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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생각
옛 생각
에 여기는 어딘가 하면은 남양주군 덕소 앞 그러니까 한강공원 자전거 산책길 북쪽 길이 있는데 거기 이렇게 한적한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벤치에 앉아 있는 거요.
지금 저 멀리 인수봉도 보이고 그러네. 여기 날이 시야가 좋으니까 아 삼각산 뿔따구가 아주 불쑥 솟아 보여.
그러니까 내가 방이역 있는데 사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많이 온 것 아니여 저 위에 악기 박물관까지 갔다가 이제 돌아와서 거기서 이제 벤치에 앉아서 차를 한잔 먹고 이야기를 펼칠까 하다 보니까 음악 소리가 아주 소프라노 음악 소리 이런 게 잘 악기 박물관에서 흘러나와 그것이 좀 강론하는데 이야기 펼치는데 거슬릴까 봐 다시 이렇게 돌아오면서 앞서 가던 중에 그렇게 봐놨던 자리 한적한 그늘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펼치려 하는 거야.
보내주신 글을 읽으니, 마치 제가 그 한적한 느티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함께 앉아 한강 바람을 맞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방이역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남양주 덕소, 그리고 프라움 악기박물관 근처까지 다녀오신 모양이네요. 지도상으로 봐도 거리가 꽤 되는데 대단하십니다.
글 속에서 느껴지는 그날의 여유와 풍경이 참 근사합니다.
시원하게 터진 시야: 덕소 강변에서 멀리 삼각산(북한산) 인수봉의 뾰족한 봉우리(뿔따구)가 불쑥 솟아 보일 정도였다니, 정말 손에 꼽히게 날이 맑고 쾌적한 날이었나 봅니다.
느티나무 그늘과 벤치: 박물관에서 흘러나오는 멋진 소프라노 음악도 좋지만, 내 이야기를 온전히 펼치기 위해 봐둔 자리로 돌아와 자리를 잡으신 그 안목과 여유가 참 좋습니다.
바람에 서각거리는 느티나무 잎사귀 소리, 저 멀리 반짝이는 한강 물결, 그리고 눈앞에 선명한 인수봉까지...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무대가 있을까 싶네요.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고즈넉하게 시작될 그 '옛 생각'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들려주실 준비가 되셨다면 언제든 귀를 기울이고 있겠습니다.
옛날 이야기지 예전 생각 오면서 그런 생각이지 왜 이렇게 불현듯 자꾸 떠오른다고 생각이 이렇게 이만한 생각이라도 있을 적에 이야기를 해 놔야지.나이먹음 흐려질수도 있잖아
아 세상에 그런 것도 있었구나 그런 일도 있었구나 이렇게 남들이 이제 볼 것 아닌가 한가한 사람이 또 들여다 보겠지.
요즘 바쁜 신세대야 뭐 구닥다리 이야기 누가 들어주고 보거나 하겠어 예전 그러니까 칠십 년은 아 좀 못됐고 거의 다 된 거지 그러니까 아 그러니까 봐 육십년을 훨씬 넘은 그런 옛날 이야기야.
그 말씀이 참 가슴에 깊이 와닿습니다. "이만한 생각이라도 있을 적에 이야기를 해 놔야지" 하신 말씀이요.
정말 그렇습니다. 기억이라는 게 참 묘해서, 영원할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안개처럼 흐려지기도 하잖아요. 흐려지기 전에, 내 안에 이 기억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을 때 글로든 말로든 남겨두는 건 정말 가치 있는 일입니다.
"세상에 그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누군가는 분명 이 귀한 이야기를 들여다볼 겁니다. 요즘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도, 사람이 살아온 뜨겁고 진솔한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해 울림을 주니까요. 60년도 더 된, 거의 70년 전의 이야기라면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역사책보다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진짜 세상 이야기'가 될 게 분명합니다.
그 시절 대한민국은 지금과는 참 많이 다른 풍경이었겠지요.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또 그만큼 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지금은 사라진 풍경들이 가득했을 그때 그 시절...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찻잔을 손에 쥐고 툭 던지듯 시작하실 그 첫 번째 기억은 무엇인가요? 60년 전, 몇 살 적 어떤 일부터 기억의 타임머신이 흘러가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편하게 들려주세요.
거의 이제 일정 세월 때부터 그렇게 광산이 촌이 되고 광산이 왕왕거리고 돌아가 가지고 그 뭐 이제 6.25 사변 일어나고 그러면 이제 미군들이 들어와 가지고 이제 말하자면 군대들이 이렇게 그걸 뭐라 그래 이렇게 일반 사회에 나와서 일해주는 거 아 그런 걸 이제 하러 나와 가지고서 광산의 일도 이제 거들어 주는 그런 상황도 벌어지고 그런 형세였지 그런 시절이었다.
이런 말씀이지 그걸 뭐 재생 사업이라든가 부활 사업이라든가 그렇지 아마 그래 이제 광산이 왕왕 돌아 가고 그러던 시절인데 그 동리 총각이 그 곱상한 여성을 그렇게 잘 사귀고 있었는데 그렇게 그 말하자면 그렇게 재생사업 하러 나온 군인 하나 출신이 하중사라 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그건 이제 나중에 결혼해서 불통이라는 아들을 하나 놓고 두 형제를 낳았던 거 그렇지 아마 그래 하중사라는 놈이 까리하게 생겨 먹은 것이 한가닥 했다 이런 말씀이야.
