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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6. 다음으로 우리나라 국군에 대한 급양문제를 비롯하여 PX이용 등 후생복지에 대해서 어떻게 조치하셨는지 그 내용을 설명해 주십시오.
(답) 파월장병에 대한 급양과 후생복지문제는 비둘기부대를 증파하면서 구체화되었으며, 그 기본틀이 전투부대 때에도 그대로 이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비둘기부대 파병때의 말씀을 먼저 하겠습니다.
미국측은 지원분야에 따라서 팀을 바꿔가면서 회의를 했습니다. 먼저 급양문제를 관장하는 관리부대표가 저에게 이야기하기를“한국군에 대한 급식은 한국군이 본국에서 지급 받는 수준과 같은 금액을 월남현지에서 지급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서울에서 미국측이 약속한 현 한국군이 본국에서 지급받는 급식수당을 상회하는 급식을 지급하겠다는 각서내용을 조금도 반영시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미측이 우리 한국측의 입장을 너무 소흘하게 실무적인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나는 미국측대표에게 우리는 사이공에 온지 얼마 안되었지만 최근 일어나는 월남사태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고 말하고 “미국은 많은 경제적인 지원과 귀중한 인명을 희생시켜가면서 자유월남을 지키려고 돕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남사람들이 특히, 최근에 와서는 일부언론에서까지 미국을 비난하고 경원하고 있는데, 우리들 자유우방의 노력을 선의로 받아 들이지 못하는 월남국민의 심정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몹시 신경이 쓰여지고 있었는데 나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깨우쳐지는 것이… 깊은 생각이 없이 결정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국군이 본국에서 지급받는 수준과 같은 금액을 전쟁하는 월남에서 똑같은 수준으로 지원하겠다는 당초의 한ㆍ미간에 약속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최근 어떤 외신보도에 의하면 미국군 1개사단을 운영하는 비용이면 한국군 3개사단을 쓸 수 있다고 하였는데, 미국이 우리 한국군의 증파를 요청한 것이 그러한 계산에서 나온 것입니까? 묻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들의 자존심을 몹시 손상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월남전에 참전한 여러나라, 특히 동서양인들 사이의 위화감을 조성하게 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와 적대해서 싸우고 있는 베트콩은 미국과 참전 각 국간의 이러한 분위기를 민족적 감정으로 극대화시키며 서양인은 동양인을 멸시하고 지배하려고 한다고 자극하면서 위화감을 조성하고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 월남 지원국들은 언어와 풍속이 다르고 생활환경이 달라도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공동으로 노력하고 희생을 감수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에 따라서는 월남군과 함께 싸우며 생활해야 하기도 하고, 또는 미군과 같은 참호 속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할 수도 있다는 마음의 바탕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박한 환경 속에 있으면서도 제각기 다른 생활을 해야된다고 생각을 한다면 본의 아니게 민족적인 이질감을 느끼게 되고 위화감의 골을 깊게 만들 것입니다.
월남 전선은 전방도 후방도 없는 특수한 전쟁터입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장병들의 사기와 직결되는 급여. 급식. 후생복지 문제에 대해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나라사이에 차등을 두는 것 같은 처우를 하게 된다면 결코 바람직스러운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미묘한 문제를 처리하는데 있어서는 산술적인 이해관계에 집착을 하여 보다 큰 목적, 다시 말해서 연합군의 단결과 전의를 진작시키고 강화하는데 손실을 가져오지 않도록 각별한 배려가 있어야 할 줄 압니다.”
나의 진실에서 나오는 주장이 미군측 대표들의 마음을 자극한 듯 미군측 대표는 잠시 휴회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이 별도로 모여서 토의한 끝에 나의 제안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고 주월 미군과 같은 수준 즉, Same Base, Same Level 로 증파되는 한국군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 후 전투부대가 파병되어 5만명 수준으로 한국군병력이 증가되었을 때에도 이때에 결정된 이 원칙과 기준은 계속 적용되었으며 한국군이 세계에서 제일 잘 먹고 급양이 좋은 군대라는 말이 여기에 기인된 것입니다.
나는 선발대장으로서 파병에 앞서 현지에 와서 월남으로 파병되는 장병들이 아열대 기후에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부과된 사명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건한 체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기를 진작케 하는 근본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급양의 향상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으나 미국측의 당초의 제안에 자극 받아 그들을 설득한 것이 주효하여 나의 참 뜻이 받아 들여져서 크게 부담이 감소되었고 미군과 같은 수준의 급양을 받게 되었음은 우리의 열악한 급양 수준과 비교하여 생각을 할 때 월남으로 파견되는 우리 국군을 위하여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며 참으로 보람을 느꼈습니다.
