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
순종하는 기쁨. 빌립보서 2장 12-18절/김인환 목사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 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 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 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13. 너희 안에서 일 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14. 모든 일을 불평이나 시비가 없이 할지니 15. 이것은 너희가 흠이 없고 무해한 자 곧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민족 가운데서 책망 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려 함이라. 그런 민족 가운데서 너희가 세상에서 빛들로 빛나며 16. 생명의 말씀을 제시 하나니 이로써 나는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지 아니하고 헛되이 수고하지 아니한 것에 대해 그리스도의 날에 기뻐하리라. 17. 참으로 그러하며 또 너희의 믿음의 희생과 섬김 위에 내가 헌물로 드려질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모두와 함께 기뻐 하리니 18. 바로 이런 까닭에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립보서 2장 12-18절) ■ 생각해 볼 이야기 ■“완전한 순종”이라는 책에서 앤드류 머리는 그가 경험했던 잊을 수 없는 이야기 하나를 꺼냅니다. 앤드류 머리가 스코틀랜드 어느 모임에 참석해 함께 모여 있던 사람들과 교회의 현 상황에 대해서, 교회와 교인들의 문제점에 대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눌 때였습니다. 모임 중에 그리스도의 일꾼들을 훈련하는 일에 상당한 경륜이 있었던 한 경건한 사역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앤드류 머리는 그에게 현재 교회의 당면 과제와 교회에 시급히 전해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매우 조용하지만 매우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완전하게 항복하는 것입니다." 앤드류 머리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경건한 사역자는 이어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런 항복, 즉 순종의 자세를 가질 때는 느리지만 분명한 영적진전을 보일 수가 있고 그렇지 못할 때는 뒤로 물러나 결국 믿음의 길에서 떠나 버리게 됩니다. -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사느냐 아니냐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다시 말해서 순종이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많은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한다 해도 영적진전은 없는 것입니다. 아니 순종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점점 뒤로 물러나 어느 순간, 믿음을 잃어버린 채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구분할 수 없는 형식상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혹시 우리들 중에는 그런 사람 없나요? 저는 목회하면서 신실했던 사람들이 뒤로 물러가 믿음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을 수도 없이 지켜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어느 날, 그들의 살에 순종의 걸음이 멈추어진 것입니다.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식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순종이 멈추어진 것입니다. ■ 성경 속의 진리 찾기 ■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지속적인 순종을 강조합니다. 본문말씀 12절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 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 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 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 보이십니까? ‘항상 순종하여’ ‘항상’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바꾸어 말하면 구원받은 사람의 도리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항상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마치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이것입니다. 제자훈련을 할 때는 의무감에 순종의 걸음을 걸으려고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과제가 주어지고 그것을 제가 점검하니까요. 하지만 훈련이 끝나고 점검하는 사람이 없으면 나태해 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저 사람도 한 때는 제자훈련 했어?' 오늘날 한국교회는 한 때 제자훈련 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한 때 뜨거운 믿음으로 주님을 닮아갔던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처럼 구원을 이루는, 즉 주님을 닮아가는 지속적인 성화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 왜 그럴까요? 어느 날 순종하기를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계속된 순종으로 순종의 기쁨, 주님을 계속해서 닮아가는 성화의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진리 찾기 Ⅰ -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는 왜 흰 머리가 나요?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말을 안 들어서 그래. 네가 말 안들을 때마다 흰 머리가 하나씩 나는 거야.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럼 아빤 엄청 말 안들었겠네요? 아니 왜? 할아버지는 온통 흰머리뿐이시잖아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머리카락은 온통 흰머리로 변하지 않으셨을까?’ - 한번 질문 해 봅시다. 순종하며 사세요? 순종하는 것이 기쁨이 되고 있습니까? 순종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데 왜 우리는 순종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 생각해 보세요. 큐티를 하면서 우리는 매번 결단하지 않습니까? 이번 주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겠다. 용서해야겠다. 용납해야겠다. 섬겨야겠다. 사랑해야겠다.’라고 결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 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씀드리죠.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우리 자아는 본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우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여러분은 불순종과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1) - 이어 3절 읽어볼까요? "우리도 전에는 그들과 같이 우리 육체의 욕심대로 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여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본래부터 하나님의 노여우심을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3)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순종의 걸음을 걷게 하기 위해 오늘 빌립보 교인들에게 결단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본문 13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일 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이것을 새번역으로 읽어볼까요?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는 자아가 아니라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때 우리는 지속적인 순종의 걸음을 걷게 될 것입니다.
