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韓서 빌린 포탄 우크라 지원 활용 가능성
美포탄 보내고 韓포탄으로 채울수도
한국이 ‘헌 포탄 주고 새 포탄을 받는’ 방식으로 미국과 최근 155mm 포탄 대여 계약을 맺은 사실이 20일 알려지면서 미국이 빌려간 헌 포탄을 어떻게 쓸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일각에선 한국이 빌려준 포탄을 미국이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아닌 만큼 우크라이나 전황이 악화될 경우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포탄 지원에 한국 포탄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쟁 장기화로 우크라이나 포탄이 바닥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러시아의 민간인 대량 살상 등 전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미국이 빌려간 한국 포탄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군이 빌려가기로 한 포탄은 WRSA-K(일명 ‘와샤탄’)다. 미국이 1974년부터 전시 상황에 대비해 한국에 가져와 비축해 놓았던 한반도 전쟁예비물자(WRSA-K)로 2008년 한미 정부 간 협상을 통해 우리 군이 인수했다.
미국은 미군 비축분과 미 국내 생산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계속 지원하면서 포탄 부족 문제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는 19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를 위해 첨단 미사일과 포탄 등 3억2500만 달러(약 4301억 원)에 달하는 추가 지원안을 발표했다. 정부 소식통은 “미 정부는 포탄을 최대한 빨리 조달할 방안을 살펴본 끝에 포탄 비축분이 많은 한국군 포탄을 빌리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다른 소식통은 우크라이나 지원 우려에 대해 “미군과 우크라이나에 포탄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대여 와샤탄이 우크라이나로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포탄 대여 건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 무기 지원과는 완전히 별개”라는 것. 이어 “노후화로 처치 곤란했던 와샤탄을 보내고 새 포탄을 받아 경제적 이익과 외교적 실리를 동시에 챙긴 계약”이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우크라이나로 살상 무기를 직접 지원할 가능성에 대해 20일 “정부 기존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실에서 우크라이나 직접 무기 지원에 대한) 검토 지시는 없었다”고 했다.
손효주 기자, 신규진 기자
美에 ‘헌 포탄’ 50만발 빌려주고 새 포탄으로 받는다
한미, 포탄대여 계약 상환방식 명시
美, 韓기업 생산 포탄 구매해 상환
러 “우크라 무기주면 적대행위 간주”
대통령실 “어떻게 할지는 러에 달려”
미국이 우크라이나 측에 지원한 ‘M777 155mm 견인포’. 155mm 포탄을 사용하는 무기다. 한국은 155mm 포탄 약 50만 발을 미국에 대여하기로 했다. 미국 국방부 홈페이지 캡쳐
미군이 한국군 155mm 포탄 약 50만 발을 대여하는 계약은 미 정부가 한국 포탄 제조업체로부터 새 포탄을 구매한 뒤 이를 우리 군에 보내 ‘포탄 빚’을 갚는 방식으로 체결된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미 정부와 155mm 포탄 등 우리 군 보유 포탄 50만 발 안팎을 대여하는 계약을 맺으며 상환 방식을 명시했다.
한국의 P사가 포탄을 생산하는 대로 미 정부가 이를 구입해 우리 군에 주는 식으로 우리 군 포탄 비축분을 채워 넣는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오래된 포탄을 미군에 보내고 우리는 우리 업체가 생산한 포탄을 돌려받는 방식이라 경제적 실익 면에서는 최상의 계약”이라며 “헌 포탄을 주고 새 포탄을 받는 만큼 빌려준 물량과 같은 양을 돌려받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국에서 빌려간 포탄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방식이 아닌 만큼 미국이 한국 포탄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대량 학살을 전제로 ‘조건부’ 군사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데 대해 러시아는 위협 수위를 높였다. 20일(현지 시간)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교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떠한 무기 제공도 반(反)러시아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반면 미 국방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우크라이나 방어 연락그룹(UDCG)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의 반발에 대해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코멘트를 한 격”이라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할지는 향후 러시아에 달려 있다”고 했다.
美 “韓 우크라지원 환영” 러 “무기주면 적대행위”… 韓 “러에 달려”
‘尹, 무기지원 가능성 시사’ 공방
대통령실 “민간인 살상 전제한 것… 무기지원 금지하는 법조항 없어”
尹-바이든, 우크라 문제 논의할듯… 젤렌스키 부인, 내달 방한 예정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처음으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데 대해 러시아가 “전쟁 개입”이라고 반발하자 대통령실은 20일 “우리가 어떻게 할지는 러시아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발언이 민간인 살상 등 가정적 상황을 전제한 원론적인 표현이라면서도 무기 지원 가능성을 재차 열어둔 것. 러시아 외교부는 윤 대통령 발언을 겨냥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떠한 무기 제공도 반(反)러시아 적대 행위”라며 반발 수위를 높였다. 이를 빌미로 한 한반도 문제 개입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반대로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한-러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외교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의 반발에 따른 보복 가능성에 대해서는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반응과 “기업 활동이 어려워질 것” 등의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 한미 정상회담서 우크라 관련 논의 시사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국제사회가 공분할 만한 대량 민간인 희생이 발생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지금 우리 입장은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26일(현지 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미국 등 국제사회와 발을 맞추기 위해 무기 지원과 관련해 의도적으로 진전된 입장을 내놓은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이 계획 없이 나온 건 아니다”라면서 “사실상 정부가 우크라이나 문제에 더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국내법에 교전국에 대해 무기 지원을 금지하는 법률 조항이 없다”며 “외교부 훈령을 봐도 어려움에 빠진 제3국에 군사 지원을 못 한다는 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크라이나가 지금 (6·25전쟁 같은) 그런 처지에 있다면 한국이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된 고마운 마음을 되새기면서 우크라이나를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도 했다.
대통령실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도 시사했다.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이슈에서 우크라이나 상황을 말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정부 소식통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느 정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러, 北 무기 지원 가능성까지 언급
러시아는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이 알려지자 북한까지 노골적으로 끌어들이며 위협 수위를 끌어올렸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날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반도 주변 상황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전날 “러시아의 최신 무기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의 손에 있는 걸 보면 그들(한국)이 뭐라 할지 궁금하다”고 위협했다. 북한에 대한 첨단 무기 지원 카드까지 꺼낼 수 있다며 한국을 압박한 것.
반면 존 서플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동아일보 질의에 “한미는 국제법과 규칙,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와 평화 및 안정 유지에 관한 약속 등 공동의 가치를 기반으로 철통같은 동맹을 맺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18일 오전 서울 강남 모처에서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등 5대 그룹 최고경영자(CEO) 등 10여 명과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대사가 간담회를 가졌다. 윤상직 부산세계박람회유치위원회 사무총장과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도 참석해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 한국 측 참석자들은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 등이 우크라이나의 전후 재건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다음 달 중순에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가 방한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효주 기자, 신규진 기자,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신진우 기자, 신나리 기자, 곽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