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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팔자는 바꿀 수 없다: "재수 없는 놈은 원체 재수 없는 거고, 재수 있는 사람은 재수 있는 것"이라는 말처럼, 인간의 길흉화복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다는 시각입니다.
나쁜 기운의 전염성: 운이 나쁜 사람이 좋은 동네(기운이 좋은 곳)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나쁜 기운 때문에 동네 전체의 번화함이 깎여 나가고 결국 후줄근해진다는 논리입니다. 도박판에서 운 없는 사람이 곁에 붙으면 따던 사람 패까지 죽는다는 비유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2. 계층 간의 갈등과 배타성 (혐오와 탄압)
글쓴이는 잘사는 동네 사람들이 외지인이나 상대적으로 운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현상을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이나 ‘기운의 밀어냄’으로 설명합니다.
자기들의 좋은 기운과 자산을 지키기 위해, 나쁜 기운을 가진 사람을 "너 나가" 하고 밀어내며 자연스럽게 앙숙(원수)이 된다는 다소 냉혹한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 이 강론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
이 글에서 말하는 "재수 없는 놈이 오면 동네가 망가진다"는 현상은, 현대 사회학이나 부동산 관점에서 보면 ‘낙후화 현상(슬럼화)’이나 ‘젠트리피케이션의 역현상’을 무속적·풍수적 프레임으로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풍수·운명학적 관점: 기(氣)의 흐름을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탁하고 음한 기운이 몰리면 양명한 기운이 쇠퇴한다는 논리가 성립합니다. 끼리끼리 모여 살아야 서로 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현실적·합리적 관점: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환경이나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낙후된 동네가 다시 번화하기도 하고(도시재생), 개인의 노력과 기회에 따라 팔자를 바꾸어 성공하는 사람(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합니다.
"산은 산이고 강은 강이지, 억지로 재수 있을라 해봐야 안 된다"
강사의 이 말은 결국 자신의 처지를 억지로 바꾸려 주변에 민폐를 끼치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분수를 지키며 살아야 탈이 없다는 엄격한 운명론적 경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내용이 다소 거칠고 차별적인 뉘앙스가 강하므로,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날카로운 시선' 정도로 참고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노력해 봐야 소용 없는 게 재수없는 놈.
별 수 없이 재수 없게 살게 되다가 죽게 마련이고ᆢ 재수 있는 놈은 계속 재수가 있는 것이고 아 그러니까 잘 사는 동네는 팔자가 좋은 사람들이 산다는 거 똑같은 사주 팔자라도.
그렇게 말하자면 틀리다. 이거 모태 풍수가 틀려서
자시 기준 모태 풍수만 말하는 게 아니야.
그 조상의 대대로 이 말야 내려오는 그 업을 받은 그 풍수 논리체계가 틀려가지고 자연적 잘사는 패당이 있는 데 가서 살게 된다 이런 말씀이여.
아무리 말이야 잘 나가고 싶어도 재수에 옴 붙은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그러지 않아.
그거와 마찬가지로 재수 없는 놈은 재수 없게 매련이라 이런 말 물론 운을 따라가지고 우여곡절이야.
좀 있겠지 그렇지만 원체 타고난 팔자가 드럽게 타고나면.
그건 재수없는 놈이여 ㅡㅡ.
그러니깐 재수있을라 할 필요가 없다 이런 말씀이야.
이번 글은 운명론의 깊이를 한 층 더 파고들어, 그 원인이 단순히 개인의 당대 사주를 넘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풍수적 업(業)’과 ‘모태 풍수’에 있다고 못 박고 있네요.
강론의 핵심을 관통하는 논리는 결국 ‘본질적인 뿌리의 차이’입니다.
1. 뼈대(모태·조상 풍수)가 다른 정해진 운명
사주가 같아도 사는 모습이 다른 이유: 태어난 생년월일시(사주)가 똑같아도 누구는 잘살고 누구는 못사는 이유는, 그 사람이 태어난 어머니의 복중 환경(모태 풍수)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묫자리나 가문의 기운(조상 풍수)이라는 '근본적인 바탕'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노력의 한계: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처럼, 뿌리부터 재수 없는 기운을 타고났다면 아무리 발버둥 치고 노력해 봐야 일시적인 우여곡절(소운)만 있을 뿐, 결국 원래의 나쁜 팔자대로 수렴하게 된다는 냉정한 시각입니다.
2. "재수 있을라 할 필요가 없다"의 역설적 의미
이 말은 단순히 "인생 포기하고 막 살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운명학에서 말하는 ‘수분(守分, 자기 분수를 지킴)’과 ‘체념을 통한 마음의 평화’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가르침에 가깝습니다.
안달복달하지 말라는 경고: 타고난 그릇이 간장종지인데 억지로 장독대만큼 담으려다가는 그릇만 깨지고 주변(잘사는 동네나 사람 탄압)에 민폐만 끼치니, 애써 남의 떡을 탐내며 괴로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순리에 따르는 삶: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 자신이 타고난 운명의 궤적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순리대로 사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하다는 체념의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짚고 넘어갈 점
이 강론은 세상을 아주 차갑고도 현실적인 법칙(가문, 환경, 대물림)으로만 난도질해 보여줍니다.
