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3월 8일, 공항에 의한 경기침체로 생활고에 허덕이던 미국 섬유여성노동자들 수 만 명이 뉴욕 루크거스 광장에서 빵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어서 1909년 미국 전지역 2만여 여성노동자들은 "세계 모든 나라에서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여성들은 정치에 참여할 권리조차도 없는 완전한 무권리 상태였다. 때문에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는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없었으며 특히 여성노동자들은 기업주의 착취와 억압을 저지할 길이 없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여성들이 성별, 종교, 민족의 차별을 두지 않는 보통선거권을 주장하였다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 여성의 인간다운 권리를 찾기 위해서 선차적인 과제였다.
저임금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과도한 작업량 및 위험한 작업환경 등 가혹한 노동착취를 중단할 것과 여성과 임신에 유해한 작업금지, 산전산후 8주간의 출산휴가 등 모성에 대한 보호조치들, 인간답게 살 권리를 요구했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바로 이러한 힘이 세계여성의 날을 탄생시킨 것이다. 1910년 전세계적으로 성장한 여성노동자들은 미국섬유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된 3.8 시위를 매년 '세계여성의 날'로 기념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후 매년 3`8일이 되면 세계 각국의 수천 수 만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집회와 기념식을 갖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거리를 행진하며 '여성의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실천을 결의하는 날' 로 기념하며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3.8 세계 여성대회의 의의>
수 천 년의 복종과 체념을 거부하고 착취의 종말을 요구하면서 투쟁을 벌여왔던 3.8세계여성의 날은 여성노동자의 손으로 쟁취되었던 만큼 그 의미는 매우 크다.
첫째, 이날은 세계 여성이 하나로 단결하고 연대하는 날이다.
3·8 세계 여성의 날은, 나라와 민족은 달라도 똑같이 자본가에 의해 억압당하고, 법적으로 불평등하며, 사회적으로 열등한 지위에 있는 여성들이 완전한 해방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연대하는 날이다. 자본가는 이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지배를 한 나라에 국한시키지 않고 끊임없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여성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 그 결과 각국의 여성들은 거의 비슷한 억압적 상태에 놓여 있으며, 자본가에 대항하는 투쟁은 이미 한 나라, 한 민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따라서 3월 8일은 각국의 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여성의 생존권과 노동권, 평등권을 쟁취하기 위해 단결하고 연대할 것을 천명하고 세계 여성이 하나됨을 확인하는 날이다.
둘째, 여성이 권리의식과 정치의식으로 자각하고 조직적으로 단결하는 날이다.
산업화가 진전됨에 따라 많은 여성이 직장으로 나오게 되고, 더구나 경제위기가 오면 가족과 자신의 생존을 위해 노동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그 동안 가정에 고립되어 인내와 순종만을 미덕으로 알고 개별화되어 살아왔던 여성들이 비로소 정치적 의식에 눈뜨고 사회와 나라의 주인으로 살아야겠다는 자각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수많은 경험과 함께 알게 되었다. 권리는 쟁취하는 것이다. 그것도 개인의 힘이 아니라 조직된 힘으로 단결하여 싸워야만 현실화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기치아래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단결해 나갈 것을 결의하는 날이 바로 3월 8일이다.
셋째, 3월 8일은 완전한 남녀평등의 과제를 실현해 나가는 날이다.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이중 삼중의 굴레 속에서 고통 받아온 여성들이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 받지 않는 것, 즉 사회적 노동에 평등한 참여와 모성보호 확보, 그리고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 등 여성이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주인으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나가고 책임지는 완전한 남녀평등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과제를 요구하고 쟁취해 나가는 날이다.
