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의 난장, 군대 내무반(2)>
군대 오락시간에 병사들에게 가장 큰 박수와 환호를 받은 노래는 음정 박자 가창력 따위가 탁월한 그런 노래가 아니었다. 거두절미하고 재밌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가 난무했다. 하다못해 팝송을 한 곡 부르겠다고 호기롭게 나간 일등병이 <이별의 부산 정거장>을 뒤죽박죽 이렇게 불러제낀다.
보슬 레인 사운드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스테이션 / 유도 굿 바이 나도 굿 바이…/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 하우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무반의 최고 애창곡은 ‘영자 송’과 ‘김 일병 송’이었다. 70년대에 발간한 전화번호부 인명록을 보면 김영자 이영자 박영자 등의 이름이 여성의 이름 중에는 압도적이었다. 유격훈련장에서 줄타기 활강을 비롯하여 난도가 높은 훈련을 받을 때, 조교는 출발 선상의 병사를 향하여 짓궂게도 애인 이름을 세 번 복창하라고 말한다. 실제로 애인의 이름을 외치는 병사도 있었으나 애인이 없는(있어도 말하기가 쑥스러운) 병사는 약속이나 한 듯이 “영자야-!”를 외치며 공중을 날았다. ‘군바리’에게 영자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우리들의 애인이고 여자친구이고 여동생인, 젊은 여성을 일컫는 보통명사였다.
영자야 내 동생아 몸 성히 성히 성히 잘 있느냐 / 여기에 있는 이 오빠는 장교가 아니란다…
전방 철책에서 빡빡 기어야 하는 졸병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읊은 노래였으나, 내용이야 어떠하든 오락시간이나 회식 시간에 이 노래를 합창하는 군바리들의 목청은 하염없이 우렁찼다. 오랫동안 구전돼 오다 보니 여러 가지 버전의 가사가 전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32cMVUuWmg
또 하나, 개발연대에 군바리들의 사랑을 받았던 애창곡이 속칭 ‘김 일병 송’이었다. 이 노래의 곡은 본래 일본군가(https://www.youtube.com/watch?v=kqQW4nQuiVA)였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이 곡조에 맞춰서 몇몇 동네 형들이 ‘일학년 이학년은 분필 도둑놈 / 삼학년 사학년은 사람 잘 치고 / 오학년 육학년은…’ 이렇게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한편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군대에서도 다양한 가사로 불리었고, 노동 운동 현장에서는 또 다른 가사들이 붙어서 애창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 김민기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 중 ‘야근(夜勤)’이라는 제목이 붙어서 발표된 노래의 가사는 ‘서방님의 손가락은…’으로 시작되는데, 당대 노동현장의 잔혹한 현실을 담은 아픈 노래였다.
서방님의 손가락은 여섯 개래요 / 시퍼런 절단기에 뚝뚝 잘려서 / 한 개에 오만 원씩 이십 만원을 /술 퍼먹고 돌아오니 빈털터리래…
https://www.youtube.com/watch?v=l7qeSXNaXCA
내가 입대했을 때 이 곡은 ‘김일병 송’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불리고 있었는데, 만연한 군대 비리를 풍자하는 노래였다. ‘김일병 송’ 역시 부대마다 매우 다양한 가사가 붙어 구전되었다.
소령 중령 대령은 찦차 도둑놈 / 소위 중위 대위는 권총 도둑놈 / 하사 중사 상사는 부식 도둑놈 / 불쌍하다 김 일병은 건빵(짠밥) 도둑놈 / …야, 야, 야, 야…
우리 부대의 가사는 이러했는데 유튜브 검색해보니 ‘소령 중령 대령은 양주 처먹고…’이렇게 시작된 가사도 있었다. 병장 때 야외 보초를 함께 서게 되었을 때 조 상병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도둑질을 해도 별 계급장 단 장성급들이 더 크게 했을 텐데, 왜 노래가 소령 중령…부터 시작하지요? (노래) ‘소장 중장 대장은 음음 도둑놈…’”
“‘음음’이 뭐야?“
”몰라요, 이 병장님이 적당한 말을 대입해 보세요.“
”정권!“
”정권…도둑놈이오? 쉬잇!“
우리는 동시에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었다. 그때는 아직 쿠데타의 주역이 철권통치를 하고 있던 유신시대였으므로.
이제 부대 오락시간을 마칠 시각이다. 모두 박수 치며 '부대가'를 합창한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강원도에 소재한 거의 모든 부대의 부대가는 <소양강 처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