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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민회장님의 카톡에서]
(와인)인생 달인(와인)
사람을 이기려 들지 말자!
이겨서 듣는 건 원망(怨望)이요,
이겨서 얻는 건 이별(離別)이고,
이겨서 남는 건 외로움 밖에 더 있으랴!
우정(友情)을 이기려 들지 말자!
이겨서 듣는 건 냉소(冷笑)요,
이겨서 얻는 건 불신(不信)이고,
이겨서 남는 건 허무(虛無)함 밖에
더 있으랴!
세상을 이기려 들지 말자!
이겨서 듣는 건 욕(辱)이요,
이겨서 얻는 건 적(敵)이고,
이겨서 남는 건 상처(傷處) 밖에 더 있으랴!
인생살이는 이기는 것이 지는 것이고,
지는 것이 이길 때가 있으니 이 또한 세상 이치다.
우리는 이런 이치를 잘아는 사람을 "인생 달인"이라 부른다.
"내가 나를 만듭니다"
똥이 방에 있으면, 오물이라고 하고,
밭에 있으면 거름이라고 합니다.
모래가 방에 있으면 쓰레기라 하고, 공사장에 있으면 재료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행복과 불행을 처음부터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힘든 세월을 살아가면서,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남편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지만,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남편의 존재가 무척 크게 느껴 질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인의 잔소리가 싫어서 혼자살고 싶다고 하지만 부인의 존재가 필요 할때가 있습니다.
직장 생활이 힘들다고 하지만,
직장 없는 사람에게는 직장 다니는 사람이 무척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인생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남의 말을 좋게 하면 행복하고,
나쁘게 하면 불행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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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나도록 살아라👍
(Live to the point of tears)
이 유명한 말을 남긴 사람은 잘 알고 계시는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년)
입니다.
카뮈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라''는 의미로
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에 더욱 실감나게
삶을 살다 간 영국의 여류 극작가인 샬롯 키틀리(Charlotte Kitley)의 인생 삶에서 진수(眞髓)를 느끼게
한 그녀의 유언장 같은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녀가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는데, 그 후 암 세포가 간과
폐로 전이되어, 그녀는 종양
제거술 2회, 방사선 치료 25회, 화학요법 치료 39회 등 암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음에도 안타깝게도 남편과
5살, 3살짜리 자녀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죽으면서 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올렸는데, 그 글 내용이 세상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남긴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살고 싶은 나날이 이렇게도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는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늙어 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지금까지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지르는 나날들이 모두가 행복이었더군요.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
다 받아봤습니다. 기본적 의학
요법은 물론,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보고, 쓰디 쓴 즙도 마셔봤어요. 한방에 가서 침(針)도 맞았지요. 그런데 모두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 놓고
나니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아이들 껴안아 주고 뽀뽀해 줄 수 있다는
게 새삼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얼마 후에 나는 남편의
곁에서 잠이 깬
이른 아침의 기쁨과 행복을 잃게
될 것이고, 남편은 무심코 커피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 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게 되겠지요.
딸 아이 머리 땋아줘야 하는데
이를 누가.....,
아들 녀석이 가지고 놀던 레고의
어느 한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는 나만 아는데 그건 이제
누가 찾아 줄까요!
의사로부터 6개월 사망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22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넘게 더 보너스로 얻은 덕분에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기쁨을 가슴에 품고 떠나
갈 수 있게 됐어요.
아이의 흔들거리던 이가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이것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보너스 1년 덕분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다 가니 감사합니다.
감사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중년의 복부 비만 같은 거 늘어나는 허리둘레 같은 거 그거 한번 가져 봤으면 좋겠어요.
그 만큼 살아 남는다는
얘기잖습니까.
저는 한 번 늙어 보고 싶었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두 손으로 삶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샬롯 키틀리,
기탄(忌憚)없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속 깊숙한 곳까지
닿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잠이 깨면 매일
별 생각 없이 하루를 맞이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어제도, 그저께도 그러했듯이
하루를 대충대충 보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매일매일 맞이하는
오늘 하루, 그 하루가 말씀입니다.
어제 죽어간 사람들에겐 그토록 그리워 했던 그 <내일>이었고,
그들이 고대하고 누리고 싶었던 하루였음을 유념(留念) 하시며 살아가시면 어떻겠습니까.
만일, 매일의 내 삶이 마지막 날 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나는 분명 훗날 멋진 삶을 살았다는 걸 알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을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오늘의 하루를 치열(熾烈)하게
살고, 가치있게 살고, 의미있게 보내며,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많다는 것과 하나는 그 가치와
의미가 다르고,
하루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스펜스 존슨/Spencer Johson은 그의 저서 '선물(Present)'이란 책에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선물을 주겠다며 지혜(智慧)를 선물했는데,
그 지혜 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 바로, <지금>
<오늘> 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원망이나
슬픔을 떨쳐버리고, 그 속에서
배움을 알게 되면 두려움이 없다는 자각을 얻게 됨으로써 <지금>,
바로 <오늘>을 위해 최선을 다
해 살아 갈 때 미래가 보장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펜서 존슨은 인생을
<눈물 나도록 살아라>고 하는
주문 속에는 가장 소중한 선물
<오늘 하루> <현재>가 고적
(孤寂)히 녹아 있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하루(현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 가를 아는 사람은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알며,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대열에 참여
한다면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향유(享有)하는 인생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웃으면서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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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록 도 💒
📃편지 한 장 남기고 떠난 두 수녀님들~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2명이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고 떠났습니다.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두 수녀님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71) 그리고 마가레트(70) 수녀가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날은
지난달 21일이었습니다.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두 수녀는
장갑을 끼지 않은 채 환자의 상처에
약을 발라줬습니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 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사업에 헌신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의 선행을 뒤늦게 알고
1972년 국민포장,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습니다.
두 수녀는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 란
편지 한 장만 남겼습니다.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해 왔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또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용서를 빈다”고 했습니다
김명호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며
“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섬이 슬픔에 잠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마가레트 수녀와 마리안 수녀는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습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습니다.
오후엔 손수 죽을 쑤고
과자도 구워서 바구니에 담아 들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소록도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꽃다운 20대부터 수천 환자의
손과 발이되어 살아 왔는데,지금은
일흔 할머니가 됐습니다.
숨어서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밖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은 베품이
참 베품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습니다.
10여년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습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 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습니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 개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외로운 섬,
버림의 섬,
건너의 섬에는
두 성녀가 다녀가신 곳인가요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보살핀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습니다.
이제는 70세가 된 마리안 수녀님
"처음 왔을 땐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
이 두 분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0년이 된 것입니다.
할 일은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
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
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 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조용히 떠나셨습니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 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
소록도가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
이제 돌아가 고향 오스트리아는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오히려 낯선 땅이 되었습니다.
지금
수도원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소록도가 그리워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방문 앞에는
그분의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써 있다고 합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지금도 우리 집,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헌신하신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24.06.26 수요일 🐓
🗼생 명 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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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youtube.com/watch?v=iHk4H3II_k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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