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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의 위용 해군 자료실이 공개한 천안함의 마지막 항해사진 |
ⓒ 해군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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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막
도무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난무하고 있는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사태의 전개 과정은 대한민국 정부와 군 지휘부 그리고 보수 언론 등이 범사회적으로 합심하여 제작한 <대한국군 치욕의 날>이란 제목의 거대한 블랙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지난 4일 전군주요지휘관회 석상에서 국방장관은 3월 26일을 '국군 치욕의 날'이라고 했다고 한다. 장관이 말하고자 하는 치욕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림짐작 가능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청명하게 하고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이 '치욕의 날' 제정과 관련하여 사건에 대해 책 임질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아무라도 문책이나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이 단 한 건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은 또 있다. 천안함 사건을 더욱 치욕스럽게 만든 주역들, 즉 정권 책임자와 국방장관 등이 앞장서서 '치욕의 날'을 지정했다는 것이다. 과연 장관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알고나 있는 것일까?
제2막 1장 물속에서 당하고 새떼를 향해 함포를 쏘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 그것이 적의 공격이든 또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이든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수중에 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속초함은 천안함이 침몰하던 시각에 주변의 새떼를 향해 함포를 백수십여 발 발사하는 소동을 벌였다.
이 소동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천안함을 공격한 적대세력의 공격체는 수중에서 공격하고 비행으로 도주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적은 수중과 공중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첨단 무기체계를 갖추고 우리를 농락한 반면, 우리 해군은 고작 물위에 떠있는 채로 공중을 향해 함포나 쏴대고 있었다, 어찌 치욕이 아니랴? 더욱이 76밀리 주포는 공중 표적을 공격하는 대공포도 아니다.
치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각 조작 장치와 통신 교란 장치까지 장착한 것으로 보이는 가공할 위력의 적의 무기는 우리 군이 침몰시간조차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게 했고 군의 통신망도 마비시켰다.
적의 무기에 격침되는 순간 국방부와 함선과 승조원들의 시계 바늘은 멋대로 돌기 시작했다. 그 결과 천안함 침몰 추정 시각은 21시 15분에서, 또 다른 시각으로, 다시 22분으로 엿장수 가위처럼 널을 뛰기 시작했고, 적의 통신 교란 장치는 우리 군으로 하여금 누구라도 청취 가능한 국제상선 통신망을 이용한 통신만을 허용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위안거리가 있다면 적의 가공할 첨단 무기조차도 승조원들의 핸드폰 교신과 문자질을 막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향후 군의 정보 통신 전력 강화를 위해 전군의 군영 내에서 핸드폰 교신 활성화 교육 강화의 필요성을 일깨운 대목이다.
제 2 장 대통령 "군이 초기대응 잘했다"
적대세력의 가공한 무기의 후폭풍은 그들이 현장에서 철수한 후에도 위력을 발휘했다. 침몰한 선미를 추적하는 해군 장비를 교란시킨 것이다. 결국 우리 국군은 어군 탐지기에 탐지된 민간 어선의 도움을 받고서야 함미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적의 무기가 물속과 공중을 넘나드는가 하면 아군의 통신체계를 농락할 수 있을 만큼 첨단 체계를 갖춤에 따라서 군이 초기 대응을 잘못했다면 먼저 구조된 승조원들이나 인근 해역에서 작전 중인 속초함 그리고 독 수리 훈련 중이던 미군 함정 모두가 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 순간 속초함 함장의 기지가 빛났다. 주변을 날아가는 새떼를 향해 대함 무기인 함포를 발사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적을 헷갈리게 한 것이다. 우리의 치욕스러우리 만큼 구식 무기체계로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었던 적대세력의 공격체는 함장의 허허실실 전략에 놀라 현장에서 조용히 철수하고 말았다.
보고를 접한 대통령이 "군이 초기 대응을 잘했다"고 칭찬한 것이 이 때문이며, 이와 같은 대통령의 교시는 사고를 수습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과학적 근거보다 우선적인 준거로 작용한 것이다. 적어도 5월 4일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대통령이 군의 무사안일을 질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 3 막 대한민국의 글로벌 치욕극으로
대통령은 침몰 직후 "북한이 관련됐다는 증거는 없다"며 신중한 대응을 시사해 신선함을 주었다. 대통령의 예상 밖의 신중한 자세는 이 사태가 남북 간의 군사 대결이나 대립으로 확산될지 모른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일정 부분 해소시켜주었다.
만약 이 일에 북한이 관련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UN 안보리를 통해 북한을 제제할 수 있다는 부분에 국제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암묵적인 동의가 이 일에 '북한이 관련됐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이라는 단서가 있다는 점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말은 달리 해석하면 국제사회는 '명확한 증거 없이는 어떤 제제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미국이 북한 제제에 대해 원론적인 발언의 범주를 지키고 있는 것이나, 영국 BBC가 "한국 정부가 천안함 사건의 영구 미제를 바랄 수도 있다"는 추측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국제사회의 흐름을 한국 정부에 대한 절대지지로 착각한 한국 정부와 대통령의 행보는 상하이 방문외교에서 또 다른 치욕극을 연출했다.
'천안함 희생자에 위로를 표하고, 한국이 한국 정부가 이번 사건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있는 데 대해 평가한다'며 후진타오 주석이 원론적으로 한 발언을 중국이 이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을 지지하며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는 6자회담 재개를 보류한다는 것으로 확대해석하며 나홀로 앞서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은 상술의 귀재답게 한국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노련함을 과시했다. 한국을 상대로 모든 것을 약속한 듯 보이지만 정작 아무것도 약속해주지 않은 채 회담을 마무리했고, 지금은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을 융숭하게 접대하고 있는 중이다. 대한국군의 치욕 사건이 바야흐로 '대한외교의 치욕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일 신각수 외교통상부 1차관은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를 외교통상부로 초치해 김 위원장의 방중을 사흘 앞두고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사전 통지나 언질을 해주지 않은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중국 정부가 '책임 있는 역할'을 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는 외교적 관례에 어긋나는 결례를 범했다는 논쟁을 유발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한갓 외교적 관례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일을 스스로 나서서 '치욕의 날'로 제정하고 남을 향해 삿대질이나 할 만큼 사리분별이 없는 그들이고 보니, 한국 정부와 군 그리고 외교 당국은 이 사건이 '대한민국이 연출한 글로벌 치욕극'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짐작컨대 그들에게는 수치를 느껴야할 감각 기관이 이미 오래 전에 제거된 것으로 보여지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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