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도(生死島) 2-13
『기어이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구나.』
여전히 싸늘한 얼굴로 냉오(冷傲)한 시선을 던져온 사국천이
뒤로 물러났다.
『왕일기, 섭청, 너희들이 저 자를 시험해 보아라.』
합! 하는 짧고 우렁찬 기합성으로 복명한 두 명의 미청년이 선
뜻 검을 뽑아들고 나섰다. 배는 어느덧 구룡탄의 급류를 무사히
빠져나와 청목하의 맑고 잔잔한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육초량은 스스로에게 힘을 아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천검 호
소청이 언제 거들고 나설지 알 수 없었고, 최후로 사국천마저 상
대해야 할 것이었다.
급류와 싸우느라고 이미 극심한 체력의 소모를 겪은 육초량이
었다. 팔패 중 일패와 이패가 분명한 눈앞의 미청년들을 상대로
하여 많은 힘을 빼앗길 여유가 없었다.
(일검에 해치운다.)
육초량은 지긋이 어금니를 물었다. 그의 눈에서 다시 야수와
같은 흉포한 안광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상대를 노리
며 맹렬한 투지를 불러일으킬 때마다 보이는 눈빛이었다. 그 속
에는 오직 이기고 만다는 집념만이 가득할 뿐, 죽음에 대한 두려
움이나 삶에 대한 미련 따위는 한 점도 없었다.
시선을 제압하면 이긴다. 이것이 그 동안의 싸움에서 육초량이
터득한 비법이라면 비법이었다. 마음의 용맹과 기세가 눈빛을 통
해 드러나는 법이었다. 그것을 먼저 꺾어 놓으면 저절로 기세도
죽었다. 그런 다음에 부딪쳐 단번에 깨뜨려 버리는 일은 쉬웠다.
육초량이 어깨 넓이보다 약간 넓은 보폭으로 하체를 안정시키
고, 태산이 누르듯 무거운 부동심으로 상대를 위압하며 시선을
강하게 꽂았다. 우측 어깨를 내준 채 우수를 가볍게 늘어뜨리고
노리는 육초량의 기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졌다. 어느 놈
이든 움직이기만 하면 단번에 쳐버린다는 위협이 그 기세 속에
고스란히 실려서 전해졌다.
어느덧 그와 일장의 거리를 두고 검을 겨누고 있는 왕일기와
섭청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따갑게 꽂혀
드는 육초량의 살기가 점점 감당할 수 없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무게가 그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짓눌렀다. 독오른 살모사 앞에
드러난 개구리처럼 그들은 꼼짝할 수도 없이 육초량의 기세에 갇
히고 말았다.
(조금만 더.)
육초량은 눈을 가늘게 좁히고 점점 거칠어져 가고 있는 상대의
호흡을 재고 있었다. 그들의 거동을 바라보고 있는 사국천의 미
간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선상에 가득 찬 냉랭한 살기에 압도당하여 그들 모두는 멀리서
한 척의 작은 쾌선이 바람처럼 다가오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
다. 육초량이 보여주고 있는 기세의 검이 모두의 주의력을 끌어
들일 만큼 거대해진 탓이었다.
긴장의 끈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팽팽하게 당겨졌다고 여긴
순간,
『타합!』
쩌르릉 울리는 엄청난 기합성과 함께 왕일기와 섭청이 그것을
끊으며 비조처럼 쳐들어왔다. 그들은 이제 죽고 사는 것보다 육
초량의 살기에 묶여버린 마음의 답답함을 털어 버리는 일이 더
급했던 것이다.
왕일기가 갑판을 차고 뛰어올라 육초량의 머리 위에서 무시무
시하게 일검을 쳐 내리고 있었고, 섭청은 미끄러지듯 좌측에서
파고들며 천지양단의 기세로 일검을 후려쳤다.
(친다!)
마음으로 그렇게 외친 순간 육초량의 머리 속에는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삶과 죽음도, 구도자의 심정으로 추구하는 지
고한 검의와, 자기 자신의 존재마저도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
이다. 오직 있다면 상대의 검과 자신의 시선이 서로 맞닿아 있는
그 찰라의 공간과, 그 공간 속에서 일수유(一須臾)를 억겁(億劫)
처럼 늘이며 정지해버린 시간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무념(無念)의 공간이었으며, 비상비비상처(非常非非常
處)의 시간이었다. 그 절대의 순간 육초량의 우수가 허리의 철검
을 뽑아 상단을 후려쳐 갔다. 둔(鈍)한 듯 극쾌(極快)하며, 중
(重)한 듯 경속(輕速)한 허실(虛實)의 오묘한 조화가 꽃처럼 피
어났다.
머리 위에 왕일기의 창백한 검이 떨어져 내리는 그 찰나의 순
간에 육초량은 천년 거목 아래에서 일갈(一喝)하던 공지 노승의
화두(話頭)를 일지선(一指禪)의 직관으로 꿰뚫었다. 그것은 허와
실이 서로 상충하는 범속지경(凡俗之境)을 깨뜨리라던 운심(雲
心)의 관법(觀法)이었다.
한 번 틀을 깨뜨리자 거칠 것이 없었다.
파아아-!
허공 가득 선연한 혈화(血花)가 흩뿌려졌다. 육초량이 손목을
꺾어 왕일기의 가슴을 길게 쪼개고 나간 검의 방향을 틀며 좌수
의 중지를 구부렸다가 맹렬히 퉁겼다.
