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변강쇠 타령」은
「가루지기 타령」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가루지기라는 말의 어원은 크게 두 가지로 전해지고 있다.
장승을 베어서 땔감으로 쓰던 변강쇠가
그만 동티가 나서 죽었는데 그의 시체를 운반하는 자마다
변을 당하곤 했다.
나중에 납덱이라는 자가 변강쇠의 시체를 등에 가로 졌는데
그 시체가 그만 가로로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에서
가루지기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 그 첫째이다.
둘째는 변강쇠의 짝인 옹녀는 음기가 센 여자로 유명한데,
그것은 그녀의 음문이 보통 여자들처럼 세로로 찢어지지 않고
가로로 찢어진
가루지기였기 때문이었다는 얘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
스물 사흘 달이 옥녀봉의 움푹 파인 골짜기 사이에서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달빛줄기가 가랭이를 벌린 계곡의 나무며 풀잎을 간질거리며 슬금슬금 기어내려 왔다.
달빛에 온 몸이 황홀해진
그 여자가 흠칫 어깨를 떨었을 때였다.
'컹컹컹'. 개가 짖었다.
울음소리가 옥녀봉 계곡을 크렁크렁 울리는 걸로보아
김초시네 누렁이가 분명했다.
놈은 어지간한 송아지는 왔다가
얼굴도 못 내밀고 돌아갈만큼 덩치가 우람했다.
그러나 놈이 동네 사람들의 입살에 올라 심심찮게 짓찧어지는 것은
큰 몸뚱이나 천둥같은 울음 때문이 아니었다.
누렁이 놈은 배꼽 아래에 달고 있는 살몽둥이가
김초시네 상머슴 억쇠의 팔뚝보다 실했다.
그 우람한 물건만 가지고도 놈은 기세가 당당했다.
다른 숫누렁이들의 기를 죽이는 것은 물론 옥녀마을 남정네들의 체신머리를
여지없이 깎아먹고 있는 것이었다.
따뜻한 봄날,
개나리꽃 빛깔의 햇살이 풍성하게 내려쪼이고 있는 담밑에 앉아
놈이 제 살몽둥이를 꺼내놓고 혀로 살살 핥고라도 있을라치면
아랫도리가 허전한 아낙들이
일도 없이 그 앞을 몇 번씩이나 지나치면서 흘끔흘끔 침을 삼키기 마련이었으며,
아랫도리가 부실한 남정네들은
저 놈의 개새끼를 몽둥이로 쳐죽여야 한다고 눈을 하얗게 까뒤집기 일쑤였다.
그 소문난 누렁이가 하필이면 지금 짖고 있는 것이었다.
"아부님, 어무님, 잘 살으시요. 이 년의 복이 그 뿐인 걸 어쩌겠소.
잘 있거라, 누렁아. 연분이 닿으면 우리 저승에서라도 만나자꾸나."
소나무 가지에 걸어놓은 새끼줄 목매에
목을 디밀다 말고 달빛이 훔추룸히 내려앉은 마을을 돌아보며
그 여자가 중얼거렸다.
눈물이, 토란잎에 맺힌 이슬같은 눈물이 그 여자의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여자는 환향녀였다.
병자년 난리 때 청나라 오랑캐한테 끌려가
짐승같은 청나라 놈들의 요강단지 노릇을 하다가 어찌어찌
고향으로 돌아 온 여자였다.
"네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명색이 사대부 가문에서 어찌 환향녀를 받아들인다는 말이더냐?
네가 생각이 있다면 그 더러운 몸을 가지고 어찌 내 집 문전을 얼씬 거린다는 말이더냐?
네 서방은 이미 새각시 얻어 자식낳고 잘 살고 있으니, 돌아가거라."
시어머니의 말은 지엄했다.
오랑캐 놈들한테 살을 찢기면서도 목메이게 보고 싶었던 서방님은
끝내 얼굴 한번 내밀지 않았다.
설령 쫓겨날망정 밤이나 낮이나 눈물로 그리워했던 서방님의 얼굴을 한번만 뵙고,
그리웠노라고, 서방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한없이 그리웠노라고, 한 마디만 하고 싶었으나,
서방님은 기침소리 한번 보내오지 않았다.
※용어풀이
환향녀(還鄕女) : 조선시대 병자호란때 청나라로 끌려갔던 여인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을때 그들을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이란 뜻으로 부르던 데서 유래했다.
청나라로 끌려간 인원은
약 60만명 정도인데, 이중 50만명이 여성이었다고 한다.
극한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돌아온 환향녀들은
따뜻한 환대가 아닌 정절을 지키지 못한 여자라는 모욕을 당하고
이혼을 당하거나 처녀들의 경우 스스로 자결 또는 쫓겨나는 등
수 많은 환향녀들이 죽을 때까지 수모를 받았다.