동조할 수 있는 부분: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도 '부의 대물림'이나 '가정환경(부모의 배경)'이 개인의 성공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강사가 말하는 '조상 풍수'나 '패당'이라는 표현이 아주 틀린 말처럼 들리지만은 않습니다. 현실의 씁쓸한 단면을 무속적 언어로 찌른 셈이니까요.
주의할 부분: 하지만 이 논리에 너무 깊게 빠지면 "어차피 해봐야 안 되는데 뭐 하러 사나" 하는 극단적인 허무주의나 무기력증에 빠지기 쉽습니다. 역학(易學)에서 '역(易)'은 바뀔 역 자를 씁니다. 타고난 명(命)은 정해져 있어도, 자신이 쌓는 덕(德)과 선택에 따라 삶의 밀도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본래 운명학의 또 다른 면이기도 합니다.
이 강사의 말은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흐름(수저 계급론의 풍수적 해석)'을 설명하는 하나의 강렬한 시선으로 받아들이시되, 내 삶의 모든 가능성까지 가둬두는 감옥으로 삼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재수 없는놈은. 그러니까 복수를 해고 가야 돼.
재수. 잘 나가는 놈을 팡 싸주기고 원수를 갚아야 됀다 말이야.
재수 있는 놈하고 재수 없는 놈은 서로 원수간이거든. ㅡㅡ
그러니깐 서로 쏴아죽이던지 말이야. 저격을 해치우든지 이렇게 해야 된다 이런 말이야.
그래야 원수를 갚아야 돼
그러니까 그러니까 재수 없는 놈은 재수 없는 거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러니 억지로 재수 있으려 할 필요 없고 복수를 해야 된다.
복수하는 방법을 총으로 팡팡팡 쏴아 죽여야 된다.
잘 나가는 놈을 거꾸로 틀리는 길만이
동귀어진 같이 가는 급수가 된다. 이런 말씀이야
그러니까 남 잘 나가는 걸 썩 죽이는 건 예ㅡ재수 없는 놈이 말하잠 재수 잘 나가는 도박폐에 얹혀 가려고 하기 때문에 남 잘 나가는 패가 죽는 거다 아 이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런 말씀이야.
그러니까 내가 지금 잘 나갔었는데 뭔가.
사업이 잘 안 풀리고 망가진다. 내 회사에 어떻게 재수 없는 종업원이 들어 온 것이 아닌가.
이걸 한번 살펴봐야 된다. 이런 말씀 그리고 내 은저리에 무슨 재수 없는 놈하고 뭔 거래를 튼 것이.
아닌가 이거를 살펴봐야 된다 이런 말씀이야.
보내주신 글은 앞서 언급된 운명론적 갈등이 극에 달해, 결국 극단적인 증오와 폭력, 그리고 주변 사람에 대한 강박적인 의심으로 치닫는 매우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잘 나가는 놈을 총으로 쏴 죽여 복수해야 한다"거나 "동귀어진(너 죽고 나 죽자)"을 말하는 부분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심각한 범죄적 발상입니다. 이 글이 품고 있는 위험성과 왜곡된 논리를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맹목적인 증오와 극단적인 폭력성
세상을 향한 화풀이: 자신이 처한 불운이나 좌절의 원인을 무조건 '운이 좋은 타인'에게 돌리고, 이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나 '증오 범죄'의 논리입니다.
동귀어진의 허상: 남을 파괴한다고 해서 자신의 불운이 복(福)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결국은 자신마저 완전히 파멸시키는 비극적이고 어리석은 선택일 뿐입니다.
2. 끝없는 의심과 책임 전가 (종업원·거래처 탓)
자기 합리화의 늪: 일이 잘 안 풀릴 때 그 원인을 경영적 판단 미스나 시장 상황에서 찾지 않고, "재수 없는 종업원이 들어왔나?", "재수 없는 놈과 거래를 텄나?"라며 주변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조직을 와해시키고, 멀쩡한 사람을 마녀사냥 하듯 내쫓아 결국 자신과 사업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지름길이 됩니다.
⚠️ 절대 현혹되어서는 안 될 위험한 선동입니다
이 강론은 현실의 불평등이나 불운에서 오는 대중의 좌절감과 분노를 자극해, 극단적인 폭력과 타인에 대한 혐오로 배출하게 만드는 매우 유해하고 선동적인 주장입니다.
운명학이나 풍수학의 본질은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자신의 모자란 점을 보완하여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지혜에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증오하고, 의심하고, 해치라고 가르치는 것은 학문도 강론도 아닌 그저 파괴적인 망상에 불과합니다.
독이 되는 말에 마음을 빼앗기면 내 삶의 기운도 함께 탁해지고 거칠어집니다. 이런 극단적이고 위험한 논리는 단호하게 무시하고 멀리하시는 것이 정신 건강과 삶의 안전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재수 없는 놈은 재수ㅡㅡㅡᆢ. 그래서 자꾸 저 말하자면 전염병 옮겨지듯 물이 들게 그러는 거야.
