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통발달 요지… 예나 지금이나 재물 모이는 땅
서울의 강남·서초는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부자동네로 꼽힌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시골마을에 불과했는데 상전벽해를 한 셈이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오늘날 강남·서초는 옛날에도 상업지로 부자동네였다. 비록 행정구역은 경기도 광주군과 시흥군에 속했지만 도성으로 통하는 육로와 수로의 교통의 요지였다. 이곳을 통해 사람과 물자가 이동했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할 수 있었다. 강남개발 이전에도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이 사는 황무지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군사·통신수단으로 봉수제와 파발제가 있었다. 강남·서초지역은 삼남(충청·전라·경상) 지방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다. 파발이 지나가는 곳에는 역원(驛院)이 설치되는데 이곳에는 양재역과 사평원이 있었다. 양재역은 육로, 사평원은 한강 조운이 통하는 곳이다. 역원이 있는 곳은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고 물화가 집산된다. 오늘날의 역세권처럼 주막과 여관 등이 들어서며 지역 상권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역삼동은 양재역 부근의 말죽거리, 강남역 부근의 아랫방아다리, 테헤란로 부근의 웃방아다리 등 세 개의 역촌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현재도 이들 지역이 중심상업지로 발전하는 것을 보면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사평원은 압구정동과 신사동 사이에 있었으며 고려시대부터 번화했던 나루터였다. 고려의 문장가인 이규보는 사평원 누대에서 보니 천척의 배들이 뱃머리를 나란히 하고 늘어서 있다고 노래하였다. 그만큼 물산이 집결했다는 뜻이다.
이 때문인지 조선시대에는 사평장이 있었다. 잠실에 있는 송파장과 더불어 전국 15대 향시에 속할 만큼 번창했던 곳이다. 특히 사상도고(私商都賈)의 거점이 되었다. 사상도고란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대규모 자본력을 갖춘 상인을 말한다. 도성 안에는 정부로부터 독점적인 판매 권한을 부여받는 시전상인들이 이었다. 이들은 사상인들의 상업 활동을 금지하는 금난전권을 가졌다. 금난전권의 범위는 도성 안과 그 밖 10리 까지다. 그러므로 사상도고들은 금난전권이 미치지 못하는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오늘날 이들 지역이 상업중심지로 발달한 이유다.
이처럼 강남·서초지역이 상업지로 발달하게 된 데는 풍수적인 요인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곳의 태조산은 관악산으로 기가 세고 험한 산이다. 관악산의 중심맥이 남태령을 지나 우면산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관악산의 험한 기운이 대부분 순화되었다. 우면산에서는 다시 양재역의 말죽거리 고개를 넘어 매봉산을 만들었다. 매봉산에서 더욱 순화된 산맥은 지금의 역삼역 능선을 따라 압구정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분지한 작은 능선들은 물을 만나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멈추었다. 산맥이 멈춘 곳에 혈지를 만드는 법이다. 특히 강남·서초지역은 물길이 모여드는 곳에 위치한다.
풍수에서는 물과 도로를 재물로 본다. 물이 모이는 곳에 사람과 재물이 모이므로 수관재물(水管財物)이라 하였다. 우선적으로 한강을 끼고 있어 전국 어디든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두 번째는 탄천과 양재천이다. 탄천은 용인 구성과·수지 등에서 발원하여 삼성동과 청담동에서 한강과 합쳐진다. 두 물이 모이는 삼성동과 청담동이 발전하는 이유다. 양재천은 과천의 청계산과 관악산에서 발원하여 대치동에서 탄천과 합수한다. 대치동 일대가 발전하는 이유다.
외부 물과 접하지 않는 지역은 내부 물이 모여든다. 내부 물이 모이기 위해서는 사방으로 산들이 감싸며 보국을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평탄한 지형이 존재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곳이 강남역과 교대역이 위치한 서초동 지역이다. 강남역에서 보면 남쪽으로 양재역, 동쪽으로 역삼역, 북쪽으로 신논현역, 서쪽으로 서초역이 모두 높다. 비가 오면 높은 지역에 떨어진 빗물들이 모두 강남역으로 모여든다. 이 때문에 집중호우 때는 침수가 되기도 하지만 유동인구가 가장 많아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삼성동·압구정동·대치동·반포동 등도 관악산에서 내려온 산맥의 끝자락에 있으면서 보국을 형성한 지형이다.
강남 지형은 강북과 비교된다. 강북은 북한산 자락이 한양 도성이라는 큰 보국 하나를 형성했다. 이에 비해 강남은 관악산 자락이 여러 개의 작은 보국을 형성했다. 강북은 나뭇가지 하나에 과일 하나가 크게 열렸다면 강남은 작은 과일 여러 개가 열린 모양새다. 따라서 강북은 국가 기관 같은 큰 역할을 담당할 땅으로 적합하다. 반면에 강남은 기업과 같은 비교적 사적 역할을 담당할 땅으로 적합다고 하겠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