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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왕 풀크1세와 그의 자손들
1131년 장인 볼드윈2세가 죽자 계승한 풀크는 아내인 멜리장드와 공동통치자로 예루살렘왕이 됩니다. 장인이 죽기 전해인 1130년 아들 볼드윈(외조부의 이름을 계승)이 태어났기 때문에 전왕은 편안하게 죽었을 겁니다. 풀크의 입장에선 아들이 태어나면서 실질적인 지배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뭐... 정략적인 결혼의 산물인데다 이미 첫 결혼을 해 본 데다가... 지가 여왕이라 건방졌을지도 모르죠. 풀크는 기사답게 십자군을 무난히 이끌었고... 1143년 기사처럼 장렬하게... 전쟁터에서 죽은 건 아니고 사냥 나갔다가 두개골이 부서져서 그의 뇌가 귀와 콧구멍으로 흘러나와... 사흘 동안 사경을 헤매다 죽었다고 합니다. William of Tyre는 그의 저서에서... 풀크를 평하기를... 충실하고 부드러운... 그리고 정중하고 친절하였고... 다윗처럼 군사적 인내와 지혜 그리고 경험이 풍부한 전사였다고 서술했습니다. 그의 결점으로는... 아주 치명적인데...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 하지 못하는 무능력... 뭐... 훌륭했다니 다행이죠... 흠..
멜리장드와 결혼하는 풀크...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풀크와 그의 자손들입니다.
앙주가문 2대 볼드윈3세
앙주가문의 두 번째 군주가 된 볼드윈3세(Baldwin III, 1130~1163)는 어머니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만...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는 여전히 성년이 되지 못한 상태였죠. 남북으로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2차 십자군을 시도했고 다마스쿠스를 점령하려 했지만 역량이 부족했죠.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비잔틴제국과의 동맹... 누르앗딘과의 치열한 전투는 그의 치세를 전쟁으로 물들였다고 합니다. 1152년부터 어머니로부터 해방되어 친정을 시작했지만 1154년까지 쓸데없는 권력싸움질이나 합니다... 모자간의 권력투쟁은 결국 죽음으로서 끝나고... 1161년 어머니가 죽고 권력맛을 보는 순간... 1163년 볼드윈은 베이루트에서 사망하고 말죠.
볼드윈3세는 비잔틴제국과의 동맹을 위해 과감히 왕후를 수입합니다. Theodora Komnene는 13세의 나이로 예루살렘왕국의 왕비가 되죠. 그녀는 황제 요한2세의 아들인 이사키우스의 딸로 마누엘1세가 삼촌이었죠... 그러나 불과 17세에 볼드윈이 죽어 과부가 된 그녀는... 황제 안드로니쿠스1세의 러버 관계가 되어 알렉시오스와 에이렌을 낳습니다...
앙주가문 3대 아말릭1세
형을 이어 즉위한 아말릭1세(Amalric I, 1136-1174)는 왕자시절 자파와 아스칼론의 백작으로 분봉된 상태였는데 형이 자식이 없자 왕국을 이어받았습니다. 백작 시절 즉 왕위후보자 시절에 결혼상대자는 Agnes of Courtenay(1136-1184)로... 앞서 언급한 쿠르트네이 가문의 처자였죠. 당시 Courtenay family는 County of Edessa의 통치가문으로서... 왕국 내 상당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국의 사정은 비잔틴의 힘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죠... 이게 문제여... 원만한 부부관계조차 파탄시키는 정치...
아그네스는 원래 첫 결혼은 평범한 귀족이랑 했으나 요절하자 다시 정혼자를 두었는데... 그가 그만 무슬림에게 포로가 되는 바람에... 결혼계획이 날라가버렸죠. 당시 예루살렘왕국 내에는 귀족처자가 무척 드문 상황... 그냥 놀리면 안되죠... 1157년 아그네스의 아버지인 에데사백작 Joscelin II of Courtenay는 포로로 잡히고 그녀는 왕족인 알마릭이랑 강제로 결혼하게 되어 아들과 딸을 낳습니다... 문제는 남편이 왕이 되면서 시작되죠. 반했는지 아님 알마릭의 결혼상대가 너무 없어서 그런지... 강제로 한 결혼이 이번엔 강제로 이혼하게 생깁니다.