<우리나라 3.8 기념행사의 역사>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 진보적인 여성들에 의해 3월 8일을 기념하는 대회가 열렸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맥이 끊기게 되었다. 그 후 45년, 47년 3월 1일부터 8일까지 여성해방주간이 선포되고 연극, 강연,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와 함께 공장, 농촌, 종교, 청년, 가정, 문화 등 각계의 근로여성들이 참석하여 대회와 기념식을 가졌다. 당시 3.8 기념행사에서는 "자주적 민족국가의 수립과 여성의 완전한 해방" 을 주장하면서,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식량문제와 여성의 매매춘 문제 등 여성의 절실한 문제를 주요 과제로 내걸었다.
하지만 미군정 하 이승만 정권의 반민주 정책으로 그 맥은 끊겼다가 1985년에 와서야 다시 이어졌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여성노동자의 투쟁력이 높아짐에 따라 87년, 서울과 인천, 마산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손에 의해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집회를 갖게 되었다. 여성노동자의 힘으로 여성의 날이 부활되었다는 것은 여성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여성운동의 중심에 여성노동자들이 우뚝 서고 이를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단결하여야 한다는 여성운동의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3·8세계여성의 날 창시자 클라라 쳇트킨>
조한나 (빌레펠트 여성학 박사과정)
세계 3.8 여성의 날을 창시한 클라라 쳇트킨은 1857년 7월 5일 독일 작센 비더라우에서 클라라 아이스너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1878년 우수한 성적으로 라이프치히 사범대학을 졸업한 클라라는 연인이었던 러시아 혁명가 오십 쳇트킨과 함께 사민당 건설에 참여하였다. 오십 쳇트킨과 결혼한 클라라는 그의 성을 받아들여 클라라 쳇트킨으로 개명을 한 후 그의 남편과 함께 그 당시 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중심지였던 파리로 떠났다.
파리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던 클라라는 특히 여성의 권리를 위해, 즉 직장과 사회생활에서의 여성에 대한 동등한 대우, 그리고 보다 많은 여성들이 계급혁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1891년 독일로 돌아온 클라라는 그 이듬해인 1892년 사회주의 여성잡지인 "평등"을 창립하고 여성문제에 둔감했던 그 당시 사회를 계몽하기 시작하였다.
1907년 세계 여성사회주의자들이 독일에 모였고 이것이 제1차 세계여성대회이다. 이 회의에서 클라라는 초기 서기관으로 임명되었다. 3년 뒤인 1910년 제 2차 여성대회가 코펜하겐에서 열렸으며 그때 그녀는 세계여성의 날을 정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녀의 건의는 대회참여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게 되고 대회가 열리던 3월 8일 최초의 3·8세계여성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3.8 여성의 날은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각국에서 매년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여성해방이론의 기초를 세워
정치가이자 여성혁명가였던 클라라는 여성해방 이론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1889년 출판된 그녀의 책 "현대 여성노동문제와 여성문제"는 여성해방이론의 기초를 다지는 업적을 남겼다. 그녀는 여성문제를 계급문제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즉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녀의 이론에 의하면, 여성이라고 해서 모든 여성들이 같은 문제를 놓고 고민하거나 비슷한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투쟁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그녀는 여성운동도 계급운동의 한 과정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급진적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그녀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여성해방운동의 주체로 보았으며 그의 남은 여생을 프롤레타리아 여성해방운동을 위해 일했다. 그녀가 중상류층의 여성들이 주도하는 여성운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그들과 연대하기를 거부했던 것이 현대 사람들에게 너무 외곬수적이지 않았느냐는 비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운동을 계급운동의 한 맥락에서 이해했던 그녀의 철학을 이해한다면 그녀가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과 중상류층의 여성운동을 구분했던 것이 중상류층의 여성운동에 대한 배타가 아닌 보다 효과적인 여성해방운동을 위한 하나의 전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반전운동가 클라라 쳇트킨
클라라 쳇트킨 박물관이 된 쳇트킨의 생가
여성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였던 클라라는 또한 반전운동가이기도 했다.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던 1914년과 1915년에 그녀는 제3차 여성대회를 열어 여성들이 세계평화에 앞장 서야함을 강조하는 한편, 전쟁의 조속한 종료를 요구하는 전단을 만들어 독일 전역에 뿌린다. 이로 인해 그녀는 4개월간의 구속생활을 하게된다.