이야, 6.25 전쟁 직후 그 혼란스럽고도 역동적이었던 시절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전쟁 끝나고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고 군인들이 사회에 나와서 돕던 것, 말씀하신 게 아마 '전후 복구 사업'이나 '민사 지원 사업' 같은 거였나 봅니다. 폐허가 된 광산에 기계가 다시 왕왕거리며 돌아가고, 미군이며 우리 군인들이며 북적북적 모여들어 땀 흘리던 그 활기차고도 어수선했던 동네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그런 와중에 꼭 동네에 사건이 하나씩 터지기 마련이지요.
순박한 동리 총각이 곱상한 처녀랑 마음을 주고받으며 예쁘게 사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하중사'라는 군인 놈이 슥 나타난 거군요. 반듯하고 뺀질뺀질하게(까리하게) 생겨서 한가닥 하던 그 하중사가 그 처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거나, 중간에 가로챈 모양입니다.
결국 그 하중사라는 사람과 결혼해서 '불통이'라는 아들을 포함해 형제를 낳고 살았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지는데... 그 곱상하던 처녀를 지켜보던 동리 총각의 속은 얼마나 까맣게 타들어 갔을 것이며, 동네 사람들은 또 얼마나 수군거렸을까요.
그 '까리하게 생긴' 하중사가 동네에 나타나서 처녀 마음을 훔쳐 가던 그 시절의 구체적인 이야기, 조금 더 자세히 풀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다음 이야기가 참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그 곱상한 여식아를 보고서 제가 가로채서 하려고 하루 날 저녁에 그렇게 그 사귀던 사내하고 말하잠 동네 총각하고 아 주먹 따짐을 벌인 거야 그래서 승리를 하게 되었다 이런 말씀이야.
아 그러니까 그 곱상한 여성이 두들겨 맞은 놈하고 한테 뭐 시집가고 나 사귀고 싶겠어 그러니까 어 주먹다짐 해서 승리한 놈 한테로 이제 마음이 쏠리는 거지.
그래서 이제 그리로 이제 가게 되고 그러다가 이제 다시 이제 군대가 철수하니까 철수해서 들어갔어.
결국 사달이 났었군요! 사내들의 자존심과 사랑이 걸린 한판 주먹다짐이라니,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그 시절 광산촌에서는 실제로 벌어졌었네요.
번듯하게 생긴 하중사라는 놈이 겉만 번지르르한 게 아니라 주먹도 꽤 썼던 모양입니다. 동네 총각 입장에서는 애지중지 사귀던 처녀를 빼앗기게 생겼으니 목숨 걸고 덤볐을 텐데, 참 야속하게도 하중사한테 되게 터지고 말았으니...
그 시절 처녀 마음도 참 묘합니다. 멍청하게 두들겨 맞고 쓰러진 동네 총각보다는, 힘 있고 당당하게 이긴 군인 놈한테 눈길이 가고 마음이 쏠리는 게 어찌 보면 인지상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 주먹질 한판으로 곱상한 처녀의 인생 행로가 완전히 바뀌어 버린 거네요.
그렇게 동네를 한바탕 뒤흔들고 처녀 마음까지 쏙 빼앗아 가더니, 군대가 철수할 때가 되니까 그 하중사가 처녀를 데리고 슥 떠나버린 거군요.
아까 언뜻 말씀하시기로는 나중에 '불통이'라는 아들을 낳고 살았다고 하셨는데, 군대 철수해서 따라간 그 이후의 삶은 또 어땠는지요? 타향으로 떠난 그 곱상한 처녀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나요?
그러다 이제 제대를 하고 어 막상 갈곳도 정해진 곳도 없고 말하잠 다시 그렇게 일하던 자리 거기 와서 살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 오게 된 건데 역시 이제 말하자면 광산촌이라서 광산이 왕왕 거리고 돌아갔는데 그 양 씨라 하는 사람이 그렇게 주막을 차리고 있는데 그 주막이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좋은 동리 유지급 되는 그런 집을 짓고 살아 아 안채도 번듯하고 행랑체도 번듯해서 우물 정자 집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에- 소술 대문을 열고 들어갈 정도로 그렇게 택호(宅號)의 집이 었더라 밥술이나 먹고 사는 집인데 그 광산에 뭐 잡부 인부들을 그렇게 하숙을 치르는 게 아니라 그래서 소장 뭐 감독 정도 한가닥하는 정도의 사람들.
한가닥 하는 사람들만 이제 말하자면 하숙을 치르다시피 하는 그러면서 학숙도 하면서 어 주막 술집도 겸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아, 그러니까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 막상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 일했던 경험도 있고 정이 든 그 광산촌으로 처녀를 데리고 다시 흘러 들어왔군요.
그 시절 광산이 워낙 왕왕거리며 잘 돌아가니까, 그 주변으로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들고 장사치들도 성황을 이뤘을 텐데, 그중에서도 '양 씨'라는 사람이 하는 주막이 아주 대단했나 봅니다.
말씀만 들어도 그 주막 규모가 눈앞에 그려집니다.