그녀는 수도원으로 보내지고 강제로 이혼위기에 처하게 되죠. 물론 친척들이 구원을 하려 하지만... 알마릭은 비잔틴과의 동맹을 위해 과감히 무시하죠... Maria Komnene(1154-1217)는 알라릭의 왕비가 되기 위해 오게 되었는데, 그녀의 부친인 요한 두카스 콤네노스는 황제 요한2세의 증손자였으며 사이프러스 공작을 지낸 인물이었습니다. 마리아는 1172년 딸 이사벨을 낳았고 1173년 아이를 낳았으나 태어나자마자 죽었죠. 그리고... 1174년 열씨미 이집트와 떠오르는 살라딘이랑 맞짱 뜨고 열씨미 싸우던 남편 알마릭은 이질에 걸려(지금은 항생제 한 알에 치료 되는게 이질인데 이걸로 죽다니...) 사망신고를 냅니다... 남편이 죽을 때 니블루스 지방을 남겨주어서 그녀는 다시 재혼 가능하게 되었죠... 후후후... 그녀의 재혼에는 흥미로운 인물도 있어서... 그건 나중에 소개합니다.
앙주가문 4대 볼드윈4세
갑작스럽게 병들어 죽은 아버지를 이어 즉위한 볼드윈4세(Baldwin IV, 1161-1185)는 영화 속에서 놀라울 정도로 똑똑한 성군 캐릭으로 등장하죠... 그러나 역사 속에서 그의 일생은 엄청 불우했습니다. 어머니는 강제로 이혼 당해 쫓겨났고 13세에 군주가 되어 연속 섭정이 바뀌고 살라딘은 째려보고... William of Tyre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왕의 나병을 처음 발견했죠. 영화 속에선 발리앙의 아버지라고 하던데...후후 아무튼 나병은 유전병이 아니며 피부에 의한 감염에서 유발합니다. 피부에 상처 등이 나서 나병균이 침입하면서 벌병하니까요. 경과로는 사지의 무감각과 근육병이 나고... 염증으로 인해 연골이 변형되죠... 아무튼 10대 초반부터 죽음의 문턱에 있는 소년왕이 할 수 있는건 후계문제의 해결뿐이겠죠...
볼드윈4세는 어머니가 같은 친누이 Sibylla을 후계자로 지명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결혼은 아주 정략적 이어야했죠. 그들의 선조 풀크와 멜리장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예루살렘왕국 입장에선 유럽에서 십자군이 더 파견되었으면 하는 심정이었을 겁니다. 당시 유럽을 제패한 국가는 역시 신롬과 프랑스였습니다. 이 두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수가 필요했죠. 그 결과 시빌의 남편감으로 이탈리아인이 선택되었습니다...
볼드윈의 나병이 확인되는 순간의 모습...
티르에의 윌리엄 기록 속에서 나오는 삽화입니다.
장난치다가 상처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병이구나...하는 장면이죠!
게임 속에서 등장하는 볼드윈4세입니다. 잘생긴 얼굴인데... 나병환자군요.
몽페라토의 윌리엄과 볼드윈5세
이탈리아어로 굴리엘모... 프랑스어로 빌럼으로 불리는 몽페라토의 윌리엄(William of Montferrat, 1140경-1177)은 1176년 볼드윈의 누이 시빌과 결혼하였고 차기 예루살렘왕으로 선택됩니다. 그리고 결혼으로 자파와 아스칼론 백작을 겸하게 되죠. 키 크고 금발의 머릿결에 잘생긴 얼굴, 솔직하고 소박한 그는... 엄청나게 대식가였음에도 장검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기사였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임신했을 당시 그는 말라리아로 사망신고를 내고 맙니다. 짧은 유복자만을 남긴 셈이죠.
eldest son 즉 가문의 장남이었던 그가 예루살렘왕국의 차기 후계자로 선택된 것은 순전히 혈통에 의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윌리엄5세(William V, Marquess of Montferrat)였고 어머니는 Judith von Babenberg였습니다. 윌리엄의 외조부는 레오폴드3세로서 오스트리아 공작이었으며 외조모는 신롬황제 하인리히4세의 딸이었죠. 즉 신롬황제와는 외조모를 통해 사촌지간이었습니다. 또한 친조부였던 레니에르1세가 부르군디백작의 딸 기젤라와 결혼하여 윌리엄5세를 얻었죠. 친모모였던 부르군디의 기젤라(그녀는 대귀족이었던 House of Ivrea 출신입니다)는 2번의 결혼으로 많은 자녀를 낳았는데 첫 남편이 사보이백작 엥베르2세였고 두 번째 남편이 몽페라토후작 레니에르1세였죠. 엥베르2세와의 자녀인 아델라이드가 프랑스왕 루이6세와 결혼하여 루이7세를 낳았는데 이 관계로 몽페라토의 윌리엄은 프랑스왕과 사촌지간이 되었죠. 이 막강한 인척파워에 선택되었지만... 말라리아로 한순간에 끝나버렸죠.
