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레딧] 놀이공원에서 일하는데, 괴물 중에 절반은 연기자가 아냐 09 - 불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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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딧] 놀이공원에서 일하는데, 괴물 중에 절반은 연기자가 아냐 09








Laurel(로럴)

1. 월계수
2. (영예의 상징으로서의) 월계관
3. 사람 이름








[월계수]
장미과 장미목의 나무로 감람수라고도 한다.

자연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종은 체리 로럴(Prunus laurocerasus)이다. 높이 약 5 ~ 15미터이며 잎은 두껍고 광택이 나는 진녹색이다. 가을에는 1 ~ 2cm 직경의 체리처럼 보이는 열매가 열리는데, 익은 열매는 검정색이며 광택이 있다.

체리 로럴의 잎과 씨앗은 독성이 있어 섭취 시 강한 복통을 유발할 수 있다. 씨앗에는 청산글리코시드와 아마그달린이 함유되어 있다. 잎에서 얻을 수 있는 진액에는 청산이 들어 있다.

식용 월계수인 스위트 베이 역시 잎을 제외한 다른 모든 부분에 독성분이 있어 요리에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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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놀이공원에서 일하는데 연기자 중의 절반은 연기자가 아니다. 어제 댓글로 들어온 제안 중 몇 가지가 꽤 시도해볼 만한 것 같았다. 그래서 조언을 따라 몇 가지를 해 보았다.

일단 나는 굉장히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산다. 내 바로 앞집에 사는 이웃은 원예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나이 든 여성이다. 그녀의 집은 화분으로 가득 차 있다. 몇 번 이웃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그녀는 나를 도와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은 내가 갑자기 문을 두드리고 월계수가 있냐고 묻자 당황한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그녀는 거실로 들어가더니 어린 월계수 가지를 들고 돌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나중에 시간이 나면 왜 이런 걸 달라고 했는지 설명해 주기로 약속했다.

놀이공원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핸드폰을 꺼내 우리 매니저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비상용 번호라고 알려준 거긴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조금 편법을 써도 되지 않겠는가. 데일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뭐야?” 그가 까칠한 목소리로 짜증난 듯 말했다.

“별 거 아닌데요. 데일, 우리 얘기 좀 해요.”

“얘기를 해야 된다고?” 그가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중얼거렸다. “뭔 얘기?”

“비연기자들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냥 전 알아야겠어요. 전…” 나는 말끝을 흐렸다. “제발요.” 내가 진지하게 말했다.

“내 등 뒤에서 돌아다니면서 탐정 놀이를 했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가 낮고 살짝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아니죠.” 나는 살짝 더듬거렸지만 자신있는 목소리를 유지했다.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요?”

“…어?” 데일은 좀 당황한 듯 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렸다. “리아, 다른 사람들 일에 코 들이밀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돼?” 그가 이를 악물고 말했지만 그의 짜증난 목소리에서 묘하게 절박함이 느껴졌다. “너는 네 일 하고 나는 내 일 하고, 그게 그렇게 어려워?”

“매니저님 일을 방해하려는 건 전혀 아니에요. 그냥 요즘 들어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비연기자들이 어디서 나타난 것들인지 모른다는 게 최근에 갑자기 확 와닿았어요. 어떤 존재들인지도 모르잖아요. 여기서 다시 안전한 기분으로 일할 수 있게 몇 가지만 알고 싶어서 그래요.” 나는 데일이 내 감정 섞인 설명을 믿기를 빌었다.

한참 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전화가 끊긴 건가 당황할 때쯤 그는 입을 열었다.

“알았어. 그럼 오늘 4시 정각에 사무실로 와. 늦지 마. 너가 궁금해하는 걸 내가 알려주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럼 얘기를 좀 해 보자. 그것만 딱 해 줄 거야. 얘기한다고 하면 그 다음부터는 내 일을 방해하지 않겠지?”

“당연하죠.” 나는 흥분해서 월계수 가지를 만지작거리며 거짓말했다.