☆☆☆
돌아서는 그 여자의 걸음걸이가 후둘거렸다.
오랑캐 놈들한테 끌려간 것이 내 잘못이냐고,
그놈들한테 끌려가 날마다 아랫도리를 찢기운 것이 내 잘못이냐고,
고래고래 포악이라도 부리고 싶었다.
너희놈들의 잘못이 아니냐고,
연약한 여자 하나 지켜주지 못한 불알 달린 사내놈들아,
너희 놈들의 잘못이 아니냐고,
땅을 치며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걸 꾹 참고
그 여자는 시댁을 물러나왔다.
목이라도 매고 싶었다.
서 발 새끼줄을 나무가지에 달아놓고 목이라도 매고 싶었다.
대문 안에 들어서지도 못하게 앞을 가로막고 내쫓은 시어머니와
끝내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은 서방님에 대한 원한을 가슴에 품고
목매에 목을 매어 대롱대롱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더러운 것이 정이라고,
딸을 머나 먼 오랑캐의 땅에 보내놓고 눈물로
모진 세월을 살았을 육친이 보고 싶었다.
엄하지만 자상했던 아버지도 보고 싶었고,
어린 시절부터 여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던 어머니,
딸 그리움에 흘린 눈물로
눈밑이 짓물렀을 어머니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싶었다.
새까맣게 타서 숯껌정이 다 되었을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하루 낮 하루 밤만 울고 나면 오랑캐 땅에서 당했던 설움이 서리서리 녹아내릴 것 같아,
꽃가마 타고 갔던 길을 터벅터벅 걸어 온 친정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친정 아버지가 그 여자를 내몰았다.
"출가외인이니라. 너는 이미 박씨문중의 여자가 아니니라.
죽어도 이씨문중 귀신이 될 여자니라.
명색이 천자문을 떼고 명심보감을 읽었던 옥녀
네가 그것도 몰랐더란 말이더냐? 어서 썩 물러가거라."
나이 마흔이 넘어 어렵게 본 고명딸이라고,
마을 뒤 옥녀봉의 정기를 타고 난 딸이라고,
옥녀라는 이름을 손수 붙여주었던 아버지였다.
그 아버지가 서릿발이 내린 눈빛으로 딸의 등을 떠밀었다.
그 여자, 옥녀가 마당에 털썩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
"아, 아부님. 이 년이 오랑캐 땅에 끌려 간 것이 이 년의 잘못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이 년도 서방님과 함께 아들 낳고 딸 낳으면서 오손도손 살고 싶었나이다.
하오나 오랑캐 놈들이 쳐들어오자
서방님도 시아버님도 마을의 남정네들도 제 한 몸 살기에 급급하여 모두들 도망을 쳤나이다.
이 년, 오랑캐한테 끌려가고 싶어서 끌려 간 것이 아니옵니다."
"듣기 싫구나. 그런 말은 네 시댁에 가서 하거라.
어서 썩 물러가거라. 머슴을 시켜 끌어내기 전에 물러가거라."
아버지는 절벽처럼 꿈쩍을 안 했다.
"영감, 시집에서도 쫓겨 온 저것을 어찌 살라고 내치시려 하십니까?
세월이 그랬던 것을, 어찌 저것만 탓하겠습니까?
데리고 사십시다. 우리가 데리고 사십시다."
어머니가 애원했으나, 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었다.
"험한 꼴 당하기 전에 네 스스로 물러가거라.
네가 정녕 생각이 제대로 박힌 아이였다면, 조선 땅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니라.
너를 반겨줄 곳이 어디 있다고 부끄러운 얼굴 쳐들고 돌아왔더란 말이더냐?
네 스스로 강에 몸을 던지던지, 목이라도 매야했을 것이니라."
아버지가 돌아앉아 버렸다.
한나절을 마당에 퍼질러 앉아 버티다가 후둘거리는 몸뚱이를 끌고 친정집 대문을 나왔다.
나오는 길에 헛간에서 새끼줄 서너발을 끊어가지고
옥녀 마을 동구 밖을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죽으리라. 내 손으로 목을 매어 죽으리라.
죽어 귀신이 되어 사내놈들한테 원한을 갚으리라.
내 정녕 귀신이 된다면 사내놈들의 불알이란 불알은 모조리 뽑아버리리라.
다시는 여편네와 살풀이도 못하게 할 것이며,
자식새끼도 못 낳게 만들고 말리라. 꼭 그렇게 하리라.'
사내들에 대한, 오랑캐놈들이 쳐들어왔을 때에 연약한 여자 하나 지켜주지 못하고,
제 한 몸 도망가기에 바빴던 사내놈들에 대한 원망으로 옥녀의 가슴에 서릿발이 내려 앉았다.