그가 죽은 후 시빌은 아들을 낳았고 자라서 예루살렘왕 볼드윈5세가 됩니다. 비록 9살밖에 살지 못했지만... 시빌은 재혼상대로 가이 드 뤼지냥을 선택합니다. 여러 설이 제기되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은 그가 잉글랜드왕의 가신이라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라는 것...이지만... 또 다른 가설에 의하면 시빌이 얼굴빨(?)로 밀어붙힌 가이에게 반해서 결혼했다는... 아무튼 볼드윈5세의 요절은 예루살렘왕국엔 불행이었음은 말할나위가 없는 것 같군요. 왜냐하면... 신롬황제와 프랑스왕의 인척인 볼드윈5세를 치는 것보다... 한낱 왕의 가신에 불과했던 가이를 부수어버리는 것은 그다지 위협이 되질 않았겠죠... 또한 시빌의 무능은 다른 귀족들에게 불신을 주어 귀족들의 소소한 쿠테다가 끊이질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빌을 내쫓고자 그녀의 이복동생을 내세우는 음모가 지속적으로 발생했으니까요. 결국 볼드윈4세가 마지막 힘을 다해 가이의 계승을 막으려고 시도했지만 사망함으로써 하틴의 재앙을 막기엔 실패합니다. 권위가 다한 왕실 운명의 말로였던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볼드윈5세가 외숙부처럼 나병이라 안락사 시켰다고 묘사하지만... 그건 픽션입니다. 이것은 여러 소설에도 차용되었다고 하더군요. 이 소년왕의 죽음이 왕국의 운명을 앞당겼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에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인 것이 아닐지... 아무튼 그의 죽음으로 시빌과 가이 커플은 왕국을 말아먹는데 성공하였고... 정작 그 콩고물을 정말로 맛보게 되는 가문은 가이를 배출한 뤼지냥 가문이 됩니다. 가이는 자손 없이 죽지만 그의 형제들은 왕관을 한번 맛보는 덕택에 다시 사이프러스 왕국을 획득하게 되죠. 한번 왕은 죽어도 왕입니다...
꼬꼬마왕 볼드윈5세의 즉위를 묘사한 방면입니다.
시빌의 첫 남편이자 볼드윈5세의 부친인 굴리엘모 즉 몽페라토의 윌리엄입니다. 이탈리아인...
영화 속의 그녀는 그래도 그런대로 봐 줄만 하던데... 여기는 영~
시빌과 그의 두번째 남편인 가이 드 뤼지냥...
앙주가문의 마지막 여왕 이자벨
1187년 하틴 전투의 패배 후 잔여 왕국의 영지를 수습하여 예루살렘왕관을 가지게 되는 사람은 흥미롭게도 여인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자벨... 역사서엔 Isabella I(1172-1205)로 기록되면 1190년경 즉위합니다. 그녀는 마지막 앙주가문의 일원이었고... 그녀의 남편이 곧 예루살렘왕이 됩니다. 그래서 일생동안 상당히 많은 남편들을 만나게되죠.
첫 남편은 토론의 험프리4세였고 두 번째 남편은 몽페라토의 콘라드, 세 번째 남편은 샤파뉴의 앙리2세, 네 번째 남편은 사이프러스의 아마릭1세였습니다. 그녀가 왕관을 쥐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비잔틴황실의 황족 출신이었고 마지막 앙주가문의 일원이었기 때문일 거라 추측됩니다. 11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티르에로 수도를 옮겼다가 1189년 3차 십자군이 일어나면서 그녀가 즉위하였고 수도를 아크레로 이동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왕국은 예루살렘이 없는 이름뿐인 왕국... 바닷가의 몇몇 도시만을 통치하는... 해안가에서 익사 직전의 왕국... 유럽 본토에서 제발 십자군이 일어나 성지 탈환을 도와주기 바라는 형국이었습니다. 즉 3차 십자군이 중동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벨1세는 형부였던 몽페라토의 윌리엄의 동생인 콘래드(예루살렘왕으로는 콘래드1세)와 결혼하여 그와 공동 통치하지만 딸 마리아를 얻고 1192년 재위 1년 만에 사망합니다. 이에 샹파뉴백작 앙리2세와 서둘러 재혼하는 이자벨1세... 앙리는 화려한 혈통을 자랑하는 가문 출신이었죠. 아버지는 앙리1세였고 친조모는 카린티아공작 엥겔베르트의 딸로 독일의 명문 스폰하임 가문 출신었습니다. 어머니는 프랑스왕 루이7세와 아키텐여공작 엘레오노라 사이에서 태어난 마리 공주로 잉글랜드왕 리처드1세의 이부누님이었습니다. 처음에 에노의 이자벨과 약혼했는데 그녀는 파혼 때리고 그의 사촌인 프랑스왕 필립2세에게 시집가버립니다... 추측건데 엄청 열 받았겠죠...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25세 때인 1190년 3차 십자군에 참전합니다. 그리고 중동에 도착해보니 막 과부가 된 이자벨이 청혼하더군요. 국왕 시켜줄 터이니... 나 좀 보호해줘용~
1192년 결혼과 함께 예루살렘왕이 된 앙리는 열씨미 성지 탈환에 전력을 다하지만...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리고 백작령은 동생 테오발드가 상속받죠. 고향에서의 안좋은 기억으로 성지로 왔다가 죽어간 또 한 명의 귀족 기사로 이름을 남깁니다.
