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의 모임을 가기위해 오전 9시 가까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다른 때와는 달리 외국인 근로자들의 모습도 많지 않고 비곳적 한산한 편이다. 여름 낮동안에는 갈곳 없는 노인네들의 피서장소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나는 시외버스를 탈때마다 내가 탄 차에 사람들이 얼마나 타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 좋은 자리를 잡고자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은 수의 승객을 싣고가는 버스에 대한 애잔함 때문이다.
시내를 벗어난 버스가 달리는 들판에는 누렇게 읶은 벼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남쪽과는 달리 다행이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태풍의 영향이 덜하여 벼가 쓰러지지 않았다. 지난주 친구의 말에 의하면 올해는 비가 너무 잦아 벼수확이 늦어지고, 이어 재배될 마늘 등의 채소 파종도 따라서 지연된다고 하였다.
올봄에는 마늘과 양파의 수확이 너무 많아 가격이 폭락하였는데(최종 소비단계는 아닐 것임), 내년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다. 수급조절이 제대로 되질 않으니 해마다 파동이 일어난다. 아직은 후진국형 모습이다.
창녕을 지나 현풍으로 들어서니 멀리 비슬산의 모습이 보인다. 대구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언제를 지나도 주변에서 공사를 하지않는 경우가 없었다. 처음부터 도시설계가 잘못 되었다는 결과이다. 그로인하여 예산은 얼마나 낭비되며, 이용자들의 불편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나는 대구만 오면 중학시절 친구와 수성 못을 갔다가 불량배들에게 쫒겨 도망을 쳤던 기억이 항상 머리속에 떠 올랐다. 나쁜 추억이 아니라 그래도 짧은 기간이나마 친구를 사귀었고 어울려 논 좋은 추억으로 남았었다.
칠곡읍을 지나면서 서서히 차의 속도가 느려지더니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동명휴계소가 있는 곳, 이곳 주위엔 명절은 물론이고 주말이면 차가 밀리는 곳이다. 차가 막히는 곳은 차량이 늘어난다기 보다는 도로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곳이기 쉽상이다.
앞을 가로막는 산, 그 아래엔 공동묘지가 보인다. 이곳은 또한 지난 6.25 한국동란 당시 북한의 침공에 의하여 무기력한 국군의 전력이 여지없이 무너져 단숨에 여기까지 밀렸던 최후의 보류였던 다부동이다.
낙동강 최후전선 다부동전투. 당연히 이곳에서 무너졌다면 부산까지,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껏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인 아오지탄광 체험을 맛보고 있지 않을까? 기래 살다가 못내 심심허믄 물불은 압록강이나 겨울철 얼어붙은 두만강도 한번 건너고, 붙잡히면 정치범수용소의 체력단련과 먹거리 체험도 괜찮을 것 같은 경험이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지금 사회주의를 열망하며 공작질을 해대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안타깝게 놓치 절호의 기회이었을 것이다.
총탄이 오가는 치열한 전투와 피흘림에 따르는 숭고한 선열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터널을 지나면 인터체인지가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체증이 해소된다.
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면 오른쪽으로 한가로워 보이는 들판과 강건너 양지바른 곳에 작은 도시가 나타난다. 군위이다. 나는 군위를 지날 때만다 예전에 다녀온 아미산 생각도 났었지만, 군사정부 시절의 키크고 막걸리 잘 마시고 마음 푸근할 듯한 김윤환씨 생각이 났다.
이어 차는 의성군에 다가선다. 도로 주변의 광고판을 보면 마늘의 고장임을 금새 알 수있다. 특히 흑마늘이 좋다고 하였던가. 남자는 거시기에 좋고 여자는 피부에 좋다니...의성하면 또 생각나는 것은 단연 씨름과 소싸움이다. 하여간 나는 씨름꾼들 중 덩치 큰 사람들이 경북 출신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안동의 이봉걸도 그랬고, 이곳 출신의 이준희도 덩치가 컸었다. 덩치크다고 씨름을 잘하는 것은 절대 아님에도 말이다. 당시 체구가 작은 이만가가 이봉걸이나 이준희를 잡아 넘기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씨름의 묘미를 맛보았을 것이다.
