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되는 질병 탓에 아직 사회 분위기는 암울하고 상가 발생 또한 여전한 걸 보면 `생로병사`란 하늘의 뜻임을 상기하게 됩니다.
고령화 탓이겠으나, 때마침 신부님께서 부임 오시자 그 빈도가 잦다 보니 요즘 신부님께서 바쁘셔요.
또한 고백에 대한 `재교육`을 해주신 탓인지? 고백실 앞에 교우님들이 줄을 서십니다.
최근엔 평일 미사 후 `특강`도 해주시다 보니 성당에 활기가 살아나 사제께서는 시간에 쫓기시는 것 같아요.
저도 모아둔 고백을 지난 9월에 했지만 죄가 많아 엊그제 판공성사로도 했답니다.
새삼 고백소를 보면 구원과 언약이 느껴져야 할 텐데도 두려움이 앞서는 것을 보면, 한동안 성사 없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행여 고백의 중요함을 살짝 망각한 건 아닌가? 싶대요.
하지만 고해가 망설여지긴 해도 영혼이 맑아진다는 것에 정직하려 노력한답니다.
친한 자매님이 성찰 중인 내게 "뭔 죄가 자주 있어?" 라며 한마디 해줬는데,
보속 한 후 느낀 것이? 어색한 옷을 걸쳤지만 책무를 다하는 벌판의 허수아비가 생각나면서,
`물적이든 영적이든 내가 맑아지고 필요로 하는 것이 채워진다면 그것도 희열이겠더군요.`
우리는 항상 맑은 영혼을 영위하여 예비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유혹이 많은 세상 실천하기가 어렵잖아요.
무상해 보이는 허수아비도 할 일을 하듯! 부족하지만 저 역시 살며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을 때 그 기쁨 상당할 겁니다.
또한 우리는 "이만큼에도 감사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말로써만 아닌 진솔함과 겸손함 또한 지녀야 할 것 같더라고요.
나는 허수아비 속이 빈 허수아비, 텅 빈 겨울 들판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그 모습이 영락없는 내 꼴 같구나!
하지만, 비록 허수아비 같이 덜 채워진 제모습이 불안하지만, 하느님은 "삶이 화려한 것보다 삐딱한 `비주얼의 허수아비`처럼 모자란 듯해도 단순한 영혼을 예뻐하신다."라는 어느 수도자의 글에 위안을 삼으며
속이 비어 보여도 나름 이야깃거리를 만들듯이 저도, 허수아비의 유래에 나오는 아들 "허수"의 지혜처럼, 작지만 실속 있는 허수아비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