“왜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데일은 잠깐 생각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오후 4시에 사무실로 오라고 했어. 그때 봐.” 그 말을 끝으로 데일은 전화를 끊었다.




공원에 도착했을 때 다리우스는 직원 출입구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다리우스는 잠이 덜 깬듯 인사를 하더니 하품을 했다. 내가 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턱으로 가리키며 그가 물었다. “그건 또 뭐야?”

“월계수야.” 내가 짧게 말했다.

“아! 디바 때문에 그런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간호사가 갇혀 있는 스크래치의 우리로 향했다. 간호사는 그동안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듯 그대로 서 있었다. 우리가 다가갔을 때도 그녀는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미동 없이 서 있었다. 나는 바닥에 월계수 가지를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우리 열쇠를 꺼내다가 멈칫했다.

“간호사한테 열쇠 보여주고 어떻게 반응하나 보자.”

“좋아.” 다리우스가 대답했다. 그는 자켓 주머니를 뒤져 작은 열쇠를 꺼내더니 간호사가 볼 수 있도록 내밀었다. 간호사는 열쇠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우리 뒤의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다리우스가 헛기침을 했다. “그… 너가 이걸 내 목에 쑤셔넣었던 게 기억나니?” 그가 진지하기보다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다리우스는 열쇠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나에게 돌아섰다. “이제 꺼내 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가가 우리의 자물쇠를 열었다. 간호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처럼 초점 없고 텅 빈 눈빛이었다. 다리우스는 간호사에게 조금씩 다가가며 내게 들릴 정도로 크게 침을 꿀꺽 삼켰다. 결국 그의 손이 간호사의 어깨에 닿았을 때, 그녀의 목 뒤편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다리우스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간호사를 우리에서 데리고 나왔다.

“흠.” 그가 말했다. “이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네.”

아직도 한껏 경계를 한 채 나는 월계수 가지를 집어들었다. 다리우스와 나는 간호사에게서 물러나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둘 다 조금 진정한 후, 나는 양말인형을 데리러 갔다.

다리우스는 내가 양말인형에게 밥을 주고 쓰다듬어주는 걸 지켜봤다. 양말인형을 다시 원래 우리에 넣어놓은 후 나는 다리우스와 근처 벤치에 앉아서 유령의 집 앞에 가만히 서 있는 간호사를 지켜봤다. 그녀는 다리우스가 데려다놓은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랑 다리우스는 그곳에서 잡다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공원의 미스터리를 풀려고 애쓰지 않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건 꽤 즐거웠다. 하지만 오후 3시가 되자 나는 데일과 한 약속을 떠올렸다. 다시 진지해질 시간이었다.

나는 전날 조슈아와 나눈 대화에 대해 다리우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곧 데일을 만나러 갈 거라는 것도. 다리우스에게 열쇠를 빌려달라고 하자 그는 선뜻 열쇠를 건넸다.

“진짜로 공원에 대해 얘기를 나누겠다니 믿기지가 않네. 우리가 그동안 몰래 돌아다녔던 걸 아는 건가?” 그가 물었다.

“당연히 아니지. 아니, 뭔가 약간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건 살짝 느꼈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아마 나를 호기심 많은 직원 정도로 보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열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 확실해.” 나는 다리우스를 안심시키려 웃어 보였다. “사무실 안에 열쇠가 맞는 곳이 있을지 모르니까 한번 가져가 보는 거야. 아마 뭘 열어볼 기회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다리우스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으면 좋겠다.” 그가 중얼거리더니 인상을 썼다. “너… 우리 얘기 하면 안돼. 말 조심해야 돼.”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아마 협박처럼 들렸겠지만 다리우스는 정말로 걱정하는 투였다.