1920년 러시아로 이주한 그녀는 남은 여생을 세계 평화와 여성의 권리 그리고 노동해방을 위해 일하다가 76세의 나이로 모스크바에서 숨을 거둔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여성해방, 노동해방에 대해 얼마나 많은 열정을 가지고 일했는지는 그녀가 심장병으로 몸이 쇠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각국을 돌며 한해에 300회 이상의 연설을 하러 다녔다는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클라라 쳇트킨, 그녀의 76년간의 삶은 곧 여성해방운동의 역사이다. 그녀의 열정적인 삶의 한 열매인 3.8 세계 여성대회를 올해는 더 신명나게, 그리고 봄바람이 겨울의 칼바람을 몰아내듯 힘차게 맞도록 하자.
<3.8세계여성의 날 93주년 기념 여성노동자 대행진 전국버스투어 결의문>
3·8 세계 여성의 날 93주년을 맞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입장을 선포한다.
희망의 21C 이 땅의 여성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의 강제전환, 실질임금 하락, 노동삼권의 제약, 모성보호와 평등권의 후퇴 등 여성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이 실종되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 일방적인 정리해고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법적 권리 확보와 모성보호 확대를 위한 법개정을 무산시키려 하고 있고,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노동자의 보호와 같이 전체노동자의 생활조건 개선과 인권 확대는 뒷전으로 미루고, 복수노조의 자유로운 설립을 5년간 유예하는 법개정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처리하는 현 정부와 집권여당, 국회의 행태를 우리는 강력히 규탄한다.
그러나 우리 여성노동자들은 여기서 멈출 수 없다. 그 동안 우리 여성노동자들은 줄기찬 투쟁으로 평생·평등노동권 확보를 위해 노력해 왔다. 모든 억압과 차별에 맞서 여성노동자의 고용안정과 평등 실현을 위해 힘차게 투쟁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힘찬 투쟁의지를 모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하나, 비정규직 차별 철폐하고 비정규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라!
여성노동자의 70%가 임시·일용직, 4인이하 영세사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등 고용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일하는 여성들에게 노동관련법, 사회보험법을 전면 확대 적용하라.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강제 전환하는 탈법행위를 금지하고 정당한 이유없는 단기근로계약 체결을 강력히 규제하라.
하나,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완전 적용하라!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 교사 등 100만여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노동삼권과 근로기준법을 완전히 적용하라.
하나, 출산휴가 90일 확대, 모성보호 비용 사회분담화를 조속히 실행하라!
출산휴가 90일, 유·사산휴가, 월 1일의 태아검진휴가 등 모성보호를 강화하고, 특히 출산휴가 비용을 국제적인 수준에 맞게 사회분담화 하라. 국회는 현재 계류중인 법안을 즉각 통과시켜 7월부터 차질없이 시행되도록 하고, 수차례에 걸쳐 모성보호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던 정부와 집권여당은 약속을 이행하라. 또한 모성보호 입법중단을 발표해온 경총과 경단협은 각성하라.
하나, 최저임금을 전 산업 정액급여 평균의 50%이상 수준으로 올려 최저생계를 보장하라!
강제적인 용역전환, 파견근로의 확대 등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하는 고용형태 다변화는 노동자의 근로조건 저하와 임금을 하락시키고 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비정규직의 중심부에 있는 여성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정부는 최저생계가 보장되도록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라. 오늘 우리는 이 결의를 시작으로 전국 방방곳곳의 함성이 되어 여성노동자의 단결과 권리가 쟁취되는 그날까지 힘차게 전진할 것이다.
2001년 3월 3일
3·8 세계여성의날 93주년 기념 전국 여성노동자대행진 참가자 일동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한국여성단체연합 성명서>
차별·편견 깨뜨리고 남녀평등·공동참여 사회로 나아가자 !