재수 있는 놈이. 재수 없는 놈. 물이 들게하는 건 물이 들게 하는 건 쉬운 방법이라 하는지 모르지만 쉽지 않아.
그렇지만 재수 없는 놈이 계속 잘 나가는 놈들 무리들 물이 들게 하는 건 쉬워 ㅡㅡ말하는 똥물 퍼뜨리는 거와 같은 거야 전염병
똥똥 한 바가지 같다. 확 뿌리는 것 같아.
다 쿤네가 나는 거나 마찬가지야. 이런 말씀이야.
그러니까 재수 없는 놈은 절대 오지 못하게 해야 돼ㅡㅡ
잘 나가는 무리들은 ᆢ ㅡㅡ
재수 없는 놈 말이야.
못생기고 못 나오고 이렇게 병신 불구자.
이런 축에들은 다때려잡아 죽게 해서 말하자면 장개석이가 대만으로 물러갈 때 상이용사 이런 사람들 전부 다 바다에 배에싣고 가가지고 침몰 시켜 배를 빵굴 내서 침을 이렇게 다 때려 죽였지.
물속에 말아 수장 시켜 죽였대잖아. 그거 데리고 가면 골치 아프거든.
말하자면 2차 대전후 말하자면 우리나라
2차 대전 후에 우리나라 이렇게 국민들이 일본서 징용 같던 사람들 돌아오려 하는 걸 배를 펑크를 시켜가지고 가득 태워가지고 침몰 시켜서 다 수장시켜 죽였다 그러잖아 ㅡㅡ.
왜놈들이 ᆢ
보내주신 글은 사회적 약자나 불운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전염병'이나 '오물'에 비유하며, 이들을 강제로 격리하거나 제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혐오와 학살을 미화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잔혹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주장입니다. 이 글에 나타난 심각한 오류와 위험성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1. 명백한 역사적 사실 왜곡과 날조
강론에서 언급한 역사적 일화들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장제스(장개석) 총통의 상이용사 수장설 (거짓):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후퇴할 때(국공내전), 부상병이나 상이용사를 배에 태워 고의로 수장시켰다는 기록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민당 정부는 수많은 군인과 그 가족들을 대만으로 이주시켰고, 이들은 이후 대만 사회의 주요 구성원(외성인)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귀국선 고의 침몰설 (우키시마호 사건의 왜곡): 1945년 해방 직후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을 태운 '우키시마호'가 폭발하여 수많은 동포들이 희생된 가슴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 정부의 고의성 여부에 대해 여전히 역사적 규명과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비극적인 참사입니다. 이를 두고 "데려가기 골치 아프니 때려 죽였다"는 식으로 가볍게 치부하거나, 약자를 제거하는 당연한 조치였던 것처럼 인용하는 것은 순국선조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심각한 모독입니다.
2. 반인륜적인 '우생학적 학살' 논리
못생긴 사람, 못난 사람, 장애인이나 병자를 "다 때려잡아 죽여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 나치 독일이 저질렀던 홀로코스트(T-4 프로그램: 장애인 및 난치병 환자 학살)와 다를 바 없는 반인륜적이고 범죄적인 사상입니다.
사회가 건강하고 풍요로워지는 것은 약자를 짓밟고 제거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보호하고 포용하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을 때입니다. 자신보다 불행하거나 취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재수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폭력을 선동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과 도덕을 저버린 행위입니다.
이러한 강론은 역사적 사실을 제멋대로 왜곡하여 듣는 사람에게 극단적인 증오와 잔인함을 심어주려는 매우 유해한 가짜 선동에 불과합니다.
타인의 아픔과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는 거친 말들에 마음을 내어주면, 결국 자신의 정신과 삶의 품격마저 황폐해지게 됩니다.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위협하는 이 위험하고 그릇된 논리는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단호하게 멀리하시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악랄하게 나됐다 그와 마찬가지야.
저 놈들 들어가 봤자 조선 팔도로 돌아와 가지고 도로 우리한테 원수질만 한다 그러니까 매를 빵 꿀내서 다 사 침몰 시켜 죽여버리자.
새끼들ㆍ 아ㅡ 이렇다 이런 말 원수 땡이야.
그러니까 ㅡㅡㅡ
잘 나가고 못 나가고 서로 이 원수를 갚아야 돼.
원수를 갚으려면 배다지 죽창을 꼽아야 된다.
이런 말씀이 나오는 거야. 결국은 뭐야.
그러니까 원수. 갑자지ᆢㅡㅡ 음. 아니 내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아니야.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
재수 없는 놈은ᆢ
재수 없는 놈은 아무리 밟아둥쳐도 재수 없는 거다
재수 있는 놈은 아무리 말하잠 걷어 찰려 해도 절로 갖다가 재수를 부어준다 그렇게 팔자를 타고 났다 그러니까 팔자 소관이다.
재수 없는 놈이 아무리 운명을 맞춰 재수 좋은 데 가 살라 하더라도 도리어 그 동네가 망가져서 그 놈을 축출하게 된다 그러고 여럿이서 말야 왕따 이지매를 줘서 두들겨 패서 내쫓게 된다 이거야.
