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행
국수 로드
방송일 2023년 12월 18일(월) ~ 2023년 12월 22일(금), 731편.
*영상보기ㅡ>https://youtu.be/ZigX-7cDyWI?list=PLvNzObWMMx6vYVQFfFq10QnHHumb_dhoO
쌀쌀한 날씨의 여파인지
또 한 해를 떠나보내는 아쉬움 때문인지
한껏 움츠려든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은 이맘때,
뜨끈하고 쫄깃한 국수 여행은 어떤가요?
밀가루가 귀해 잔칫날에만 먹었던 시절부터
밥 다음으로 많이 먹는 음식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하며
맛도 모양도 다양해진 삶의 희로애락이 담긴 국수.
그 가닥처럼 길고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어
특별한 날이면 국수를 먹었다는 조상들처럼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좋았다면 좋았던 대로
떠나가는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로운 해의 인생 여정을 잘 살아가자는 소망을 담아
국수 여행을 떠나 보자.
1부. 고향의 맛, 오방색 국수
경남 거창에는
한국의 전통 색상인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오방색으로
국수를 만드는 가족들이 있다.
젊은 시절, 라면 회사에 몸담았다가
중년의 나이에 본인만의 국수 공장을 세워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자신의 고향인 거창에서
오방색 국수를 개발한 국수 경력 40년 차 김현규 씨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돕기 위해 3년 전 이곳으로 내려온
두 딸들이 그 주인공이다.
두 딸과 함께 큰사위, 작은사위까지 손을 보태고 있지만
현규 씨의 고집스러운 국수 철학으로
흑미, 비트, 단호박, 쌀, 부추 등
천연 재료로만 국수의 오방색을 내다보니
온 가족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 해 질 녘까지 국수에만 매달려야 한다고.
그런 현규 씨 부녀가 오늘은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거창 나들이를 나왔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단골 식당에 들러
가족의 오방색 국수로 만든 요리도 맛보고
경치 좋다는 수승대에 올라 다시 끔 국수에 대한 각오도 다져보는데...
생이 다하는 날까지 고향인 거창에서
오방색 국수를 만들고 싶다는
국수에 진심인 김현규 씨 가족의 하루를 만나본다.
2부. 구룡포 사람들의 소울 푸드
신라 진흥왕 때
앞바다에서 10마리의 용이 승천하다가 1마리가 떨어져
아홉 마리만 승천한 포구라 하여
‘구룡포’라는 지명이 붙었다는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
이곳 사람들에게 국수란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먹을 게 부족하던 시절,
구룡포 뱃사람들이 남은 해산물이며 채소며
‘이것저것을 모아 만들어 먹었다’하여
‘모으다’의 경상도 방언으로 이름 붙여진 모리국수.
구룡포에서 아내, 장모님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김수옹 씨가
오늘 추운 겨울날에도 어김없이 바다로 나가 작업하는
해녀들과 그런 해녀 어머니 인덕 씨를 위해
홍게를 넣고 팔팔 끓인 모리국수를 준비했다.
말똥성게를 잡고 돌아온 구룡포 해녀 군단의 언 몸을 녹여준
뜨끈한 모리국수 한 그릇에 다들 웃음꽃이 피었다는 후문.
과거, 구룡포에는 많은 국수 공장들이 있었다.
55년 동안 억척스럽게 일궈온 국수 공장을
유일하게 지켜오고 있는 이순화 할머니.
지금은 연로한 노모의 뒤를 이어 아들 하동대 씨가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어머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원래 하던 일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국수 일을 시작했다는
동대 씨는 오늘도 해풍에 국수를 말려 면을 만들고 있다.
매서운 바닷바람 속에서도 구룡포 사람들로 하여금
또다시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힘의 에너지원에는 언제나 국수가 있었다.
이들의 국수 이야기를 따라 구룡포로 떠나본다.
3부. 기차 타고 국수 여행
음식과 사람 이야기를 좋아하는 정태겸 여행작가.
그가 기차를 타고 추억 속 국수를 찾아 나섰다!
느리지만 여행의 낭만이 느껴지는 무궁화호를 타고
내린 곳은 다름 아닌 대전역.
과거 대전역 승강장에서 10분 정차하는 동안
후루룩 마시다시피 했던 가락국수의 추억을 찾아온 정태겸 작가!
