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신문 2022년 11월 15일
423 – 이별할 여유, 헤어질 시간
수년전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신도분이 대화를 하는 중에 아들 이야기를 하였다. 한 마디로 ‘속상하다’는 것이다. 그 아들은 대학을 졸업한지 2∼3년이 되었는데, 취직도 하지 않고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 지낸다고 했다. 그 흔한 알바도 하지 않은 채,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간다며, 한숨을 쉬셨다. 그 아들 입장은 들어보지 않았지만, 엄마 입장에서 볼 때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필자는 당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아들 입장도 속사정이 있을 겁니다. 혹 아들이 혹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병석에 누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친구를 폭행해 금고를 당하거나 감옥에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들도 나름대로 뭔가 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그녀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며, 함께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근자에 할로윈데이를 맞이해 이태원에서 큰 참사가 일어나 156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부상자만 해도 1백여 명이요, 그 장소에 있던 젊은이들 중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도 수백일 것이다. 마침 이번에 사망자 중에는 대다수가 20대이다. 말 그대로 어처구니없는 일로 젊은 친구들이 어이없게 죽었다.
수년전에 부친이 쓰러져 중환자실에 두 달 있다가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모친은 ‘55년을 해로했는데, 서로 눈 한번 마주치며 헤어진다는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것’을 애통해했다. 중환자실 앞에서 두 달간 남편 바라보면서 마음 정리했으니, 모친은 그래도 행복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 때 이후로 이런 생각을 했다. 죽음을 앞두고, 가족이 서로 눈이라도 마주치며 ‘감사하다ㆍ사랑한다.’ 등의 말이라도 하고 이별하는 것이 “행복한 죽음”이라고…. 또한 치매와 같은 정신 줄 없는 상태로 죽음을 맞이해서는 안되며,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시간을 갖고 죽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행복한 죽음이라고 감히 정의하고 싶다.
그런데 이번 이태원 참사로 죽음을 맞이한 젊은이들이 부모ㆍ형제ㆍ친구ㆍ연인들과 서로 이별하는 time도 없이 황망하게 사망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인사도 못하고 영영 이별한 것이다. 게다가 그 고인들은 자신의 삶을 한번쯤 되돌아볼 잠깐의 여유조차 없이 애통하게 세상을 떠났다. 꽃으로 치면, 꽃봉오리를 피워 예쁜 꽃을 만개할 시기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사십이장경>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숨 한번 내쉬고 들이쉬는 한 순간에 있다.’고 하였다. 그렇게 한 순간에 삶과 죽음이 갈라진다.
이태원참사의 희생자들이 그렇게 간절히 살고 싶어 하는 그 ‘오늘’을 우리는 지금 살고 있고, 죽어가는 그 순간에 고인이 보고파했던 ‘가족’이 우리는 곁에 있다.
그러니, 취직을 못해 혹 집에서 빈둥대는 자식이 얼마나 소중한 아들인가? 혹 젊은이들이 어떤 불행한 경우에 있더라도 이태원참사로 세상 떠난 이들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고인에 진심어린 애도로 기도해주고, 명복을 빌어주자.
첫댓글 佛法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꽃같은 젊은이들이 참사로 생을 마감했으니
남은 가족들의
슬픔이 애처럼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그자리에서 트라우마로 고생하는 분들이 얼릉 쾌차되시길~~~_()_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