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살아가면서, 아무리 머리 나쁘고 심장 차가운 인간이라 할지라도, 한 구절, 가슴에 품고사는 글귀가 있을 겁니다.
나는 이 분, 피천득님의 '인연'의 마지막 이 구절에서 느꼈던 그 아릿한 감흥, 그 순간이 중학생 시절의 까까머리 때 남은 몇 안되는 행복했던 기억이었다고 아직도 두근대는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오늘, 우연찮게 다른 걸 찾다보니, 조우하게 된, 피천득 님의 근황. 혹 이'세번째의 불행했던 아사코와의 절절한 만남'을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읽어봄직하다 싶어 이렇게 옮겨봅니다.
오늘도....
수서에서 뚜벅뚜벅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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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찬기자의 문학마을] 수필가 피천득
"수필은 청자연적이다.수필은 난이요 학이요,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 이다.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수필 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서른 여섯 살 중년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정열 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 우리가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서 읽었던 ‘수필’의 한 대목이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우리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된 원로수필가 피천득(皮千得 91)씨.그의 호는 금아(琴兒),시인이며 영문학자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그를 ‘수필문학의 대가’라고 부른다.개성적이고 섬세한 필치 로 우리 수필문학의 품격을 한 단계 높였기 때문이다.또 어떤 이는 그를 ‘ 청빈의 은자’라고 부른다.젊었을 때는 영문학을 가르치며 향기 진한 아름다 운 문장을 남겼고 노후에 이르러서는 세간의 눈에 띄지 않게 담백한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보금자리는 한강변 구반포 주공아파트.지은 지 29년 된 곳이다.아 파트 단지에도 4월을 맞아 개나리가 이제 노란 꽃망울을 하나 둘씩 접고 벚 꽃은 흐드러지게 피었다.한낮에는 초여름에나 어울리는 이른 무더위 때문에 반팔 소매 차림의 행인들이 더 눈에 띈다.
그의 거실에 들어서면 먼저 휑하다는 인상을 받는다.기자가 방문한 다른 문인들의 거실이 여러 장식품으로 꾸며진데 비하면 더욱 그러하다.그 흔한 붙박이 장식장도 없이 밥상 겸 집필상으로 쓰는 오래된 교자상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교자상을 가운데 두고 그와 마주앉았다.
구순을 넘긴 나이인지라 건강이 염려되었는데 작가는 "그런 대로 좋다"고 말문을 연다.27년전 서울대 교수를 정년 퇴직한 이후 특별한 일이 없는 그의 요즘 일과는 이렇다."시간으로 따지면 바흐나 브람스 등의 고전음악을 듣는 시간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은 책을 읽는 것이다.시인들이 육성으로 녹음해 나에게 준 시들,배우들이 낭송하는 영문 녹음 시들,내가 번역한 시를 녹음한 것들을 듣기도 하고 비디오로 나온 셰익스피어극을 보기도 한다.가끔 51번 좌석버스를 타고 덕수궁에 가거나 제자들과 함께 나들이도 한다." 거실 벽에 기댄 채로 서있는 표구된 그림과 작품 가운데 하나가 눈길을 끈 다.“길가에 수양버들/오늘따라 더 푸르고/강물에 넘친 햇빛/물결 따라 반짝 이며/임 뵈러 가는 길에/봄빛 더욱 짙어라.”그가 오랜 전에 쓴 ‘연가’ 연 작시중 첫 번째 시로 봄철의 정감을 군더더기 없이 잘 표현했다.
그림과 작품을 왜 벽에 걸지 않느냐고 물으니 작가는 "못질하는 것이 싫기 도 하고 콘크리트벽에 못질하는 것도 힘도 들지만 남의 집에까지 불편을 끼 치고 싶지 않다.그래서 내버려 둔다"고 소년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수필가 윤재천씨는 "피천득의 문학은 엄격한 자기절제와 남에 대한 관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그의 글 속에는 위선이 없다.진실은 살아있는 것이고 살아 있다는 것은 감동을 잉태하는 원초적인 힘이 된다"고 평가한다.
그는 담배와 커피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술도 입에 대지 못한다.하지만 맥 주 포도주 등 술에 관한 이야기라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작가는 "문학을 업으로 하는 나에게 무엇보다도 젊음을 다시 가져보게 하 는 것이 봄"이라며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 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을 91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작은 축복은 아니다"고 말한다.
