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이송원
관심
아이들이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요.
요즘 초등학생에 대한 교사들의 공통된 평가다. 아이들에게 질문하면 “네?” “뭐라고요?”라고 되묻는 건 예삿일. 대화나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무엇이 문제일까.
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는 청해력(聽解力·듣고 이해하는 능력) 저하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듣기는 문해력의 뿌리이자 인간관계, 학습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코로나19와 미디어 노출 등의 영향으로 아이들의 듣기 능력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그는 진단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진 이사는 “교실 내 오해와 갈등이 잦아지고, 기초 학력이 떨어진 현상도 청해력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어를 배울 때 ‘집중 듣기’ 연습을 하듯 우리말도 듣기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0년 넘게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던 교사 출신인 진 이사는 서울대 입학사정관(2013~2018년)으로도 활동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아이의 청해력』 등의 책도 냈다. 그는 “읽고 쓰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듣기 실력부터 탄탄히 갖춰야 공부도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의 청해력에 문제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청해력을 키우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19일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와 만난 진 이사는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라고 했다.
Intro. 왜 청해력인가
질문① 뜨문뜨문 듣고 있나요?
질문② 마음대로 듣고 있나요?
질문③ 곧이곧대로 듣고 있나요?
👂질문① 뜨문뜨문 듣고 있나요?
귀담아듣지 않으면 제아무리 좋고 중요한 내용도 스쳐 지나간다. ‘무엇’을 듣느냐는 ‘어떻게’ 듣느냐가 결정한다. 진 이사가 일차적으로 듣는 ‘태도’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그래서다. 문제는 코로나19를 겪고, 미디어 노출 시간이 늘어난 환경이 주의 깊게 듣는 자세부터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광범위한 언어 발달 지연이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는데요. 듣기 능력에도 악영향을 끼친 걸까요?
대부분 한글을 떼는 것, 유창하게 읽고 쓸 줄 아는 것에만 신경 씁니다. 하지만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느냐’가 정말 중요해요. 초등학교 국어 교과 과정 목표에도 명시돼 있는 목표죠. 학교생활은 40분 동안 수업을 잘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 학교생활을 시작한 아이들은 듣기 습관을 만들 기회가 적었습니다. 온라인 화상 수업을 집중해서 듣기란 쉽지 않죠. 딴짓하기 일쑤고요. 선생님 역시 아이들의 주의를 환기하며 지도하기 어렵고요.
동영상이나 게임 등 미디어 노출이 늘어난 영향도 적지 않다고요?
미디어를 통한 듣기는 일방향 소통이라는 한계가 있어요. 제대로 듣고 이해했는지 알려면 들은 걸 묻고 답하는 쌍방향 소통이 필요한데 말이죠. 아이들이 미디어에 빠져 있다는 건 그만큼 대화할 시간이 줄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처음부터 쭉 듣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점프하며 뜨문뜨문 듣습니다. 못 알아들었어도 되돌리기도 하고, 듣다가 재미없으면 넘기기도 하면서요. 언제든 원하면 다시 보고 들을 수 있으니 더 집중하지 않는 거죠. 게다가 영상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자극적이 됩니다. 이런 데 익숙해지면 누군가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수 없죠.
경청이 중요한 건 알지만, 어른도 실천하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엔 상대의 말 끊고 ‘내 말부터 좀 들어달라’고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아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권장할 만한 일이죠. 하지만 아이 말을 잘 듣는 것과 아이 말을 우선해 들어주는 건 달라요. 만약 아이가 대화 도중 끼어들거나 자기 얘기만 하려 든다면 반드시 바로잡아줘야 해요. “엄마가 아빠랑 얘기 중이니 기다리라”고 해야 합니다. 청해력을 키우려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참고 듣는 인내심도 필요하거든요.
인내심이요?
인내심이 부족하면 대화에 자꾸 끼어들고 상대의 말을 자르려 합니다. 누구든 기분이 상하겠죠. 반면에 잘 들어주는 사람과는 가까워지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에요. 말 잘하는 아이보다 잘 들어주는 아이가 친구가 더 많은 이유죠. 수업 시간에도 인내심을 발휘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설명하는데 질문이 생길 때마다 손을 들고 물어보거나, 짝꿍에게 말을 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께 지적을 받거나, 중요한 내용을 놓치겠죠. 좀 어렵고 관심이 없는 내용이라도 끝까지 참고 잘 듣는 아이들이 공부도 잘합니다.
경청하는 습관은 어떻게 길러줄 수 있을까요?
아이가 어릴수록 오랜 시간 집중해서 듣기 쉽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읽어준다면, 아이가 잘 이해했는지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답하는 식으로 대화를 나눠 보는 정도면 충분해요. 초등학생 3학년 이상이라면 좀 더 체계적으로 훈련하면 좋습니다. ‘3분 말하기’가 대표적입니다. 3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는 깁니다. 주제를 정하고 마주 앉아 한 명이 3분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잘 듣습니다. 다 듣고 난 후 상대에게 들은 이야기를 요약해서 말하고 내용이 맞는지 확인합니다. 다 했다면 역할을 바꿔서 해보고요. 토론 활동도 추천해요. 토론할 땐 발언 순서를 지켜야 해요. 자신의 발언 순서 때 잘 말하려면 상대가 하는 얘기도 잘 들어야 하고요. 제가 토론 활동이 교실에서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죠. 토론 문화가 몸에 배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합니다. 감정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소통할 수 있고요.
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는 "아이들에게 집중해서 듣고, 자기 말 차례를 기다리며 참고 들을 줄 아는 태도부터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질문② 마음대로 듣고 있나요?