“그럴게.” 내가 말했다. 나는 할리우드 구역으로 출발했다. 데일을 만나기 전에 한 가지 해 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나이 든 디바는 중심 광장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딴 생각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내가 옆에 와서 앉자 그녀는 놀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조용히 월계수 가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얇은 손가락으로 가지를 받아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우리에게 말해주려던 게 이건가요?” 내가 조용히 물었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조용해진 그녀의 태도가 왠지 간호사를 떠오르게 했다. 나를 무표정으로 바라보던 디바의 입꼬리가 갑자기 올라갔다.

“반가워요! 왔는지 몰랐네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는 저주받은 곳인가요?” 내가 속삭였다. “어제 올리버랑 저랑 대화하시면서 로럴이라는 단어를 쓰셨잖아요. 처음에는 디바님 이름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게 로럴을, 그러니까 월계수를 이용해 나쁜 기운을 정화시키거나 저주를 풀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희에게 그 말을 해 주고 싶으셨던 건가요? 여기를 정화시켜야 하는 건가요?”

그녀는 나를 몇 초간 쳐다보다가 갑자기 얇은 월계수 가지를 두 손으로 꽉 쥐더니 반으로 부러뜨렸다. 나는 입을 떡 벌리고 그녀가 반으로 부러진 가지를 또 반으로, 또 반으로 점점 작게 부러뜨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밝은 녹색 이파리가 그녀의 손아귀에서 바스라졌다. 그녀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중얼거림은 점점 커져 비명소리가 되었다.

“그 흉하고 징그러운 녀석… 그 흉하고 징그러운 녀석, 그 흉하고 징그러운 녀석, 그 흉하고 징그러운 녀석!!!!!!!!!!!”

그 비명을 끝으로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부러진 월계수 조각을 멀리 던져버렸다. 나는 당황한 채로 월계수 조각이 길에 떨어지는 걸 지켜봤다. 디바는 꺽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녀의 눈꼬리가 쳐지더니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폭발하는걸 굳이 지켜보지 않았다.




데일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래도 노크를 하기로 했다.

“데일? 저 리아예요.” 내가 문 틈 사이로 불렀다. “얘기하자고 하셔서 왔어요.”

“들어와.” 안으로부터 우리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문을 어깨로 밀고 작은 방으로 들어섰다. 데일은 자기 책상에 앉아 있었다. 아니, 앉는다기보다는 거의 엎드려 있었다. 딱히 그가 활기찬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는 평소보다도 더 우울해 보였다.

데일은 키가 작고, 그의 백금발 머리에는 항상 약간 기름기가 껴 있다. 나는 한 번도 그가 완벽히 면도를 하고 온 것을 본 적 없다. 그의 눈동자는 갈색인데, 항상 피곤한 듯 다크서클이 있다. 데일은 항상 긴팔 셔츠에 통 큰 바지를 입고 다니지만 멋있게 보이기에는 너무 품이 크다.

“왔군.” 데일이 혀가 꼬인 채 말했다. “자… 앉아.” 그는 자기 건너편의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인상을 썼다. “어… 혹시 취하셨어요?” 내가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데일이 대답하기도 전에 테이블에 놓여 있는 위스키 병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한 병은 벌써 절반 가량이 비어 있었다.

“조금.” 데일이 딸꾹질을 누르려 입을 가리면서 인정했다.

“다음에 다시 올까요? 좀 더… 맨정신이실 때?” 내가 제안했다.

“아냐, 아냐, 있어. 나한테… 뭐 몇 가지 물어보고 싶다며?” 그가 집중하려 노력하면서 물었다.

“네, 괜찮으시면요.” 아직도 약간 긴가민가한 채로 나는 허리를 펴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일단은 왜 오후 네시에 술이 그렇게 취하셨는지가 궁금한데요.”

데일은 암울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그렇게 놀라워? 네가 보기에 난 그런 사람이잖아, 안 그래? 너랑 네 친구들이 죽어라 일하는 동안 상아탑에 혼자 앉아서 샴페인이나 마시는 거지 같은 상사.”

“근데 지금 위스키 마시고 계셨잖아요.” 내가 말했다.