작년에 펴낸 수필집 ‘인연’(샘터)은 영원한 수필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종달새’‘서영이’‘피가지변’(皮哥之辯)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 은 기존 문고본 판형보다 작은 명함 두 장 크기에 불과해 주머니에 넣고 다 니며 언제든지 읽을 수 있는 것이 특징. "그리워하는대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 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세 번 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한다.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표제작 ‘인연’의 마 지막 대목이다.
이 작품 이외에도 작가의 인생과 삶을 느껴볼 수 있는 ‘모시’‘여성의 미’‘엄마’등 모두 81편의 수필이 실려있다.
그는 서문에서 "산호와 진주가 나의 소원이다.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그리 예쁘지 않은 아기에게 엄마가 예쁜 이름을 지어주듯이,나는 나 의 이 조약돌과 조가비들을 산호와 진주라 부르련다"고 적고 있다.
소설가 최인호씨는 "혼탁한 시대 세기말적인 어둠과 가치 혼돈의 암흑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을 읽는 것은 마치 밤하늘의 별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고 감탄한다.
그는 33년 ‘신동아’에 시 ‘기다리던 편지’‘나의 파일’등을 발표하면 서 작가생활을 시작했다.문단생활 68년동안 100여편의 수필과 시를 발표했다 .70년에 가까운 긴 문단경력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은 작품을 발표한 셈인데 작가는"수필은 아무렇게나 쓰는 게 아니다.소설은 플롯이라도 있어서 엮어 나갈 수 있지만 수필은 그렇지 않다.정성을 들여서 쓰지 않으면 우선 재미가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요즘의 문학경향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다작이 나쁜 것만은 아니 겠지만 최근 출판되는 문학서적을 보면 어떤 것은 문장이나 어법이 엉성해 팸플릿도 아니고 이런 것을 과연 문학이라는 이름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지 의문도 생긴다."
작가는 20여년동안 수필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나이 먹어서 했던 소 리 되풀이하고 헌소리 되풀이하는 것 만큼 추한 게 없다"며 "‘나이 먹으면 silence and saloon하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술을 못하므로 침묵을 지킨다 "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는 시에 있어서는 아직도 현역.지금도 한 해에 몇 편씩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그는 "시심이 떠오를 때마다 쓴다"며 "때가 되면 책으로 펴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곳에서 부인 임진호(林珍鎬 84)여사,난영(蘭英)이와 함께 산다.난 영은 서양인형이다.눈이 파랗고 머리는 금빛인 이 인형은 46년전 그가 하버 드대 연구교수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없는 딸 서영을 위해 사온 것 이다.그의 딸 사랑은 수필집 한 장(chapter)을 ‘서영이’로 이름 붙여 딸에 관한 여러 글을 모아 꾸밀 정도로 대단하다.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 "나의 딸이면 서 나와 뜻이 맞는 친구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으로 여기는 서영이 미 국유학을 떠나자 난영을 딸처럼 보살폈다.매일 얼굴을 씻기고 머리에 빗질을 하고 이불을 덮어 재운다.일주일에 한번씩 목욕시키고 철따라 옷도 갈아 입 힌다.
난영은 지금 화사한 봄옷을 입고 있는데 지금도 48년전 모습 그대로 그의 침실에서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난다.난영은 유명인사가 된 지 오래.이 집을 찾는 사람들은 그녀를 한 번쯤 보고 싶어한다.
작가에겐 2남1녀가 있다.연극인 출신인 큰아들 세영(世英)씨는 캐나다에서 치과기공소를 운영하고 둘째 아들 수영(守英)씨는 서울중앙병원 소아과 의 사로 근무하고 딸 서영(瑞英)씨는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현재 미국 보스턴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76년에 펴낸 수필집 ‘수필’(범우사)은 그가 그동안 써온 수필 가운데 그 의 수필관에 걸맞는 작품만을 골라 엮은 것이다.이 책에는 스쳐 지나가는 인 연에의 아쉬움,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표현한 글 등을 포함해 모두 35 편의 수필이 실려 있다.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만의 특유한 문체로 그려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24년간 스테디셀러로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책은 국내독서 계의 수필붐을 주도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작가는 "이 책 한 권으로 범 우사가 일어섰다"고 덧붙인다.
문학평론가 김우창 고려대교수는 "그의 글은 모나고 모진 논설과는 전혀 다르게 평이하고 일상적인 일들을 곱고 간결한 우리말로 도란도란 이야기한 다.그것은 따지고 묻고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로 하여금 삶에 있 어서의 아름다움의 기미와 기쁨의 계기를 더불어 느끼게 한다"고 평가한다.
