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우주기구(ESA)의 플랑크 우주망원경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이 아닌 극초단파를 잡아내 빅뱅 직후 만들어진 미세한 먼지와 가스를 관측했다. 가운데 흰 띠가 태양계가 자리 잡은 은하계이며, 띠 위아래 구름처럼 보이는 부분은 우주 먼지다. 맨 위와 아래쪽에 펼쳐진 붉은 영역은 약 140억년전 빅뱅 직후 수소 원소가 처음 만들어지며 형성된 ‘태초의 빛’으로, 우주 생성 초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번쯤 가져보았을 궁금증이다. 우주는 정말 기독교 성경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하신 신이 친히 창조한 것일까. 아니면 우주가 폭발해 저절로 생겨난 것일까. 이에 대해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신이 우주를 창조한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저절로 생겨났다고 과학적으로 설명해 세계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과학적 연구 결과, 우주는 중력의 법칙과 같은 물리학 법칙이 있었기 때문에 무(無)의 상태에서 스스로 창조할 수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즉 대폭발인 빅뱅이 신적 존재의 개입이 아닌 중력의 법칙에 의해 불가피하게 발생했고 이 같은 자발적 창조가 우주와 우리가 존재하게 된 이유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신은 우주를 창조할 필요가 없고 특히 우리 인간을 창조할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간이 입증할 수는 없지만, 찰스 다윈이 생물학에서 창조자의 필요를 제거했듯이 인간과 우주가 존재하게 된 이치를 물리학의 법칙들이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이 신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러한 발언을 두고 종교 논쟁이 불붙을 것은 뻔한 일이다. 종교 논쟁은 호킹이 빅뱅을 증명한 이후 계속 불거져온 일이다.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빅뱅 이후의 진화를 연구하는 것은 좋지만, 빅뱅 그 자체는 바로 신의 영역이라고 말하면서 신의 업적인 빅뱅 자체를 연구하는 것에 대하여 일종의 경고를 한 적도 있다.
그렇다면 호킹이 우주가 신의 손이 아닌 저절로 생성되었다는 근거로 내세우는 이론은 무엇일까. 바로 M 이론과 다우주 이론이다. 저서 ‘위대한 설계’에서 M 이론과 다우주 이론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하게 발전하기는 했지만 근본이 변하거나 놀라운 발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과학적 결과물을 보는 호킹의 시각이 변한 정도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엔 아주 난해한 이론이지만, 잠시 그의 우주 생성론을 들여다보자.
현재의 표준적인 우주 생성 모델은 빅뱅(대폭발)이다. 우주는 137억년 전에 무한히 작은 한 점에 모든 물질이 모여 있다가 대폭발을 거쳐 지금의 우주처럼 팽창했다는 것이 바로 빅뱅 우주론이다. 무한히 작은 점에서 폭발적으로 우주가 탄생했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얘기일까.
우주론자들은 빅뱅이 시작된 시점을 태초라고 부른다. 빅뱅 우주론에서 태초는 어마어마한 밀도와 온도를 가진 특이점(singularity)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는 현재의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학의 법칙이 전혀 맞지 않는다. 그래서 특이점이라 불린다.
현재 우주 공간은 팽창하고 있다. 팽창하는 우주를 시간적으로 거꾸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 이는 과거로 돌아갈수록 수축된다는 의미이다. 지구, 태양, 은하 등 우주의 모든 물질을 과거로 되돌리면 결국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온도와 에너지 밀도를 가진 매우 작은 한 점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작은 점이 대폭발(빅뱅)해 우주가 생성됐고, 그 폭발에 의한 팽창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가 빅뱅에서 시작됐다는 아이디어는 미국 천문학자 허블의 관측 결과에서 나왔다. 1929년 허블은 당시 세계 최대 망원경으로 여러 은하를 관측해 은하들이 거리가 멀수록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던 것이다.
이후 1970년대 호킹이 로저 펜로즈와 함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우주 탄생 순간에 크기가 0인 한계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주가 무한히 작은 점인 특이점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 시점이 바로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한 지 10-43초가 되는 순간이다. 이 짧은 시간을 ‘플랑크 시간’이라고 한다. 플랑크 시간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이다.
