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탈원전 앞에서 힘 잃은 진실
박상현 기자
조선일보 2022.01.15 03:00
2017년 6월 19일 오전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가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다./조선일보 DB
문재인 정부가 5년간 밟아온 탈(脫)원전 족적을 되짚어보면 2010년 ‘타진요’ 사건이 떠오른다. 타진요는 미국 스탠퍼드대 출신 가수 타블로에게 근거 없는 학력 위조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들이다.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도 믿지 않고, 새로운 의혹을 계속 제기했다. 타블로와 그 가족의 인생은 망상에 빠진 키보드 뒤편 음모론자들에 의해 송두리째 무너졌다. 대법원까지 간 이 사건은 타블로 측 승소로 끝났다. 하지만 진실과 음모의 싸움에서 결국 생채기 난 쪽은 진실이었다.
심리학에선 남의 말 듣지 않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을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1960년 영국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이 제시한 이 개념은, 객관적 진실과 관계없이 자기 신념을 강화할 정보만 취사 선택하는 경향을 뜻한다.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가 구축한 세계에 흠집 낼 만한 진실은 간단히 무시한다. 타진요 사건 당시 타블로의 담당 교수였던 토비아스 울프 교수는 ‘(타블로가) 스탠퍼드대 영문과 학·석사를 3.5학기 동안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내용의 공문에 직접 사인을 해 한국으로 보냈다. 타진요는 “울프 교수의 사인은 가짜”라고 했다. 진실은 이럴 때 힘을 잃는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원전의 미래를 두고 현 정권에서 발전적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정부가 확증 편향에 빠진 탓이 크다. 우리나라 중·장기 탄소 중립 정책을 결정한 탄소중립위원회에 원자력 전문가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확증 편향의 일례다. 한국수력원자력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해달라며 각종 데이터를 토대로 제시한 의견서 역시 정부에는 ‘조작된 울프 교수의 사인’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사례를 들어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도 않다”고 했다. 우리 사정도 피차 다르지 않다며 원전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런 음모론은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던 원전 업계 종사자들의 밥그릇을 걷어차 버렸다. 숱한 강소 기업이 부도나고 도산했다.
정부 탈원전 정책에 앞장섰던 한수원과 산업부가 5년 만에 “국내 원전은 안전하고, 저렴하며, 친환경적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1978년 우리나라에서 원전이 첫 가동을 시작한 이래 40여 년간 사고는 한 차례도 없었다. 원전 발전원가는 사후 처리 비용과 사고 대비 비용을 포함해도 다른 발전원보다 싸서 발전용 연료 수입에 드는 외화 지출을 연간 15조원씩 경감해줬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태양광의 4분의 1 수준이다. 탈원전 정책에서 타진요가 떠오르는 것은, 선동이 진실을 억압해도 결국 승리하는 것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 탈원전 5년, 무너진 60년 원전산업 ]
원전을 담당하는 한수원이 탈원전의 논리적 근거들을 부인하는 문서를 작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탈원전 선언문에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368명이 사망했고 방사능 영향 사망자나 암 환자 수는 파악조차 불가능하다.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면서 원전을 더 짓거나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했다.
7.000억원을 들여 보수한 후 가동 연한을 10년 연장시켜서 가동 중이던 월성 1호기는 세월호에 비유하며 폐쇄하겠다고 했다.
한수원 답변문은 평범하고 아주 상식적인 내용들이다.
원전과 지진의 관계, 친환경인지 여부, 사고 가능성 등에 대해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들을 나열한 것이다.
후쿠시마 지진은 규모 9.0 이었지만 지진만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뒤 이어 닥친 쓰나미가 지하 발전기를 침수시켜 벌어진 사고였다.
'1.368명 사망' 이라는 것은 출처 불명의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다.
어떻게 대통령이 이런 허위사실을 근거로 국가 주요 정책을 결정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선 익사자 2명 말고는 사고가 직접 원인이 된 사망자는 없었다.
문 대통령은 원전이 친환경적이지 않다고 했는데 한수원은 최근 EU가 원전을 '녹색산업'으로 분류한 사실을 들어 반박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도 원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수원은 원자력의 온실가스 발생량은 태양광의 1/2 내지 1/4 정도라고 했다. 한수원은 또 '40년 이상 원전 운용에서 중요 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 고 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외국에서 자랑한 얘기이기도 하다. 국내에선 위험하다고 하고, 외국에 가선 안전하다고 자랑한 것이다.
한수원은 문 대통령의 탈원전에 아부하려고 그동안 본업인 원전보다 태양광 사업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권 말기가 되자 '원자력은 친환경' 이라며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정권 사람들도 이제 말을 흐리며 물타기를 하고 있다. 5년간 탈원전의 막대한 피해는 이런 말장난으로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문 대통령이 어떻게 하는지 국민들 모두가 잘 지켜봐야 한다.
(조선일보/2022.1. 8.)
[** 원전의 경제효과 67조원을 날려버렸고. 신한울 3~4호기가 건설 중단되면서 산업붕괴,일자리 감소, 인구유출로 이어져 고용피해가 24만 3,000명에 달하고 상가, 숙박업소 공실률이 20~40%에 이르며 울진군내 식당과 주점 700곳이 줄폐업 했다고 한다. 이것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