“뭐? 표현이 그렇다는 거지. 뭐, 상관없어. 근데 뭐가 상관있는지 알아, 이 아가씨야? 니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야! 넌…” 데일의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그는 뭐라 말하려고 했는지를 잊어버린 듯 인상을 찌푸렸다. “넌 내가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니가 뭘 알아!!!” 결국 데일이 떠오른 듯 말했다.

데일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저기요,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제가 매니저님을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딱히 없었잖아요. 제가 궁금한 건 이 공원이…”

“공원 좆까!!!” 데일이 말을 끊었다. “망하라 그래!! 너도 내 뒤에서 몰래 돌아다니면서 비연기자들이 어디서 온 건지 알아내려고 하고 다닌 거 다 알고 있어!! 아닌 척 하지 마!” 그가 소리쳤다. “나는 그런… 그런 사람이…” 그는 말끝을 흐리더니 단어를 떠올리려 노력했다. “어쨌든 난 안 속아! 나는 안 속는다고.”

데일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자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근데도 내가 왜 신경을 안 쓰는지 알아? 왜냐면 너는 절대, 절대 진실을 알아내지 못할 거거든.”

“그러니까 직원들한테 안 알려주는 정보가 있다고 인정하시는 거네요.” 내가 말했다.

데일은 높은 소리로 깔깔대며 웃었다. “너 진짜 귀엽다. 정보라니…” 그는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웃어댔다.
“진지하게 물어보자, 이 공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넌 몰라. 넌 빙산의 아주 작은 일각도 못 보고 있어. 이것… 이 일, 이 모든 일은 네가 감당하기엔 너무 거대해. 아무리 더 알아내 보겠다고 발버둥을 쳐도 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걸.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데, 난 말하고 싶어도 못 하니까.”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데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도 않아.“ 데일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는 다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런데 딱 한 가지는 말해 줄 수 있지. 진실의 한 조각이야. 나는 나쁜 놈이 아니야.”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저랑 동료들한테 위협이 아니라는 거죠?”

“그건 맞아. 위협은 맞아. 그런데 너네한테 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걸.” 그는 다시 의자로 푹 기대 앉았다. 데일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내 거지같은 인생…” 그가 꼬인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내 주머니에 있는 열쇠가 떠올랐다. 나는 데일의 사무실 벽에 기대어 있는 서랍장을 슬쩍 쳐다봤다. 그 다음 내가 한 짓에 대해 살짝 죄책감이 들기는 하지만 솔직히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데일을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취하게 만든다면 서랍을 열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했다.

운이 따르는 날인 듯했다. 데일은 나를 다시 쳐다보더니 물었다.

“너도 좀 마실래?” 그가 위스키를 가리켰다. “위스키는 불의 물이라고도 부른대. 왠지는 몰라. 마실 때 입에 불이 붙은 것 같은 느낌이 나서 그런가 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요.”

데일은 책상 밑으로 허리를 숙이고 서랍을 뒤져 좀 낡고 더러워 보이는 유리잔을 하나 꺼냈다. 그는 자신의 잔 옆에 그걸 내려놓고 두 잔을 채운 다음 내게 하나를 건넸다.

“그, 건배를…” 데일이 말끝을 흐렸다. 그는 건배를 할 만한 대상이 없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지옥에다 할까요?” 내가 말했다.

데일은 픽 웃었다. “그거야. 다 지옥에나 가라지. 난 이미 지옥에 살고 있지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데일은 위스키를 한 입에 털어넣고 잔을 다시 채웠다. 미심쩍게 보이지 않기 위해 나도 데일과 똑같이 했다.

