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옥갑부(玉甲賦)
탄맥은 다시 덮여 싱그런 약초길로
부엉이 긴 여운에 곡수(曲水)소리 우렁차다
옥비늘 번쩍인 갑옷 고리눈의 저 산정(山頂)
* 옥갑산봉(玉甲山峰 1.285m) 강원 정선. 옥갑장군이 무예를 단련하다 갑옷을 숨겼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냥 玉甲山(표지판 대로)으로 부를 일이지, 왜 봉(峰)자가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옥갑사(위치 좋음)로 내려오는 길은 매우 가파르나 계곡이 좋고, 상원산과 묶어 등산하는 게 일반적이다. 지질학적으로 옥갑산층(玉甲山層)으로 분류되는 탄층 때문인지 모르지만, 산도, 길도, 마음까지도 검게 빛난다.
12. 칼봉 초추(初秋)
여선(女仙)의 엉덩이에 하트 문신(文身) 새기다가
음순(陰脣)을 은근 슬쩍 깊은 골에 몰아쉰 숨
용추(龍湫)에 번지는 혈흔(血痕) 구곡신(九曲神)의 초야(初夜)를
* 칼봉산(899m) 경기 가평. 활인검(活人劍)인가? 날도 무디고 끝도 뭉뚝한 칼산이다. 수량이 풍부하고 계류바위가 좋다. 용추구곡에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때가 산행적기다. 자연휴양림이 있고, 남쪽 경반계곡에는, 별명도 운치 있는 조그만 한 지장도량(地藏道場), ‘해 뜨는 절’ 경반사(鏡盤寺)가 있다.
13. 억새에 앉은 산
누룩덤 띄웠더니 산술은 익어가고
용추폭 송사리 떼 물보라로 등천할 때
억새에 깜박거리는 사수자리 노란 별
* 기백산(箕白山 1,330,8m) 경남 거창, 함양에 있는 도립공원. 덕유산 동남쪽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에 있고, 이산 동남 비탈에서 남강이 발원한다. 명물은 누룩덤, 용추계곡, 기백평전의 억새이다. 옛 이름은 지우산(知雨山)이며, 누룩덤은 누룩처럼 생긴 바위가 책처럼 쌓였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일명 책바위). 정상은 2등 삼각점이 있는 곳인데, 어떤 이는 누룩덤이 정상이라 주장한다(홍성혁 지음 ‘낙남의 산’ 172면). 또한 금원산(金猿山)이 여성으로 상징하여 검은 색으로 보고, 이산은 남성을 상징해 흰색으로 본다고 한다.
* 기(箕); 키를 뜻함. 동방 7수에 해당하는 별자리로 황도 12궁 중 제 9궁이며, ‘바람을 맡은 별’이다. 서양에서는 여름철 별자리로 지구로부터 125광년 떨어진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켄타우로스(사수자리) 감마별(Sgr) Al Nasl을 가리킴(이태형 지음 ‘별자리 여행’ 348면).
* 기풍필우(箕風畢雨); 1) 풍우(風雨)를 이름. 기성(箕星)은 바람을 좋아하여, 달(月)을 만나면 바람을 일으키고, 필성(畢星)은 비를 좋아해 달과 만나면 비를 내리게 한다는 데서 이르는 말. 2) 별(星)에 따라 그 기호(嗜好)를 달리한다는 뜻으로, ‘백성이 좋아하고 미워함이 사람에 따라 다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예컨대 누구는 전두환 씨를 좋아하고, 누구는 故 노무현 씨를 좋아한다는 식이다.
14. 알몸의 빨치산
산꾼의 손아귀에 꼼짝없이 갇힌 금원(金猿)
수마노 문바위 뒤 마애불은 춤을 추고
와폭(臥瀑)의 염화시중(拈華示衆)에 벌거벗은 남부군(南部軍)
* 금원산(金猿山 1,352m) 경남 거창 함양. 옛날 금빛원숭이를 원암(猿岩)이라는 바위에 잡아 가두었다는 전설이 있다. 수려한 유안청계곡을 비롯해, 지제미골에는 문바위, 마애불 등 유적도 더러 보인다.
* 유안청(儒案廳)계곡; 선녀담부터 시작 2.5km에 이르며, 폭포, 소, 담 등이 단풍과 어울려 절로 탄성이 나온다. 유안청 제1폭포와 와폭(누운 폭포)인 제2폭포 밑, 탕과 계류에 남부군 500여 명이 남녀 가릴 것 없이 한꺼번에 목욕했다는 기록도 있다(이태 지음 남부군). 유안이란 원래 시경(詩經)에서 따온 말로, 유림(儒林) 또는 사림(士林)을 달리 이르는데, 명소 이상의 다른 자긍심이 있다고 향민(鄕民)은 전한다.
* 문바위; 갯바위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클 뿐더러, 모양도 빼어나다. 구한말 면우 선생이 지은 칠언절구 시가 있는데, 지면 관계로 소개를 생략한다. 가섭암, 여의주, 호신암, 두문암 등으로 불린다. 뒤에 가섭사가 있고, 절 뒤 돌계단을 오르면 바위굴 남쪽에 마애삼존불(보물 제530호)이 있다.
* 염화시중;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을 때, 마하가섭(摩訶迦葉)만이 그 뜻을 깨달아 미소를 지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염화미소, 이심전심, 심심상인.
