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9월24일
산책 친구
기나긴 무더위가 식어가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착하게 아주 착하게 비가 온종일 내렸다. 아니 내가 사는 동네만 순하게 내린 것일까? 충남 대전이나 부산 세종시에서는 비로 인해서 피해가 크다는 뉴스를 접했다. 아무튼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 두 달 가까이 베란다에서는 에어컨 실외기가 윙윙거리며 폭염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선풍기도 켜지 않고 김밥을 만들어서 아들과 점심을 먹었다. 두 달 가까이 정말 식구들 밥 해준다고 애썼다. 아무리 에어컨을 켜고 음식을 만들어도 불 앞에서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겁게 하자 나를 다독여가며 후회 없이 살아냈다. 잘 버텼다,
오랜만에 아들과 산책하러 나갔다. 더울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이 산책을 못하는 것이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걷는 나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었다. 거실에서 근력운동을 하면서 아쉬움을 달랬지만 내 마음을 달래는 일도 큰 공부였다. 가끔은 새벽에 동자못 가시연을 보러 나갔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앞세워 비 마중을 나갔다. 깊은 밤에 아파트 단지를 걷고 놀이터 그네를 타면서 벚나무와 달님을 불러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었다. 늘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에 이때다 싶으면 바로 잡았다.
들녘이 노랗게 물들고 있다. 길가 대추나무 과수원에는 대추가 모두 사라졌다. ‘대추나무 사랑 달렸네.’ 처럼 셀 수도 없을 만큼 대추가 달렸었는데 며칠 사이 수확을 한 모양이다. 연지못 가는 길 입구 모퉁이 집에서는 대추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로 바쁘다. 세상일은 각자 알아서 잘 돌아간다. 알아서 때맞춰서 잘한다. 누가 그랬다. 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도 박은 무럭무럭 잘 자란다고 섭섭하다고 했던가?
해가 그사이 짧아졌다. 여섯 시가 넘어가는데 벌써 날이 저문다. 연못가 조명등이 불을 붉힌다, 바람이 선선하다. 일러스트 공부한다고 집에서 작업하는 아들이 대견하면서 짠하다. 하지만 분명 성실한 사람에게는 신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멋진 작가가 될 거야!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팥빵과 아들이 좋아하는 컵라면을 샀다, 편의점에 갈 때마다 나는 모든 게 신기하다. 별의별 것이 다 있다. 구경하는 것만으로 재미있는 곳이다. 다이소와 편의점은 나에게는 색다른 구경거리를 만들어준다. 삶이 지루하거나 기운이 없어서 슬퍼질 때 아들과 산책하고 편의점이나 다이소를 간다. 아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언지, 참으로 다양한 것들로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지 걸으면서 느끼지만 편의점이나 다이소에서도 알 수 있다. 세상은 학교다. 모두가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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