■ 진리 찾기 Ⅱ.
- 뭘 하지 말라고요? 불평과 시비입니다. 불평과 시비? 원망과 시비가 뭐예요? 시비는 내면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고 원망은 시비의 과정을 거쳐 입으로 나오는 불평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을 하거나 다투지 마십시오." - 좋은 얘기죠. 하지만 좀 뜬금없지 않습니까? 순종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원망과 시비를 하지 말라니요? 갑자기 시비 걸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도대체 순종하는 것과 원망과 시비가 무슨 상관이 있나요? 네. 아주 깊은 상관이 있습니다. 원망과 시비에 빠지면 순종할 수 없거든요. - 간단한 실험을 해 봅시다. 지금 누군가 원망하는 사람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대통령을 떠올리셨나요?^^ 어떤 사람은 너무 많아서 지금도 계속 떠올라요? 부모, 형제, 친구, 상사, 지도자, 믿었던 사람,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계속 떠오릅니다. 어떤 분은 저를 보고 계시는데 저 인가요?^^ 그러면 한 번 묻겠습니다. 그 사람에게 순종할 수 있어요?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시비에 빠지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씀하실지 몰라요. ‘목사님, 우리는 사람에게 원망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 정말 그런가요? 네, 하나님께 하지 않고 사람에게만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을 향한 원망과 시비가 결국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2-3절 보세요. “2.이스라엘 자손의 전체 회중이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며 3.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고기 솥 옆에 앉았던 때와 빵을 배불리 먹던 때에 {창조주}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데리고 나와 이 전체 집회 무리를 굶주려 죽게 하도다. 하니라.” - 이스라엘 회중이 지금 누구를 원망하고 있습니까? 모세와 아론이에요. 그런데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16장 8절 보시면. “모세가 또 이르되, {창조주}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고 아침에는 빵으로 배불리시리니 너희가 {창조주}께 불평하는 그 불평을 그분께서 들으시느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가 불평하는 것은 우리에게 하는 것이 아니요, {창조주}께 하는 것이니라. 하였더라.” - 원망이 누구를 향하여 있다고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원망하는 자, 지도자의 뜻에 순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결코 순종할 수 없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원망과 시비가 있습니까? 누군가를 원망하며 살고 계십니까? 아니 ‘왜 하나님이 나만, 왜 그 사람이 나만, 왜 나만 왜 나만.’이라는 시비에 빠져 하나님께 원망의 말을 늘어 놓으면서 살고 계십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원망과 시비를 제거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기쁘게 순종의 길을 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Ⅲ.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순종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 진리 찾기Ⅲ ■순종이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임을 알아야 합니다.