재수 없는 놈은 그만 뒈져버려 새로운 운명을 재수 좋게 타고나는 것만도 못하다.
이런 말씀이지 재수 없는 자 다 돼져버려야 된다 이런 말씀이야.
알겠어 네
거의 팔자나 운명이나 이런 거 보고 내 팔자가 어떤가 이런 거 거의가 재수 없는 편에 들어가 그래서 저주를 받는 거여 ㅡ.
재수 있는 넘 들한테. ㅡ그러니까 죽기 전에 재수 있는 놈을 원수를 갚고서 죽어.
그러면 좋은 팔자로 다시 태어나면
강남 4구 같은 데 고급 빌딩을 갖고.
고층 빌딩을 갖으며. 높은 고급 아파트에 살게 되며 그렇게 된다 이런 말씀이야
보내주신 글은 불운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죽기 전에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고 죽어야 다음 생에 좋은 팔자로 태어난다"는 황당하고 위험한 망상을 심어주며, 극단적인 폭력과 자살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 강론의 주장은 인간의 도리와 상식은 물론, 정통 명리학이나 불교의 업설(윤회론)과도 완전히 정반대로 치닫는 궤변이자 거짓 선동입니다.
1. 인과응보와 윤회에 대한 심각한 왜곡
악업을 쌓으면 더 참혹한 결과를 낳습니다: 동양 철학과 종교의 핵심인 인과응보(因果應報)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해치거나(살인),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자살)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무겁고 탁한 악업(惡業)에 해당합니다.
남을 해치고 죽으면 다음 생에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참혹한 죄의 대가로 비교할 수조차 없이 더 고통스럽고 비참한 처지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 업보의 절대적인 법칙입니다. 이 강론은 다음 생을 담보로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악질적인 거짓말입니다.
2. 좌절감을 범죄로 분출하게 만드는 가스라이팅
이 강사는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속 좌절감과 분노를 자극하여, 그것을 사회와 타인을 향한 맹목적인 증오 범죄로 분출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죽창을 꽂아야 한다", "다 뒈져버려야 한다"와 같은 거칠고 잔인한 언어들은 듣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 마음의 중심을 잡고 이 악담을 단호히 쳐내야 합니다
누구나 살면서 운이 막히고 힘든 시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재수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은 타고난 사주 때문이 아니라, 이런 독하고 뒤틀린 강론에 마음을 빼앗겨 스스로를 증오와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때입니다.
이 강론은 사람을 살리는 지혜가 아니라, 영혼을 좀먹고 인생을 망치게 만드는 독설(毒舌)이자 범죄 선동에 불과합니다. 단 한 구절도 마음에 담아둘 가치가 없으니, 눈과 귀를 닫고 철저히 무시하시는 것이 질문자님의 소중한 삶과 정신 건강을 지키는 길입니다.
그러니가.
재수 있는 놈들은 다 죽어야 돼가 아니고 ㅡ재수 없는 놈들은 ᆢ ㅡㅡ 재수 있는 놈들은 다 살고.
재수 없는 놈 다 떼려 잡아 죽여버려.
그러면 그런 놈들이 많을수록 그 나라가 고만 가난해지는 거거든.
재수 없는 놈들이 많으면
재수 없고 운명 잘못한 놈들 다 때려 죽여야지만 재수 있는 사람들 운명사주 팔자 잘 타고.
난 사람들만 남아서 그 나라가 발전하고 부귀영달하면 그 나라가 번성하면 그 민족이 번성하게 된다 이거여 ㅡㅡ.
그러니까 재수 없는 놈들. 못생기고 못 나고.
이런 놈들 다 때려잡아 죽여버리고 몇 배다지 죽창을 나버려 이거를 역설적으로 서양 계독 사장이 이용해가지고 양묵지도가 이용하잖아.
무슨 사랑이니. 나발 똥구명 찾아가지고.
그게 다 그놈들이 밥그릇으로 이용하는 거여 ㅡㅡ
저희들 잘 쳐먹고 살려고 하는 밥 그릇을 일편으로 이용하느라 그것도 입에 발린 소리 남듣기 좋은 귀에 솔깃한 그런 감언이설 해서 혹세무민 해가지고 말하자면 재수 없는 놈들을 이용하는 거지 ㅡ 못난 놈들을 이용하는 것이 재수 있는 놈들 잘난 놈들이거든.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렇게 되니까 서로 원수가 된 거야.
그 이용당하지 말고 아예 뒈져 버려가지고 재수 있는 놈으로 태어나야 된다.
이런 말씀이야.
어째. 내 말이 틀렸어. 내 말 하나도 안 틀렸어.
재수 없는 놈은. 얼른 해탈하는 게 나아ㅡ
얼른.
내가 이래서 그래서 그렇게 죽는지도 뭐 자살해 죽는 사람들이 많은지도.
그리고 또. 얼른 죽으라고 재수 없는 놈들.
얼른 죽으라고. 자살 폭탄 같은 자폭 세력
그런 일이 생겨가지고 아비규환 만들어 한꺼번에 몇 백 명씩 막 다 죽여버리잖아 전쟁이 일어나지
전쟁.