나에 대해 한 가지를 말하고 넘어가자면 나는 별로 술이 센 편이 아니다. 맥주는 좋아하지만 그 정도가 내 주량의 끝이다. 나는 술을 잘 못 마신다. 위스키를 한 잔 마시고 나니 벌써부터 뱃속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두 잔째부터는 지나치게 기분이 좋아졌다. 내 웃음은 데일에게도 전염된 듯했다. 데일도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걸 잃었는지 알아?” 그가 웃는 중간중간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진짜 많이 잃었어. 진짜 슬픈 얘기 하나 해 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 아니, 사랑했었던 남자인가, 어쨌든 그가 죽어가고 있어.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죽이고 있는 거야.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어쩔 수가 없었어. 그들이 내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어.” 데일은 길게 코웃음을 치다가 갑자기 히스테릭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데일은 우리의 잔을 세 번째로 채웠다. “그들이 누군데요?” 발음이 꼬이는 걸 느끼며 나는 별 생각 없이 물었다. “매니저님 가족이요?”

데일은 살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어떻게…? 아냐, 상관없지. 그래 맞아. 그렇지만 우리 가족뿐만이 아니야. 말 안 해줄 거야…. 말 안 해줄…” 데일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네 번째 잔에 술을 따랐다. 내가 술을 입에 털어넣자 그는 마지막으로 나를 한 번 올려다본 후 똑같이 술을 털어넣었다. 데일은 책상에 엎드리더니 머리를 처박고 잠들었다.

의자에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갑자기 토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어찌어찌 파일철이 들어 있는 서랍장까지 걸어가는 데에 성공했다. 데일이 뻗어 있는 동안 이 기회를 얼른 잡아야 했다. 나는 한참만에 서랍 자물쇠에 열쇠를 넣는 데 성공했다. 놀랍게도 열쇠는 자물쇠 구멍에 딱 맞았다.

자물쇠를 열고 서랍을 열자 작은 공간이 파일철로 꽉 차 있는 게 보였다. 파일들은 한 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2020 비용” 이라는 파일이 눈에 띄었다. 다른 파일은 “2020 매출”이라고 이름이 써 있었다. 혹시 다른 서랍에 들어 있는 폴더는 조금 더 흥미로울까 싶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아래칸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놀랍게도 서랍은 비어 있었다. 딱 두 가지만 빼고. 나무 손잡이가 달린 아주 낡아 보이는 권총과 흑백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나는 사진을 꺼내 자세히 보려고 눈을 찡그렸다.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사진에는 아주 오래 전 유행했던 옷을 입고 있는 두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남자 한 명과, 거의 소녀처럼 보이는 어린 여성이었다. 그들은 정체를 알아보기 힘든 회색 배경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뒤에 나무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사진에 나온 두 명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눈도, 입도, 코도 보이지 않았다. 이목구비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사진을 서랍 안에 떨어뜨리고 다급하게 서랍장 문을 잠궜다. 나는 주머니에 열쇠를 넣고 데일의 사무실에서 달려나갔다. 간신히 할리우드 구역의 광장에 있는 쓰레기통까지 도착했을 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쓰레기통에 대고 한 번인지 두 번을 토하고 옆에 있는 벤치에 쓰러졌다. 눈이 감기며 주변이 점점 어두워졌다. 뭔가가 부츠에서 딸깍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게 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누군가 내 팔 밑에 손을 넣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느낌이 났다. 나는 반항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를 모래주머니마냥 어깨에 둘러멨다. 피부에 가죽 조끼가 까칠하게 와닿았다.

그 사람은 나를 들쳐메고 출발했다. 눈을 몇 번 떴을 때 시야에는 회색 바닥만이 들어왔다. 어지러웠다. 바닥 색깔은 점점 어두워지더니 밝은 모래 빛깔로 바뀌었다.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오랫동안 메고 걸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그는 멈추더니 나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나는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며 눈을 깜빡거렸다. 눈을 못 뜰 만큼 피곤했다. 나는 나무로 된 건물의 바깥에 앉아 있었다. 익숙한 장소였다. 트윈 베일 포인트에서 며칠 전에 나와 동료들이 만났던 선술집이었다. 내 앞에서 내 어깨를 잡고 있는 남자도 익숙해 보였지만 그를 알아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는 정말로 걱정스러운 듯 보였다. 거의 항상 크게 입을 벌리고 웃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의 이런 표정은 처음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혀가 꼬여서 알아듣지도 못했겠지.