따당-!
그의 강맹한 지력에 맞아 검로가 흩어진 유일기의 눈 속에 유
성처럼 찬란하게 허공을 돌아 떨어지고 있는 은빛 섬광이 보였
다. 그는 아름답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것
이 마지막이었다. 허무하게 꺾인 그의 목이 잔잔한 강물을 바라
보며 떨어지고 있었다.
정지되어 있던 시간이 갑자기 풀려 일시에 빠져나가는 허탈감
이 무거운 침묵을 가져왔다. 그것을 깨뜨리며 발작하듯 부르짖는
한 소리 기합성이 모두의 정신을 번쩍 하고 일깨웠다.
『끼야압!』
단숨에 이장을 도약해 든 호소청의 검이 좌측의 사각을 비스듬
히 찍으며 떨어져 내렸다. 육초량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호소청
같은 고수와 검을 섞으며 기력을 소모할 여유가 없었다. 역시 단
번에 치고 빠져 나와야 했다. 하지만 호소청은 호락호락한 상대
가 아니었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
내 몸의 아픔쯤은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몸을 튼 육초량
이 성큼 다가서며 하단에서 상단으로 힘껏 검을 쳐 올렸다. 눈앞
에 떨어지는 싸늘한 검기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사악-, 하는 소
리가 귀에 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가슴 앞 옷섶이 길게 베어지
며 어깨를 타고 내려온 혈선(血線)이 쩍 벌어졌다.
훑고 빠져나간 검의 방향을 트는 호소청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
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순간 소리 없이 쳐 올라온 육초량의 검
봉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복부에서 가슴을 지나 턱까지를
일직선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
호소청의 눈에 언뜻 경악과 고통,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그리
고 뜨거운 선혈이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우와악-!』
분노와 절망, 그리고 회의로 하여 견딜 수 없었던지, 마지막
기력을 모아 격렬하게 부르짖은 그의 몸이 덧없이 무너져 내렸다.
육초량도 악다문 이 사이로 낮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고 있었
다. 어깨에서 가슴에 걸쳐 입은 검상이 심상치 않았다.
『과연 무서운 놈이다. 때문에 본좌는 네놈을 더 이상 살려둘
수 없다!』
설마 몇 달 사이에 육초량의 검이 이처럼 눈부시게 발전해 있
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사국천이었다. 그를 탐내던 마음이 두
려움으로 바뀌었다. 더 크기 전에 밟아 버려야 할 놈이라고 결정
한 그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것을 보는 육초량의 눈이 독하게 빛
났다.
(선수의 득!)
마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자 몸이 저절로 따랐다. 선수(先手)
의 득(得). 뜻하지 아니한 기습은 언제나 득을 보기 마련이다.
사력을 다해 정신을 모은 육초량이 사국천의 정면으로 사납게 부
딪쳐 갔다.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처럼 심한 부상을 입은 육초량이
먼저 쳐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사국천이었다.
『교활한 놈!』
움찔한 그가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서며 벼락처럼 일장을 쳐냈
다. 급하게 쳐낸 장력이었지만 그것에 실린 힘은 여전히 막강했
다. 주위의 공기를 밀어내며 송곳처럼 파고드는 한 줄기 거대한
힘이었다.
일격의 기습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안 육초량이 마지막 한 모금
의 숨을 토해 내며 사납게 검을 휘둘렀다. 사국천을 쫓아 들어가
는 그의 보폭이 더욱 커졌다. 허실(虛實)과 강유(强柔)를 절묘하
게 배합시킨 완벽한 산격(散擊)이 사국천의 장력을 산산이 쪼개
놓았다.
『놈!』
출운산격(出雲散擊)의 그 교묘함에 크게 놀란 사국천이 거푸
물러서며 번개처럼 빠른 여덟 장을 연달아 때렸다. 그의 절기 중
하나인 추풍팔장(秋風八掌)이었다. 연환장인듯 했지만 아니었고,
여덟 개의 각기 다른 장법인 듯 하면서도 한 줄로 꿰어져 급류가
쏟아지듯 밀려오는 장법이었다. 뒤의 것이 앞의 것을 밀며 다가
왔으므로, 처음의 장력이 도달했을 때는 여덟 개의 장력을 모두
합친 어마어마한 힘이 되었다.
콰콰콰콰-!
사국천의 장력과 육초량의 검기가 부딪치며 요란한 파공성을
터뜨렸다. 검기의 여력으로 사국천의 가슴 앞 옷자락이 산산조각
이 나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육초량의 가슴에도 일장이 작열하
며 폭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육초량이 한 줄기 피화살을 뿜어내며 줄 끊어진 연처럼 훌훌
날려 푸른 강물 위로 추락해 갔다.
『그냥 보낼 수 없다!』
이를 간 사국천이 재빨리 닻줄을 잡고 몸을 날렸다. 그가 막
강물에 떨어지는 육초량을 낚아채려고 했을 때였다.
『흥!』
한 줄기 싸늘한 코웃음이 천둥소리로 그의 고막을 울리며 파고
들었다. 어느새 지척에 다가와 있는 작은 쾌선 안에서 하나의 백
색 인영이 섬전처럼 쏘아져 나오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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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하였습니다
넘재밋어 한순간에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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