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두 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LG배와 좋은 인연으로 시작했던 이세돌 9단이 13회
대회 결승에서 숙적 구리 9단에게 패한 이후에는 깊은 부진에 빠져 있다.
두 차례 우승 이세돌, 5년 연속
1회전 탈락
최근 10년간 16강 두 번이 가장 나은 성적
23회째를 맞은 '청년 LG배'가 신록이 푸르럼을 더해가는 계절에 경기도 광주의
곤지암리조트 특설무대에서 본선 경쟁을 시작했다.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이
곤지암리조트를 다시 방문한 것은 6년 만이다. 2009년 14회 대회부터 2012년 17회 대회까지의 본선 개막식과 32강전, 16강전을 벌인
이후다.
추억의 무대에서 한국은 기분 좋게 출발했다. 28일 열린 32강전에서
7명이 16강으로 올라섰다. 전원 중국 기사와 대결을 펼쳐 7승4패를 거둔 결과이다.

▲ LG배의 곤지암리조트 개최는 6년 만이다.
32강전 맞대결에서 한국이 중국에 우세를 보이기는 20회 때의 7승4패
이후 3년 만이다. 21회 때 5승6패, 22회 때 1승7패의 부진을 바꿔놓았다. 16강 병력수에서 중국에 앞선 것도 20회 대회 이후가
된다.
'황소 삼총사' 일원인 85년생 절친 원성진ㆍ박영훈 9단이 30대
파워를 과시했다. 원성진은 32개월 연속 중국 톱랭커 커제 9단을, 박영훈은 디펜딩 챔피언 셰얼하오 9단을 잡았다. 또 한 명 최철한 9단의
패배가 아쉬운 소식으로 전해졌지만 '건재한 황소'를 보여주었다. 원성진ㆍ박영훈은 이번 대회 최고령 16강이 됐다.

▲ 중국랭킹 1위와 전기 우승자를 각각 꺾은 동갑내기 원성진 9단(왼쪽)과 박영훈
9단. 원성진은 12살 아래의 띠동갑 커제 9단에게, 박영훈은 13살 아래의 셰얼하오 9단에게 불계승했다.
현역 세계챔프 대결에서 박정환 9단(몽백합배)이 구쯔하오
9단(삼성화재배)을 완파한 것도, 입단동기의 '양신' 신진서 9단과 신민준 8단이 동반 진출한 것도, LG배와 인연 깊은 강동윤 9단과 이원영
7단이 활약한 것도 지난 2년간 중국에 내주었던 우승컵 탈환에 힘을 실었다.
일본은 2년 연속 두 명(21세 이치리키와 19세 시바노)의 진출자를 낸 것에 희색이 만연하면서도 자국 일인자이자
전기 준우승자 이야마 유타 9단의 탈락에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 전기 준우승자이자 일본 8관왕 이야마 유타 9단(오른쪽)은 자오천위 6단에게 패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LG배 첫 16강에 오른 19세 자오천위는 동갑내기 신민준 8단과 8강 티켓을 다툰다.
대만은 2000년생 천치루이 5단의 승리로 3년 만에 16강전을 두게
됐다. 천치루이는 12세 때 한화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을 우승했던 대만의 바둑 천재로 현재 한국의 이세돌 바둑도장에서 수학 중이다.
-7대 메이저 타이틀 홀더 중 박정환만 생존
-중국 탈락자
10명 중 5명이 현역 세계챔프
빛 뒤에는 그늘도 있었다.
이세돌 9단은 LG배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웨이제 9단에게 패하면서 5년 연속 1회전(32강) 탈락이라는 믿기지 않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연속 우승을 단 한 번도 허락지 않고 있는 LG배에서 이세돌은 두 차례(7ㆍ12회 대회) 정상에 올라 이창호 9단의 네 차례 우승
다음 기록을 갖고 있다.

▲ 이세돌 9단은 세계대회 본선에 최고령 기사로 이름을 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2009년 2월, 곡절 끝에 눈발 휘날리는 백담사 대국장에 새벽 시각이
되어서야 촉박하게 도착한 이세돌 9단은 불과 몇 시간 후 숙적 구리 9단과 벌인 13회 대회 결승전을 0-2로 패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후로부터 LG배에서 멀어져 갔다.
그 이듬해부터의 성적을 보면 눈을 의심케
한다. 매 대회 국가시드로 직행한 본선에서 1회전 탈락을 되풀이했다. 총 열 번 치른 대회에서 32강전 탈락이 여덟 차례나 됐다. 나머지 두
번도 16강에 그쳤다. 극히 저조했다.
추첨운도 따르지 않아 강한 상대를
만나기도 했지만 같은 기간 삼성화재배에서 우승 1회, 준우승 1회, 4강 2회, 8강 2회를 거뒀던 성적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중국도 우울한 32강전이 됐다. 7대 메이저 대회 중 박정환의
몽백합배를 제외한 6개 대회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고, 그중 본선에 오르지 못했던 천야오예 9단을 제외한 5명의 현역 챔프가 32강전에 나섰으나
전원 탈락했다.
커제 9단(신오배), 탕웨이싱 9단(응씨배), 셰얼하오
9단(LG배), 구쯔하오 9단(삼섬화재배), 탄샤오 9단(춘란배)이다. 이들 모두는 탑승 날짜를 29일로 바꿔 중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 이세돌 9단과 커제 9단이 떨어져 나간 16강 대진표는 왠지 빅매치가 줄어든 느낌을
준다. 16강에 1999년생 3명, 2000년생 2명이 올라간 것은 특기할 만하다.
한편 셰얼하오의 패배로 전기 우승자가 32강전에서 탈락하는 LG배 징크스가 3년째 이어졌다. 연속 우승자가 나오지
않은 LG배 전통도 계속됐다. 이야마 유타까지 전기 우승ㆍ준우승이 한꺼번에 32강에서 탈락한 것도 처음이다.
32강전을 승리한 기사들은 휴식일인 29일에 대회장 주변을 산책하거나 인터넷 바둑을
두거나 하면서 16강전을 준비했다. 30일 속행되는 16강전은 한중전 5판, 한일전 2판, 중대전 1판으로 진행된다. 우승상금은 3억원, 8강에
오르면 1400만원을 확보한다.


▲ 1회전에서 발길을 돌린 중국의 스무 살 세계챔프 셰얼하오 9단(왼쪽)과 구쯔하오
9단.

▲ 올해 중ㆍ일 용성전에서 커제를, LG배 32강전에서 탕웨이싱을 꺾은 시바노
도라마루의 2010년 삼성회재배 아마추어 선발전 당시의 모습. 두 살 위 형도 도쿄대를 들어간 후 지난해 프로가 됐다. 스승 홍맑은샘 프로는
시바노에 대해 "항상 조용히 공부하고 복기 때 어려운 질문을 하면 울기도 했다"고 전했다.

▲ 7대 메이저 타이틀 보유자 중 유일하게 16강에 오른 박정환
9단.

▲ 개막식 인터뷰에서 라이벌을 누구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반농담조로 "알파고"라
대답했던 커제 9단. 올해 14승13패로 그저 그런 성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