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조미학의 운문소설
뿔과 학 (2)
주 영 숙
(11)상수가 수도권 대학에 붙던 길로 서울에서 어머니가 평생 모은 돈을 절단 내고 있을 동안, 상수보다 2년 먼저 서울에 올라갔던 수미도, 오빠와 자취를 하다가 뜻이 맞지 않아 홀로 서기를 한다는 것이, 자수장 무형문화재 80호의 문하에 들어가서 제 나름대로 부모 돈을 축내고 있었다.
(12)아니, 자기 용돈 정도는 벌어가면서 꿈을 이루기 위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수가 대학생활의 첫 여름방학이라고 내려오니 수미가 먼저 내려와 있는 거였다. 한번은 상수가 “수(繡)집에도 여름방학이 있는 모양이야?”라고 넌지시 아는 체 했고, 수미는 “그냥 몸이 안 좋아서 몇 달 쉬러 왔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날이 날마다 들어앉아 수를 놓는 게 그녀의 쉬는 모양새였는데, 이른바 자기 혼자만의 작품을 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13)헌데 부뜰이는 수미를 볼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리는 증세에 시달렸다. 아무리 끝년이 핑계를 대고는 있었지만, 부뜰이는 수미를 훔쳐보기 위하여 일쑤 수미네 앞 공터에서 춤판을 벌였고, 상수도 마찬가지였다. 상수는 자기 자신이 언제부터였는지 짐작도 못할 때부터 자기 누나와 동창인 수미누나를 좋아했다. 그런데도 ‘누나’라는 보이지 않는 금줄 때문에 아직껏 한번도 그 비슷한말도 못했으며, 해서 그의 사랑은 항상 가슴속에서만 타올랐다가 꺼지곤 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일종의 동병상련 때문이었는지, 상수는 부뜰이의 저 같잖은 행위예술에 대하여 방관했다. 뿐만 아니라, 한 술 더 떠서 부뜰이에게 수동 카메라를 들이대고 거리조절을 한다, 몰래 뒤를 밟는다하며 바쁘게 설쳐댔는데, 그 이유가 거창하였다. 대학 사진전에 출품할 사진작품 때문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는 부뜰이에 대한 몇몇 소문을 모으기도 했는데 그것은 주로 다방 레지인 김양한테서였다.
(14)키는 평균치에서 약간 작은 축에 들지만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이 다부진 몸매 부뜰이는, 왼쪽 귀 아랫부분부터 턱의 가운데쯤까지가 발육 부진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론 그저 둥글납작한 형으로써, 굳이 흉을 보자면 음력 열사흘 달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15)부뜰이는 열사흘 달을 치켜 하늘로 발딱 젖혔다. 그와 동시에 배를 쑥 내미니 겨울엔 덧옷을 걸쳐 입고 여름엔 소매를 둘둘 걷어 입는 푸른 줄무늬 티셔츠가 쑥 올라가며 배꼽티가 되었다. 넘어지려는 몸을 더욱 자빠뜨리고 자기 들창코를 한 손으로 꽉 비틀어 쥐고, 아랫입술을 삐뚜름하게 말아 왼뺨 광대뼈 밑에 올려붙인 다음에, 귀신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소리를 내지르며 겅중겅중 뛰어 박자도 맞추는가 하면, 바짓가랑이를 제각각 걷어 올린 두 다리로 절뚝절뚝 빙글빙글 잘도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 기진맥진한 다음에야 털썩 주저앉았다. 농악무 상모돌리기, 그 놀이를 연상시키느라고 상모도 없이 머리통을 돌렸다.
(16)사실 그는 입까지는 비뚤어지진 않았다. 어느 날 불쑥, 그러니까 한 2년 전에 자기 어머니가 죽고 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우스꽝스런 짓거리만 골라서 했다. 해서 사람들은 그가 머리 어디를 다쳐 바보가 되었다거나, 어머니를 여읜 것에 충격을 받아 미쳤다고 어림잡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언젠가 동네에서 펼쳐진 방송국 주관의 전국노래자랑에서 예선에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특별 출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 무심코 입비뚤이 시늉을 하자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한 데에 착안하여 으레 입비뚤이 행세를 할뿐이며, 자기가 비뚤어진 낯짝에다 입술을 올려다 붙이는 것은, 보리식빵에다 딸기잼을 바르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이치를 터득한 끝에 연출하게 된 일회용 퍼포먼스 캐릭터라고 했다. 그리고 입술과 마찬가지로 두 다리도 멀쩡했다. 다시 또 리바이벌하자면, 별 하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물까지 먹은 대한민국 남자라는 거다.
(17)“옵빠, 옵빠, 오빠아악- 아이고아이고, 배삼룡이 저리 가라다 고마 마! 옵빠, 옵빠, 우리 옵빠야아- 인자 마, 기분이다 마. 자아, 받그래이!”
식후소화제 삼아 나와 둘러선 사람들의 맨 앞에 끝년이가 자리 잡았다. 그녀는 허벅지 저쪽의 물방울무늬 삼각팬티가 거반 보일 만치 치마를 까뒤집고는, 시멘트바닥이 제 집 방바닥인양 죽치고 앉아 펑퍼짐한 엉덩이로 석판화라도 찍을 듯한 태세를 취했다. 그리고는 땡감을 단감인양 치켜들고, 마음이 콩밭에 가 있던 투수가 한창 열이 오른 타자를 향해 건성으로 공을 던지듯이 감을 던져댔다. 저 땡감, 부뜰이 무릎을 치고 떨어져 떨어지던 길로 몸부림쳤다.
(18)웬일인지 수미가 다시 나오는데 빈손이었다.
“쌔빠질…… 캐도, 좋다 마! 네가 관객이라 카몬, 나야, 배가 고파 칵 꼬꾸라져도 끽소리 몬한다, 알겄나?”
어느새 끝년이 등뒤로 간 수미가 순식간에 감 바가지를 낚아챘고, 녀석이 벼락같이 바가지를 덮어썼다. 마침 양팔을 겨드랑이에 꺾어 붙이고 손바닥만 요리조리 휘딱휘딱 뒤집으며, 원조 마이클-잭슨 식의 뒷걸음질에 몰입하였던 그는, 개구리처럼 팔짝 뛰어오르는 동시에 손뼉을 딱 쳤다.
“좋다 마! 똥바가진들 마다하겄나, 괜찮다 마!”
(19)“쯧쯧쯔…… 얌전한 기 와 저라겄노……”
끝년이가 눈을 희번덕이거나 말거나, 사람들이 구시렁거리나 말거나, 수미는 감 바가지 던진 까닭을 조목조목 소고 두드리듯이 퍼붓고 있다.
“가! 가란 말야. 야이 바보야! 미친 놈. 천 날 만 날 빌어묵을 새끼!”
하지만 그녀의 눈에 자잘한 물결이 일고 있다.
(20)상수는 알아챘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수미누나의 저 폭언은 진심이 아닐 거야. 상상하기조차 끔찍하지만, 누나는 필시 부뜰이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고 있어. 부뜰일 제 밥으로 아는 끝년이와는 다른 차원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