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마릴루 베리)는 자기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포악한 삶 가운데 예술의 위안을 예찬하는 노래를. 그러나 소녀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녀가 이어폰을 빼자 택시 안의 우악스런 음악이 달려든다. 볼륨을 낮춰달라 부탁해도 택시기사는 막무가내다. 차 안의 권력은 그에게 있다. 결국 기사의 무례를 이기는 것은 소녀의 호소가 아니라, 롤리타의 아버지 에티엔(장 피에르 바크리)의 더 강력한 무례다. <룩 앳 미>는 이렇게 첫 장면부터 이 영화에서 ‘최강의 악당’이 롤리타의 아버지 에티엔임을 분명히 한다. 명성과 부를 누리는 작가이자 파리 문화계의 권력자인 에티엔은, 훌륭한 예술가라고 훌륭한 인격자는 아니라는 속설의 흉한 마스코트다. 그는 남의 이름을 결코 기억하지 않으며, 다른 인간에게서 귀기울일 만한 이야기가 나오리라 믿지 않기에 질문만 던지고 대답을 듣지 않는다. 가학적 농담을 사교의 기술로 착각하는 에티엔은 본인이 가장 연약할 때에도 위로하는 사람을 용케 상처줄 방법을 알아내는 타고난 포식자다.
외모와 재능에 대한 불안과 애정결핍증에 시달리는 스무살의 롤리타는 아빠의 관심을 갈망하지만 번번이 돌아오는 좌절에 증오만 커간다. <룩 앳 미>는 그러나 소녀의 순수가 폭군 가부장에게 일방적으로 상처받는 드라마는 아니다. 아녜스 자우이 감독의 인물들은, 주변 인물과 접촉하며 생긴 변형과 훼손까지 포함하는 유동적 존재다. 못된 취급을 받은 롤리타는 (당연히) 페어플레이할 여력이 없다. 그녀 역시 권력의 병을 앓는다. 아버지를 의식하고 접근하는 사람을 경멸하면서도, 남들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아버지를 미끼로 내세워 잘못된 관계를 맺는 악순환을 자초한다. “날 뭘 보고 좋아하겠어?” 롤리타는 남자친구를 포함해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는 모든 사람이 아버지의 돈과 권력의 부스러기를 노린다고 생각한다. 슬프지만 그것은 대개 사실이다. 소녀가 그나마 믿는 성악 교사 실비아(아녜스 자우이)도 다르지 않다. 실비아와 성공에 목마른 그녀의 작가 애인 피에르는 에티엔과 친분을 쌓고 덕을 보면서, 오랜 보헤미안 친구들에게 서서히 냉담해진다. 실비아 커플이 성공의 단맛에 취하는 와중에도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가는 과정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려져 점묘파의 그림처럼 주변 공기에 녹아들어간다.
<타인의 취향>이 2000년 프랑스 흥행 2위를 차지한 뒤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서 아녜스 자우이는 “성공과 유명세는 관계를 변질시킨다. 이것 자체가 한편의 영화의 주제가 될 수 있을 거다”라고 말했고 <룩 앳 미>는 그 완성품이다. <룩 앳 미>가 제목으로 고려했던 <좋은 핑계> <모두 하는 짓> 같은 가제들은, 권력이 권력자뿐 아니라 지배받는 사람들에게도 모든 타협의 핑계, 악의 근원을 돌릴 수 있는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감독의 시각을 드러낸다. <룩 앳 미>는 권력의 파괴적 효과를 말하기 위해 비리와 이권, 이전투구를 끌어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아부와 차별을 그릴 필요도 못 느낀다. 현명하게도 <룩 앳 미>는 권력의 효과를 우리가 타인을 대하는 인내와 관용의 정도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권력은 나쁜 취향의 농담에 무골충처럼 웃게 하는 힘이다. 토끼고기를 싫어하는 피에르를 에티엔이 지정한 메뉴에 동의하게 만드는 힘이며, 오랜 친구가 에티엔이 두고 온 와인을 가져오겠다고 2시간의 운전을 기꺼이 떠맡게 만드는 힘이다. 이 모든 것은 굴종이 아니라 ‘친절’과 ‘예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기에 교묘하다. 반면 더이상 얻을 게 없는 친구의 약점에 대한 관용은 자꾸만 얇아진다. 허술한 기억력도 엄살떠는 습관도 참을 수 없는 단점이 된다.
