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도(生死島) 2-14
사국천의 눈빛이 당황으로 흔들렸다.
한 손으로는 늘어진 닻줄을 잡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물 위
로 떨어져 가는 육초량의 덜미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몸은
이미 뱃전을 떠나 허공 중에 떠 있는 상태였다. 번개 같이 빠른
손속으로 일장을 쳐오고 있는 괴인영의 출수에 대항할 방법이 없
었다.
부드득 이를 간 사국천이 몸을 비틀며 한 발로 힘껏 물을 찼
다. 잠간의 탄력을 빈 그의 몸이 육초량을 여전히 꽉 움켜쥔 채
다시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실로 절묘한 경공 절기였다. 그러
나 사국천을 쳐온 백의인도 그리 만만치 않았다.
왼발 끝으로 사국천이 했듯이 수면을 살짝 찍은 그가 다시 비
조처럼 날아들며 여전히 날카로운 장력을 쏟아내고 있었다. 설마
백의인의 무공이 이 정도로 높을 줄 몰랐던 사국천은 당황했다.
왼 손을 놓으면 애써 잡은 육초량을 놓치게 되고, 오른 손을
놓으면 닻줄을 놓친 채 물에 빠지는 수밖에 없었다. 수공에는 문
외한인 그로서는 닻줄이야말로 배와 그를 이어주는 유일한 생명
줄이었다. 그가 망설이는 사이에 백의인의 사나운 장력이 코앞에
밀려들었다.
『괘씸한 놈!』
사국천이 할 수 없이 육초량을 던지고 맹렬하게 일장을 반격했
다.
펑-!
두 사람의 장력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백의인이 그 반탄력을
빌어 몸을 뒤집어 물러서며 번개처럼 육초량을 낚아챘다. 사국천
조차도 흉내내기 어려운 놀라운 신법이었다.
『하하, 사맹주, 양보해 주어서 고맙소!』
육초량을 낚아챈 그가 한번 수면을 찍으며 도약하더니 눈 깜짝
할 사이에 자신의 쾌선으로 돌아갔다.
사국천은 그 자가 낯선 백의 미청년이라는 것을 비로소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새 쏜살같이 멀어져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쾌속
선을 바라보며 발을 굴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 잡은
먹이를 코앞에서 빼앗긴 사국천이 부드득 이를 갈았다.
작은 쾌속선은 날 듯이 강을 가로질러 한적한 갈대숲에 닿았
다. 백의 미청년이 의식을 잃고 늘어져 있는 육초량을 안아들고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는 바로 남장을 하고 있는 냉여옥이었다.
『기어이 내 손에 들어왔군.』
창백한 안색으로 품에 안겨 있는 육초량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
굴에 득의의 빛이 가득했다. 잠시 사방을 살펴본 그녀가 동남방
을 향하여 바람처럼 내달았다.
<2>
삼월도 다 넘기고 있는 하순의 하늘은 가을 하늘보다 더 높고
청명하기만 했다. 온 산을 붉게 태우던 두견화도 시들해질 무렵,
산다리꽃 흐드러지는 연초록의 숲 속에서는 청청한 메아리를 타
고 뻐꾸기가 울었다.
호북성(湖北省) 양양(襄陽) 밖. 녹문산(鹿門山) 기슭을 적시며
붉게 물들어오고 있는 낙조가 보기 드물게 고왔다. 아무래도 봄
날의 노을은 화려해서 더 애꿎은 듯 싶었다.
성당(盛唐)의 시인 맹호연(孟浩然)이 말년에 은거하여 유유자
적한 신선의 삶을 살았다는 녹문산은 여성적인 아름다움과 섬세
함으로 녹정하(鹿晶河)의 잔잔한 물 위에 사시사철 질 고운 수묵
화를 옮겨놓았다.
그 녹문산 아래 녹정하변에 마가촌(馬家村)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마씨(馬氏)가 주민의 대부분인 그곳에는 상춘녹정루(常
春鹿晶樓)라는 주루가 있었는데, 녹정하변의 수려한 풍광을 조망
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서 인근 마을에까지 널리
알려진 명소였다.
상춘녹정루의 이층 다락에 오르면 누구의 솜씨인지, 뛰어난 달
필로 흰 회벽에 남긴 대련(對聯) 한 구절이 찾는 이의 눈을 붙들
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웅장하고 미려한 필법을 보기 위해 먼
마을의 유생들까지 찾아올 정도였던 것이다.