11시가까이 안동으로 다가섰다. 안동은 조선시대부터 많은 유학자들이 배출되었고, 현재에도 전통 학문과 도청소재지로서 품격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이다. 견학과 회의도 왔었고, 내가 좋아하는 청량산도 있다. 작년에 모임을 가졌었던 하회마을 그리고 많은 문화자산을 가진 고장이다. 안동은 출입구가 많아 드나들기에 신경을 써아한다. 작년의 내 경험담이다.
그리고 예전에 이곳을 지날때 식사시간이 걸리면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간고등어를 곁들인 식사를 하곤 하였었다. 참 찜닭도 괜찮은 것 같았다. 전통 보수적인 지역이지만 이곳 출신 중엔 이름대면 알만한 진보인사들도 더러있다.
안동을 넘어서면 사과의 고장 영주가 나타난다. 소백산 아래 넓게 자리잡아 분지를 연상케하는 도시이다. 아마도 소백산의 기후 특성 때문에 사과 맛이 좋을 것이다. 그 행정구역 중의 풍기는 인삼이 많이 재배돠어 여행 중 지나며 자주 들렀었다. 아하! 그러고보니 요즘 언론에 자주 나오는 그 유명한 동양대학교가 있는 곳이 바로 영주라는 사실이네. 내가 아는 영주사람은 참 정직하고 착하던데...
소백산 자락을 넘어서면 아름다운 청풍명월의 고장 단양이 나온다. 나는 산을 좋아하다 보니 단양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월악산, 도락산 등 이 근처의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충주호의 모습 또한 풍경의 압권이다.
기암절벽이 많고, 물이 맑은 이곳에서 정말 얼마동안이나마 마음 풀어놓고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산도 오르고 강에서 낚시질도 하는 유유자적함을 맛보고 싶었다.
날카로운 산봉우리들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면 얼마 후 석탄의 고장 제천에 들어선다. 멀리서 보아도 여기저기엔 탄광이 있음직해 보였다. 내가 탄 차는 제천을 경유하기에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시내를 향하여 한참을 들어갔다. 오래된 옛도시 느낌이 묻어났다. 내 생애 이곳을 왔었는지 기억이 없다. 삼척과 더불어 탄광이 많고 특히 시멘트 생산공장이 많다는 느낌이다.
주차장을 가는 도중 어느 빌라 앞에서 중년 아낙이 연탄재를 버리는 것이 눈에 뛴다. 연탄재를 포개는 순간은 참 오랫만에 보는 모습이다. 역시 가까이 그것이 존재하기에 이웃하는 것이리라.
이곳의 인물로는 이춘구씨가 떠오른다. 군인 출신으로 까무잡잡한 피부에 늘 표정이 없던 그였다. 그래도 당의 사무총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던 것을 생각하면, 당시의 경상도 군인들이 득세하던 시기에도 그는 능력을 인정 받았을 것이다. 하긴 의리의 사나이 장세동씨도 있었다.
문득 언젠가 삼척을 갔을때 깊은 산길로 차를 몰며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 계곡속에서 작은 실개천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았고, 훗날 시간내어 그곳에서 하루 저녁 모닥불 불피우고 고기를 잡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적이 있었다.
높은 산자락을 바라보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아랫부분 멀리 강이 흘러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있다. 어느듯 원주에 도착한 것이다. 먼저 맞아주는 것은 치악산 휴게소이고, 그 너머로 높이 솟은 것이 치악산이다. 가려진 산들 사이로 도시의 하얀 모습을 한 아파트들이 보였다.
원주는 교통의 요충지로 오래된 도시이다. 춘천, 강릉과 함께 강원도의 대표적인 도시이다. 이곳 만종 인터체인지에서 내륙도시인 춘천과 동해안의 강릉으로 나누어진다.
춘천 강릉, 속초와는 달리 치악산 등산을 하였어도 원주 시내를 와보긴 처음인 것 같다. 터미널에 내려 횡성행 버스를 찾았다. 우선 눈에 거슬리는게 있었다. 어린 학생들의 애정행각이었다. 뭐 산골짜기에 살다보니 사람이 그리웠나 꼴볼견이었다.
버스노선을 물으니 사람들이 잘 모른다. 가까스로 버스노선을 알고 한참을 기다리니 2-1번 버스가 왔다. 2번과 더불어 원주 횡성간 시내버스인데 예전엔 원주와 횡성간 구간이 나누어져 있었다.
