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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사 일 반
1. 주요 내용
- 성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눈에 보이는 가시적 표징을 통해 이루어주는 은총의 통로이다. 교회는 7성사를 통해 주님을 신자들에게 드러내고, 성사를 받은 우리는 성사적인 삶을 통해 세상에 주님을 드러낸다.
2. 성사 : 하느님의 표징
- 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순간이다. 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표시(표지, 표징, 사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사를 통해 하느님을 만난다.
- 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사랑의 표지이다. “성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이도록 해주는 표지이다.” 예를 들어 로만 칼라를 한 옷을 입고 계신 분을 보면, “아 저분은 신부님이시구나!” 하듯이, 로만 칼라는 겉모습으로 신부님을 알아보도록 하는 표시중의 하나이다(결혼반지의 상징).
- 이처럼 하느님은 당신의 창조하신 피조물(창조물)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신다.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현존을 감지하고 그분의 생명을 전해 받게 해주는 성사도 그분의 표징이 되는 것이다.
3. 그리스도 : 하느님의 성사
- 예수님은 말씀과 행동을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도록 보여주셨으므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성사이다. 즉, 인간으로 오셔서 사랑하시고, 우시고, 배고파하시고, 고통을 겪으신 예수님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표징이다. 또한 예수님은 모든 성사의 원천이시기에 예수님을 ‘원성사’(元聖事)라고 한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완전한 성사이시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귀로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피부로 그분을 느낄 수 있었던 참인간이요 참하느님이셨기 때문이다.
4. 교회 : 그리스도의 성사
- 성사 자체이신 예수께서는 승천하신 후 제자들의 마음속에 성령을 부어주셨으며, 제자들을 당신의 부활의 산 증인으로 파견하셨다.
- 또한 성사를 제정하심으로써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가장 효과적으로 성취하셨다.
- 교회는 성사를 통해 신자들에게 주님을 알리고 성사생활로 주님을 증거한다.
- 교회는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계속 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드러내 보여주시기에, 교회는 예수님의 성사이다.
5. 칠성사
- 예수께서는 우리 생활의 핵심적인 것을 통해서, 결정적인 순간들 안에서 우리와 접촉하시고, 그 순간이 당신과의 생생한 만남의 시간이 되게 해 주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항상 우리 가운데 계심을 깨닫게 하시려고 성사들을 세우셨다.
- 가톨릭 교회는 일찍부터 그리스도와 만나 은총을 받는 주요한 교회의 행위를 일곱 가지로 정하고 이를 칠성사라고 가르쳐 왔다.
1) 세례성사(성세성사, 영세)
-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돌아가신 후 다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례를 통하여 우리의 죄에서 죽고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즉, 그전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버리고, 몸과 마음이 변하여 완전히 새로운 인격으로 다시 태어난다. 또한 세례로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신앙공동체의 한 식구가 된다. 이 성사 안에서,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사랑, 이웃, 자연 모두를 ‘선물’로서 기꺼이 받아들이고, 주님을 생의 최우선으로 삼고 살아가는 은총을 받는다.
2) 견진성사
-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성령은 받지 못했던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자 그들도 성령을 받게 되었다”(사도 8,16-17).
- 순교자들이 용감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기쁘게 순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주님을 증거할 힘을 얻게 된다. 그로써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선포할 사도가 된다.
3) 성체성사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고 나는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요한 6,54).
- 영성체로써 주님과 온전히 결합되어 하나되고, 우리 신앙생활의 양식을 얻는다. 참으로 영성체는 주님과 그리고 신자들과 하나되게 하며, 또한 우리가 복음을 선포해야 할 세상과 하나된다. 아울러 세상에 또 하나의 성체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4) 고해성사(고백성사, 화해의 성사)
-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
- 사랑을 거부하고 배신함으로써, 주님과 이웃 그리고 자신과 멀어진 상태를 다시 회복하는 화해의 성사이다. 이 성사를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다시 주님의 사람이 된다. 또한 이 성사 안에서, 힘을 회복한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할 힘을 얻는다.
