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토르소/ 전연희
자정 방송 끄고 나면 세상이 맑아질까
생생한 두 눈 두 귀 기꺼이 버려야만
버려서 깜깜해져야 세상 한쪽 트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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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의 시간/ 전연희
침목을 세며 걷던 어린 날이 지워졌다
자욱한 어둠 속에 벼랑을 젓던 날개
찢기고 부러지고서야 걸음 못내 멈추었다
내 꿈이 무어 그리 무겁고 커다래서
어깨는 저려오고 무릎은 고단한가
길섶에 나앉은 분꽃 환히 웃는 저녁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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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 전연희
저무는 왕국에는 돌아설 길이 없다
햇살을 움켜내던 갈라진 손끝으로
가시관 세워 올렸다 활활 타는 저 선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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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詩/ 전연희
잠 못 자고 쓰는 내 시 거짓임을 이제 알겠다
참이라면 술술 흘러 물처럼 맑지 않으랴
다디단 언어를 꿰어 한밤 내내 암실이던
가두고 뭉쳐두었던 부끄러운 기억의 바닥
메타포에 갇힌 허위 날개옷을 걷어낸다
내면의 갑옷마저 벗은 맨살 환한 한 줄 시
언어의 모래궁전 허무는 일 아득해도
살아온 길 무어 그리 가두어둘 일이라고
깊은 숨 기진하도록 속엣말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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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새로운 교감
전연희 시조집/ 다시 토르소/ 책만드는집/ 2022
바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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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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