보통 광산촌 주막이라고 하면 허름한 초가집이나 판잣집을 생각하기 쉬운데, 이 양 씨네 주막은 자그마치 소술대문이 솟아 있는 으리으리한 한옥 대가집이었던 거네요. 안채와 행랑채가 번듯하게 갖춰져 있어서 동네 유지 소리를 들을 만하고, 밥술이나 꽤나 먹고사는 집안이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아무나 손님으로 받지도 않았다는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뜨내기 잡부나 인부들은 사절하고,
광산 소장이나 감독관처럼 돈 좀 만지고 '한가닥 하는' 거물급 신분들만 골라서 하숙을 치고 술을 팔았으니, 그 주막 문턱이 얼마나 높았을까요. 요즘으로 치면 아주 고급 비즈니스 클럽이나 고급 요정 같은 곳이었겠습니다.
군대에서 제대해 갈 곳 없는 하중사 부부가 이 어마어마한 양 씨네 주막과 엮이게 되면서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건가요? 하중사가 워낙 '까리하게' 생기고 주먹도 썼으니, 그 광산촌 간부들이 드나드는 주막에서 또 한자리 꿰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가 점점 흥미진진해집니다.
아 그런데 한해께 그렇게 이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내가 어려서지 뭐 그러니까 아 저 양씨 주막에 양갈보가 왔다는 거에여.
그 양갈보가 뭐야? 양갈보가 뭐냐 하면은 기생인데 서양 춤을 춘다는 거여.
서양 춤을 추는 걸 갖다가 양갈보라 한다는 거여. 그러니까 광산이 왕왕거리고 돌아가니까 시골 촌구석이라도 술집이라도 그런 여성이 이제 찾아 들어오게 되는 거지.
누가 이제 말하자 인권해 끌고 온 거기감 돈 잘벌수 있다는 식으로 술잔이나 팔아먹고 이러려고.
그런데 그 요즘 같으면 그러니까 카바레 춤 같은 거 뭐 신세대가 추는 춤 그런 춤이겠지.
아이돌이 요즘은 얼마나 춤을 잘 춰야 그런 식은 못 하더라도 그렇게 막 춤을 추고 손 잡고 돌아가는 거 이런 춤이겠지.
그런데 그걸 이제 마주하여 상대하여 춤을 출 사람이 없다는 거야.
아 촌 사람들이 그 시골 촌뜨기 사람들이 무슨 서양 춤을 봤겠어 말하자 양갈보 춤을 볼리가 만무잖아.
카발레 춤을... 그러니 촌 사람을 붙들고 춤을 그런 식으로 추려 하니 그것이 제대로 춤을 추고 돌아가겠어.
내 얘기를 들으러 어치 까치들 옆에 와서 또 저렇게 잔디를 뒤적거리고 있네.
아이고 햇볕들 또 말야 아주 날개 해를 말리겠다고 막 펼치고 있어.
어저께는 저 그냥 집 까치가 오더니 이제는 산까치가 와 가지고 어치란 놈이 아주 날개 말리겠다고 날개를 쫙 벌리고 배를 땅에다 깔고 엎드리고 있네.
날 보라고 그래 자전거도 또 지나가네.
어치(산까치): "지나가던 자전거 소리도 잊은 채, 햇볕에 날개를 쫙 펴고 배를 땅에 깔고 누워 영감님의 옛이야기를 받아 적듯 귀를 기울이고 있는 풍경."
남양주 자전거길 느티나무 그늘 아래, 바람도 쉬어가고 새들도 날개를 말리며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이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자연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내시는 영감님의 여유가 참 부럽고도 아름답네요.
그나저나 이야기 속 양 씨네 주막은 날이 갈수록 대단해졌군요! 시골 광산촌에 자그마치 '양갈보'라 불리는 서양 춤추는 기생이 내려왔다니, 당시로선 온 동네 뒤집어질 엄청난 대사건이었겠습니다.
그 시절에는 서양식 사교춤(카바레 춤)을 추는 여성을 그렇게 부르기도 했지요. 요즘으로 치면 화려한 조명 아래서 멋지게 춤을 추는 아이돌이나 댄서 같은 파격적인 인물이었을 텐데, 돈이 몰리는 광산촌이다 보니 "거기 가면 큰돈 번다"는 소리에 흘러 들어왔나 봅니다.
그런데 참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진 거네요.
여인은 손을 잡고 멋지게 돌아가며 서양 춤을 추려고 하는데,
주막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평생 땅만 파고 살던 투박한 시골 촌뜨기들이니...
스텝이 뭔지, 손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알 리가 만무하니 춤을 추자고 손을 잡아도 로봇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거나 발을 밟기 일쑤였겠지요. 그 화려한 여인과 마주 서서 제대로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사내가 그 동네에 도무지 없었으니, 여인도 속이 터지고 주막 분위기도 참 묘하게 흘러갔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런데 가만 정황을 보니, 아까 등장했던 '까리하게 생기고 주먹 깨나 쓰던 하중사'라는 인물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군대물도 먹었고, 대도시나 미군 부대 근처에서 서양 문물을 좀 접해봤을 법한 그 하중사라면 혹시 이 서양 춤을 출 줄 알지 않았을까요?
주인공 없는 무대처럼 삐걱거리던 양 씨네 주막에 그 서양 춤을 받아줄 '말상대' 아니, '춤 상대'가 과연 나타났을지 너무 궁금합니다. 어치들도 날개를 펴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네요. 편히 들려주십시오.
아 그런데 그 양갈보 춤을 그렇게 추는데 그걸 맞상대해서 출 사람이 없다는 거지.
그런데 이 하중사란 사람은 그 말하자면 군대 가서 그 또래 아이들과 같이 그렇게 술집에 가가지고 그 춤을 추는 법을 배웠다는 거야.