5) 신품성사
- “예수께서 세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하셨다”(요한 21,15).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 주님만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몸과 마음을 주님께 봉헌하고, 주님의 대리자로서 사도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정규 신학교육을 받게 한 후, 하느님 백성을 사랑하고 주님께 이끄는 목자로 서품시키는 성사다.
6) 혼배성사(혼인성사)
-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준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
- “혼인 서약은, 이로써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그 본연의 성질상 부부의 선익과 자녀의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는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는 것인바, 주 그리스도에 의하여 영세자들 사이에서는 성사의 품위로 올려졌다”(교회법전 제 1055조 1항). 혼인성사를 통하여 예수, 마리아, 요셉의 나자렛 성가정을 이룸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바울로 사도는 혼인을 주님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비유하신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모든 일에 자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바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 6,24-25).
7) 병자성사
- “회개하라고 가르치며 마귀들을 많이 쫓아내고 수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13).
- 병자성사는 주님께서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당신의 깊은 사랑으로 다가와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성사이다. 한편 이 성사는 병이 낫기 위해 받는다기보다는, 병으로 인한 자신의 고통이, 주님께서 세상을 구하시기 위하여 겪으시는 그 고통에 참여하기 위한 성사이며, 그러한 이유로 더욱 더 그리스도 주님과 결합, 일치되기 위한 성사이다.
6. 인생 여정과 칠성사
| 인 생 여 정 | 칠 성 사 | 성 사 내 용 |
| 아기가 탄생 했습니다. | 세례 성사 |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 라 부르게 됩니다. |
| 젖을 먹고 자라납니다. | 성체 성사 | 주님을 모시고 힘과 기쁨을 얻습니다. |
| 걸음마를 하고 달리기를 해 건강해 집니다. | 견진 성사 | 주님을 지금 여기에서부터, 세상 어디에서나 굳건히 증거하게 됩니다. |
| 동생이 태어나자 화를 내고 질투와 미움이 생겨 편안치 않습니다. | 고해 성사 고백 성사 화해의 성사 | 주님과 이웃 그리고 나 자신과 화해하여 다시 생기 있고 기쁘게 살아갑니다. |
| 어른이 되 결혼합니다. | 혼배 성사 | 주님의 축복 안에서 성가정이 됩니다. |
| 주님만을 사랑하여 신부가 됩니다. | 신품 성사 | 이 땅에서 주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축성하여 신자들과 나눕니다. |
| 병이 났습니다. | 병자 성사 종부 성사 | 주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겪으신 고통에 자기의 고통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
7. 준성사
- “어느 정도 성사들을 모방한 거룩한 표징들로서 영적인 효험을 표시하며 교회의 간구(간절한 기구, 기도의 옛 말)로써 그것을 얻어 준다”(전례헌장 60항). 한 마디로 말한다면, 하느님 안에서 살고자 자신과 자신의 주위에 축복을 비는 신심행위라고 할 수 있다.
- 축복 : 교회의 교도권이 인정하는 주교나 사제가 하는 축복행위와 축성으로, 사람이나 물건(십자가, 성모상, 묵주, 자동차 등)이나 장소(성당, 집, 공장, 가게) 등에 하느님의 은총을 비는 것이다. ‘축복’ 또는 ‘축성’ 또는 ‘방사’(放赦)라고도 한다.
- 우리는 준성사를 미신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신앙과 봉헌의 정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 사 각 론
1. 세례성사
- 바리사이파 사람들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밤에 예수를 찾아와서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는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야 없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요한 3,1-6)
1) 구약성서에 나타난 성세 성사의 예표
- 세례는 물에 잠기고 씻음으로써 과거의 생활을 씻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이다(목욕재계의 의미와 비슷).
