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제가 살았던 곳은 프랑스 남부의 미디-피레네 (Midi-Pyrénées) 지역입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이 지역 시골 풍경 역시 자신만의 색채와 이야기가 있는데요, 여기는 중세의 흔적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관광객이 많지도 않아서 시골 일상의 편안함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시골에 놀러가는것을 참 좋아했더래서, 몇곳을 보여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여기는 ‘브휴니켈 (Bruniquel) 이라는 작은 동네입니다.
브휴니켈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고속도로에서 나와 좁은 길을 통해 약 20분정도 들어갑니다. 20분간 양쪽으로 들과 산이 이어져있는 시골길을 가는데, 집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소나 염소들, 길가에 세워둔 트랙터들, 손으로 써놓은 ‘과일 직접 팝니다’ 라는 간판들이 있는 전형적인 한적한 시골 동네 길입니다.
꾸불꾸불 이어지는 좁은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집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 마을 입구는 자동차 서너대 댈수있는 작은 주차공간부터 시작됩니다. 주차장 앞에 매우 깔끔한 여행자 센터가 있는데, 보이는 사람이 워낙 없어서 여행자 센터가 있는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암튼, 들어가봤습니다.
"중세에는 브휴니켈이 남부지역 교통의 요지였다"고 말을 꺼내시는 여행자센터 직원분이 동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교통의 요지였던 덕분에 당시 이곳은 상업이 매우 번성했었으며,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중 하나가 됬었다고 설명을 해주시다가 저랑 눈을 마주치시면서 쑥스럽게 웃으시길래 저도 같이 웃었습니다. 현재의 마을 모습과는 괴리가 너무 커서 정말 '옛날 얘기' 듣는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행자 센터에서 나오면 그 옆으로 19세기에 지어졌다는 교회가 있는데, 그 앞에서 열심히 담배를 피우시던 할아버지 한분이 저희를 보자마자 옆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여기가 바루 <Le
Vieux Fusil (한국 영화명은 모르겠는데요, 불어 뜻은 '낡은 소총')>을 찍은 장소예여. 알져? 필립 노아레(Phillippe Noiret)가 주연한 그 영화?’’ 라고 매우 자랑스럽게 설명을 해주시면서 권총 쏘는 포즈를 해보이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몰랐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문이 닫혀있어서 못 들어가봤습니다.
교회를 지나서 몇발자국만 걸어가면 ‘아, 여기가 동네 입구구나’ 라고 금방 알수있는 돌문이 나옵니다. 아치모양의 이 돌문 너머로 오래된 돌집과 벽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쁘고 단정하게 잘 관리되어있는 마을 모습에 맘이 설레서, 말 그대로 '발걸음을 재촉' 하게 됩니다.
좁기는 하지만 튼튼하게 다져있는 돌길을 따라 걸어가다보면 길 양쪽에 놓여있는 돌집들이 나오는데, 이끼가 끼어서 검푸르스름해진 오래된 벽돌에 포도나무 줄기나 담장이 넝쿨이 올라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시골의 모습을 볼때마다 정말 따뜻하고 정겹게 느껴집니다. 간혹가다 창문가에 놓여있는 화사한 색깔의 꽃들이 생기를 느끼게 해주는것도 참 좋았습니다. 두꺼운 통나무로 되어 튼튼해 보이는 대문들이 중세도시의 고전적 분위기를 더해줬는데, 가끔씩 르네상스식의 창틀 장식들이 눈에 띄기도 해서 그런 다양성이 섞여있는 모습도 좋았습니다. 동네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의 벽에는 이전에 곡물 측량단위로사용됬다는 구멍들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안쪽으로 좀 더 걸어 들어가다보면 약간은 폐허처럼 보이는 작은 정원이 나오고 그 정원 뒤로 큰 집이 보입니다. ‘메종 페이롤 (La Maison Payrol)’이라고 적힌 금속판이 입구에 붙어있는 이 집은 13세기에서 17세기까지 부유한 사업가 페이롤(Payrol) 집안의 거주지였고 그 이전에는 브휘니켈 지사관이기도 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방문이 가능해서 마치 작은 지역 박물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천장이 아치형으로 되있는 지하실과 벽화장식들을 보면, 그 오래전 건축의 견고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철세공 제품, 장신구, 가구, 그림, 도자기 등 다양한 물건들도 있어서 당시 이 지역 상류층의 화려했을것 같은 생활모습도 짐작이 갔습니다. 오래된 건물이나 물건들 속에서 보여지는 섬세함, 실용성, 그리고 견고함은 언제나 보는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것 같습니다.
페이롤의 집을 나와 몇발자국만 더 걸어보면 눈이 확 떠지는 시원한 풍경이 나타납니다. 바로 브휴니켈 성과 그 뒷 배경인데요, 산중턱에 위치해 있는 브휴니켈에서는 주변지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유유하게 흘러가는 강과 그 위에 놓여있는 다리, 그리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빛깔의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비오는 오후 였음에도 불구하고 멋진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있어 더 압도적이었던건 커다란 암벽위에 세워져 있는 브휴니켈 성 그 자체였던것 같습니다. 절벽위에 세워있는 이 성을 보는 첫 순간에는 아슬아슬한 마음이었는데 계속 보고 있자니 이 성이 처음부터 절벽의 일부가 아니였을까 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이 절경을 몇분 더 감상한 후 동네를 내려왔는데, 마을이 작기 때문에 천천히 걸었지만 20분도 채 안되 벌써 마을 입구에 도착 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한번 이 조용하고 멋스러운 마을을 휙하고 둘러봤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한 마을이 제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 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교회 앞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브휴니켈의 교회에서 찍었다는 <낡은 소총((Le Vieux Fusil)>은 ‘필립 노아레( Phillippe Noiret)’의 75년 출연작품으로, 필립 노아레는 이 영화로 1976년 제 1회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첫댓글 와~흔하게 보는 여행지가 아니라 더더욱 자세히 읽으며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여행기네요^^
프랑스는 야채가게도 아트스럽네요 그냥 무리담아 놓지않고 어쩜 저리 이쁘게 담아놓고 파는지..ㅎㅎ
오래되어 낡고 지저분한게 아니라
시간이 그대로 녹아있는 고풍스러움이 멋스럽네요..
이런거보면 울나라도 무조건 때려부수고 새롭게 세울 생각만 하지말고 오래되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마을을 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루님의 다음 여행기도 기다릴께요~^^
사진이 모두 그림처럼 느껴집니다^^
딱 기달려욧 ㅋㅋ 저곳을 프랑스말을 하며 여행하는 그날까지!
프랑스 남부의 작은 시골마을을 고즈녁히 걷고 있는...
아마도 이 곳의 많은 분들의 bucket list 의 윗줄을 차지하고 있을듯.
하루님의 글과 사진을 보니 더 조급증이 나네요~~^^*
혹시, 뭐 이런걸 다 사진찍어 올리고 그럴까? 라고 생각하지 않으실까 생각도 했었는데,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른 곳도 또 소개시켜 드리고 싶은 마음이 은근 드네요. ^.^
오드리님, 기다리고 있을께요. 화이팅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