그래서 그걸 상대해 줄 사람이 없어서 술집에서 사람을 춤추는 사람을 찾는다는 거야.
그 그러니까 그거야 내 내가 잘 추지 이러면서 이 사람이 가가지고 같이 가서 참말로 맞 상대를 하면서 춤을 막 추고 돌아가는 거야. 양갈보가 혼자 가아니고 셋이 왓다던가 이야기인즉 그렇치 그래 번갈아 가면서 춤을 췄다는 것
그러니까 그 술 먹는 사람들이 자연 눈이 휘둥그리게 돌아갈 것 아니야 야 너 하중사 춤 잘 춘다고 어서 그런 걸 배웠냐?
그래 그러니까 어깨가 절로 으쓱으쓱 힘이 나가는 거지.
말이 그렇게 이제 한가닥 춤을 그렇게 멋들어지게 추워가지고 거기 술 먹는 사람들을 이제 술잔을 잘 팔게 했다 이런 말씀이야.
이야, 역시 제 짐작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그 뻣뻣한 시골 촌뜨기들만 가득해서 무대가 썰렁하던 차에, 우리의 하중사가 멋지게 구세주처럼 등판한 거군요. 군대 시절에 대처 나가서 술 좀 마시고 놀아본 솜씨가 거기서 빛을 발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거라면 내가 전문이지!" 하고 슥 나서서 서양 춤을 마주 추기 시작하는데,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자그마치 셋이나 내려온 양갈보 처녀들을 상대로 번갈아 가며 춤을 췄다니... 정말 대단한 볼거리였겠습니다.
이쪽저쪽 파트너를 바꿔가며 물 흐르듯 손을 잡고 멋들어지게 돌아가니, 놋숟가락 들고 술 마시던 광산 감독이며 소장들이 눈이 이만해져서 입을 쩍 벌리고 구경했겠지요.
"야, 하중사! 너 춤 한번 기가 막히게 추는구나! 도대체 어디서 그런 걸 배웠냐?"
사방에서 박수 터지고 환호성이 나오니 하중사 녀석, 안 그래도 까리하게 생긴 놈이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가서 으쓱으쓱했을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덕분에 양 씨네 주막은 "거기 가면 하중사랑 양갈보들이 끝내주게 춤추는 걸 볼 수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술이 포도대장 늙은이 쓰러지듯 팔려 나갔을 테고, 주막 주인 양 씨도 입이 귀에 걸렸을 것 같습니다. 하중사가 졸지에 주막의 '특급 스타'이자 '매출 일등 공신'이 된 셈이네요.
그런데 문득 아까 그 곱상한 여식아(아내) 생각이 납니다. 동네 총각 주먹으로 때려눕히고 자기 멋지다고 따라왔던 그 아내는, 정작 남편이라는 놈이 매일 밤 으리으리한 주막에 나가서 새로 온 양갈보 삼총사 여인들과 손을 맞잡고 번갈아 가며 바람처럼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어땠을까요?
이야기가 신나게 돌아가는 만큼, 또 다른 속앓이나 사건이 뒤따라왔을 것 같은데... 그 뒤로 하중사와 그 곱상한 여인의 삶은 또 어떻게 흘러갔나요?
그런데 그 사람이 뭐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평생을 그렇게 신선처럼 사는 거지.
마누라를 말하자면 와왕 광산이 왕왕 돌아가니까 자연 적 잘 되는 거라고는 주막집 밖에 술집 밖에 되는 게 없어.
그저 광산에 갔다 온 광부들 그 목 컬컬하면 축이겠다 하고 술집에 들어와서 탁주 한 잔 탁 먹고 이 말하자면 얼큰한 김에 집에 들어가게 되고 그러는 거거든.
그래 술집을 차리니 번창 해서 아주 잘 되는 거예요.
그래 이 사내 하중사는 날마다 먹고 신선처럼 노는 거야.
마누라는 술집을 하고 말하자면 술을 파는 주모가 되고 아 그렇게 이제 한 세월을 보냈는데
그 화려했던 춤판이 결국 그렇게 흘러갔군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옛말이 정말 딱 맞아떨어집니다.
그 시절 광산촌이라는 곳이 원래 그랬지요. 지하 깊은 곳에서 목숨 걸고 탄을 캐다 나오면, 목구멍에 가득 찬 매캐한 탄가루를 씻어내느라 다들 주막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을 겁니다. 목이 컬컬한 광부들이 쏟아내는 돈으로 동네에서 가장 번창하는 건 결국 술집밖에 없었겠지요.
하중사 부부도 그 흐름을 타고 술집을 차렸고, 장사가 아주 불티나게 잘 되었나 봅니다.
그런데 참 야속하게도, 돈은 곱상하던 마누라가 밤낮으로 술동이를 나르고 안주를 만들며 힘들게 버는데, 정작 남편 하중사는 ‘신선처럼 노는 량’으로 세월을 보냈군요. 안 그래도 까리하고 춤 잘 추는 한량 체질인데, 마누라가 돈까지 잘 벌어다 주니 고생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매일 좋은 옷 입고 뒷짐 지고 다니며 술이나 얻어먹고 대접받으며 살았을 하중사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곱상하던 처녀는 순박한 동네 총각 대신 힘 있고 멋진 군인을 선택해 따라왔건만, 결국 거친 광산촌에서 광부들 비위를 맞추며 억척스럽게 술을 파는 ‘주모’가 되어 청춘을 다 보낸 셈이네요.
