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론] 때 아닌 정조(正祖)대왕 바람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입력 : 2005.02.03 17:55 00'
▲ 김형국/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
광화문 새 현판에 사용할 집자(集字) 후보에 오를 정도로 명필인 정조 임금은 활 솜씨도 입신의 경지였다. 태조 이래 활쏘기가 가법(家法)이어서 정진했다고 정조가 직접 적었다.
남아 있는 활쏘기 기록에 따르면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출중한 신궁(神弓)이었다. 화살 50발을 갖고 49중(中)하기가 무려 열두 차례였다. 49중을 할 때마다 “다 쏘는 것이 옳지 않다”며 나머지 한 발은 숲 속으로 쏘았다. “완벽한 경지에 오르면 다음은 그보다 못한 것일 수밖에 없어 그랬다”고 한다(김문식, ‘정조의 활쏘기 기록’).
49중의 경지는 이 시대 국궁(國弓) 기준에 따르면 10단도 훌쩍 넘는다. 극상인 10단은 50발 대신 45발을 갖고 41중을 하는 실력이다. 우리 활은 조준기 없이 순전히 육감으로, 그리고 양궁(洋弓)의 최장 사거리(射距離) 70m의 배가 넘는 145m를 쏜다.
활쏘기의 고전은 역시 공자의 가르침이다.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돌이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라”(反求諸己)했다. 그래서 활쏘기는 “군자의 태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내 탓이오’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덕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덕을 살피는 ‘관덕’(觀德)이란 말이 활쏘기의 별칭이 되었다.
계몽군주 정조 임금에 노무현 대통령을 비유한 문화재청장의 내심은 정조가 실패했던 부분까지 포함해서 그의 사적(史蹟)을 모르는 것이 안타까워 그걸 배우라는 뜻이었다 한다. 나는 그게 사실이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천도 기도가 실패했다고 한 청장의 말을 과연 납득했을까. 천도가 여의치 않자 참여정부는 대신 행정중심도시로 이어가려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청장이 기왕 헌책하려면 정조의 활솜씨를 들먹거려 관덕에 힘쓰도록 권고했으면 좋았겠다. 나중에 어떻게 평가될지 몰라도 말이 치적의 씨앗이 될 것인데, 대통령의 공격성 화법은 그렇다 해도 제발 ‘코드’란 말로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행태는 이제 그쳤으면 싶다.
민주주의에서 선출직의 아름다움은 표를 주지 않은 사람을 감쌈에도 있다. 바라본 세상이라곤 대학뿐인 서생(書生)의 체험에도 코드는 당치 않다. 어쩌다 대학 학장도 교수들이 선거로 뽑는데, 두 후보가 나오면 지지세력은 양분된다. 그 둘에서 낙점받은 학장은 한결같이 빤히 아는 반대 표도 껴안기 마련이다. 학장 선거의 구조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굴러가는 것은 그런 포용이 관행이 되었기 때문이다. 작은 대학도 그러한즉, 코드로 측근을 뽑는 것은 당연하지만, 걸핏하면 무슨 신문사하며 갈라놓는 짓은 덕치(德治)하고는 한참 멀다.
청장도 관덕을 다시 한번 유념해야 할 것이다. 텔레비전 연속극 ‘영웅시대’를 패러디한 라디오 방송이 시정 민심을 대변했지 싶어서다. 정주영 역이 글씨 연습 중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회사 현판 글씨를 청한다. 배우는 글씨라며 사양하자 “정조대왕 글씨를 닮았다”고 계속 아첨한다.
마지못해 글씨를 써주자 다시 침이 마르도록 같은 말로 칭찬한다. 그러자 초보 글씨를 높게 추켜세움에 필시 딴 뜻이 있다며 “무슨 장관을 하고 싶으냐”고 묻는 것으로 패러디는 끝난다. 청장이 아첨하지 않았음이 사실일지라도 그게 진실로 들리지 않음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