앙리1세가 죽자 이자벨1세는 다시 보호해 줄 남편감을 물색합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뤼지냥가문의 아마릭... 바로 시빌의 남편이었던 가이의 동생이었죠. 그는 이미 첫 결혼으로 6명의 자녀를 둔 상태였고 형님 후광과 가문의 군주인 리처드1세의 활약 및 후원 덕분에 다시 빵빵해진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1198년 앙리1세가 죽자 여왕과 재혼하여 예루살렘왕이 됩니다. 그리고 자식복이 많아서... 1남2녀를 얻죠. 막내가 아들이었는데 4살에 죽어 결국 이자벨1세는 딸만 3명을 남기게 됩니다. 이로써 앙주가문은 단절되고 콘래드1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마리아가 몽페라토 가문 출신으로 왕국을 상속받게 됩니다. 참고로 몽페라토 후작가문의 성은 Houses of Aleramici입니다.
브리엔 가문과 호엔슈타우펜 가문 그리고 왕국의 종말...
1205년 어머니를 이어 즉위한 마리아는 브리엔의 존과 결혼합니다. 브리엔 가문은 게임 내에서 샹파뉴지방을 보시면 남작령을 가지는 귀족으로 등장할 껍니다. 이 가문을 등장시키는 것은 아마 이때에 이르러 예루살렘왕위를 획득하기 때문에... 역설사는 이처럼 깨알같이 넣어줍니다. 역사적 고증이니까...
마리아와 존1세 사이에 딸 욜란드(1212-1228)가 태어납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20세 때 2살된 딸 욜란드만 남기고 떠나죠. 그리고 그녀가 예루살렘왕관을 계승합니다. 그녀를 먹이감으로 노리는 건 신롬황제였던 프리드리히2세(1194-1250)였습니다. 시실리에서 은둔하면서 지냈던 욜란드는 16세 때 출산 직후 사망합니다. 13세에 29세의 황제와 결혼하여 15세 때 첫 출산을 하였고 두 번째 출산으로 인해 사망합니다. 여인의 일생으로는 참으로 불우하였죠...
어머니의 죽음과 삶을 맞바꾸고 태어난 콘래드2세(1228-1254)는 예루살렘왕으로써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첫 군주가 되었고 동시에 신성로마황제가 됩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도 그리 길지는 못했죠. 죽음과 함께 아들 콘라딘이 태어났고 강보에 싸여 예루살렘왕국와 시칠리아왕국을 통치하게 된 그는... 끝내 어른들의 농간으로 저자거리에서 목이 잘리면서 16세의 일기로 결혼도 못해보고 죽습니다. 이로써 시작은 신성했지만 끝은 그리 신성하지 못한채 예루살렘왕국은 막을 내립니다. 마지막 호엔슈타우펜가문의 종말은 이미 소개해 드려서 생략합니다.
1268년 이후 예루살렘왕위는 거의 명목상의 왕관이 됩니다. 너도나도 피 한방이라도 섞이면 클레임을 걸며 얻고자 노력합니다. 대부분 이자벨1세의 외손들의 혈통에서 기인하죠. 그래서 사이프러스의 군주들이 클레임의 우선권을 차지합니다만...
아무튼 예루살렘왕국이 교황과 프랑스가 결탁하여 억지로 종결지어버린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봅니다. 십자군을 일으킨 것은 교황이었는데... 그 종결자 노릇을 또 교황이 하는 겁니다... 그러니 크루세이더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밖에 없는 일이겠죠. 모든 역사는 돌고 도는 겁니다.
3차 십자군이 일어날 무렵의 예루살렘왕국의 영토입니다.
사그리 다 빼앗기고... 바닷가 도시만 남았군요... 살리딘의 위엄...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죄송... 프리드리히2세입니다. 수정합니다... 역시... 다르십니다!!!
풀크가 사냥가다가 말에서 떨어졌는데 그의 말에 끼워진 안장이 풀크의 머리에 떨어져서 뇌수가 튀어나올 정도의 치명상을 입었다고 하더군요.
좋은 정보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중세는 진짜 왕빨이 너무 큰거같아요 평균수명이 낮아서 장수도 못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