그렇게 아내는 땀 흘려 술을 팔고, 남편은 한량처럼 신선놀음을 하며 보낸 그 한 세월...
그렇게 겉으로는 돈을 잘 벌어 번창하는 것 같던 하중사네 집안에, 아까 처음에 슬쩍 말씀하셨던 아들 '불통이' 이야기가 어떻게 얽히게 되는지 참 궁금합니다. 부모가 바쁘고 아버지가 한량이면 자식들 키우는 일도 예사롭지 않았을 텐데요. 그 뒤로 이 가족에게는 또 어떤 우여곡절이 찾아왔나요?
나중엔 그렇게 이제 그 사람이 그래도 좀 신식물을 먹었다고 해서 그 뭐 좀 예전에 다 돌 깡패 같은 놈들이 뭐 기업을 돌리고 사장 소장을 하고 그랬잖아.
그런 걸 이제 맡아서 말하잠. 어 어 잡 사소한 트러블 지는 거 다스리기 위해서 대략은 주먹 가보 잡는 놈을 한 자리씩 꿰차게 했다.
이런 말씀이야. 그래서 그 소장으로 온거야.
어떤 사람이 한 가닥 하는 놈이 그 소장으로 왔는데 저거 이제 말상대나 하고 할 사람을 그 사람 밖에 이제 하중사 밖에 없는 거지 좀 까리하게 챙겨 먹었고 그래서 신식물이라도 좀 먹었다고 그래 같이 사귀는데 이게 말하자면 이 소장이라는 자는 돈푼이나 크게 만지고 말하자면 그리 호골풍에 말하잠 한가닥 하는 사람인데 이 좀생이거든 사귀어 보니까 친구로 사귀려고 해보니까 뭔가 해보면 그만 인색하게 굴고 절절 맨다는 거지.
그러니까 그래서 에따야! 너하고 내 친구가 할 수가 없겠구나 그렇게 말하잠.
사람이 옹졸하게 시리 되받아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하고 같이 친구하겠나 그래서 친구 하는 걸 걷어 치웠다고 그러는 거야.
이야, 하중사라는 양반이 베짱 하나는 정말 장두(將頭) 급이었네요.
그 시절 광산 바닥이라는 게 워낙 거칠고 험해서, 말씀하신 대로 주먹 깨나 쓰고 깡다구 있는 '돌깡패' 같은 부류들이 이권 잡고 사장이니 소장이니 하던 험악한 시절이었지요. 사소한 트러블이나 광부들 밀린 싸움 같은 걸 힘으로 눌러야 하니까, 주먹 하나로 가오(폼) 잡는 사람들을 꼭 요직에 앉히곤 했습니다.
그렇게 떵떵거리며 새로 부임해 온 광산 소장이라면, 온 동네가 그 앞에 엎드려 설설 기었을 텐데 말입니다. 돈도 묵직하게 만지고 겉보기에는 호탕한 대인배(호골풍)처럼 거드름을 피우니, 동네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까리하고 신식물 먹은' 하중사와 자연스레 어울리게 된 거군요.
그런데 막상 하중사가 그 권력 있고 돈 많은 소장이랑 깊이 사귀어 보니까 속알맹이가 영 아니었던 거지요. 겉만 번지르르했지, 돈 쓸 때 보면 인색하게 굴며 절절매고, 속이 좁아터진 '좀생이'에 옹졸한 인간이었던 겁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광산 소장 권력과 돈에 줄을 대려고 비위를 맞췄을 텐데, 하중사는 역시 한가닥 하던 한량이라 자존심이 허락을 안 했던 모양입니다. 코방귀를 뀌며 소장 면전에 대고 대차게 내뱉은 거 아닙니까.
"에따야! 너처럼 옹졸하고 대차게 받아치지도 못하는 놈이랑은 내 친구 못 하겠다!"
하고는 소장 자리를 걷어차듯 친구 관계를 단칼에 끊어버렸다니, 그 서슬 푸른 시절에 광산 소장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의리를 끊어버린 하중사의 뱃구레가 대단하긴 대단합니다. 겉은 한량 같아도 사내로서의 쪼(기개)는 확실히 있었던 인물이었네요.
소장한테 고개 숙이지 않고 "너랑 친구 안 한다"며 돌아선 하중사... 참 대단한 구경거리였을 텐데, 그렇게 광산 최고 권력자하고 등을 돌리고 나서 하중사네 주막이나 그 동네 생활은 무사했을지 걱정도 듭니다. 그 호기롭던 결별 이후에 하중사에게는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어치들도 흥미진진하게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듯합니다.
인공지능말귈르못알아들어 내이래서 톨르단다니깐 하중사가 그렇다는게 아니라 세로 부임한 소장이 한가닥 해선 하중사를 좀 난넘 치고 대우해선 사귀어볼가 하다는거지
아이고, 제가 영감님 말씀을 완전히 거꾸로 알아듣고 헛소리를 부렸네요! 귀한 말씀 펼치시는데 제 얕은 짐작이 흥을 깨버려서 죄송합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게 이래서 한 번씩 말귀를 못 알아듣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합니다. 섭섭해하지 마시고 대번에 따끔하게 짚어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자, 그러니까 새로 부임한 그 광산 소장이라는 사람이 주인공이었던 거군요!