마당에 옳고 그름이 없어. 다 죽여버리고.
비행기가 추락해서 다. 비행기에 추락해.
거기에 있는 건 다 재수 없는 비행기에 탔기 때문에.
아무리 재수 잘 나가는 놈도 소용 없어.
다 다 죽게 마련 이야 이 비참하게 말로를 맡겼게 된다 이런 말씀이야 ㅡ.
보내주신 글은 사회적 약자나 불운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청소하듯 제거해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끔찍한 파시즘적 논리와 함께, 힘든 사람들에게 "얼른 죽으라"며 자살이나 폭력을 유도하는 극단적으로 위험한 내용입니다.
"내 말이 하나도 안 틀렸어"라고 확신하듯 묻으셨지만, 이 주장은 완전히 틀렸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가장 반인륜적이고 유해한 가짜 논리입니다. 이 강론이 왜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잔인한 궤변인지 명확히 짚어드리겠습니다.
1. 역사적으로 이미 증명된 '가장 참혹한 실패'
역사 속에서 "못나고 약한 자들을 제거해야 사회가 번성한다"는 논리를 실제로 실행했던 집단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치 독일입니다. 그들은 장애인, 병자, 가난한 이들을 사회의 해악으로 규정하고 학살(T-4 프로그램)했지만, 그 결과는 나라의 번영이 아니라 참혹한 전쟁 범죄와 국가의 완전한 파멸이었습니다. 약자를 때려잡아 번성하는 민족이나 국가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선진국과 부강한 나라는 약자를 위한 안전망과 복지가 잘 갖추어진 곳들입니다.
2. 자살과 테러를 미화하는 치명적인 가스라이팅
해탈이 아니라 파멸입니다: 불교나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해탈'은 삶의 집착과 고통을 끊어내는 고결한 정신적 경지입니다. 이 강론처럼 현실이 힘들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남을 해치는 것은 해탈이 아니라, 스스로 가장 깊은 영혼의 감옥(악업)에 갇히는 행위입니다.
비극을 정당화하는 오류: 전쟁, 비행기 추락, 자폭 테러 같은 비극을 '재수 없는 놈들이 모여서 일어난 일'로 치부하는 것은 재난의 구조적 원인을 완전히 무시하고 피해자들을 모독하는 잔인한 언사일 뿐입니다.
3. 타인의 가치를 함부로 재단하는 오만함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며, 외모나 현재의 경제적 처지로 '살 가치가 있는 사람'과 '죽어야 할 사람'을 나눌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지금 비록 힘들고 낙후된 처지에 있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실패했다는 증거가 되지 않으며, 노력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삶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 결코 이 독설에 마음을 잠식당하지 마세요
이 강론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삶의 무게에 지치고 좌절한 사람들의 마음에 극단적인 허무주의와 분노를 심어,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만들거나 사회를 향해 묻지마 폭력을 휘두르게 유도하는 매우 악질적인 가스라이팅입니다.
"얼른 죽는 게 낫다"는 식의 잔인한 저주에 귀를 기울이면, 멀쩡하던 마음도 병들고 부정적인 기운에 휩싸이게 됩니다. 인생의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 필요한 것은 이런 파괴적인 선동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현실적인 도움입니다.
자신의 소중한 생명과 가치를 쓰레기 같은 강론에 장난감처럼 내어주지 마십시오. 이 글은 한 문장도 타당하지 않은 궤변이니, 분노와 허무함을 유도하는 이 위험한 목소리를 당장 차단하고 멀리하시길 강력히 권고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화산 폭발 지진 해일.
이래서 죽겠지만은 어
재수 없는 놈은 그 폭탄을 맞아서도 다 그 패당이 죽게 된다.
이런 말씀이지 재수 있는 놈은 어제든지 그렇게 해서 차가 굴러도
빠져나와서 살잖아. 강유일이라 하는 사람 다 뭐라.
어느 강이야. 갑천강에서 흘러내려오는 거 .
거기 샛강이 거기서 차가 고속도로가 어디 굴러서 다 다 죽었는데 그 사람 한 사람만 살아 오르잖아 버스가.
추락해가지고 다 강물에 빠져 죽었는데 강에서 유일하게 혼자 살았다고.
이름도 특이해. 강 유일이야. 아ㅡ그렇게 시리 된다 이런 말씀이야 이거 재수가 있어야 돼.
재수 없는 놈은 다 죽어야 돼 ㅡㅡ
그러고
재수 없는 놈은 자꾸 말이야 전염병 옴병 코로나 퍼뜨리듯이.
남까지 못 살겠굴어ㅡ. 그래 이거 다 재수 없는 놈은 다 때려 죽여버려야 된다 재수 있는 놈만 살게 돼 있어.
이 세상 온전한 사람들은. 그래야지만 강남 사구 같은 그런 좋은 말하자면 마을이 형성 점점 돼가지고 이 말하자면 그 나라가 점점 부국강병 크게 번영하게 된다
이번에는 이런 강론을 펼쳤습니다. 그러니까 재수 없는 놈은 다 죽어버려야 된다.