버스를 타고가며 노선도를 보았더니 원주시내만 표시되어 있다. 기사에게 물을까? 아니다. 닥치는대로 하면되지 생각하는데, 원주비행장 옆을 지날 무렵 먼저 도착한 서울의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터미널에 내라면 차를 가지고 오겠단다.
마냥 고맙지만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이 생겨났다. 다른 참석자들은 먼저 도착해서 가까운 관광명소를 돌아보기로 하였고, 나는 독자행동이라 횡성읍에서 내려 4km정도 되는 목적지까지 강을 따라 산책을 하며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니 바람이 다소 불고 구름도 끼었다. 일본을 지나가는 태풍의 영향이란 생각이 들었다. 돌아갈 때를 생각하며 터미널 근처에 있는 택시기사들에게 원주터미널까지의 요금을 물었더니, 인상되어서 27.000원을 받는다고 하였다.
잠시 후 웬 차량이 다가오며 나에게 손을 흔든다. 동생 둘이 마중을 왔다. 이곳의 동생이 새로 집을 지었는데, 횡성호의 지류인 금계천이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전엔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집이 있었고, 그곳 마당 가장자리에 약수터가 있어 이를 아는 사람들에게 개방을 하였었다. 정말 탐나는 약수터였다. 이제 그것을 처분하고 이 강언덕에다 새로 지었단다.
아무튼 경관이 좋은 곳이라 사람들이 저마다 머물고 싶어 할 것 같다. 틈나면 강가에서 목욕하며 고기를 잡고, 밤이면 조용한 분위기에서 몇줄의 글이라도 쓰며, 저절로 노래라도 흥얼거림직한 분위기다.
짐을 내려놓고 강가며 인근 도로를 걸어 보았다. 마음에 여유로움이 묻어나 이내 평온이 찾아 들었다. 비교하지 않아서 행복한 삶의 터전, 한가로이 이렇게 살면 좋을 것을...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이렇게 형제들이 모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뻐해야 할런지 모르겠다. 먼길을 마다않고 달려 온 그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시간들여 요리한 옷닭, 멀리 강릉에서 공수해 온 귀한 생선구이, 그리고 이 지역의 명물 횡성 쇠고기 구이, 서로가 권하는 정담은 술잔들...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해저무는 강원도의 강가에서 우리는 얼큰한 행복을 맛보았다.
우리들의 행복은 밤까지 이어졌다. 살아가며 남들에게 담아내지 못했던 이야기며, 살아오고 살아갈 이야기들을 실컷 나누었다. 나도 모르게 하늘의 많은 별들이 내려다 보는 창가에 누워 정말 평온한 잠에 빠져들었다. 남은 세월 이러한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수고하고 정깊은 형제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첫댓글 참 멀리도 자주 떠나시네요 난 진주에 터 잡고 어데 먼 데를 도통 나가 보질 않았는데 성격이 본래 게을러서
어디 가기를 구찮아 하는 한마디로 무사인일의 전형이 저로 보면 정확합니다,,,맘은 올해말까지 근무 마치고
이리저리 유람이나 할까 싶은데 것도 확률은 낮아 보입니다, 도서관이나 다니고 친구들 꼬셔 막걸리나 마시고
그래 세월 보낼꺼 같은데,,,ㅋ 뭐 것도 타고난 운명이겠죠
다들 성격차인것 같아요. 어느 방향이 옳다거나 바른 것도 아니겠네요. 한친구가 있는데 그도 그래요. 진주 밖으로는 나갈일이 없을듯...그이 친구나 친척도 모두 시내 살고 ㅎㅎㅎ
평소처럼 차를 운전않고 다님 재밋어요. 걸어서 강원도까지 가고 싶지만 여의치 못하여.
이 가을 좋은 추억 많이 남기세요.
참 도서관 애기, 전번 달에 책많이 읽었다고 도서관에서 상 받았어요.
그래요? 오호 짝짝짝 축하 드립니다 나이 불문하고 시간내서 책 읽는다는게 쉬운 일 아닌데 눈도 침침하실 나이에
다독상도 받으시고 ㅋ 가문 경사급입니다, 얼마전 저도 진주시 주관 독후감대회 글 하나 제출했는데 아직 연락 없네요
ㅋ 친구들 대폿값에 보탤 의도로다가,,,,산에 가는게 매일 뛰는 걸로 갈음이 되니 따로 할일 없으면 도서관이 젤 나은
피신처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