우주 초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찰나가 있었다. 바로 급팽창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 일어난 시기다. 빅뱅 후 플랑크 시간이 지난 바로 뒤에 우주가 가속적으로 부풀어 그 크기가 찰나보다 짧은 순간에 1030배 이상 커졌다고 한다.
인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빅뱅 후 10-35~10-32 사이에 우주의 크기가 10-33㎝ 정도에서 10-3㎝ 이상으로 커졌다고 한다. 우주 초기에는 에너지 분포가 방향에 따라 달랐다. 그런데 엄청난 팽창을 겪으면서 이런 차이가 사라지고, 우주는 등방성(공간은 모든 방면에서 성질이 같음)을 갖게 된다. 또 초기의 우주는 평탄한 우주였다고 한다. 풍선을 엄청 크게 불면, 불기 전에 둥글게 보이던 풍선 표면이 놓으면 평탄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주 초기에는 물질과 빛이 뒤엉켜 있어 빛이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빅뱅 후 30만년이 지나면 비로소 빛이 물질과의 상호작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이때 출발한 빛이 현재 우주배경복사로 관측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이론의 또 하나의 매력은 이 메커니즘이 오늘날 여러 천체를 탄생시킨 씨앗을 자연스럽게 뿌려준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대폭발 직후 찰나의 짧은 시간 동안 공간이 1030배 이상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물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급팽창을 일으키던 기운이 위치마다 다른, 즉 급팽창 때 생긴 미세한 밀도의 차이가 중력으로 인해 점차 커지면서 별과 은하계 등 거대우주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주 초기에 인플레이션이란 엄청난 팽창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우주뿐 아니라 인간도, 지구도 탄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주가 탄생하고 찰나도 되지 않은 순간에 우주엔 너무도 큰 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태초, 그 앞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태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태초 이전은 뭐냐”고 묻는다. 우주가 시작된 시점이 있다고 하면, 그 이전은 어떠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 이론은 우주론자들을 무척이나 괴롭혔던 주제다. 이 의문을 설명할 수 없어 그동안 우주론자들은 태초의 특이점을 제거하려는 쪽으로 노력해 왔다. 태초가 시공간의 특수한 점이라면 우주의 탄생이 너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뱅 우주론은 이 질문을 의미 없게 만든다.
호킹은 1983년 제임스 하틀과 함께 자신의 ‘무경계 우주론’으로 태초에 대한 의문을 훌륭하게 설명했다. 무경계 우주론은 우주에는 시작이나 끝을 나타내는 시간적 경계가 없고 또 공간적 부피는 있되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즉 우주는 마치 지구표면처럼 면적은 있지만 경계선이 없다는 것이다.
호킹은 태초 이전은 뭐냐고 묻는 것은 북극점에서 더 북쪽은 어디인지를 묻는 질문과 같다는 예를 들었다. 우리가 지구상에서 북쪽으로 가면 언젠가는 북극에 도달한다. 하지만 북극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북쪽으로 갈 수 없다. 북극에서는 북쪽이라는 방향조차 없다. 동쪽이나 서쪽도 없고 오로지 남쪽이라는 방향만 존재한다. 따라서 북극에 서있는 사람이 어느 쪽으로 간다 해도 그 쪽은 모두 남쪽인 것이다.
그는 또 태초보다 10분전의 시간에 대해 묻는 것도 지구의 북극에서 북쪽으로 1㎞ 간 지점이 어디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풀이했다. 빅뱅이란 공간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시간의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언젠가는 태초에 도달하지만, 태초에 도달하면 더 이상 과거는 없고 미래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점이 아닌 끈으로 이루어진 우주
자연계에는 4가지 힘(강력·약력·전자기력·중력)이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 순간부터 플랑크 시간 동안 이 4가지 힘이 하나로 통합돼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주가 탄생한 후 플랑크 시간이 지나자마자 4가지 힘 가운데 중력이 분리된다. 이때는 일반상대성 이론을 적용받는다. 그리고 10-35초에 이르면 공간의 팽창과 함께 우주의 온도가 내려가면서 마치 수증기가 물로 변하듯 상태 변화가 일어난다. 이때 우주는 급격히 팽창하면서 원자핵을 뭉쳐있게 하는 강력이 분리된다. 그후 10-11초에 이르면 다시 한번 상태변화를 거치면서 전자기력과 약력이 분리되었다고 본다.