- 새생명 탄생의 표상은 구약성서에서 여러 차례 여러 모양으로 예표되었다. 세상의 죄를 심판하는 노아의 홍수,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약속된 땅으로 갔던 사건, 부정을 씻어주는 정화수 등은 물을 통한 새로운 창조로서 성세성사의 예표였다(물은 동서양에서 더러운 것을 씻어주는 의미를 갖고 있다).
2) 요한의 세례
-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강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회개를 촉구하며 세례를 베풀었다.
- 요한의 세례는 하느님과의 화해를 위해 회개하겠다는 마음의 결단을 드러내는 외적인 표시였다.
- 요한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그리스도를 예고했다.
3) 예수의 세례
- 예수께서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이는 예수께 죄와 허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일과 행위를 하느님의 일, 즉 성사로 들어 높이기 위함이었다.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예수께 내려왔다는 것은 물과 성령에 의한 새로운 창조를 보증하는 것이며,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새로 나야 하며,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명하셨다.
4) 세례의 효과
- 죄의 용서 : 세례로써 원죄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지은 모든 죄와 벌까지도 용서해 주신다.
- 본시 물은 죽음과 생명을 의미한다. 홍수 때 물은 죽음의 상징이나 가뭄에 물은 생명의 상징이다. 다시 말해 과거의 죄인으로서의 나는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나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 새로운 생명으로의 탄생 :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그분께 자신을 맡기며, 삶을 반성, 회개하고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이 세상의 죄악과 헛된 욕망에 대하여 죽고 초자연적 생명을 받아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자격을 얻는다(재생의 성사).
- 하느님의 자녀, 즉 상속자가 된다 :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결합된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가 되고 동시에 하느님의 은혜와 축복의 상속자가 된다.
-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일원이 된다 :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아가게 되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일원이 되며, 성령의 궁전이 되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다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성장 발전하도록 노력할 의무도 지게 된다.
- 인호를 받는다 : 세례를 통해 영혼에 인호를 받게 되고 이로써 다른 성사를 받을 자격을 얻게 된다(가장 기초적인 성사).
-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교회의 일원이 되지만 아직은 초년생이므로 전례나 교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자신의 신앙생활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대부․대모를 정한다.
- 천주교 신자가 되면 본명을 받게 된다. 영명은 천주교회에서 공인한 성인성녀의 이름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 순교했거나 구약의 위대한 인물, 혹은 천사나 신약의 사도들 또는 위대한 학자, 사목자, 동정녀 등이며, 이렇게 영명을 받는 것은 그들의 모범을 따르겠다는 뜻이다.
5) 세례준비와 세례예식
- 세례를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회개하는 마음과 세례를 받고자 하는 원의와 믿음이 있어야 하며,최소한의 신앙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2. 성체성사
- 빵을 들어 감사 기도를 올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음식을 나눈 뒤에 또 잔을 들어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하셨다(요한 22,19-20).
1) 성체성사
-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성사.
- 성체성사는 일곱 가지 성사 중에서 가장 큰 성사로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이요, 우리 영혼의 양식이다.
2) 구약의 빠스카
-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며 매년 과월절 축제중에 과월절 만찬을 가졌다.
3) 신약의 빠스카
- 성체성사는 한 마디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예수님께서 실제로 현존하고 계신다는 믿을 교리이다. 2천년전 예수님께서 직접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제정하신 성사이다. 우리를 위해 대신 수난받으시고 죽으신 그분께서 당신의 몸마저 우리의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 주신 것이다. 따라서 성체성사는 예수님 사랑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고 인간 구원의 가장 확실한 표징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성체를 영함으로써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일치하게 된다. 바로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가 나 역시 예수님 안에 있게 되기 때문이다.