그의 작은 서재엔 예이츠,워즈워스,토마스 하디,두보,도연명 시인들의 얼 굴이 작은 액자에 들어 있다.그가 지금도 좋아하는 스웨덴 최고의 여배우 잉 그리드 버그만 사진은 두 장이나 걸려 있다.그런데 책들은 별로 없다.그것은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이다.무소유와 청빈이란 말이 실감난 다.
수필이란 서정적 산문이라고 정의하는 그는 "생활경험,자연관찰 또는 사회 현상 등 모든 것이 글감이 된다"며 "시대에 따라 시계추가 왔다 갔다 하듯 내용은 바뀌게 마련이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태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 함이 없다"고 강조한다.
작가가 수필가지망생에게 들려주는 애정 어린 말은 많은 교양을 쌓으라는 것.다독과 정독이 필요하고 문장수사학에 대한 안목을 키워야 독자들의 사랑 을 받는 좋은 수필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수필이 오랫동안 인기를 끄는 것에 대해 "비교적 쉽게 쓴 것 이 하나의 이유이고 간결하고 밝고 따뜻하게 쓴 것이 다른 이유들"이라고 분 석한다.
그는 1910년 서울 종로 화신 건너편에서 가죽신장사로 부자가 된 피원근씨 와 김수성여사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일곱 살 때 아버지를 잃은 그는 서화 와 거문고에 뛰어난 어머니로부터 예능과 문장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열살 때 어머니마저 잃었지만 그는 공부를 잘해 초등학교 4학년 때 월반해 제일고 보(현 경기고)에 들어갔고,고보 4학년 때인 26년 춘원 이광수선생의 권유로 중국 상해로 유학을 갔다.
중국 호강대에서 공부하며 유학전부터 흠모하던 도산 안창호선생의 가르침 을 받았는데 도산이 늘 그를 찾아올 정도였다.아파서 누웠을 때는 그를 상해 요양소에 입원시켰고 아침마다 문병하는 등 끔찍한 사랑을 주었다고 한다.그 러나 그는 도산이 일경에 체포되어 고국으로 압송돼 순국했을 때 일경의 눈 이 두려워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기고 있다.
춘원은 그의 인생과 문학에 결정적 전기를 마련해준 인물.상해에서 돌아와 3년간 춘원댁에 살 때 춘원은 그에게 거문고를 잘 타던 그의 어머니를 기려 금아(琴兒)란 호를 지어주었다.또 워즈워스의 ‘수선화’등 수많은 영시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읽게 하였고 인도주의 사상과 애국심도 불어넣어 주었다.
작가는 춘원에 대해 "그분은 마음이 착해 남을 미워하지 못하고 정직한 분 이었다.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했고 욕심이 적었다"고 회상한다.
93년에 펴낸 시집 ‘생명’(동학사)은 작가의 담백한 시심이 오롯이 배어 있다.‘꽃씨와 도둑’등 모두 100여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 이 시집은 간결 ·우유체의 필체로 압축된 서정적 구상이 특징.“눈보라 헤치며/날아와/눈 쌓이는 가지에/나래를 털고/그저 얼마동안/앉아 있다가/깃털 하나/아니 떨구 고/아득한 눈 속으로/사라져 가는/너.”시 제목은‘너’.슬픔도 헛됨도 없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돈만 벌면 된다는 것에서 벗어나 바르게 살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는 "나는 뭔가 큰 것을 후세에 남긴다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그냥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또 쓰고 싶을 때 쓰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고 말한다.
작가의 시와 수필집 영문판이 새달에 나온다.그의 작품이 영어권국가의 독 자들에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줄 것이다.
‘어린왕자’와‘피터팬’을 좋아한다는‘91세 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면 서 그가 타고난 수필가요,영원한 수필가라는 생각이 들었다.수필의 속성인 투명함과 착함에 가장 근접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신기한 것,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란다"는 원로수필가의 이야기를 가슴 깊이 새겨본다.
[siinjc@kdaily.com]
▲수필가 연보 ·1910년 서울 출생 ·33년 신동아에 ‘기다리던 편지’등 발표하며 문단 데뷔 ·44년 ‘서정시집’ 펴냄 ·45년 경성대학교 예과 교수 ·51∼74년 서울사대 교수 ·59년 ‘금아시문선’ 펴냄 ·69년 시집 ‘산호와 진주’ 펴냄 ·76년 수필집 ‘수필’ 셰익스피어‘소네트시집’ 펴냄 ·80년 ‘금아문선’‘금아시선’ 펴냄 ·87년 ‘피천득 시집’ 펴냄 ·93년 시집 ‘생명’ 펴냄 ·2000년 수필집 ‘인연’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