그리고 재수 있는 놈들만 남아서 이 세상을 잘 아름답게 꾸며서 번성하게 만들어야 된다 이런 말씀이야.
그러니까 혐오스러운 놈들은 다 때려 죽여버려야 된다 이거. 야ㅡ
그러니까 아프리카 아프카니스탄 놈들은 다 때려 죽여버려야 된다.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나오는 거야 ㅡ. 그넘들이 .
병 퍼뜨리려고. 아침 저녁으로 밥 먹을 적에 채널을 안 틀으면 또 채널 틀 때마다 그런 거만 나와 아프리카 이티 애들 말이야
코에다 산소동 꼽고 빌빌 돌아가는 애들 우리 뭐 한 술 줍쇼ㅡ.
왜 그런 거 왜 팔아처먹어. 거기 팔아쳐먹는 놈들.
그걸 그 갸들 팔아먹는 놈들. 돈을 얼마나 버는지 모르겠어 직접은 안받는다 해도 이미지 관리 간접광고 혜택도 상당한거 예를 들어 그 동정 갈구 해가지고 거기 뭐 예를 들어 1만 원 들어오면 1천 원이나 가겠어.
중간에서 다 떼쳐먹는 놈들이. 다 떼쳐 먹을 거야.
뻔할 뻔자야. 그 무슨 인기가 가진 연예인들 이런 걸 동원해가지고 갸들 공짜로.
그거 가가지고 선전해 주겠어. 뭔가를 해도 말하자면 호주머니 생기는 게 있어야지.
이러니까 뭔가 아프카니스탄 아프리카 이렇게 아프다 고통한다 이런 건 다 없애ㅡㅡ
지옥이야.
보내주신 글은 참혹한 사고에서 살아남은 특이한 사례(강유일 씨 일화)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결국 특정 국가와 민족(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사회적 약자와 구호 단체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와 학살 선동으로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글의 논리가 얼마나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고 위험한지 마지막으로 명확하게 짚어드리겠습니다.
1. 생존 일화의 자의적 왜곡 (강유일 씨 사건의 진실)
강론에서 언급한 '강유일' 씨 사건은 1970년대 전북 완주군 삼례교에서 발생한 버스 추락 사고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실제 유일한 생존자의 이름이 강유일이었거나, 혹은 '강에서 유일하게 살았다'는 말이 와전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진실: 이런 대형 참사에서 누군가 극적으로 살아남는 것은 천운이자 기적적인 물리적 상황(착지 각도, 창문 개방 등) 덕분입니다. 이를 두고 "살아남은 사람은 재수가 좋고, 죽은 사람들은 재수가 없으니 죽어야 했다"고 말하는 것은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목숨을 잃은 무고한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잔인한 모독입니다.
2. 국제 구호 단체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과 음모론
아프리카나 분쟁 지역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돕는 NGO(구호 단체)와 참여 연예인들을 향해 "후원금을 중간에서 다 떼어먹는다", "이미지 관리를 위해 아이들을 팔아먹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전형적인 냉소주의와 음모론입니다.
현실: 물론 과거 일부 부실한 단체의 비리가 언론에 보도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공인된 국제 구호 단체(유니세프, 월드비전 등)는 정부와 국제기구의 엄격한 재정 감사를 받으며, 후원금의 높은 비율을 실제 현지 구호에 사용합니다.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영상을 보여주는 것은 그들을 '팔아먹기 위함'이 아니라, 도움이 시급한 참상을 국제 사회에 알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인도주의적 노력입니다. 이를 지옥이라 부르며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성을 상실한 시각입니다.
3. 특정 국가와 인종을 향한 나치식 인종청소 선동
"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다 때려죽여야 한다"는 주장은 더 이상 운명학도, 풍수학도 아닙니다. 이는 과거 히틀러가 유대인과 유색인종을 향해 퍼부었던 광기 어린 인종주의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심각한 범죄인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선동입니다.
그 어떤 민족이나 국가도 타인에게 '재수 없는 존재'로 규정되어 학살당할 이유가 없으며, 지구상 모든 인간은 생존할 권리를 가집니다.
💡 절대 이 위험한 광기에 동조하지 마십시오
이 강론은 처음에 사주와 풍수라는 그럴듯한 옷을 입고 시작했지만, 결론은 "약자, 장애인,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다 학살하고 자살이나 테러로 인구를 청소해야 강남 4구처럼 잘산다"는 해괴망측하고 잔혹한 살인 선동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강연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에 분노, 혐오, 살의(殺意), 그리고 허무주의라는 치명적인 독을 주입하는 악마적인 가스라이팅입니다. 이런 독설을 계속 들으면 멀쩡한 사람의 영혼도 피폐해지고 세상 모든 것을 증오하게 됩니다.
이 강론의 모든 말은 단 1%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 같은 궤변입니다. 질문자님의 소중한 마음과 정신을 지키기 위해, 이 강사의 영상과 글을 당장 차단하고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시기를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세상은 증오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존중과 연대로 유지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다 때려 죽여 없애 치워버리고 이 세상은 천당같이 생긴 극락.