4) 이 예식을 행함으로써 나를 기념하라 : 미사 거행
- 미사는 바로 이러한 성체성사가 이루어지는 은총의 시간이다. 미사는 바로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우리에게 행하라고 명하신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사건이다. 미사중에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사제가 행할 때 신비롭게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 이를 성변화라고 한다. 이렇게 변화된 성체를 사제는 신자들에게 나누어준다. 신자들은 합당한 준비를 하고 성체를 받아모시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영성체이다. 따라서 영성체는 2천년전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당신 자신을 떼어 주신 성체성사와 완전히 일치한다.
-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까지도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은 인간구원을 위한 가장 완전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형제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예수님의 이 사랑이 오늘 이 순간 미사중에 성체를 영할 때 2천년전과 똑같은 은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바로 미사중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역사에 가장 깊이 참여하게 되고 그 순간 2천년이라는 시간은 사라지고 예수님 시대와 현재 우리의 시대는 하나로 일치하게 된다. 그래서 성체를 영하는 순간 우리는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깊고 가까운 만남을 갖게 되는 것이다.
5) 미사의 명칭
- 가톨릭 교회의 제사를 미사(Missa)라는 말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5세기 서방 라틴 교회에서부터이다. 그런데 이 신비로운 제사 행위를 하나의 낱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다른 명칭들을 보면, 초대교회에서는 ‘빵나눔’, 2-3세기에는 ‘에우카리스티아’(Eucharistia, 감사의 기도), 4세기에는 ‘봉헌, 제사, 성무, 주님의 것, 집회’ 등으로 사용되다가 5세기경 미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 Missa는 폐회 혹은 집회의 해체를 의미하는 Missio에서 파생된 말로 파견 또는 떠나 보냄이라는 뜻이다. 본래 이 용어는 로마에서 교황 알현의 끝이나 법정의 폐정을 선언하는 말이었다(Ite missa est). 그런데 이 미사가 교회 용어가 되면서부터 교회의 모든 집회 끝에 강복을 주었고, 후대에는 축복으로 가득한 집회 즉 미사에 국한시켜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이 미사라는 용어에는 미사중에 받은 은혜와 축복으로 충만되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신비를 증거하는 자로 파견되어 간다는 의미가 부각되어 있다.
- 그러나 이 또한 부분적이며 간접적인 설명에 불과하다. 미사의 심오한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기념하는 것이며, 이 행위로써 기념하는 신비가 우리 안에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념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성부께 제헌하신 제사만이 아니라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봉헌하는 제헌이다.
6) 미사 예식의 역사
- 가톨릭 교회의 미사는 예수의 최후 만찬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미사의 최초의 형태는 예수의 최후의 만찬 예식이다.
- 예수의 최후 만찬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식탁 공동체로서의 만찬이었다. 이 예식의 특징은 가장이 빵을 들고 축복한 후 여러 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식탁에 앉은 식구들에게 주는 행위와, 식사가 끝날 무렵 소위 ‘축복의 잔’을 식탁에서 조금 높이 들고 감사의 기도를 하는 본연의 만찬기도를 포함한다.
- 사도시대와 원시 교회 : 이 시기에는 식탁 공동체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성찬례를 거행하여 성체와 성혈을 나누어 먹었다. 즉 초기 교회에서는 일반 식사와 성찬례가 결부되어 거행되었다. 그러나 이 일반 식사와 성찬례가 결부된 형태는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는데, 그것은 신자들의 증가로 교회의 확장에서 오는 기술적 난점과 번거로움만이 아니라 이미 바오로 사도가 고린토 신자들의 성찬례 때의 잘못을 책망하는 것과 같은(1고린 11:17-34, “하지만 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나누는 식사는 주님의 성찬을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여서 음식을 먹을 때에 각각 자기가 가져 온 것을 먼저 먹어 치우고 따라서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술에 만취하는 사람도 생기니 말입니다. 각각 자기 집이 없어서 거기에서 먹고 마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20-22) 불미스러운 폐단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성찬례의 규범적 구성 요소로서의 일반 식사 행위는 1세기 말경에는 거의 사라졌고, 일반 식사와 성찬례가 분리됨으로써 미사를 거행하는 외적 형태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미사 거행에서 변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 것은 주님께서 성체와 성혈을 이루시면서 하신 감사와 축성의 기도였다.