주의 깊게 듣는 태도를 갖췄다면,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할 차례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들은 걸 제대로 파악하는 ‘사실적 듣기’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게 돼야 한 걸음 나아가 분석적, 비판적으로 들을 수 있다. 진 이사는 “잘 들은 것 같은데 딴소리를 한다면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상대가 전하려는 걸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제멋대로 듣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엉뚱한 소리를 할 때가 있어요. 책에 없는 내용을 말하는 식으로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경우 보통 아이가 상상력이 뛰어나다거나 창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귀엽다고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고 엉뚱하게 이해하는 걸 바로잡아주지 않으면 제대로 학습할 수 없거든요. 사건이나 등장인물의 행동, 결말 등은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파악해야 할 기초적인 사실입니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전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요. 교과서나 문제집에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묻는 질문이 반드시 포함되는 이유죠.
답이 있는 질문보다 생각을 묻는 열린 질문이 아이의 창의력을 더 키워주는 것 아닌가요?
아이의 창의적인 발상을 막으라는 게 아닙니다. 자기 생각과 느낌도 자유롭게 표현해야죠. 다만 초등학생인데도 언급된 내용과 다른 얘길 하거나 사실이 아닌 얘길 하면 바로잡아줘야 해요. 아이에게 ‘지구는 둥근데, 사람들이 사는 땅은 평지처럼 보인다’는 얘기를 해줬어요. 그런데 아이가 ‘둥근 지구 위에 쟁반처럼 평지가 놓여 있고 그 위에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고 얘기한다면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겁니다. 창의적인 사고도 정확한 사실과 개념 위에서 펼칠 수 있어요.
틀린 내용을 지적하면 아이가 위축되지 않을까요?
잘못된 답을 했다고 비난하거나 윽박질러서는 안 되겠죠. 하지만 틀린 사실은 분명히 바로잡아줘야 해요. “네 생각은 알겠어.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닌 것 같으니 다시 생각해 보자“고요. 관련 내용을 함께 확인해 보는 것도 좋고요.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이 잘못됐다면 바로잡아주는 게 양육자가 해야 할 일이죠.
사실적 듣기 실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휘, 개념을 정확히 알고 배경 지식이 많을수록 정확하게 듣고 이해할 수 있어요. 특히 말하고 듣는 대화 상황에선 내용이 순식간에 흘러 지나가기 때문에 어휘, 배경 지식의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모르는 어휘나 개념이 나오면 맥락을 통해 추측할 수도 있지만, 뜻이 의심스러우면 나중에라도 사전을 찾아보길 추천해요.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도록요.
어휘나 배경 지식을 늘리는 데에는 역시 독서만 한 게 없겠죠?
책 읽기도 좋지만, 평소 호기심을 갖고 여러 경험을 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경험과 연관 지을 수 있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학교 수업에만 충실해도 어휘나 배경 지식은 충분히 습득할 수 있어요.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부터 사회, 과학 교과 과정에서 다양한 어휘가 등장하거든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충실히 복습하면 배경 지식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진동섭 이사는 "들은 내용을 사실에 기반하지 않고 다르게 해석하는 일을 바로잡지 않으면 제대로 학습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질문③ 곧이곧대로 듣고 있나요?
청해력을 끌어올리려면 말을 정확하게 듣는 데서 멈춰선 안 된다.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걸 넘어 생각하며 들어야 한다. 진 이사는 “내용의 핵심과 맥락, 화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염두에 두고 들어야 더 잘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생각하며 듣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가장 효과적인 건 역시 토론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논점을 파악하려고 하고,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예측도 하니까요. 그러면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어떻게 말해서 방어할지도 고민하죠. 아이가 클수록 생각하며 듣는 힘은 중요해요. 더 깊이,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거든요. 핵심과 맥락, 의도를 생각하며 듣지 않고 그저 사실을 파악하는 데 그치면 아이는 질문하지 않습니다. 질문하지 않으면 사고력도 크지 않고요.
토론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주제를 파악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지금 들은 이야기에서 중요한 내용은 뭘까?” 하고 물어보면 됩니다. 제목을 다는 연습도 추천해요. 제목은 내용의 핵심이 포함될 수밖에 없잖아요. 자연스레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하며 들으려고 하죠. 요약하는 훈련도 되고요. 공부할 땐 예습을 하면 핵심을 잘 파악할 수 있어요.
예습이 생각하며 듣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죠?
교과서 내용, 학습 목표 등을 미리 한번 훑어보면 수업 내용을 예측하며 들을 수 있어요. 오늘 중점적으로 다룰 내용이 뭔지, 내가 궁금한 게 뭔지 미리 파악한 상태에서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 더 집중해서 들을 수 있죠. 모르는 어휘가 있다면 미리 찾아보는 것도 좋아요. 이렇게 예습하는 과정에서 질문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런데 예습할 때 주의할 게 있어요. 어설프게 훑어보거나 지나치게 앞서 공부해선 안 돼요. 오히려 생각하며 듣기를 방해할 수 있거든요.
어째서죠?
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거든요. 그럼 수업 내용을 집중해서 듣지 않겠죠.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단단하게 다질 기회를 잃어버리는 거죠. 아이가 학원에 열심히 다니는데 좀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이런 경우일 겁니다. 생각하며 듣는다는 건 결국 들은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드는 거예요. 습득한 지식과 정보를 통해 자기만의 생각과 관점을 만드는 게 학습의 본질이고요.
진동섭 이사는 "간단한 예습은 수업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지나친 선행은 도리어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진동섭 이사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듣기 실력은 읽고 쓰는 일처럼 하루아침에 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집중해서 듣는 경험과 시간이 쌓여 청해력이 생긴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양육자는 아이와 꾸준히 대화하는 걸 멈춰선 안 된다.
아이가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요즘 수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친구 관계에 어려움은 없는지요. 그렇게 쌓인 대화가 청해력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