카우보이는 동정 어린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또 처음 보는 행동을 했다. 그는 한 손을 들어 땀에 젖은 내 이마에서 머리카락을 떼 주었다. 그의 차갑고 메마른 손가락이 내 얼굴을 타고 내려와 잠깐 볼에서 머물렀다. 왜 이 행동이 그렇게 기억에 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나는 잠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눈이 반쯤 감긴 채 그를 쳐다봤다. 아마 나를 안정시켜 주려고 하는 듯했다.

갑자기 어떤 남자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미첼의 목소리였다. “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미첼이 우리 쪽으로 달려와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게 느껴졌다.

“리아? 세상에… 괜찮아?” 미첼이 물었다. 나는 대답하려 노력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미첼은 나를 자기 차로 부축해서 데려갔다. 5분 정도 주소를 말하려고 노력한 끝에, 미첼은 드디어 내 말을 알아듣고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미첼의 차 뒷좌석에서, 그리고 우리 집 소파에서 잠을 푹 자고 나니 좀 회복된 느낌이었다. 머리만 좀 아플 뿐이었다. 나는 미첼에게 데일과 나눈 대화에 대해, 그리고 파일 서랍에서 발견한 것에 대해 말해 주었다.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점점 뭔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나와 미첼 둘 다 동의했다. 나는 그에게 월계수 가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미첼은 디바가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였으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가 돌아다니면서 막 의식을 치르거나 하는 건 안 돼.” 내 머리가 울리지 않게 미첼이 낮은 목소리로 말해줬다. “왜 가지를 꺾어 버린 건지도 모르잖아. 일단 그걸 알아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것 같아.”

“근데 데일은 우리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어.” 내가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마사지하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던데.”

미첼은 킁 하는 소리를 냈다. “데일 걔가 뭘 아는데? 취해서 굴러다니고 있었으니 당연히 헛소리를 했겠지. 근데 데일 진짜로 남자 좋아한대?”

나는 미첼을 노려보았다. “내가 여태까지 말한 것 중에 그게 가장 와닿니?”

“왜? 그냥 궁금해서 그랬지.” 미첼이 대꾸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 사람을 강제로 죽이고 있는게 자기라잖아.”

미첼은 내 소파에 푹 기대 생각에 잠긴 채 천장을 바라봤다. 그는 얼마간 더 머물다가 돌아갔다. 늦은 시간, 미첼이 돌아갔을 때 데일로부터 전화가 왔다. 데일은 매우 피곤하고 힘들고 창피해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어… 사과하고 싶어서 전화했어. 방금 한 30분 전에 일어났는데 우리가 뭔 얘기를 했는지 거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프로답지 못한 짓을 한 것 같아. 내가 뭔 짓을 혹시 했다면… 음, 미안해.”

“걱정 마십쇼.” 내가 말했다. “그냥 위스키 좀 마시고 매니저님이 사는 거 힘들다고 징징댔어요. 그거 말고는 별 얘기 안 했어요.”

“아…” 데일이 말을 멈췄다. “이것저것 쑤시고 다니지 말라고 얘기하려고 했는데, 혹시 내가 그 얘기도 했나?”

“예, 하셨어요. 근데 계속 쑤시고 다닐 거예요.”

“그럴 거 같더라. 뭐, 어차피 대단한 걸 알아내지도 못할 테니 별로 걱정은 안 되는군. 너 하고싶은거 다 해. 그렇지만 날 방해하기만 해봐.” 그는 어느새 다시 평소의 얼간이같은 데일로 돌아와 있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건 어떠냐고 예의바르게 조언을 남긴 후 나는 전화를 끊었다. 데일은 내가 서랍을 열어본 걸 눈치채지 못한 게 분명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남은 저녁 시간은 TV를 보며 보냈지만, 머릿속에서는 데일의 취중 고백이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시계가 정확히 12시 12분을 가리킬 때,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살면서 내가 낸 최고의 아이디어일 것이다.