다음은 PX 등 미군의 후생복지 시설을 미군과 동일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문제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한국군 증파에 따르는 식량 문제를 매듭짓고 나서 새로운 팀과 후생복지 분야에 관한 문제가 토의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논란의 중심으로 거론된 것은 PX 문제였습니다. 담당책임 장교에 의하면 제1차로 파견된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들은 규모가 적은 부대였으므로 미군과 동일하게 PX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왔으나 이번에 증파되는 부대의 규모는 제1차 파병군의 10배 이상 되는 약 2,000명이 되므로 미군 PX 사용권을 줄 수 없다고 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나 편법으로 한국군이 필요로하는 소모품만은 단체 구입하는 형식으로 편의를 봐드릴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면“달러”를 써 가면서 구태여 미군 PX를 이용하겠다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파견된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태국, 자유중국 등 제3국의 군인들이 미군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그 밖의 복지후생시설의 혜택을 받고 있는데 유독 한국군만이 미군시설의 이용을 제한 받는 것 같이 된다는 것은 한국군의 자존심과 장병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달갑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미군측 대표에게 이 모임이 증파되는 한국군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모임인가? 아니면 지원 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국군에 대해서는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미리 통고하기 위한 모임인지 다그쳐서 물어보며 그들의 기본 자세를 나무라고 이 회의에 앞서서 있었던 식량문제 토의 때 역설한 취지를 재 강조하면서 그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러한 나의 항의를 받게 되자 미군사원조사령부측 대표들은 잠시 의논 끝에 자기들의 주장을 철회하고 한국군과 미군이 동일하게 미군시설을 이용하도록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또 다시 제기되었습니다. 그것은 PX시설이 없는 지역에 주둔하는 부대에서 자체 PX를 설치 운영하는 문제였습니다. 미군측에서는 미해군성 규정에 의거해서, 당시 월남 지구는 미해군성 규정에 적용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 규정에 의할 것 같으면 외국군에게 미군 PX물자를 신용대출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현금으로 구입하여 운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미군은 부대 기금이 마련되어 있어서 그러한 때는 그러한 기금을 활용해서 이용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러한 제도가 없습니다. 나는 해군대표에게 “미 해군의 그러한 규정은 언제 제정된 것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1957년에 제정된 것으로 기억합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미 태평양지구 사령부에서 파견된 해군 장교의 대답이었습니다. “그 규정이 만들어 졌을 때 미군은 한국군이 월남에 파견되어 미군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제정되었다고 귀관은 생각하십니까?”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러한 상황을 예상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므로 “그렇다면 상황이 그렇게 달라진 오늘의 현실을 상부에 건의하여 그 규정을 수정하도록 하면 한국군을 지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귀관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반문하였더니 다소 어색해진 미군측 대표들은 의견을 조정하기 위하여 또다시 잠시 휴식을 제의하고 별도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회의가 속계되면서 미측 대표는 나의 제의를 받아들여 규정을 보완하도록 상부에 건의하기로 합의를 보았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또한 미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25명 이상 병력을 수용하고 있는 부대에 PX를 설치운영하게 하고 한국군에게도 신용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밖에 후생복지에 대해서도 이러한 과정을 거처서 세부적인 협의를 거듭한 끝에 후생복지 문제는 전반에 걸쳐서 한국군도 미군과 동일하게 미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완전히 합의를 보았던 것입니다.
겸해서 이것은 후생복지 문제와 관계되는 것은 아니지만 파견되는 부대 특히 장병들에게 관련되는 문제이므로 추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스틸웰”장군과 “애담스”장군과의 연쇄적인 회의를 끝낸 다음에 우리 실무자들로부터 진행사항을 들어보니 해결이 안되고 교착상태에 있는 군수문제에 대해서 내가 직접 협의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 오후 늦게 군수참모“오스만스키”장군과 회담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군수참모부 보좌관들도 많이 동석해 있었습니다.
나는 “오스만스키”장군에게 한국군에 대한 군수지원은 월남군과 연관시킬 것이 아니라 미국이 직접 책임지고 지원을 해 주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나“오스만스키”장군은
“미군이 월남에 군수지원시설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직접 지원은 할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월남군이 지원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주한 미군사 고문단으로부터 증파되는 한국군에 대한“인가표(T/A)”를 받게 되면 그에 따라서 지원하겠다”고 원칙적인 답변을 하였습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우리 육군본부에서는 증파부대에 대한 군사지원의 기준이 되는“인가표”를 주한 미 군사고문단과 협의해서 합의가 이루어지는 대로 보내주겠다고 하였습니다만, 현실을 무시한 케이맥(KMAG)의 태도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이공에서는 군수지원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서 실무수준에서의 협의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오스만스키” 장군에게 “한국군에 대한 제반 문제를“케이맥”의 의견을 듣고 처리하겠다는“맥브이(MAC-V)”의 뜻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케이맥”이 한국군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하지만 월남에서 작전하게 되는 한국군의 사정을 서울에 있는 “케이맥”으로부터 무엇을 듣고자 합니까? 특히 한국에서 적용되는 군수지원 기준이 전쟁 중에 있는 월남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뿐만 아니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군원정책은 원조를 삭감하고 한국정부에 이관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이러한 정책을 월남에 파견되는 한국군에도 적용하겠다는 뜻인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미국의 월남 정책과 월남 현지 사정에 정통한 미군사원조사령부와 증파를 위하여 파견된 한국군 선발대인 우리가 현지 실정을 감안하여 협의 결정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미군과 같은 환경 속에서 작전에 임하게 될 것이므로 미군에 적용되는 기준과 동일한 기준으로 한국군 증파부대에도 적용하는 것이 옳은 줄로 압니다.” 나의 이러한 의견을 경청하고 있던 “오스만스키”장군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흔쾌하게 즉석에서 받아들였습니다.
