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위기의 '중소' 전통시장 <중> 개발도 어렵고, 손님도 안오고
상인들 현대화 사업 원하지만 … 규제 많고 자부담 커 손사래
- 전통시장 이용객 인식조사 결과
- 주차장 등 시설 개선 여부 따라
- 만족도와 구매액 달라져 급선무
- 공모사업 상인 자부담 비율 10%
- 정비사업 규제 일률적 적용에
- 추진땐 상인 찬반갈등 적지않아
- 市·정부 유형별 지원안 있어야
부산지역 ‘중소’ 전통시장(매장면적 합계 3000㎡ 미만)이 고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낡은 시설 인프라 개선은 물론 온라인 판로 개척, 자체 콘텐츠 발굴 등 상인 주도의 체질 개선이 필수적이다. 특히 동네 요지에 있는 중소 전통시장의 시설 인프라 개선을 어렵게 하는 규제를 검토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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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연제구의 연일시장과 인근 상권인 ‘오방맛길’의 한 건물(오른쪽 사진)이 ‘상권 르네상스 사업’으로 건물 외관을 깔끔하게 정비했다. 작은 사진은 정비 전의 모습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연일시장 제공 |
■ 개선 바라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
소비자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사항으로 안전, 위생과 관련된 시설 정비나 주차장 확충 등 인프라 개선을 꼽고 있다.
지난 2월 서울시의회가 발표한 ‘전통시장 이용객의 고객센터, 주차장에 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전통시장 방문객(509명)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점으로 가장 많이 선택한 것은 ‘시설 안정성 보수(35.2%)’였다. 이어 ▷시설 환경 개선(33.6%) ▷상가 상인의 교육(16.7%) ▷홍보 마케팅 지원(12.8%) ▷기타(1.8%) 순으로 집계됐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의견을 자유롭게 기술해달라는 항목에는 109명이 답했는데 43.3%가 주차장 확충을 꼽았다.
2018년 4월 부산연구원이 발표한 ‘부산지역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 사업 성과 분석’에서도 전통시장 방문객은 시설을 정비한 시장에 더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응답한 전통시장 고객 500명은 시설현대화 지원사업을 진행한 시장에 5점 만점에 3.54점, 해당 사업을 하지 않은 시장에 3.18점의 만족도를 보였다. 고객의 1회 방문 평균 구매액도 시설현대화 지원사업을 진행한 시장에서는 4만362원, 그렇지 않은 시장에서는 2만5745원으로 집계됐다.
여러 설문조사에서 소비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전통시장의 시설 인프라를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는 시장의 주인인 상인도 원하는 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선 시장 인프라를 바꾸기 위해 정부나 시가 하는 공모 사업을 진행해 볼 수 있지만, 중소 전통시장은 대형 전통시장보다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나 시의 인프라 개선 사업에 참여하려면 전체 사업비의 10% 정도 자부담 비용을 내야 한다. 하지만 중소 전통시장은 규모가 작고, 빈 점포가 많아 상인회비를 제대로 걷지 못하는 등 힘든 상황이어서 자부담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부산의 한 중소 전통시장의 상인회장은 “정부나 시의 공모 사업에 참여하려고 상인들을 독려해도 자부담 비용을 내야 한다고 하면 다들 손사래 친다”며 “웬만한 비용을 투입하지 않고서는 전통시장이 확 달라졌다는 인상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공모 사업에 긍정적인 사례도 있다. 부산 연제구의 연일시장과 연일골목시장, 인근 상권인 일명 ‘오방맛길’이 최근 새로운 모습으로 재단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연일시장의 건물 외관을 깔끔하게 리모델링했고, 오방맛길 내 한 건물에도 외관 정비 후 디지털 사이니지(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옥외광고)가 설치됐다.