눈부신 기술발전과 경제성장을 축복으로 노래했던 20세기를 살아오면서 우리 여성들은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분단에 맞서 평화와 화해를, 가부장제에 맞서 성 평등을 실현시키기 위 해 싸워왔습니다. 그 성과로 사회 각 분야에 여성들이 활발히 진출하고 있습니다. 여성을 단지 집안에만 머무는 존재이거나 아니면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시각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있으며, 여성인권을 위협하던 성폭력과 가정폭력, 성희롱 등은 범죄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운동의 가장 큰 성과인 성차별적 법과 제도의 개선은 아직도 가정과 직장,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과 제도는 개선됐지만 뿌리깊은 가부장적 편견과 관행은 아직도 피해자에게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주는 반면 가해자가 오히려 활개치는 왜곡된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편견과 관행을 바꾸기 위해 가부장제 의식을 강화하고 평등한 가족문화를 저해하는 호주제 폐지운동을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성 평등사회, 민주사회, 생태사회를 향한 여성들의 노력은 많은 위험에 봉착해 있습니다.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유전자조작 식품과 광우병의 출현, 인간복제로 인한 생명경시는 위험사회에 대한 심각한 경고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중심이 아닌 이윤중심의 가치를 양산시키고 있는 신 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성장중심의 가부장적 한국사회를 더욱 왜곡시켜 사회적 약자와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한 생존경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은 지난 40여 년간의 경제성장에 대한 공로를 보상받기는커녕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신 가부장제로 인해 차별 당하고 있습니다. 지속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악화되는 여성우선 정리해고, 여성의 비정규직화, 빈곤의 여성화에 맞서 가정과 직장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차별 없이 일할 권리를 위해 국가책임의 사회복지 확충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여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진출을 원활히 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보육의 공공성 확보, 가사노동의 사회화, 노인부양의 사회화는 아직도 요원합니다. 일하는 여성들에게 일이냐 가정이냐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현실은 여성뿐 아니라 가족 모두와 사회 구성원 전체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경제위기는 일자리를 잃은 여성들을 향락산업으로 내몰며, 우리 딸들의 존엄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매춘여성들에 대한 성적 착취와 인권유린은 더 이상 사회의 치부로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성매매 예방과 매춘여성의 보호, 매춘산업에 대한 규제와 처벌을 위한 성매매방지법 제정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신 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이윤중심의 시장경제를 유포시키고 있는 IMF, World Bank, WTO 등의 국제기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세계여성행진을 통해 우리는 전 세계 여성들과 함께 빈곤과 폭력에 반대하는 힘찬 행진을 계속할 것입니다.
남북간의 화해와 교류는 진전되고 있지만 군축과 방위비 삭감 등의 가시적인 성과는 미흡합니다. 따라서 통일과정에 여성참여를 확대하여 평화정착을 위한 통일정책 수립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북한의 산모와 아동에게 내복을 보내주기 위한 활동을 기반으로 우리 여성들은 통일을 준비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여성통일운동을 힘차게 펼쳐나갈 것입니다.
남녀평등·공동참여 사회를 향한 여성행진을 가장 어렵게 만들고 있는 장애는 여성운동과 여성단체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지원의 미흡입니다. 재정부족과 인력부족에 허덕이는 여성단체에 대한 모금과 지원이 보다 확대되어야 합니다.
여성 모두의 뜻을 담아 남녀평등사회, 남녀공동 참여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올해의 여성운동과제를 다음과 같이 요구하며, 이를 위한 힘찬 투쟁의 길로 나아갈 것임을 선언합니다.
-우리의 요구-
- 열린사회, 평등가족, 남녀평등 공동참여사회를 위해 호주제도를 폐지하라!
-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보육, 수발노동의 사회화를 위해 공공서비스를 확충하라!
- 무분별한 비정규직화 확산을 규제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사회보험 적용을 확대하라!
- 매매춘 예방과 매춘여성의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가칭)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하라!
- 통일과정에 여성참여를 확대하고, 방위비를 삭감하여 사회복지예산 증액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