“이”장군 말씀이 옳습니다. 한국군 증파부대에 대한 군수지원은 미군과 동일한 기준으로 우리가 직접 지원하겠습니다.”과연 장군다운 명쾌한 결정이었습니다.“오스만스키”장군은 즉석에서 주월 미군의 인가표를 나에게 넘겨주며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오스만스키”장군의 이러한 이날의 우호적인 결단은 그로부터 6개월 후 전투부대를 파병할 때에도 이때 합의된 기준이 근거가 되어서 미군과 동일한 군수지원을 받게된 것이며 이러한 결정이 각개 병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예로서 살펴 본다면 전투복을 비롯하여 장글화, 방탄쪼끼를 착용하게 되고 전투요원들의 기본화기인 M-1 소총을 가볍고 성능이 좋은 M-16 소총으로 교체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있었던 달갑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만,“케이맥”이 생각하고 있는 한국군 부대에 대한 군수지원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단편적인 일면을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것이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돼서 덧 붙여서 말하고자 합니다.
내가 “오스만스키”장군과 협의하여 미군과 동일한 군수지원을 받기로 결정한 사실이 서울의 “케이맥”에 알려지기 전의 일입니다. 미군사원조사령부에 보내진“케이맥”의 한국군에 대한 군수지원 통보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있었습니다. 한국군의 취사도구 일개 중대 큰솥 두개, 하나는 밥솥, 하나는 국솥, 미군의 취사도구 기준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이는 증파되는 한국군에 대한 급양을 주월 미군과 동일한 기준으로 정하게 된 것을 서울에서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전투부대 파견때 군사실무 약정에 반영된 미군 PX이용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우리는 한국인의 기호에 맞는 한국특산품 10개 품목 범위내에서 미군 PX기관이 이를 구매하여 주월 한국군 PX에 공급해 주도록 제의하였습니다. 미군측은 이를 수용하였으며 한ㆍ미 군사실무약정“미군 PX이용”에 명문화하였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산 담배, 인삼, 맥주, 비누, 치약, 칫솔, 화장품, 의류 및 복지 등 10개 품목의 국산품이 미군구매기관을 통하여 주월 한국군에 공급되었으며, 그 후 일부품목은 미군 PX에도 납품되고 월남에 진출한 개인 및 용역회사에 민간수요(需要 : 필요해서 얻고자함. 소용됨. 구매력을 따라 시장에 나타나는 상품 또는 구매의 희망이나 그 분량-공급))로까지 확대되어 월남의 상가에도 흔히 볼 수 있게되고 특히 맥주, 드링크종류 그리고 인삼제품 등은 대 호황을 일으킨 대표적인 상품이었습니다. 다음으로 특이하게 논의된 것은 한국에서 파견된 우리나라의 종군기자들에 대한 처우 문제였습니다. 나는 미 지상군이 본격적으로 투입되고 한국군전투부대가 증파되는 등 월남전의 양상이 크게 달라져감에 따라 세계의 이목은 월남전에 집중되고 이에 호응하여 세계각국의 언론기관의 보도진들이 월남의 사이공에 쇄도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되었습니다.
이러한 때 큰 병력, 특히 전투부대까지 파병하게 되는 나라의 언론과 보도진의 사명은 국위를 선양하고 국가이익을 위하여 군의활동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나는 우리 종군기자들이 월남에서의 취재활동을 충분하게 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여건을 갖추어 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미군측 대표에게 월남전에 있어서의 보도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 종군기자들을 미군 종군기자와 동일한 대우를 해 주도록 요청을 했습니다. 미측 대표는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나에게 아주 빈틈이 없다고 농담까지 걸면서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하였습니다.
그 후 한ㆍ미간에 체결된 군사실무약정의 인사근무조항에 주월 한국군사령부에서 인정하는 한국종군기자는 미군종군기자의 대우에 준 한다고 명기됨으로서 우리나라의 종군기자들이 그 후 월남에 파견되어 주월 한국군사령부에서 발급되는 증명만 가지면 자유로운 취재활동은 물론 통신시설, 교통시설, 보도용 기자재조변, 숙식문제와 PX이용 등 후생복지시설에 이르기까지 전반에 걸쳐서 미군종군기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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