일단은 네이선이랑 얘기를 꼭 나눠 봐야 할 것 같다.

[바나나떡]

데일이 자기 가족이하던 악행들을 멈추고 싶어서 노력하는거 아닐까...자기 애인에 관련된 일이 계기였고.....ㅜ아 근데 마 카우보이!!ㅜ 존나 씌앙럼....네녀석 얼굴 누구로 상상할지 얼릉 정해야겠다 존잘 서부미남스타일 누구있지ㅜㅜ

[자유]

미첼이 마이클인가..??

[강한 흰둥희]

데일 여자맞지..? 혹시 남자야..? 여자로 읽고있었는데 댓글보니 ㅇ냐 보니 남자인가 싶어서.. 성별묘사가 어디 있었나..?ㅠㅠㅠ 아 '그'가 남자만 말하는 걸 수도 있겠구나..!

[MOANA]

남자야 게이커플임

[빱댁]

카며든다... 나 지금 월루중에 함박미소 짓고 있는데 마스크가 있어서 안 들킬 수 있었어ㅠㅠㅠㅠ 카며든다 카며들어!!!!! 리아X카우보이 더 갖고와아아아아!!!

[7키로남았다]

카우보이ㅠ마 무슨 사연이있는거니ㅠㅠ

[흑진귀]

카우보이 이쓰애끼....ㅎㅎㅎㅎ

[현생에 지친 여시]

카우보이 씌앙넘 ,,,,

[280명]

헉 디바랑 카우보이랑 연관되어있나??

[junks]

뎅냐.. 다시 보게 되네..

[임용꺼져]

헤엑 그많은 글중 데일이 남자좋아한다는게 젤 신경쓰이네요... 약간 기름낀머리라니까 스네이프같고

[Afternoon of a Faun]

나 인정할게...카며들었어...그때 카우보이가 키스했어도 괜찮아...

[나는자유롭다]

카며든다 카며든다
카우보이 내머릿속에선 히스레져임..ㅋ
데일 이놈 나쁜놈이 아닌갑네

[으르르꽝꽝]

뭐야아..... 이거 로설이었냐고ㅠㅠ카우보이 소스윗놈아ㅠㅠ

[놋네자이언츠]

카우보이녀석 소스윗,,,,,

[쌉소리금지]

ㅎ ㅏ 열심히 읽고 잇는데 카며드노.. 넘 재밌서 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카우보이 루카스틸로 상상하니까 조나좋다 ㅋㅎ

[휘낭시에(골드)]

카며들었어............쏘스윗..............데일 뭔가 가문의 업을 짊어졌나본데....자기가 있어서 다행이라는걸 보니 뭔가....뭔가 있어

[귀여운건못참아]

아쒸 카우보이 쩝쩝

[신유현]

카우보이 미친... 쏘 스윗가이...

[지니머리카락]

와 데일 착한애였어??? 비연기자들 나쁜놈들아니지??? 예를 들면 귀신이라던가... 데일은 퇴마사고 카우보이귀신이 인간인 주인공한테 빠지는?? 하 암튼 너무 재밌다

[5등급]

혹시 그 사랑하는 사람이 네이선은 아니지? 그나마 뭘 알고 있는 거 같고... 역마차에서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러고 아닌가? 잘 몰라도 데일도 불쌍하다

[헤이!]

마 카우보이 스윗하노

[눈물이 저 너머 흐르는]

이짜식 찐 여우네......

[강동원주인]

카우보이 십색갸 사랑해

[wow...you are such a hannam]

카우보이는 리아를 진짜 좋아한걸까..?

[행복을 주세요]

카우보이.... 스윗한넘..

[구으타]

카우보이뭐노

[갈라테이아]

데일이 악역(?)이 아니라는게 반전이다 그리고 카우보이 뭐야 주인공 좋아해??

[홍앵앸ㅋ]

카우보이 ~~~!~!~!~!~!~!!

[간지나게]

카우보이ㅇ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