* 졸저 『학명』 1-62 ‘금원산계곡 얼음꽃’ 시조 참조(61면). 2019. 6 20 도서출판 수서원.
15. 끈질긴 이데올로기
멧돼지 분탕질에 종주길 엉망진창
이념(理念)의 도주로(逃走路)엔 민초들 쓰러져도
진드긴 불알 밑까지 악착스레 달라붙네
* 뾰지개봉(1,358m); 강원 평창 홍천, 한강기맥. 이 구간은 멧돼지들이 산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봉우리는 헬리포트인데 우기(雨期)에는 지독하기로 소문난 진드기가 괴롭힌다. 불알에 달라붙으면 떼기도 거북하다. 담뱃불로 지져야 하니.. 남북간 우리의 이념도 이와 같지 않을까? 이 글을 지을 때에도 소위 한총련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 1996년 10월 8일 무장공비들이 이영모(李英模 54)씨 등 3명의 무고한 현지 민간인을 참혹히 살해 후 도주해, 공분(公憤)을 일으킨 뼈아픈 추억을 남긴 산이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292(238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16. 백악한일(白岳閑日)
실안개 허리 감은 태점(苔点) 찍힌 노송도(老松圖)
산신의 장기판에 상아(象牙) 말이 놓일 적
양지옥(羊脂玉) 대들보 위로 푸른 용이 오르네
* 백악산(白岳山 856m); 경북 상주, 충북 괴산. 천태만상의 흰 바위와 소나무가 근사하다. 북쪽 물안이골도 좋으나, 옥량골의 옥량(玉樑)폭포는 거대한 청룡이 백옥대들보를 감고 오르듯 장관을 이룬다.
*양지옥; 양의 기름덩이 같이 빛이 나고 윤택이 있는 흰 옥이다. 중국 화전(和田) 산으로 무척 비싸다.
17. 조무락골 냉기
찬김이 서려 도는 물새 춤 조무락골(鳥舞樂谷)
엎드린 물 산개는 심마니에 덤벼들고
돌용이 운무(雲霧) 토하니 한여름이 얼어붙다
* 석룡산(石龍山 1,147m) 경기 가평, 강원 화천. 산상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유래되었다. 화악산과 이산 사이에 있는 조무락골은 글자그대로, ‘새가 즐겁게 춤추는 골짜기’로 식생상태도 최상급이다. 삼복에도 물이 차고 맑아 여름산행지로 최적이다. 드문드문 산삼이나 약초를 캐기 위해 심마니들이 만든 산막(움막)이 눈에 띤다.
* 산개; 심마니말로 '호랑이'를 뜻함. 여기서는 물을 한껏 쏟아내는 ‘복호등(伏虎登)폭포’를 말한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328(265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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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muraggol freddo
Jomurakgol, una danza rinfrescante degli uccelli acquatici
Il cane da montagna acquatico prostrato si avventa su Simani.
Il drago di pietra vomita nuvole e la mezza estate gela
* 2024. 7. 30 이태리어 번역기
18. 대검(大劍)의 위용
구곡폭(九曲瀑) 배를 가른 서슬 인 칼을 보라
천수(千手) 관음송(觀音松)을 무참히 베었고야
강비늘 감는 회오리 물위 비친 검광(劍光)을
* 검봉(劍峰 530m) 강원 춘천 남산면. 강촌역 뒤로 칼처럼 우뚝 솟았는데, 소나무가 좋다. 아홉 굽이를 돌아 떨어지는 높이 50m 구곡폭포가 인근에 있다. 이 폭포는 여름에 시원한 물줄기를 토해내지만, 겨울에는 훌륭한 빙장(氷場)으로 바뀌어 빙벽등반가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강선봉(降仙峰 485m)과 함께, 갑자기 회오리가 이는 북한강에 비친, 이산의 모습은 한층 위엄이 있다.
19. 심화(心火) 끈 술동이
범바위 불씨 삼아 화톳불 피웠드니
짓누른 게염덩이 불잉걸로 타오르고
문배집 술 익는 소리 골 안까지 들리네
* 봉화산(烽火山 487m); 강원 춘천 남산면.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었으며, 범바위가 근사하다. 한국전쟁이 나도 몰랐다는, 근처 문배마을은 막걸리, 전 등을 파는 향토음식점이 있다. 촐촐한 등산객의 배를 채워준다. 시샘하고 탐내는 마음(게염)을 한잔 술로 태워버리자!
20. 학이 된 뫼
솔나리 눈웃음에 굳어버린 딸각발이
낙락한 솔가지가 그의 어깨 툭툭 치자
청산은 선학(仙鶴)이 되어 쌍곡 위로 날아가
* 군자산(君子山 948.2m) 충북 괴산. ‘학이 나는 형국’으로 비학산(飛鶴山)이 본래 이름인데, 어느새 군자산으로 바뀌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군대산(軍垈山)으로 돼 있다. 사철 모두 바위와 소나무가 아름다운 산으로, 서쪽 대로변에는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는 유명한 쌍곡계곡에 아홉 명소(쌍곡구곡)가 있다. 명산인데도, 절이 하나도 없는 게 희한하다.
* 솔나리; 백합과 여러해살이풀. 키 70cm 정도, 초여름에 솔잎 닮은 매혹적인 연분홍 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