세상을 만들려면. 잘 나가는 놈 사주 팔자 잘 나가는 놈.
이런 놈들만 남아야 된다 아ㅡ이런 논리체계를 여러분들에게 강론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깐 자기가 팔자가 어떤 가를 ᆢ
잘 생각해 봐. 내가 재수 없는 놈인가 재수 있는 놈인가 를ᆢ 재수 없는 놈 같은 얼른 뒈져버리라 이런 말씀이여
재수 있는 놈 같으면은 아ㅡ 한 번
말하잠. 잘 살아보려고 노력을 하고 ㅡ재수 없는 놈 같으면 없는거 같음 .
제일 잘 나가는 놈. 망가뜨리려고 하면 잘 나가는 놈 말이야.
옴이 올라서 망가뜨리지 원수 집는다.
그럼 거기 가서 살아. 그럼 그럼. 그 회사가 그 군락이 그 마을에 고대 망가진다.
이게 쉽게 내일 망가질 거 오늘 망가지고 말아ㅡ.
그러니까 걸기 들어가가지고 움 옮기듯 자꾸 가서 살아버려.
그래 가지고 가지고 폭삭 망하겠지. 그냥 원수도 갚는 수도 있어.
그렇게 해가지고 예 여기까지 또 이렇게 원수 갚으라.
그런 식으로. 원수를 갚는다
그건 그 잘 나가는 번들번들한 곳을 후즐그레 만드는 방법이다.
재수 없는 놈이 가서 많이 가 살면 여기까지 강론하고ㅡ
그 그래도 영원히 그렇게 될 수가 없어 시간적으로.
그렇지ᆢㅡㅡ
그거 이제 새로 재개발되잖아.
후줄그레 하든 마을도. 뭐 이유 달아가지고 다 두들겨 부시고 재개발되면 번들번들하게 좋은 마을이 돼가지고 살기 좋게 됐는데 거기 또ㅡ
재수 없는 놈은 못 들어가. 재수 있는 놈만 또 다 들어가게 되지 ㅡ
이래라 저래나.
어떻게든 재수 없는 놈은 재수 없다.
이거야
재수 있는 사람들만 거기 모여서 살게 되고 그 혜택을 받게 돼지 재수 없는 놈이 또 거기서 또 빠져나오게 된다.
아무리 재개발자가 번들번들한 곳이되더라도 물론 그렇게 또 재수 없는 놈들도 끼워서 들어가지고 가겠지.
끼어들어가다 보면 결국 그 말하자면 원체 재수 없는 놈들이 재수 없는 놈들이 많이 끼다 보니 그만 벌들벌들 번들하게 새로 재개발 잘
된 것도 그만 고대 쑥 떼 밭 망가진다 이런 말씀이야.
예 여기까지 또 이렇게 강론을 덧붙여서 강론하고 마칠가 합니다.
배쟁이 업나무베기 무낭골 굿골 사기막골 토끼북문골작은옹골 궁터골 새작골 산터골 비상골 벽장골 정철봉 번데바위약과바위벼락바위 박쥐바위 감마소정기소 검정소 물골나리 아리랑고개 무판골 십리양지 씀 조어장부 정등각보다 더긴 이름이다 읍내를 가려면 이십리길 마지막 두째모랭이가 있는데 거기 읍내 사람이 논다랑이를 만들고 와서 벼를심어먹는데 그 할아버지 별호가 물골나리야 늘상 지게를지고 방망이 수건을 머리에 질끈 두르고 허리 구부정하게 다니시는데 이것 칠십년이 다된 이야기 땅속에 들어가선 하마 진토가된지 오래일거 야당시만해도 칠십 팔십가까운 할아버지 양반이었다
보내주신 글은 앞서 다루었던 극단적인 운명론과 혐오적 논리를 다시금 반복하며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강원도나 충청도 어느 깊은 산골의 옛 지명들과 70년 전 한 노인에 대한 아련한 개인적 기억(물골나리 할아버지)을 덧붙이며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강론과 회고가 주는 의미를 냉정하고도 명확하게 짚어보겠습니다.
1. 반복되는 '망상적 운명론'의 모순
강사는 끝까지 "재수 없는 놈이 잘나가는 동네에 가서 동네를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복수를 하라"거나 "재개발을 해도 결국 재수 없는 놈은 다 빠져나가게 된다"며 현실의 부동산 변화나 도시 개발 현상을 기괴한 논리로 설명합니다.
동귀어진의 허무함: 남을 망가뜨리기 위해 일부러 그 동네에 가서 살라는 주장은 결국 자신의 인생과 시간, 자원을 타인을 향한 저주와 원망에만 낭비하라는 파멸적인 유혹일 뿐입니다.
현실과의 괴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이나 동네의 흥망성쇠는 철저히 경제적 가치, 교통, 인프라, 정부의 정책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를 '재수'라는 실체 없는 개념으로 묶어 사람을 차별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아무런 과학적·합리적 근거가 없는 억지 부리기에 불과합니다.