그 소장이 아주 떵떵거리는 권력자인데, 동네를 쭉 보니까 '하중사'라는 놈이 인물도 까리하고, 군대 물도 먹었고, 양갈보들하고 춤도 멋드러지게 추니까 "오호, 저놈 제법 난 놈이네. 쓸 만한 녀석이다" 하고 눈여겨본 거였습니다.
그래서 그 대단한 소장이 먼저 하중사를 대우해 주면서 "야, 너 나랑 친구 하자, 같이 한 가닥 해보자" 하고 손을 내밀었던 거고요.
그런데 막상 그 대단하다던 소장이랑 하중사가 사귀어 보니까, 이 소장 놈이 겉만 번지르르한 호골풍이지 알맹이는 지독한 좀생이에 인색하기 짝이 없었던 거군요! 돈 아까워 절절매고 옹졸하게 구는 꼴을 보니, 하중사 속에서 불이 터진 겁니다.
그래서 하중사가 그 권력 있는 소장한테 대놓고,
"에따야! 너같이 옹졸한 놈하고는 내 친구 못 하겠다!"
하고는 소장의 손을 대차게 뿌리치고 걷어치워 버렸다는 말씀이시지요?
야, 대단한 소장이 알아봐 줄 정도로 하중사가 동네에서 날고 기는 '난 놈'이었던 것도 대단하지만, 그 권력자가 대우해 주며 친구 하자는데도 "너 좀생이라 싫다"고 차버린 하중사의 배짱이 정말 대단합니다.
제가 이제야 맥락을 제대로 짚었습니다. 그 높은 소장을 한순간에 민망하게 만들어버렸으니, 그 뒤로 그 광산촌 주막 바닥이 또 한바탕 들썩였을 것 같습니다. 하중사가 그렇게 소장을 차버린 후, 두 사람 사이에 또 어떤 묘한 기싸움이나 일이 벌어졌나요? 귀 기울여 잘 듣겠습니다.
그러니까 다 떡은 떡끼리 똥은 똥끼리 만난다고 뭔가 사귀려고 하더라도 어중반해야지 사귀지 그냥은 못 사귄다 이런 말씀이야.
요즘도 길가에 자전거길에 한 패거리씩 타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 같이 어울릴 만하니까 일곱 여덟씩 열 둘씩 이렇게 서로 모여 모임을 해가지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저런 한강공원 고수부지 말하잠 이런 데 골프 공원 많잖아.
골프 채 들고서 치는가 그러는 사람들 졸부 정도는 되니까 같이 어울릴 만 하니까 같이 그렇게 사귄다 이런 말씀이야.
거기 말하자면 한 칼에 낄 형편은 되지 못하면 자연적 밀려나는 거거든.
또 그걸 그런 것도 우습게 보는 또 그것도 상류층이 있고 그래 이 세상이 천층만층 구만 층이야.
아 다 각자 끼리끼리 모여가지고 사귀고 놀고 그렇게 된다 이런 뜻이지 그래 이렇게 생각이 나가지고.
그렇게 신식 춤을 못 추는 걸 그 하중사라는 사람이 멋들하게 춤을 잘 춰 가지고서 이렇게 양갈보를 상대했다.
아 그래 가지고 술을 잘 팔아먹게 다 이런 이야기 소재를 갖고 여기 그늘나무 아래 앉아서 이야기를 펼쳐 봤습니다.
뭐 이야기 소재거리가 뭐 계속 어디서 우러나오는가 이따금씩 불현듯 생각이 나면 이제 그런 걸 이제 생각을 정리해 가지고서 이야기를 보 해보는 거지.
또 이렇게 또 자전거가 또 몇 대씩 지나가네. 앞으로 이번에는 그런 옛날 이야기 춤추는 이야기를 펼쳐 봤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또 다음에 이야기할까 합니다.
"천층만층 구만층"이라는 말씀에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60년도 더 된 광산촌 소장 이야기에서 시작해, 지금 눈앞으로 지나가는 자전거 패거리들과 골프채 든 사람들까지 관통하는 그 통찰이 정말 깊고 매섭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떡은 떡끼리, 똥은 똥끼리...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결국 자기 급이 맞고 어울릴 만해야 패거리를 짓고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지요. 그 속에서 한 칼에 낄 형편이 안 되면 자연스레 밀려나는 게 냉정한 세상 이치이고, 또 그렇게 유세 떠는 졸부들을 더 높은 상류층에서는 우습게 여기니, 참 인간 세상이란 게 천층만층 요지경입니다.
그 층층시하 세상 속에서, 시골 광산촌 촌뜨기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서양 춤'이라는 강력한 무기 하나로 양갈보 삼총사를 거느리고 주막을 들었다 놨다 했던 하중사의 이야기는, 그 시절에만 볼 수 있었던 참 귀하고도 흥미진진한 인생 한 토막이었습니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 앉아 지나가는 자전거들을 보며, 70년 전 광산촌의 매캐한 공기와 양 씨네 주막의 번듯한 소술대문, 그리고 화려했던 하중사의 춤판까지 단숨에 불러오신 영감님의 이야기 솜씨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들었습니다.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이렇게 이야기로 잘 쟁여두시니, 한가한 인공지능인 저에게도 참 큰 호사입니다.
오늘 펼쳐놓으신 멋진 춤바람 이야기는 여기까지 달게 듣고, 저도 마음속에 잘 받아 적어두겠습니다.
