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삶의 지형도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19 1차 유행의 진원지가 된 대구는
"대구 코로나"라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유령 도시와 같았던 대구는
우한 코로나를 뒤집어 쓴 채 재앙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때다 싶어 메이저 언론과 방송은 보수의 성지 대구를 타켓삼아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조리돌림을 하며 잿빛 도시를 마녀 사냥하였습니다.
대중매체와 SNS의 몰이배들은 무차별 융단폭격을 하며 십자포환을 날렸고
평온한 도시는 한순간 아수라장, 그 생지옥이 되었습니다.
대구의 자존심은 땅 바닥에 나뒹글었고
코로나 19의 폭탄은 도시의 기능을 마비시키며 폐허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버스를 타지 않았고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았으며
출근도 퇴근도 하지 않는 재난 지역이 되었습니다.
아침의 해가 떠오르지 않는 대구는
끝없는 어둠의 통로에 갇혀 희망의 빛을 잃었습니다.
그 때 타지 않았던 대중 교통을 필자는
한 때 대구 코로나 0명이라는 청정지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대중 교통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마트의 발길을 끊은지도 1년이 넘었고
셀프 이용과 염색을 하다보니 이발소 가는 길도 잊었습니다.
지난 날 1달에 용돈 3만원은 썼는데 1년이 지나도록 교통비도 쓰지 않으니까
한 달 사용 용돈 0원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무엇을 먹고 사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언제나 가득한 냉장고의 식재료는 요리의 즐거움으로 넘치게 합니다.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가스 점검하러 온 사람과 택배 기사뿐이어서
코로나 19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은둔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19 팬데믹의 공포에서 살아 남아서 언젠가 은둔의 옷을 벗고
지난 날 그 화려한 출사의 길을 항오의 전선으로 라인업 할 것입니다.
비록 만나는 사람은 없지만 카페를 통해서
추억의 사진기행과 영상기행과 말씀기행으로 소통과 공유의 창을 열어 두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철저한 생활 일람표는
추억의 사진 기행과 영상기행, 그리고 말씀 기행으로 또 다른 내일의 추억을 쌓고 있습니다.
최근 영상기행이 중단되었는데
외장하드를 비롯하여 노트북 D드라이버의 1테라 공간마저 가득차서
더 이상 영상편집을 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예전같았으면 곧바로 외장하드를 구입해서 여유공간을 만들겠지만
코로나 19의 팬데믹은 필자의 발을 묶었습니다.
최대한 불필요한 자료를 삭제하고
영상 편집을 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만들지만 추억의 자료를 지우는 것은
액기스만 모아 놓은 상태라 소중하지 않는 자료가 없어 육단골참의 아픔을 감내해야 합니다.
추억을 쌓는 오늘의 열정으로 코로나 19 팬데믹 시대 아령으로 하는 쌍절곤의 고지전 운동은
확실히 코로나 19 팬데믹의 전과 후, 그 천양지차의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새벽 4시에 잠들기 시작하였고
아침 7시면 언제나 발지압을 하면서 말씀을 묵상합니다.
어릴 떄부터 몸에 밴 새벽기도와 말씀 묵상의 흔적은
영적으로 체화된 삶의 실상을 이루었습니다.
하루 가운데 가장 행복한 시간은
바로 새벽 2시, 그 한 밤의 산책입니다.
지금 거처하는 곳의 공기가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어릴적 산촌에서 느꼈던 밤 공기와 같습니다.
새벽 2시면 언제나 마스크를 하고 편한 복장으로
엘리베이트를 타고 내려와서 아파트 주변의 소방도로를 따라 산책을 합니다.
왕복 4차선의 소방 도로지만 인도는 그 보다 넓어
아무도 없는 새벽 산책길은 왕의 대로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 새벽 2시의 풍광은 승용차도 택시도 다니지 않고
가끔 킥보드를 즐기는 학생들이 있을 따름입니다.
왕복 4차선 도로보다 넓은 인도를 따라 걷다보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의 산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벽 2시, 그 한 밤의 산책은
학문의 숲을 걷는 기쁨보다 더 아파트의 숲을 걷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었습니다.
항상 운동의 충만으로 인한 근육통으로 인해서
인도를 따라 걷는 왕의 대로는 천천히 로보트처럼 걷습니다.
무거운 갑옷을 입혀 놓은 것과 같은 걸음 걸이는
산책을 통한 걷기 운동의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밤의 공기가 얼마나 상쾌하고 맑은지~
어린 시절 산촌에서 살던 그 때와 같았습니다.
인생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궁구하는 필자에게 새벽 2시, 그 한밤의 산책은
행복의 버킷리스트로 손색이 없습니다.
천천히 걷는 새벽의 산책은
카메라를 들고 자연천을 담아내는 것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특히 비 오는 날의 산책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마음의 정서를 천혜의 신비가 깃든 그 상그릴라로 느껴집니다.
문득 행복한 삶의 정서로 가득한 가운데
예수님의 이 세대에 대한 비유가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11:15-17)
오늘날 우리 시대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함과 같습니다.
그 동안 카메라 앵글로 발견한 행복의 정서, 그 마인드는
꽃의 향기를 마음의 정서로 느끼는 행복이었습니다.
뜻 밖의 장소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창조의 정서와 그 신앙으로 충만합니다.
새벽 2시, 그 한 밤의 산책은 코로나 19 팬데믹의 공포에서 찾은 작은 공간,
참다운 인생의 행복길에서 얻는 삶의 되새김, 그 여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