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동엽 신부] 여기에 물이 있다/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시몬의 예언처럼 반대자들의 표적이 되어 수난받고 고통당하신 예수님의 '골고타 길'을 마리아는 뒤따라 갔습니다.
아들의 통고가 비수보다 더한 날카로움으로 가슴을 찔러와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겨웠지만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피가 멈추고 말이 막히는, 말 그대로 억장이 무너지는 아들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바로 발치에서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단순히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로서만 거기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구세주 강생에 참여하였던 때와 똑같은 자격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모든 인간을 위해 아드님을 바치는 데 동의하시면서
인류를 대표하여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극심한 고통을 함께 겪으며 아드님의 희생 제사에 모성애로 동참하면서
자신마저도 영원하신 아버지께 봉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예수님의 제사이자 동시에 어머니의 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가리키며 유언하셨습니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예수님이 어머니를 부를 때 쓴 호칭은 그리스 원어로 귀나이(guynai)였습니다.
옛 성서에는 이 호칭이 '여자여'라고 번역되어 마리아를 '비하'시키는 것으로
곡해되고 있지만, 원어의 용법은 오히려 약간 높여 부르는 '존대'의 호칭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이시여'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는 셈족 계통의 표현 방식
(판관11,12 ; Ⅱ사무16,10; Ⅰ열왕 7,18; 마태8, 29; 마르1,24; 루가4,34참조)입니다.
즉 그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높여서 부를 때 쓰던 단어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냥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님'하고 부르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여하튼 인류 구원의 대업(大業)을 완수하는 절정의 순간, 절체절명의 찰나에
예수님께서는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단지 제자 요한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사적인 부탁을 하신 것일까? 아닙니다.
요한이 상징하는 '제자단', 나아가 '교회'의 어머니가 되어 줄 것을 당부하신 것입니다.
자신을 사적인 아들로 묶어 두지 않고 공인의 길을 가도록 묵묵히 뒷바라지하며
가장 필요한 순간에 늘 곁을 지켜 주신 어머니에게 예수께서는 교회를 맡기신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을 위해 미련 없이 내어 놓으신 것처럼,
이제 예수님께서 자신의 어머니를 교회의 어머니로 양도하신 것입니다.
어머니께 사도들의 어머니가 되어 줄 것을 당부하신 예수님은
곧바로 제자에게 어머니를 모시도록 명하십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이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7) 고 성서는 잇고 있습니다.
제자에게, 사도단에게, 교회에게 든든한 어머니가 생긴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
하느님.: 감사합니다
.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그리스도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
아멘.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 반에 똑똑한 형제가 한 분 있습니다. 그분은 영세한지 1년도 안 되었는데 성체를 아인슈타인의 ‘E=mc²’ 공식을 이용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요한복음서를 쓴 저자는 철학자적인 머리를 가진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동엽신부님도 성경의 말씀들을 얼마나 잘 설명해 주셨는지 몰라요.
하느님은 그런 분은 왜 그리 빨리 데려가셨는지...
아주 무게있는 성경을 들으신것 같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즐겨 들으시고.그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선한 그리스챤이 된다면 더 좋겠습니다.
.차신부님 말씀.
정말 은혜가 됩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고 건강하십시오.
아멘 💖💖💖
아멘.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