자부의 지구리더, 창가반(創價班)의 일원으로서, 모두와 격려하고 있습니다.
一, 생각해보면 결혼 이후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육아와 일을 양립하는 가운데 시라유리장으로서도 한정된 시간에 최대의 가치를 창조하겠다고 결심하고 협의회나 좌담회에는 반드시 참석해 왔습니다.
의료현장은 신경과 체력을 고갈시키는 매일이지만 동지들의 따뜻한 격려와 스승께 보답하고 싶다는 기원이 있었기에 지지 않고 매일 성실한 간호를 관철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사명이 깊은 영시라유리세대로서 일가화락(一家和樂)의 신심(信心)을 쌓아가고 있는 것에 감사의 마음이 가득합니다.
앞으로도, 좋아하는 동지, 가족과 손을 잡고서, 우인이나 직장 동료에게 진심을 다하며, 광포(廣布)의 길을 똑바로 걸어 나아가겠습니다. (박수)
첫댓글 감사합니다 🌈
너무훌륭한체험담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