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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교신자는 복을 짓기는커녕 복을 얻으려 하고 있다. 그러니까 백 번 절에 다녀도 헛방이다. 복을 왜 지어야 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지어야 되는지를 배우는 곳이 절인데, 가르쳐 주겠다고 하면 바쁘다고 한다. 그래서 기도만 하겠다고 한다. 기도도 자기들은 바빠서 못하겟다고 한다. 그래서 돈을 얼마 줄 테니 스님들보고 대신 좀 해달라고 한다.
그들은 복을 직접 지어 갖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무조건 얻으려고만 하고 있다. 얼마나 다급하면 그렇게 하겠느냐 하겠지마는, 그런 형식으로 다녀서는 자기도 절도 다 긍극적으로는 소득이 없다.
그래도 그들은 아직 복에는 관심이 있는 자들이다. 그런 복이 떨어지면 인과를 믿지 않게 된다. 자신을 자신이 책임지지 않는다. 신에게 맡겨 버린다. 신의 의향대로 하소서이다. 신의 역사를 무조건 따르고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자기 목숨을 능동적으로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한 단계 낮게 취급해 버리는 것이다.
자기 목숨 하나 건수하지 못해 신에게 자신을 신탁해 버린 자들은 이제 겁이 없다. 무슨 죄든지 다 짓고 다닌다. 죄를 겁내지 않고 그 인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까짓것 그 어떤 나쁜 짓을 해도 자기들 신이 다 알아서 해결해 줄텐데 뭘 겁내고 두려워할 것이겠느냐 하면서 대단히 대담해진다. 그래서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살생을 하고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쳐대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독재타도를 외치고 인권회복을 외친다. 세상에 제일가는 독재자는 자기들의 신이다. 지 멋대로 해도 누구 하나 찍소리 하지 못한다. 무조건 항복하고 무조건 복종이다. 그런 신의 무지막지한 횡포에 대응해 독재타도를 마당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도 그들은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고작 인간 독재자만 눈에 보일 뿐이다. 조금 더 진전되면 분명 그들이 신에도 반기를 들고 대항할 것이다.
인권회복도 마찬가지다. 불교는 이미 2천5백 년 전에 인권운동의 혁명이 일어났다. 부처가 신의 족쇄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신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매양 인권타령 하고 있다. 코미디언 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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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인과를 두려워하고 복을 짓기를.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