- 좀 어렵지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먼저 여기서 ‘너희 믿음의 헌물과 섬김’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즉 주님 닮기 위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삶과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순종으로 대치할 수 있을 거예요. 다시 말해서 주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주님이 뜻하신 곳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모든 삶과 섬김을 말하는 것이죠. - 그런데 그것을 바울은 ‘믿음의 제물과 섬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요? 그만큼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에는 말할 수 없는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하거든요. 하지만 이게 얼마나 힘든 거예요. 아마 빌립보 교인들은 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 그래요. 순종함을 통해서 주님을 닮은 사람으로 겸손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어요. 그래서 바울이 그들을 지도할 때는 순종했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은 거예요. 계속해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마음속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주님을 닮아간다는 것에 원망과 시비가 일어나고 있었어요.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돼요? 그런데 그런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바울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7-18절을 공동번역으로 다시 읽어볼까요? "여러분이 바치는 믿음의 제사와 제물을 위해서라면 나는 그 위에 내 피라도 쏟아 부을 것이며 그것을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과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기뻐하십시오.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 뭐라고요? 너무 기쁠 것이랍니다. 뭐가요? 빌립보 교인들이 계속해서 믿음으로 순종의 걸음을 걸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끝까지 순종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바울은 자신의 피를 쏟아 전제로 드려지는 희생을 드린다 해도 기쁠 것이란 말입니다. - 아니 왜요? 순종이 뭐길래,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순종의 걸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려도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왜냐고요? 하나님이 순종을 그렇게 기뻐하시거든요. 사무엘상 15장 22-23절 기억하시나요? “22. 사무엘이 이르되, {창조주}께서 {창조주}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만큼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거역하는 것은 마술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불법과 우상 숭배와 같나이다. 왕이 {창조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그분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더라.” - 이 말씀이 언제 나온 거예요. 불완전한 순종을 한 사울,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쳐서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죽이라 하셨으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죽이지 아니하고 가져와 여호와께 사울이 이렇게 말했거든요. 사무엘상 15장 20-21절 보세요. “20.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참으로 나는 {창조주}의 음성에 순종하여 {창조주}께서 나를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족속을 진멸 하였으나 21.다만 백성이 길갈에서 {창조주} 당신의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려고 노략물 중에서 양과 소와 또 마땅히 진멸시켜야 할 것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취하였나이다. 하니” - 왜 끌어왔다고요? 네, 희생제사 지내려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나는 제사보다 순종하는 것을 더 원한다. -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의 인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 믿고 나서 단 한 번도 편하게 쉴 수 없었던 사람, 단 한 번도 고난과 핍박이 없지 지내 본적이 없는 사람, 주님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람, 그리고 지금 죽음 앞에 서 있는 사람, 그 사람에게 무슨 기쁨이 있었을까?’ - 무슨 기쁨이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위해서 수 없이 전도하고 교회를 세운 기쁨이요? 수 많은 섬김과 헌신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기쁨이요?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길을 오늘도 걷고 있다는 기쁨, 바고 그 기쁨 아니었을까요? ■ 말씀따라 생활속으로 ■- 최근 기독교 영화가가 일반 영화관에서 상영되었습니다. 제목은 “순종”입니다. 영화는 레바논 난민캠프에서 그들을 섬기는 김영화선교사 부부와 우간다 딩기리 마을에서 선교를 하다가 하늘로 떠나가신 아버지 고 김종성목사 딸 김은혜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난민캠프에서 사역을 하는 김영화 선교사는 한국에 부모님과 동생이 살고 있습니다. 평생을 슈퍼마켓을 운영하셨던 부모님께서는 슈퍼마켓을 그만하게 되면서 폐고물과 폐지를 줍는 일을 하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병들었고 동생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얼마 전 김영화 선교사가 아버지와 통화할 때, 아버지는 ‘폐지 줍는 일을 해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아버지께 드려야 할 말을 아버지가 하시는 것을 들으며 그는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한국을 떠나 레바논으로 오게 되었냐는 인터뷰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하나님의 마음이 여기에 있는 것을 알기에 그 마음에 순종할 뿐이다. 그러면서 김영화 선교사님은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면서 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가 하나님, 생각해볼 문제: 폐지를 주우며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동생을 키우다 병든 어머님, 그 어머님과 동생을 나두고 왜 김영화 선교사가 그 레바논 땅, 내전으로 인해서 죽을 수도 있는 땅으로 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 은혜를 체험 하시길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첫댓글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