문제는 이 빅뱅 찰나를 기술할 물리학이 아직 없다는 데 있다. 현대 이론물리학자들의 최대 관심은 바로 이 4가지 힘을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른바 이 모든 것의 이론(TOE)을 찾는다면, 빅뱅 당시 하나로 통일돼 있었던 모든 힘이 하나씩 분리되는 과정, 즉 우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비밀까지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힘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대통일 이론(GUT·Grand Unified Theory)의 유력한 후보로 제시된 것이 바로 ‘초끈 이론’이다. 특히 제2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미국의 위튼 박사가 다양한 초끈 이론을 통합한 ‘M 이론’을 제안해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끈 이론(string theory)은 작은 끈의 진동으로 모든 입자와 힘을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점이 아니라 고무줄과 같은 성질의 아주 작은 1차원 끈이라는 것이다. 이 끈은 길이가 10-33㎝밖에 안 되지만 바이올린 줄이 어떻게 진동하느냐에 따라 소리가 다르듯이, 일정한 에너지를 가진 끈의 진동에 의해 다양한 입자와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들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가령 전자기력을 전달하는 광자와 중력을 전달하는 중력자도 모두 끈의 진동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이 끈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4차원 시공간이 아니라 4가지 기본 힘들을 모두 포함하는 10차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4차원을 넘어선 그 이상의 추가적인 차원은 매우 촘촘하게 말려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2차원의 종이를 돌돌 말면 원통 모양이 생기고 이것을 더 얇게 말면 1차원 선이 된다. 이 선의 양끝을 붙여서 고리를 만들고 이 고리의 크기를 역시 아주 작게 하면 0차원의 점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끈의 모양이 여러 개일 수 있고, 또 6차원이 축소되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는 데 있다. 현재 이론적으로 틀리지 않다고 받아들여지는 끈 이론만도 5개나 된다. 이 때문에 하나뿐인 우주를 설명할 이론이 너무 많아진다는 문제점을 들어 끈 이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우주 설명할 마지막 이론은 ‘M 이론’
그래서 제안된 것이 M 이론이다. 1995년 위튼 박사는 1차원 끈들이 사실은 아주 가는 두께를 가진 2차원 막과 같은 형태라는 M(막을 뜻하는 Membrane의 첫 글자. 때론 모든 이론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Mother라고도 함) 이론으로 5가지 초끈 이론을 모두 통합했다. 막을 둘둘 말아둔 것을 끈으로 착각했다가 자세히 보고 사실을 알게 된 격이다.
M 이론에서는 시공간의 기본 구성물이 흔들리는 미세한 끈이고, 전체우주는 11차원으로 구성된다. 이 중 6차원은 미세한 필라멘트로 말려 있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 5차원 공간에 완벽하게 평평한 4차원 막 두 개가 존재한다. 4차원 막 중 하나는 우리 우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숨겨진 동반 우주다. 이 이론은 현재 가장 유력한 통일장 이론으로 알려져 있고 우주론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호킹은 일종의 끈 이론인 M 이론을 통해 이제 자연의 모든 특성을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을 구성할 순간에 와 있다며 M 이론은 아인슈타인이 발견하고자 했던 통일 이론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지금 인식하는 우주는 수많은 우주 중 하나일 뿐이라는 다우주(multiverse) 개념을 주장한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태양계)가 유일한 우주가 아니라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저 우주 너머로 무수한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우주들은 서로 연결된 채 제각기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과정이 영원히 지속돼 새로운 우주는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는 또다시 신의 손으로 우주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과 연관된다. 호킹은 신의 의도가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었다면, 결코 태양계와 유사한 환경의 많은 우주가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초끈 이론의 남은 과제는 10차원 이상의 우주가 어떻게 4차원으로 내려왔는지를 밝힐 수학의 개발과 실험을 통한 증명이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이론물리학에 던져진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