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 말이나 사슴 등 초식동물들은 새끼를 낳으면
곧바로 일어선다. 처음엔 일어서려다 다리에 힘이 없어 몇번 고꾸리지다가도
기어코 벌떡 일어나서 어미 젖을 빤다.
송아지 때는 어미를 졸졸 따라다니지만 조금 크면 혼자서 논밭을 쏘다닌다.
어느 정도 크게 되면 힘도 세어져서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사람이 소를 부리기 위해서는 코를 꿴다. 양 코구멍 사이에 있는 막에 구멍을 내어
그곳에 휘어진 나무가지를 끼워서 새끼줄을 묶어 굴레를 씌운다.
코뚜레를 해 놓으면 아무리 힘센 황소라도 코뚜레를 꽉 붙잡고 있으면 꼼짝하지 못한다.
고삐를 늦추어 주면 황소는 아이들이 고삐를 잡고 있어도 끌고 나간다.
몇년전에는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에 붙잡혀서 북한관리에 인계되었는데
다시 도망칠까봐 모두 코를 꿰어 끌고가는 사진이 실린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그들은 자유를 찾아 탈출한 사람들을 인간이하의 개.돼지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코를 꿰게되면 그날로부터 속박의 굴레를 덮어 쓰는 것이다.
며칠전 북한의 김여정이 대북 전단살포를 강도 높게 비난하자 정부 여당 원내대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단살포금지법'을 입법하겠다고 밝혔다.
몇년전 유엔에서 북한 인권법안을 투표할 때도 우리나라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할 텐데도
북한의 지시를 받았는지 표결에서 기권하고 말았다. 참으로 남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터 정부가 북한에 코를 꿰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시골에서는 농사를 지을 때 소를 부렸다.
쟁기질이며, 쓰레질로 논밭을 갈아엎었다. 요즘이야 기계화가 되어 경운기나 트랙터가 일을 하지만
예전에는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소는 한 집안의 재산이었다. 아들이 대학에라도 가면
논을 팔든지 아니면 소를 팔아서 등록금을 마련했다. 당시 시골출신들이 많이 가는 한양대를 상아탑 대신에 우골탑이란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평생 늙어 죽도록 일만 했던 소도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할 때는 마지막으로 도축장으로 끌려간다.
코가 꿰이어 어디 도망갈 수도 없다. 소도 자신이 죽어러 간다는 사실을 느낌으로 알고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지난 4월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서울 송파병에 출마했던 경남대 김 아무개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개원 후 1호 입법으로 전단살포금지법을 하명 입법하겠다고 한다. 참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라고 했단다.
소는 좀체로 잘 웃지 않는다. 교미를 시킬 때나 한 번씩 웃는 표정을 짓지만 그 외는 표정이 없다.
사람들이 '소가 웃을 일'이라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아 얼토당토 하지 않은 것을 강조하기 위해
비유적으로 하는 말임을 짐작할 수 있다. 탈북자 출신인 지성호 통합당의원이 주선해 마련된 국회 소통관에서의 기자회견에서 탈북자들은 총선에서 낙방한 박지원 전의원이 "대북전단 살포는 코로나19확산을 노린 반인륜적 처사"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탈북민 사회를 코로나 보균자로 치부하고 탈북단체를 테러단체로 규정하는 반인륜적 망언'이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똥개 눈에는 똥만 보이는 법이다.
첫댓글 탈북자도 조금 문제,남북 협조하면되는데 ,북한 위정자들 사회 혼란 시키면 너죽고,나죽자 식이고.탈북민 이용해 몇해전까지 전국 학교.군부대 돌아 다니면서 국정원 지시되로 엉터리 강연하고 각곳에 연설.강연비 뜯어 가고.이젠 김만철 일가족 시대도 아니고
박정희 시대 대학간부들 서울 초청해 당시 대기업 공장 견학 시키고,선물주고.여관서 맛있는것 주고..정권 유지 차원서 .북한 열병 군인들 보여주고,당시 남한에서 호기심으로 이불속서 북한 방송만 들어도 반공법 구속시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