- 2세기 : 성찬례 거행을 위해서 함께 모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찬례를 거행하는 장소보다는 그들이 함께 모인다는 것을 더욱 중요시하였다. 그때는 신자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살아있는 성전이라는 의식 때문이었다. 순교자 유스티노(+165)는 그의 첫 <호교론>에서 “도시와 지방에 살고 있는 모든 신자들이 주일에 함께 모여 성서를 낭독한 후 주교가 빵과 포도주를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전하고 있다. 유스티노의 이 기록에 의하면 이미 2세기 중반에 성찬례 전에 성서 봉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성찬례가 일반 식사에서 분리됨으로써 그 성찬례를 준비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말씀의 봉독 예배가 도입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3-5세기 :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관용령 이후 종교 자유는 우선 교회의 외적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어 대성전의 건축, 교회 음악의 발전, 전례 용어의 라틴어화 등이 이루어졌고, 일반 대중의 생활 풍습이 전례에 도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황제의 궁전에서 시행하던 예절은 주교가 집전하는 장엄 미사 예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 150년경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가 미사의 구성 요소가 된 뒤 오늘날과 같은 미사 형태가 완성된 것은 7세기 중엽이다. 초대교회부터 7세기까지 미사성제 예식의 요소들의 변화를 보면, 3세기 초에 거행되던 미사 거행 양식의 중요 요소로는 참회 예식(초기에는 부복자세였으나 후대에 와서 죄 고백의 행위와 기도로 바뀜), 성서봉독(사도행전, 서간, 구약에서 발췌), 응송, 강론, 평화의 인사, 예물준비, 감사기도, 영성체였으나, 5세기 초에 와서 공동기도, 예물봉헌, 감사기도의 고정(제1양식과 유사), 주의 기도가 첨가되었다. 6세기 초에 입당송, 자비송, 대영광송, 본기도, 봉헌송, 봉헌기도, 거룩하시다, 영성체송, 영성체 후 기도 등이 첨가되었고, 7세기 중엽에 이르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성체와 성혈을 조금 들음, 천주의 어린양 등이 도입되어 오늘날과 같은 미사 형태로 발전하였다.
- 중세기 : 이 시기를 거치면서 미사는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이는 미사 용어인 라틴어를 신자들이 알아듣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사제가 혼자서 낮은 목소리로 하는 개인 기도의 유입, 사제 혼자서 거행하는 미사의 도입 등도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주례자인 사제와 참여하는 신자들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분리현상이 생기고 서로의 통교 가능성이 없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폐단은 전례 생활에 있어서 개인주의적 경향을 팽배하게 하였으며, 외적이고 무질서하고 사적으로 흐른 전례생활은 종교 개혁자들에게 또 하나의 구실을 제공하였다.
- 근대와 현대 : 종교개혁 이후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전례생활의 혁신을 이루었는데, 이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인쇄술의 발달이다. 인쇄술의 발달로 동일한 전례서가 대량 보급되면서 통일된 미사 전례를 거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대륙이 발견되고 그리스도교가 신세계에 전파되면서 고정화된 전례는 신자들의 생활의 변화와 무관하게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례생활과 신앙생활의 활성화에 관심을 갖고 전례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노력들이 생겨났다. 특히 20세기에 오면서 전례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 전례운동은 성직자 중심의 전례에서 하느님의 전 백성의 전례로, 신자들의 수동적 전례 참석에서 능동적 참여로, 중앙집권적 전례 통제에서 지방분권적인 전례의 다변화로, 라틴어 전용에서 모국어 사용으로 전향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하였고, 이 운동의 결실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전례헌장이 반포되었다. 1969년 로마미사경본이 바오로 6세의 인준을 받아 1970년 공포되었고, 한국 천주교회는 1974년 이를 완역하여 교황청의 인준을 받아 1976년 부활대축일부터 의무적으로 시행하였다.