남녀간의 살섞는 재미도 채 모르면서도
이불 속 송사를 벌일 때에는 온갖 달콤한 말로 귀를 즐겁게 하고,
온 몸이 저릿저릿한 기쁨을 주기도 했던 서방님에 대한 원망이,
그 즐거움, 그 기쁨의 몇 배나 되는 미움으로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그 여자였다.
제 아낙이 거칠디 거친 오랑캐 놈의 손에 개처럼 끌려가는데도 나몰라라,
제 한 몸 다락에 숨기고 외면했던 서방님에 대한 원한을 가슴에 꽁꽁 간직한 채
그 여자는 목매용 새끼줄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달은 이제 옥녀봉 골짜기를 훌쩍 벗어나
산이며 계곡이며 나무며 풀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달빛의 애무에 취한 계곡이 꿈틀거리고,
나무들이 부시시 잠을 깨어 아으아으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컹컹컹."
다시 김초시네 누렁이 놈이 생각났다는 듯이 짖어댔다.
오늘 낮에는 질퍽한 살풀이잔치가 없었던 것일까?
그래서 암내 난 암캐가 그리워 부르고 있는 것일까?
놈의 울음에서 진하디 진한 살냄새가 느껴졌다.
우람한 살몽둥이에 침을 흘리던 암캐들이 하루에도 몇 마리씩 따라다니던 누렁이였다.
따지고 보면 누렁이는 옥녀 마을 모든 암캐들의 지아비였다.
놈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암내난 암캐와 흘레를 했다.
그것도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골목을 차지하고 서서 당당하게 흘레를 했다.
☆☆☆
사타구니 사이의 살몽둥이가 부실한 사내들의 기를 죽이며,
그 부실한 서방님의 살몽둥이 때문에 밤마다 아랫도리가 허전한 아낙들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하루에도 서너마리씩 암캐를 죽이며 씨를 심어주던 누렁이였다.
옥녀가 시집을 가기 전부터도 누렁이는 옥녀마을 암캐들의 지아비이며 왕이었다.
누렁이 때문에 다른 숫개들은 얼씬을 못했다.
설령 떠돌이 숫개가 마을에 나타나도 암캐들이 눈길 한번 안 주었다.
'누렁아, 너는 좋겠구나.
나는 시방 목을 매달아 죽으려고 하는데, 너는 암놈이 그리워 짖고 있구나.
잘 살거라. 널랑은 지어미를 오랑캐 땅에 보내지 말고,
설령 지어미가 오랑캐 땅에 끌려가 몹쓸짓을 당하고 왔다해도 내치지 말고, 잘 살거라.'
혼자 중얼거리다 보니까 옥녀는 눈물이 났다.
토란잎에 맺힌 아침이슬 같은 눈물이 그녀의 뽀얀 두 볼 위로 주루룩 흘러내렸다.
"컹컹컹, 끄륵 끄륵 끄륵."
다시 누렁이가 짖었고, 달이 성큼성큼 중천을 향해 걸어왔다.
옥녀가 하늘의 달을 올려다 보다가
목매에 목을 디밀고 그네를 타듯이 두 발을 훌쩍 날렸다.
눈물젖은 달빛이 아슴히 멀어져 가고,
옥녀봉 계곡이 온 몸을 뒤틀며 몸부림을 쳤다.
나무며 풀잎이 퍼르르 퍼르르 떨었다.
옥녀의 귀에서 누렁이의 짖는 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밀려나고 있을 때였다.
다른 소리 하나가 이제 막 닫히려는 그녀의 귓속을 파고 들어왔다.
"어허, 이래도 이 놈이
정승판서의 자제로 팔도감사 마다하고 각설이로 나섰소."
각설이였다.
피박을 나왔다가 움막으로 돌아가던 각설이였다.
부자집 안방마님의 환갑잔치에서 물림상이라도 받았던 것일까?
어깨에 멘 걸망이 제법 묵직하게 흔들렸으며 막걸리라도 서너사발 마셨는지,
걸음을 떼어 옮길 때마다 이리비틀 저리비틀 온 몸이 비틀거렸다.
"허허, 이것이 뭣이다냐?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흔들리는 이것이 시방 뭣이다냐?
이부자네 머슴님이 가다가
나 묵으라고 매달아 놓은 소다리다냐? 돼지다리다냐?
그것 참, 고이한 일이로고."
각설이 놈이 술이 취해 흐리멍텅한 눈을 가늘게 뜨고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물건을 기웃이 올려다 보았다.
"이것은 사람이구나. 치마를 입은 것을 보니, 사람 중에서도 계집이 분명하구나.
허허,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내려주실려면 제대로 숨을 쉬는 계집을 내려주실 것이지,
목을 달아 뻣뻣하게 굳은 계집을 내려주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