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8월 14일생
유재석은 나름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하시던 사업이 기울어져
약 20억 정도를 까먹고 빨간 딱지를 경험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때 이미 청춘비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PD의 주목을 받았고 만 19세의 나이에 최연소로 KBS 공채 7기에 합격했다.
어린 나이에 성공을 맛보아서 그런지 데뷔 초에는 건방진 인물로 소문이 났었다. 본인도 인정하는 흑역사
훝날 본인이 술회하길 "그때 정말 철이 없었어요. 선배님들께 예의라고는 인사밖에 할 줄 몰랐거든요."
긴 무명생활 중에 유재석이라는 이름 석자를 알리게 된 서세원의 토크박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는 토크의 달인으로 유재석 이름 석자를 알리게 된다.
배우 김혜수의 추천으로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의 MC를 맡게 되면서 국민 MC로써의 역량을 키어간다.
물론 그 이전에 자유선언 토요일의 60년을 이어라 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그 이후 김용만과 함게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를 맡았고 또 다시 성공을 맛본다.
이제는 전설이 되버린 공포의 쿵쿵따 당시 공포의 쿵쿵따의 인기는 전 국민적이었다. 넷마블에 게임이 만들어 질 정도였고
별의별 단어가 다 등장했다. 이 시기에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아마 강호동을 놀리며 깐죽거리던 유재석을 기억할 것이다.
유재석과 강호동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MC로써 점점 나아간다.
무한도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천하제일 외인구단. 유재석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우리도 할 수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신동엽&이효리의 후임으로 들어간 해피투게더. 그 이후로 유재석은 꾸준히 KBS의 목요일 밤을 책임졌다.
너무나도 아쉽게 끝나버린 놀러와. 8년을 진행한 프로그램이 너무나 허무하게도 사라졌다.
시청자에게도 제작진에게도 너무나도 예의 없었던 MBC
일요일 저녁에하면 유재석이 떠오르게 만들었던 X맨. 두 국민MC가 마지막으로 같이한 프로그램
X맨에 이어서 계속된 실패작들(기승사 등)에 이어서 그가 또 다시 일요일에 히트시킨 패밀리가 떴다
비록 시청률에서 1박 2일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패밀리가 떴다는 고정된 시청층과 팬층이 있었다.
이제 유재석을 논할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 된 무한도전.
무한도전이 끝나면 자신의 예능인생도 함께할 것 같다는 유재석
무한도전으로 인해 고정화된 이미지를 탈피시킨 런닝맨
패떳2의 패망으로 인해 망해가던 SBS 일요일 예능을 다시 한번 살려낸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의 인기로 유재석은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게 되었다.
첫댓글 유느님~~♥
능력보다 도덕적인 사람이 인정받고 성공한다 라는
요즘은 너무나 퇴색한 진리를 실현한 인물이라 더 존경하는
울 유느님~~~ 요번 토요일 일요일에도 봐염~~ㅋㅋ
유재석 정말 괜찮은사람~^^ㅎㅎ
유느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