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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늘빛향기 원문보기 글쓴이: 등대지기
새벽이슬강좌/ 레위기 11 장
뜻으로 차려진 밥상 (레 11:1-47)
동료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려 끌려가는걸 보면서도 입질을 해대는 물고기의 IQ는 거의 무(無)에 가깝다고 말하고 머리 나쁜 사람을 빗대어 새대가리라고 놀리지만... 때가 되면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연어나 철 따라 수만리를 이동하는 철새들은 제로에 근접하는 IQ만을 가지고도 창조주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 찾아갑니다. 그러나 보다 지능 높은 육식동물처럼 자기 생각과 의지를 따라 마음대로 살아가는 최고의 지능을 뽐내는 인간들의 삶은 결코 살기위한 삶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이 말하는 거룩한 삶, 곧 성결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구성은 먼저 선민들이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의 구체적인 구분으로 시작하며(1~23절) 나머지 부분은 대부분 동물들의 주검과 관련된 규정들(24~40절)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강조하시기를 이런 규정을 범하므로 “스스로 더럽혀 부정하게 되게 말라”(43절)고 하시며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명령의 근거로서 출애굽의 구원사(45절)를 말씀하십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러내 구원한 이유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45절)냈다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왕따 당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자폐아처럼 스스로 숨지 않으시고, 의지를 가지고 다가가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출애굽을 통하여 출산한 이스라엘 선민을 성결하고 거룩한 자녀로 키우고 싶어서 시시콜콜 요구하신 삶처럼 예수님을 통하여 거듭난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은 여전히 거룩한 삶, 성결한 삶을 요구하신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말하는 선민의 성결한 삶, 거룩한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미치는 곳에 머물며 사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먼저 음식물에 관한 규정입니다. 오늘 본문의 음식물에 관한 규정은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난해한 장입니다. 이 규정의 유효성과 당위성에 대한 오랜 연구가 있어왔습니다. 이 시간에 그 다양한 해석을 다 논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런 규정들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싶으셔서 구원한 자기 백성들을 위해 드러내신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음식물에 대하여 자신의 뜻을 드러내실 때, 아버지 하나님은 그 속에 다양한 속내를 담아서 주셨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논의되어 온 본문의 음식물에 관한 종교적인 이유(이방종교의 제물로 사용된 짐승은 부정)나 위생학적인 이유(건강에 이로운 것은 정함), 그리고 상징적인 모든 이유(새김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곱씹다는 의미 등)를 포함하고 있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선민들의 밥상에까지 보이신 것입니다. “하늘의 뜻으로 차려진 밥상”을 내미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연어나 철새가 제로에 가까운 IQ를 가지고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 것처럼, 세상의 지식과 상식으로 발달된 내 생각과 판단과 소원에 대하여는 제로에 가까운 의지를 가지고 밥상에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밥상에서 시작하여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따라 사는 이런 삶이 곧 거룩한 삶, 성결한 백성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생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밥상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뜻! 너무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본문에 먹도록 허용된 정결한 동물들은 하나님께서 창조 때 처음 부여하신 본능과 식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창세기 1:30절에 보면 처음에는 모든 창조된 동물들의 식물로서 풀이 제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호랑이나 사자도 처음에는 초식동물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타락 후 모든 육식동물들은 그 본능이나 속성이 심히 변질된 동물들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언급된 정하거나 부정한 동물들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정한 동물들은 대부분 육식동물이거나 사체 등을 먹어치우는 쓰레기 청소부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지금 하나님이 부여하신 원(原) 뜻과 의지에서 완전히 이탈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존재들로서 생존하고 있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 후반부에 거푸 언급되고 있는 주검을 만지지 말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검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피조물의 생명 속에 있었고 그들을 위한 근본적인 하나님의 생각은 영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검도 역시 하나님의 뜻에서 완전히 이탈된 상태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변질된 부정한 동물을 먹고, 하나님의 뜻이 떠난 주검을 만지며 산다는 것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 머물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런 삶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의 무생명적 삶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비록 죄 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이 묻어있는 정한 밥상으로부터 시작하여 살아가는 동안 나의 모든 삶의 영역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머물고, 하나님의 생명의 의지가 줄기차게 미치는 곳에 자리를 펴고 화기애애하게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청취자 여러분! 내 삶에 왜 화기가 없고 냉기만 흐르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뜻이 미치지 않는 곳에 손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일,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녀교육, 하나님의 뜻이 아닌 계획, 하나님의 뜻이 아닌 소원 술이 등은 비록 주님의 이름은 부르고 있으나 생명이 떠난 시체에 손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미치지 않는 곳은 천기(天氣)가 이미 끊어졌기에 아무리 내 노력으로 활성화시키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데 제일 방해가 되는 것을 먼저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계속 시체를 만지작거리고 서있는 내 사각(死覺)과 내 소원, 내 욕망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나아가 나의 사각(死覺)과 소원과 욕망을 못 박고 제로에 가까운, 아니요 완전히 나는 죽어 무(無)가 되어서 내 안에 임하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이 미치는 곳을 찾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천기(天氣)가 숨 쉬는 밥상”에서부터 모든 삶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하늘의 기운이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고 찾아가 머무는 삶,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거룩한 삶, 성결한 삶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부정한 동물처럼 변질된 본성을 가지고 죽은 것을 탐하며 살아왔습니다. 에덴의 밥상으로 돌아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주님의 뜻 안에서 화기애애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0.10.7
Crossabbath Gospel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안식하세요, 내안에 임하신 성령께서 당신을 위한 소원을 이루십니다.. |
첫댓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에덴의 밥상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