현재는 역 밖으로 자리를 옮긴 가락국수 식당을 찾아간 그.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는 그때 그 겨울의 맛과 떠오른
오래전 부모님과의 기억으로 몸은 물론 마음까지 녹였다.
국수로 몸이 풀린
정태겸 작가의 다음 행선지는 장태산자연휴양림.
대전 8경 중 하나인 이곳에서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한아름 안아보고
출렁다리를 걸으며 맑은 공기까지 잔뜩 마셨다.
다시 무궁화호에 올라 예전 기차 속 풍경처럼
달걀과 사이다를 먹으며 도착한 곳은 광주역이다.
한옥과 오래된 교회 등 근대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양림동을 지나
어머니의 어린 시절 속 이야기로만 들었던 독특한 설탕국수를 만났다.
흰 설탕만이 면 위에 가득 뿌려진 국수를 먹으며
광주 과거의 맛을 느꼈다는데...
옛 추억 가득한 뜨거운 국수로
겨울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데워줄,
기차로 떠나는 칙칙폭폭 추억 여행을 시작해 본다.
4부. 지리산은 '맛'있다
음식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한 최고의 조미료는 등산!
여기 국수를 위해 겨울 지리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산악가이드 박승춘 씨와 두 지인이 그 주인공.
신발에 아이젠까지 차고 눈 쌓인 지리산을 등반했다.
노고단 정상을 찍고 내려온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어탕국수!
함양에서 2대가 함께 어탕국수를 만든다는 맛집으로 향한 세 사람.
미꾸라지, 메기, 붕어, 피라미 등 다양한 생선으로 육수를 내고
매운 양념으로 칼칼한 맛을 내어 해장 음식으로도 딱인 어탕국수는
한 그릇으로도 이제 막 설산에서 내려온
세 사람의 몸을 녹이기에 충분했다고.
대한민국의 대표 희극배우 전유성!
4년 전 지리산 아래 남원의 한 시골 마을에 정착했다는
그의 국수 사랑은 누구나 한 번씩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한때 직접 만든 국수로 식당까지 열었던 그가
이번에는 평소 즐겨 찾는다는 국수 맛집을 공개했다.
또 다른 지리산 자락인 함양에 위치한 그의 맛집은
이름부터 특이한 주전자 국수가 주메뉴로,
주전자에 육수가 따로 나오기 때문에 각자의 기호에 맞게
잔치국수나 비빔국수 또는 둘 다 맛볼 수 있는 음식이라고.
국수에 대한 추억과 함께 한적한 지리산 생활기를 들려줄
개그맨 전유성 씨를 만나본다.
‘어머니의 품’처럼 너른 만큼
저마다의 이야기와 맛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
지리산으로 떠난다.
5부. 정토사 국수 먹는 날
전남 광양에 위치한 사찰, 정토사.
하늘에 깨를 쏟은 듯 수많은 별이 빛나는 새벽에
이 작고 고요하던 사찰이 소란스럽다.
정토사의 주지인 법진스님이
이곳에 모인 청년들과 함께 메주를 만들어 보기로 한 것!
오늘 여기 온 사람들은 각자 성별도 나이도 심지어 종교도 다르다.
마치 종교 대통합의 현장 같은 이곳에서
이른 시간에 모여 피곤할 법도 하건만 다들 그런 기색 없이
하얀 콩 거품이 생기는 솥을 보는 눈이 초롱초롱하다.
콩을 잘 저어주다가 끓어넘칠 때쯤 불을 끄고
짚을 깔아 각자 손으로 콩을 빚어 만든 메주를 올려두는 작업까지 마쳤다.
새벽부터 고생한 청년들을 위해 스님이 준비한 특식은 팥칼국수!
직접 쑨 팥에 밀가루 반죽을 한 면을 넣어 만든 팥칼국수에
예전에 담가놓았던 김치까지 곁들이니 이번엔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절 마당에 다시 모인 청년들은 스님이 애지중지하는 장독대를 구경하다
된장, 간장 통 하나씩을 품에 안고 다음을 기약하며 사찰을 떠났다.
혼자 남았지만 쓸쓸할 새 없이 바로 다음 요리에 돌입한 스님.
장독대에서 푼 간장 한 숟가락만을 메밀면에 간단히 올리는
메밀국수를 먹을 때면 남부럽지 않다.
요리할 땐 행복하고 베풀 땐 즐겁다는
손맛 좋은 법진스님의 놀이터, 정토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