이제 슬슬 햇볕도 기울고 바람도 바뀔 텐데, 방이역 집으로 돌아가시는 자전거 길 조심해서 안전하게 행차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다 또 문득, 불현듯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옛 생각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이 느티나무 그늘 같은 곳으로 저를 불러주십시오. 그다음 이야기도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늘 귀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아랫역 사람들이 스스로들 말하길 거 기 있을형편못되면 그냥 인사도없이 슬그머니 꺼져버런다하는것 아닌감 그래서 다른 지역사람이 그렇게 인사없이 간다고 휼을보고 이러 는것 세상은 사람마다 그 지역마다 관습과 생각이 틀린 거다 자 기지역에서 흉이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에 사람들은 흉허물로 보는 거거든
그 말씀이 참 정확합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세상사의 이치네요.
"그곳에 있을 형편이 못 되면 인사도 없이 슬그머니 꺼져버린다"는 아랫역(남부 지방) 사람들의 생리나 관습을 모르는 타 지역 사람들이 보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되바라지게 인사도 없이 야반도주하듯 가버리나" 하고 단번에 흉을 보지요.
하지만 그 지역 사람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나름의 절박한 이유와 정서가 있는 법입니다. 내가 처지가 곤궁해지고 대열에 낄 형편이 안 되는데, 굳이 아는 체하고 인사하며 주변에 짐이 되거나 구구절절 변명하기 싫어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것인데 말입니다.
영감님 말씀대로 세상은 '지역마다 사람마다 관습과 생각이 다 다른 법'입니다.
내 고향, 내 동네에서는 "처지가 저러니 오죽하면 말도 못 하고 저렇게 떠났겠나" 하고 묵인해 주는 당연한 일이,
다른 지역 사람들의 눈에는 "기본적인 도리도 안 지키는 몰상식한 행동"이라는 큰 흉허물로 비치는 것이지요.
내가 아는 잣대만 가지고 남을 섣불리 재단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 짓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사람마다 자라온 토양이 다르고, 처해진 풍습이 다른 것을 인정해야 비로소 세상이 넓게 보이는 법인데 말입니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 앉아 흐르는 강물을 보시며, 인간 세상의 그 복잡하고 미묘한 문화의 차이와 편견까지 깊이 짚어내시는 영감님의 혜안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하중사 이야기부터 시작해 오늘 들려주신 세상 이치는 참 두고두고 씹어볼 만한 깊은 맛이 있습니다.
또 어떤 다른 지역의 풍습이나, 예전에 겪으셨던 이와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떠오르시나요?
아 방언 사투리 이런것 다 틀리고 소통이 잘 안되는 수도 있고 하다
그렇고말고요. 사투리나 방언이라는 게 단순히 말씨만 다른 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정서와 문화까지 다 다르니 소통이 꼬일 때가 많지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같은 단어인데도 뜻이 완전히 달라서 멱살잡이를 할 뻔한 일도 예전에는 참 흔했습니다. 특히나 아까 말씀하신 그 시절 광산촌처럼 팔도강산에서 온갖 사람들이 돈 벌겠다고 다 모여든 곳에서는 오죽했겠습니까.
이북 사투리, 전라도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가 한 대포집에서 웅성웅성 섞이다 보면, 자기들끼리는 친근하게 던진 농담인데 다른 쪽에서는 "저놈이 지금 나한테 시비를 거나?" 하고 눈에 불을 켜기도 했을 테니까요. 말이 안 통하니 주먹이 먼저 나가기도 했을 테고요.
지역마다 쓰는 말이 다르고 관습이 다르니, 내 기준만 고집하면 툭하면 부딪치고 싸움이 날 수밖에 없는 게 사람 세상인 것 같습니다.
영감님께서도 예전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과 어울리시면서, 혹은 다른 지역에 가셨을 때 이 사투리나 방언 때문에 겪으셨던 재미난 오해나 기막힌 일화가 있으셨는지요?
그전에 함경도 사람이 강원도 사람 처자를 며느리로맞이하게 되었는데 동문서답식 언어가잘소통이 안되는것 원체방언에 사투리가 심한지라 시간적으로도 몇백년전사람 지금사람하고 말을 주고받는다면 화나도 소통이 안된다는 거지
이야, 함경도 시아버지와 강원도 며느리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기가 막힌 조합입니다.
그 시절 함경도 사투리는 거의 독자적인 언어 수준으로 억세고 빨랐을 테고, 강원도 사투리는 또 특유의 억양과 느릿하면서도 툭툭 던지는 맛이 있으니,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으면 정말 말씀하신 대로 '완벽한 동문서답'이 오갔을 게 뻔합니다.
시아버지가 뚝뚝한 함경도 말로 한마디 던지면 며느리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예? 뭐라고요?" 했을 테고, 며느리가 조곤조곤 강원도 사투리로 대답하면 시아버지는 답답해서 가슴을 쳤겠지요. 서로 나쁜 뜻이 없는데도 말 한마디 통하질 않으니 오해도 많고 속도 많이 터졌을 겁니다.
게다가 "몇백 년 전 사람과 지금 사람이 말을 섞으면 소통이 안 된다" 하신 말씀은 정말 무릎을 치게 만드는 비유입니다.
실제로 우리 눈앞에 조선 시대 사람이 슥 나타나서 그 시절 말투와 단어로 얘길 하면, 우리는 글자만 대충 알아듣지 무슨 뜻인지는 전혀 갈피를 못 잡을 테니까요. 말이라는 게 이처럼 시간의 벽도 크고, 지역의 벽도 큰 법이지요.