<룩 앳 미>는 수용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타인의 속성 앞에서 예스냐 노냐를 결정하는 메커니즘이 바로 권력이 작동하는 현실적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삶의 과정에서 거의 모든 인간을 갉아먹는 미세한 ‘전향’과 ‘변절’의 과정을 포착한다(좀 엉뚱하지만 이런 점에서 <룩 앳 미>는 우리에게 에릭 로메르나 파트리스 셰로의 영화보다 김병욱 PD의 시트콤을 먼저 상기시킨다). “스위스 시계 같은 플롯”이라는 평을 얻은 시나리오는 각기 다른 방에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은 두 사람이 복도 TV 앞에서 멍하니 공유하는 어색한 침묵까지 잡아낸다. 실비아로 분한 감독 자우이의 영화 속 위치는 흥미롭다. <타인의 취향>과 마찬가지로 드라마의 중심을 한뼘 비켜난 독특한 자리에 선 그녀는 주체이자 관찰자로서 이야기를 가로질러간다. 말하는 사람들만 주시하지 않고, 옆 테이블과 원경의 낯선 이들이 언제나 시선에 거치적거리게 촬영한 대화장면의 구도도 영화의 공기에 잘 어울린다. 사운드트랙은 노래도 아름답지만 아마추어들의 라이브 공연이 지닌 불완전함의 긴장과 매혹을 살린 레코딩도 일품이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롤리타를 끌어안는다. 그녀를 구하는 것은 그녀의 노래에 귀기울이고 에티엔의 도움을 거절한 세바스티안이다. 그가 토끼고기가 싫다고 말한 파티의 유일한 손님이었고 웨이터의 윽박지름에 고개 숙인 기억을 흰 셔츠의 얼룩처럼 마음에 걸려하는 청년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룩 앳 미>의 제목 “나를 보세요”는 외로운 소녀의 간청이기도 하지만, 롤리타처럼 방치되고 실비아처럼 비겁한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며 덜 외롭기를 바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룩 앳 미>는 비굴함에 대한 쓸쓸하고 따뜻한 연구다.
연극에서 영화로 진출하는 예가 드문 프랑스 예술계에서 아녜스 자우이는 그녀의 파트너 장 피에르 바크리와 함께 예외적 존재로 꼽힌다. 그러나 <타인의 취향> <룩 앳 미>의 성공은 그들에게 “연극과 영화의 간극을 뛰어넘고, 장르영화와 작가영화의 다리를 놓았다”는 평가를 안겨주었다. 두 영화의 작가이자 연출자, 배우인 아녜스 자우이는 파리 교외에서 튀니지에서 이주한 유대계 집안에서 마케팅 컨설턴트 아버지와 정신분석가 어머니의 딸로 태어났다(바크리도 알제리계이며 <룩 앳 미>에서 롤리타를 진심으로 대하는 단 한 사람의 청년도 북아프리카 출신이다). 기존의 통념을 믿지 않고 비판적 시선으로 일상을 해석하는 자우이의 정신은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것. 아버지는 교사에게 복종하지 않아 상을 받지 못한 어린 자우이에게 선물을 안겨주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로 언어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법을 배운 자우이는 배우의 꿈을 품고 고교 졸업 뒤 파트리스 셰로 감독의 연기학교에 입학했고 1987년 해롤드 핀터의 <생일파티> 무대에 서면서 13살 연상의 장 피에르 바크리와 만났다.
남이 영감을 떠올릴 때까지, 좋은 역을 제안받을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일에 싫증난 자우이-바크리 커플은 스스로 펜을 들었고 <부엌과 식기실> <가족 유사성>, 알랭 레네가 연출한 <스모킹/노 스모킹> <해묵은 노래>의 작가로 필명을 날렸다. 영화제작자 샤를 가소의 접근으로 영화에 대해 좀더 적극적으로 접근하게 된 자우이는 2000년 <타인의 취향>으로 <택시2>를 잇는 흥행 2위 기록을 내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매너와 편향을 냉정히 분석한 <타인의 취향> <룩 앳 미>가 말해주듯이, 시나리오 작가로서 자우이의 최대 장점은 누구에게나 귀기울이는 개방성과 관찰력이다. 자기 영화를 연출하면서도 배우의 일을 멈추지 않는 자우이는 크리스토프 블랑의 <외향적 여인>(2000), <필생의 역할>(2004)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둘이 각본을 쓰는 동안 좋아라 한 캐릭터를 꼭 아녜스 자우이가 연기한다는 것이 장 피에르 바크리의 시샘어린 불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