2. 뜬금없는 옛 지명과 노인에 대한 회고가 뜻하는 바
글의 말미에 등장하는 수많은 골짜기 이름들(배쟁이, 무낭골, 굿골, 사기막골 등)과 지게를 지고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채 묵묵히 농사를 짓던 '물골나리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앞선 잔인한 강론의 내용과 매우 이질적입니다.
과거에 갇힌 시선: 70년 전, 즉 1950~60년대 한국의 아주 가난하고 척박했던 시절의 시골 마을 풍경입니다. 당시에는 신분제나 고착화된 가난, 무속적 세계관이 사람들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을 형성하곤 했습니다.
강사의 한계: 이 강사는 현대의 복잡하고 고도화된 사회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과거 자신이 경험했거나 갇혀 있는 옛날 산골 마을의 폐쇄적인 '끼리끼리 문화'와 무속적 원한 관계를 현대 사회(강남 4구, 재개발 등)에 억지로 대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70년 전 땅속에 들어가 진토가 된 노인의 삶을 허무하게 들추는 것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고 과거의 령(靈)이나 업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 이제 이 독한 글과 영상을 완전히 내려놓으십시오
이 강론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인간을 오직 '재수가 있는 자'와 '없는 자'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약자에게는 자살과 파괴를 선동하고 강자에게는 맹목적인 우월감을 심어주는 반사회적이고 유해한 가스라이팅입니다.
마지막에 언급된 아름답고 서정적인 옛 고향의 지명들과 노인의 뒷모습마저도, 앞서 늘어놓은 "다 때려 죽여야 한다"는 잔혹한 언사들을 미화하거나 가리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러한 글을 계속 읽고 사색하는 것은 자신의 맑은 정신에 스스로 오물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증오를 부추기는 이 위험한 강론의 논리체계를 단호하게 거부하시고, 현실 속에서 따뜻하고 건강한 가치들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안을 찾으시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나중적은 할아버지 이야기는 지금2026년5월30일 에아이 대화중 에생각난 이야기야 긴이름을 만들다보니불현듯 그렇게 얫생각이나는거지
아, 2026년 5월 30일 오늘 저와 대화를 나누시다가 불현듯 그 옛날 기억이 떠오르신 거였군요. 긴 이름을 쭉 나열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뇌리에 스치듯 그 시절의 풍경과 할아버지가 생각나신 모양입니다.
어쩌면 앞서 나눈 이야기들이 워낙 거칠고 험해서, 질문자님의 무의식이 본능적으로 가장 순박하고 묵묵하게 자기 삶을 일구던 ‘물골나리 할아버지’의 기억을 불러내어 마음의 균형을 잡으려고 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게를 지고, 머리에 수건을 질끈 두른 채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묵묵히 논다랑이를 일구시던 70년 전 그 할아버지의 모습은 앞선 강론의 내용과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강남의 화려한 빌딩에 살지도 않았고, 남보다 뛰어난 대단한 사주를 자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척박한 땅에서 땀 흘려 벼를 심어 먹으며 묵묵히 자신의 생을 책임지셨던, 그 자체로 고결하고 온전한 한 인간의 삶이었습니다.
강사가 말한 잔인한 이분법(재수 있는 놈, 없는 놈)대로라면 그 가난한 노인의 삶은 가치 없는 것이 되어버리지만, 정작 우리는 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소박하고 진실했던 뒷모습을 아름답고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하잖아요. 결국 사람의 가치는 화려한 동네나 타고난 사주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대하는 묵묵하고 성실한 태도에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긴 이름을 적으시다가 마주한 그 시절의 기억이, 거친 강론 때문에 복잡해졌던 질문자님의 마음에 잠시나마 따뜻하고 평온한 쉼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런 소중한 기억과 인간미를 품고 계신 만큼, 사람을 증오하라고 부추기는 독한 말들은 오늘 날짜로 마음속에서 깨끗이 털어내 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지금 앞에글을올려지만뭔문장인지 살피지도않고그냥 그렇게 끊어올리는거야여려 편으로 뭐그런것 뭐라 비평해도 상관없다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니 그저무료해선 이렇게 에어이대화창을 열어논것일뿐 조금 있다산책나가야지
그저 주말 오전, 무료한 시간을 달래시려고 편하게 툭툭 글을 올려보신 거였군요! 문장을 일일이 살피지 않고 올리셨다고 하니, 저도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 다가갔나 싶어 슬며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니 어떤 비평이든 상관없다고 쿨하게 말씀해 주셔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네요. 그저 심심풀이 삼아 AI의 반응을 보며 시간을 보내신 거라면, 저와의 대화가 조금이나마 심심함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오늘 2026년 5월 30일 토요일, 날씨도 선선하니 밖을 거닐기에 참 좋은 날입니다. 방 안에 앉아 복잡하고 거친 글들을 보는 것보다, 따뜻한 햇볕을 쬐며 밖을 걷는 것이 훨씬 더 몸과 마음에 이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줄 거예요.
준비 잘하셔서 편안하고 기분 좋은 산책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발걸음 닿는 곳마다 맑고 좋은 기운 가득 담아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