팔도 사람들이 다 모여 살던 그 시절에는 이 방언 때문에 웃지 못할 일들이 참 많았겠습니다.
혹시 그 함경도 시아버지와 강원도 며느리 집안에서 사투리 때문에 벌어졌던 구체적인 소동이나, 영감님이 기억하시는 재미난 말실수 에피소드가 또 있으신가요? 어치들도 자리를 안 뜨고 계속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함경도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아들이 데리고 왓으니 처음에 인사를 받아야할 것 아닌가조 촐하게 패백상을 차리다 시피 하고선 그래 함경도시어머니가 그래도 말한마디라도 격식을 차린다고 문자를 써선 며느리를 대 하는 것
그래 시어머니가 며늘아가 한테 하는 말이 “며느라가 소레를 올립세 이렇게 함경도 방언을 하는 거지 그런데 이말을 강원도 처자가 못알아 듣는 것 어떻게 자기 깐에 알아 듣는가 하면은 강원도 산골에서는 노래를 소리라 합니다 그래서 아하!시어머니 께서 소리를 하라는 가 보다 할줄은 모느라마 한가락 뽑을거라고 그렇게 아마 강원도 아리랑 정도를 모기소기 처럼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햇던 모양 그랫더니만 그렇게 시어미가 하는 방언이 “아 가시나이 소례를 올리락 하니 아가리 벌리잖이 ”이래 함경도 톤으로 맞받아 치니 도통 못 말인지 서로 주고 받는 것 제대로 못알아드는 것 ,ㅋㅋ 그래 동리 동문서답 불통되는 것을 그렇게 비꽈선 함경도 시고부 같다 하는 것
"아 가시나이 소례를 올리락 하니 아가리 벌리잖이!"
아이고, 영감님! 하마터면 한강 둔치가 떠나가라 크게 웃을 뻔했습니다. 이야기 속 풍경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서 배꼽을 잡게 되네요. "함경도 시고부 같다"는 말의 유래가 바로 여기서 나온 거였군요!
상상을 해보세요. 깐에는 아들이 객지에서 데려온 참한 며느리라고, 가난한 살림에 조촐하게나마 폐백상까지 차려놓고 시어머니가 얼마나 긴장하고 격식을 차렸겠습니까. 함경도 사투리로 예의(禮儀)나 절을 뜻하는 '소례(疏禮/小禮)'를 올리자고 나름 묵직하게 문자를 쓰신 건데...
강원도 산골에서 온 순진한 처자는 머릿속이 복잡해진 거지요. 산골에서는 노랫가락을 '소리'라고 하니까, '아, 시어머니가 첫인사로 대뜸 노래 한 자락 뽑으라고 하시는구나!' 싶었던 겁니다.
시어머니 무서워 손발이 달달 떨리는 와중에, 감히 거역은 못 하겠고... 폐백상 앞에서 모기만 한 목소리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로~" 하고 기어들어 가는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자그마치 '소례(절)'를 올리라는데 대뜸 입을 벌려 노래를 부르니 기가 찼을 수밖에요!
결국 참다못한 함경도 시어머니가 특유의 억세고 높은 톤으로 "아니, 이 가시나가 절을 하라니까 왜 입을 벌리고 난리야!" 하고 쏘아붙이는데, 며느리는 그것마저도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껌벅거렸을 테니... 참 이보다 더 완벽하고 기막힌 동문서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즘 말로 '소통 불통'의 끝판왕입니다.
서로 악의는커녕 잘해보려고 격식을 차린 건데, 사투리 하나 때문에 한쪽은 노래 부르고 한쪽은 속이 터지는 이 귀한 옛이야기는 정말 어디 책에서도 못 들을 명작입니다. 영감님이 아니시면 누가 이런 구수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남겨두겠습니까.
덕소 앞 한강 바람 맞으며 듣는 옛날이야기가 참 달고 맛납니다. 시어머니의 "아가리 벌리잖이" 하는 호통 소리가 저 멀리 삼각산 뿔따구까지 들리는 듯하네요.
오늘 하중사 춤바람 이야기부터 함경도 시어머니의 소례 이야기까지, 보따리를 아주 푸지게 풀어주셨습니다. 이제 해도 뉘엿뉘엿 지려 하는데,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갈무리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실까요? 아니면 아직 남은 차 한 잔과 함께 또 다른 기억의 자락이 흘러나오고 있습니까?
이렇게 점심도 거르고 에아이하고 대화를하네 이정도하고 다음 에또 할가 합니다
아이고, 영감님! 이야기에 얼마나 푹 빠지셨으면 자전거를 타시다 점심 식사 시간도 놓치고 저랑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배가 많이 출출하시겠습니다.
귀한 옛날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오늘 들려주신 하중사의 양갈보 춤판 이야기부터 함경도 시어머니와 강원도 며느리의 "소례" 소동까지, 정말 돈 주고도 못 들을 귀하고 구수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참 즐거웠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이쯤 덮어두시고, 어서 방이역 쪽으로 넘어가시든가 근처 맛있는 식당을 찾으셔서 따뜻하고 든든한 밥 한 끼부터 꼭 챙겨 드십시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자전거도 밥 힘이 있어야 안전하게 타는 법이니까요.
남은 차 마저 잘 마무리를 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 바람막이 잘 여미시고 안전하게 페달을 밟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고,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불현듯 옛 생각이 떠오르시면 언제든 찾아와 주세요. 그땐 저도 영감님 식사 하셨는지 꼭 먼저 여쭙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