이런 변화는 정부의 공모 사업으로 가능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상권 활성화 사업인 ‘상권 르네상스 사업’에 해당 지역이 선정되면서 지난해부터 오는 2025년까지 국·시·구비 80억 원을 투입해 전통시장과 인근 상권의 환경 개선을 진행한다. 시장 인프라 정비 사업과 함께 상권과 상인의 경쟁력 강화와 체질 개선을 위해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면 포인트를 지급해 다른 점포에서 활용 할 수 있는 ICT(정보통신기술) 기반 상권 통합 플랫폼 등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이 사업의 경우 상인의 자부담 비용이 없다. 대신 연제구 산하 ‘연제구상권활성화재단’을 설치해 국·시비를 투명하게 집행하고, 재단은 사업 종료 후에도 지역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게 된다. 다만 해당 상권과 전통시장처럼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시장 인프라와 상인의 체질까지 동시에 개선하는 공모 사업을 진행 중인 곳은 부산지역에서 찾기 힘들다. 부산시는 앞으로 이런 공모 사업에 적극적으로 도전해 지역 전통시장과 상권 활성화를 진행할 계획이다. 올해도 해당 사업에 사하구 괴정골목시장과 인근 상권을 대상지로 신청했다.
■ 정비사업 역할·방향성 정리 필요
시장 인프라 개선을 위해 공모 사업 대신 시장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곳도 있지만, 중소 전통시장은 쉽지 않다. 시장정비사업은 전통시장법에 따라 전통시장의 현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상업기반시설 등을 정비하는 사업이다. 해당 법에 따라 새 건물을 지을 때 건폐율과 용적률을 각각 최대 10%, 100%까지 더 받을 수 있고, 세금 감면 등 혜택이 적지 않다. 다만 이 사업을 완료하면 매장면적 합계 3000㎡ 이상의 대규모 점포로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모든 상인이 이 사업 추진을 바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정비사업도 일종의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라 진행 과정에서 상인의 갈등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이런 분쟁을 이겨내고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의무적으로 대규모 점포를 포함해 건축물을 지어야 한다는 벽에 부딪힌다.
중소 전통시장의 용도지역이 주거·공업지역이면 추가적인 건폐율과 용적률 혜택을 받아도 상업지역보다 한참 낮은 수준으로 대규포 점포까지 포함할 경우 수익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부산 내 주거지역의 건폐율은 40~60%, 용적률은 100~400%고, 공업지역의 건폐율은 70%, 용적률은 300~400%이지만, 상업지역의 건폐율은 60~80%, 용적률은 700~1300%로 훨씬 높다. 지난 1월 기준 부산시 전통시장 현황에 따르면 총 221곳의 전통시장 가운데 매장면적 합계 3000㎡ 미만인 중소 전통시장은 99곳으로 추정된다. 99곳 가운데 상업지역인 시장은 22곳뿐이고 나머지 시장은 모두 주거·공업지역이다. 부산의 중소 전통시장 77%는 좁은 면적과 건폐율, 용적률이 낮은 용도지역 탓에 사실상 시장정비사업을 시도하기 힘든 조건이다.
부산의 중소 전통시장인 A 시장에서 시장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업체 대표는 “시장정비사업을 하려고 해도 대규모 점포 등록을 시장 규모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해 난관에 부딪힌다”며 “해당 시장과 주변 지역 상황에 적합한 규모로 유연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는 시장정비사업에 관해 신중한 입장이다. 시장정비사업의 취지가 ‘낡은 시장의 현대화’이지, 상가나 점포를 줄이고 주거 시설을 늘려 수익을 올리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 등에 대규모 점포의 일괄적인 적용을 탄력적으로 바꾸자는 건의를 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정비사업의 취지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부산만 한정해서 바꿀 수도 없다.
이옥경 시 시장활성화팀장은 “중소 전통시장은 공실률이 높은 문제 등을 안고 있어 시장 기능을 잃어 가는 상태다. 이에 올해 하반기 내 행정가, 상인,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통시장 문제 해결 혁신 TF’를 구성해 시장정비사업 등 전통시장 재개발을 포함한 시장 유형별 지원 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면서 “내년으로 예정된 부산형 시장정비사업 기본계획 용역을 통해 지역 현황을 조사하고 심의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해 시장정비사업의 역할과 방향성을 정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