- 독서 : 주일과 대축일의 독서는 3년 주기로 반복되고, 연중시기 평일에는 복음은 동일하지만 독서는 홀수와 짝수 해에 번갈아 읽는다.
7) 미사의 구조
- 시작예식, 말씀의 전례
- 성찬의 전례, 마침예식
8) 성체를 모시기 위한 준비
- 은총의 상태 : 성체를 영하기 위해서는 은총의 상태가 필요하다. 대죄중에 영성체하는 것은 성사의 의미를 어기는 것일 뿐 아니라 예수님께 대한 모독이 된다. 따라서 자기에게 대죄가 있음을 아는 자는 누구든지 비록 통회를 했다 하더라도 먼저 고백성사를 받지 않고서는 영성체할 수 없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빵을 먹고 잔을 마셔라”(1고린 11,28). 그러나 영성체를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은총의 상태 외에 능동적인 사랑이 요구된다. 이 능동적 사랑은 올바르고 경건한 정신에서 나온다. 올바른 정신이란 허영심이나 인간적 체면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 성체를 영하는 것을 말한다. 경건한 정신은 영성체를 통해 우리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성체를 위해서는 경건한 준비가 앞서야 하고 마땅한 감사가 뒤따르도록 해야 한다.
- 공복재(공심재) : 초대교회에서 행하던 일반 식사와 결합된 성만찬 미사가 없어진 다음부터 성체께 대한 존경심과 신심상의 이유로 공심재를 지켜왔다. 이는 신자들이 성체는 보통 음식과 구별된다는 생각을 항시 갖도록 하는 데 있다. 공심재란 영성체 한 시간 전부터 모든 음식과 음료로부터 절제하는데 있다. 오늘날에는 어떤 음식이든 한 시간 전부터 공심재를 요구한다. 자연수는 여기서 제외된다. 그러나 설탕물, 과일즙, 기타 음료수(예 : 커피, 홍차 등)는 금지된다. 영성체를 어느 시간에 하든 간에 관계없이 항상 한시간 전이다. 이 공심재 시간은 영성체하는 순간부터 한 시간 전이다.
9) 영성체의 의무 : 잦은 영성체의 필요성
- 모든 어른들은 성체성사를 실제로 받을 의무가 있다(교회법 920조).
- “진실히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또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여러분 안에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요한 6,53).
- 모든 신자는 성체를 영하기 시작한 다음에는 매년 적어도 한 번 성체를 영할 의무가 있다(920조).
3. 고해성사
1) 명칭
- 신약성서에서는 마음과 영혼의 변화, 전적인 회개를 지칭하기 위하여 메타노이아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과거에는 참회의 성사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하느님께 대한 감정과 마음의 변화를 강조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죄의 완전한 표명을 강조하여 고해성사라는 용어삭 등장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초대와 죄인의 회개와의 만남과 대화를 강조하여 화해의 성사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2) 기원
- 예수께서는 십자가 상의 제사로써 인간의 죄를 대속하였고, 인류로 하여금 하느님과 화해하게 하셨다. 예수는 아버지와 죄인들의 화해를 위한 중재자로서만이 아니라, 직접 죄인들을 만나 당신의 권위로 죄인들을 용서해 주는 분으로 복음에 묘사되고 있다. 예수는 사도들에게 양심을 풀고 맺는 권한을 주셨으며, 부활 후 사도들에게 나타나시어 죄를 사하는 참된 권한을 부여하셨다.
3) 변천사
- 초세기의 참회 실천은 법적이고 공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중죄의 경우는 일생에 단 한 번만 성사적 용서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널리 전파되면서 참회 기간이 단축되고 벌이 감소하였으며, 동일인에게 참회의 기회가 여러 번 허용되기도 하였다.