낚시질하는 옆에 덧없이 앉아
헛되이 고기를 부러워하는 마음
座觀垂釣者
徒有羨魚情
그것은 맹호연의 <임동정(臨洞庭)> 중 끝수 두 구절을 적어놓
은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텅 빈 상춘녹정루의 이층 구석에 홀로 앉아 그
두 구의 싯귀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한 사나이가 있었다.
검은 피부에 철탑 같은 골격, 무성한 구레나룻이 사자의 갈기
처럼 위맹해 보이는 사십대 후반의 사나이였다. 머리카락 사이마
다 섞여 있는 희끗희끗한 흰 빛이 그로서도 감당할 수 없는 세월
의 무게를 말해주고 있었다.
『낚시질하는 자의 옆에 앉아 헛되이 고기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라...』
자조 섞인 중얼거림으로 시의 구절을 읊조리던 그가 길게 탄식
했다.
『하, 맹호연의 이 한 구절은 참으로 나의 지금 처지를 말해주
는 듯하구나. 저것을 옮겨 적은 자도 나의 심정과 같았을까?』
중얼거리던 그가 독한 화주를 병째 들어 콸콸콸 마셔댔다.
『강사옥아, 강사옥아. 어쩌다 너의 꿈은 헛되이 허수아비 노릇
이나 하고, 철협의 명성도 무상하게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신세로 떨어지고 말았느냐...』
충혈된 눈으로 멍하니 회벽 위의 시구를 바라보는 사내의 눈에
처연한 고독이 어렸다. 그는 바로 당대의 기린아인 철협 강사옥
이었다.
그의 호방했던 기개와 오늘 이 궁벽한 산골 주루에 앉아 고소
(苦笑)하고 있는 쓸쓸함과는 전혀 같은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되
지 않았다.
짙은 노을 뒤에 따라온 재색의 땅거미가 이층의 다락을 어둡게
가라앉혔다. 점소이가 불씨를 들고 올라와 유등 심지에 불을 당
기고 내려갔다. 어두운 불그늘 아래, 강사옥은 한 개의 그림자로
앉아 고독하게 술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이층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낡고 헐렁한 면의(棉衣)로 몸을 가리고 있는 소녀였다. 먼 여행
중인 듯, 야위고 초췌한 안색이 창백했다. 거칠게 땋아 내린 앞
머리카락 몇 올이 이마를 가리고 흘러내려 그녀를 더욱 지쳐 보
이게 했다.
주위를 조심스럽게 돌아본 그녀가 한쪽 창가에 앉았다. 수심에
잠긴 듯 창 밖에 짙어 가는 땅거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야윈
볼과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의 가는 선이 서럽도록 고왔다.
몇 가지의 간단한 음식을 주문한 그녀가 비로소 이층 벽에 써
있는 그 한 구의 시구를 발견했다.
『아!』
문득 그녀의 메마른 입술 사이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녀의 시선은 그 두 줄의 시구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낚시질하는 자의 곁에 앉아서 헛되이 물고기를 부러워하는 마
음....』
조용히 시구를 음송(吟誦)하던 그녀가 다시 깊은 한숨을 불어
냈다.
고향 가는 길은 어딘지도 몰라라.
구름만 산을 덮어 시름 자아낸다.
鄕國不知何處是
雲山漫漫使人愁
그녀의 파리한 입술 사이로 마치 맹호연의 시구절에 화답하기
라도 하듯 작고 영롱한 가락이 흘러나왔다. 장호의 <호위주(胡渭
州)> 중 두 구절이었다.
음송을 마치고 한동안 멍하니 있던 그녀가 섬섬옥수를 들어 살
짝 눈물을 찍어냈다.
고향은 아득하다 어디메던가
떠도는 길손의 서글픈 심사
회남의 봄 밤 비가 오는데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 울음소리
故園渺何處
歸思方悠哉
淮南春雨野
高齊聞雁臺
문득 다락의 한 구석, 유등의 어둠 속에서 위응물(韋應物)의
<문안(聞雁)>으로 나지막하게 답해오는 소리가 있었다.
여인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둠에 가려져 미처 발견하
지 못했던 거구의 사내 하나가 짙은 음영 속에 모습을 감추고 조
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자기
혼자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와 있는 낯선 남자가 있었던 것이
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실례했습니다.』
사나이가 조금 웃는 것 같았다.
『나의 있고 없음이 낭자의 처연함과 무슨 관계가 있겠소. 다만
그대가 읊은 호위주(胡渭州) 한 가락에 문득 나 또한 처연해졌을
뿐. 사과라면 오히려 내가 해야 할 것이요. 낭자의 흥취를 깨뜨
려 미안하외다.』
낮고 걸걸한 음성으로 대답한 강사옥이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다시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인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
고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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