- 6세기에서 트리엔트 공의회 : 6세기에 이르러 사적 고백과 용서가 수도자들에게 시작되었고, 고백을 무한정 반복할 수 있게 되었다. 공개적인 죄는 공개 참회, 비밀죄는 비밀 참회라는 원칙이 성립되어 성사의 공적 형식이 상실되고 비밀적인 특성, 고백, 대인간적 관계 등이 부각되었다. 공개 참회는 13세기까지만 존속되었다.
4) 과정
- 통회 : 통회는 어원적으로 라틴어 conterere(짓밟다, 부수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새 예식서에서는 트리엔트 공의회에 의거하여 “통회란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더불어 범한 죄를 아파함과 저주”라고 정의하면서 “참회의 진실성은 마음의 통회에 달려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통회는 완전한 통회와 불완전한 통회로 나뉜다. 이는 회개의 강도에 의한 구분이 아니라 형상적 동기에 의한 구별이다. 완전한 통회는 하느님께 대한 초자연적인 사랑에서 나오는 것으로 자비와 우정의 표현이다. 반면 불완전한 통회는 불완전한 욕망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으로 죄에 대한 윤리적 기형, 영벌과 잠벌에 대한 두려움, 하늘에 대한 원의 등이다. 완전한 통회는 성사의 함축적 원의와 결합되어 있다면 어떤 죄에 대해서도 즉각적인 사함을 받을 수 있다. 불완전한 통회는 세례나 고해성사와 결부되지 않고서는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없다.
- 고백 : 성사적 고백이란 사죄를 얻기 위해 합법적인 사죄권이 있는 사제에게 하는 죄의 고발로서 전례 행사중의 일반적인 고백과는 다르다. 양심의 성찰로써 기억되는 세례 후 범하였으며 아직 사제로부터 직접 사함받지 못한 모든, 각각의 대죄들을 고백해야 한다. 고백은 말로써 표현되어야 하는데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표시, 몸짓, 서면 등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직접 사제 앞에서 고백이 이루어져야 하며, 서신이나 인편으로 대신할 수 없다. 또한 고백은 홀로 사제에게만 비밀리에 해야 한다. 초세기의 공개 고백은 폐기되었으나, 통역을 통한 고백은 남용과 악한 표양을 피할 수만 있다면 오늘날 금하지 않는다.
- 보속 : 보속은 죄 때문에 생긴 하느님께 대한 빚을 갚은 행위이다. 보속은 죄의 수와 경중, 고해자의 능력과 조건에 따라 처벌적인 측면과 치료적인 측면이 조화를 이루게끔 부과되어야 한다. 고해자는 고해신부가 명한 정당한 보속을 수락하고 이를 자신이 직접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보속을 망각했을 경우에는 의무가 중지된다. 보속을 다시 받기 위해 이미 고백하고 사함받은 죄를 다시 고백할 의무는 없다.
- 사죄 : 사죄 행위는 교회의 집전자가 행한다.
- 성사의 비밀 : 고해신부가 고백자로부터 들은 모든 것을 절대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를 가리킨다. 성사 비밀의 의무는 고해 신부에게 있으며, 통역 주위에서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들은 사람, 고백자의 동의를 얻어 고해신부로부터 상담을 받은 신학자들, 다른 사람의 죄를 기록한 용지를 읽은 사람 등 직간접으로 성사의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고해자 자신에게는 의무가 없다.
4. 병자성사
- 위급하게 알고 있는 신자의 고통을 덜어 주고 구원해 주시도록 주께 맡기는 성사. 교회는 이 성사를 통해 병자를 위로하고, 하느님께 신뢰를 갖도록 하며, 참회를 통하여 건강이 회복되도록 돕는다. 이전에는 죽을 위험에 처한 경우 한 번만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종부성사라고 하였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병중에 있을 때는 횟수에 관계없이 사제에게 청할 수 있는 칠성사중 하나로 재천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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