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송(宋)대 선승(禪僧) 청원유신(靑源有信)은 다음처럼 설법을 했다.
“내가 삼십 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았다가 나중에 선지식(善知識)을 친견(親見)하여 깨침에 들어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보았다.' 지금 휴식처를 얻고 나니 옛날과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로 보인다.'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으냐? 다르냐? 이것을 가려내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같은 경지에 있다고 인정하겠노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은 데카르트 말로 알려졌는데..
기원 전 4세기에 활동해 지금도 여전히 유명한 아리스텔레스가 그런 말을 했다.
기원 후 4, 5세기에 활동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가 진리를 잘못 알고 있다면, 나는 존재한다. (Si enim fallor, sum)" 고 하여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Cogito, ergo sum'은 데카르트가 한 말로 그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으리라.
"산은 산, 물은 물"이란 말은 송 나라의 선사인 청원유신이 한 말로 선종에서는 잘 알려진 말이지만,
성철큰스님이 한 말로 우리에게는 유명하다.
그걸 보면 누가 처음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에 의해 유명해졌느냐가 더 가까이 느껴진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해도 아프지 않으면 돌처럼 여기지만 병이 들었을 때는 그 보다 훨씬 덜 효과가 있는 약이라도 아주 중요한 대접을 받는다.
그렇다. 무엇이든 최고의 효과를 보려면 타이밍이.. 인과 연이 딱 맞아 떨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리라.
청원유신 선사의 법문 처음에 나오는 "산은 산, 물은 물"이란 말은 세 살 먹은 아이도 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말인듯 한데..
다음에 이어지는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님을 보았다" 는 말과 연결되어 이해가 심상치 않아지더니..
결국 안개산을 헤매듯 애매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초.중.고등 학교에 다니며 온갖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살아왔다.
왜 12년 또는 16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그것도 인생의 황금 시간인 청년기에 주입식 공부를 해야만 하는지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부모님이나 사회가 그렇게 하라고 하니 그렇게 해 온 것 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공부한 결과로 성공 또는 실패, 평범한 인생으로 살고 있지 아니 한가.
그러면서 암기식으로 배운 지식이지만 아주 가끔 기막히게 써먹는 순간이 오면 환한 미소도 짓게 한다.
예외없이 모두에게 반 강제로 시키는 그와 같은 사회 시스템이 불합리하게 보이지만 사회인 대부분이 불만하지 않듯이
사회가 나에게 열어준 길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청원 선사가 맨 처음에 기술한 '산은 산, 물은 물' 로 보고 의심없이 사는 자들의 세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그와 같은 사회 시스템에 의문을 품고 다른 길을 모색하는 이들이 있으니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지?' 하면서 사회가 열어준 길을 벗어난 이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본의 아니게 시스템에서 낙오를 하여 사회와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격하게 느낄 때가 있다.
나는 대학에 떨어져 재수할 때 그 경험을 진하게 했다. 그런 상황이 기존의 사회에 안티 하는 생각이 일어나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의심이 생겼고 그 답을 구하고자 나름 노력했다.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안티적인 화두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 '라는 세계를 조금 이해하게 되고,
그것을 정답이라 여긴 자들 가운데 더러는 안티 사회운동을 주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깊이 나아가면
'산은 산이 아님을 알 뿐 아니라 산이 곧 물' 임을 아는
안티를 넘어서 평화와 화해를 바탕으로 하는 눈을 뜨게 되어
사회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니..
그들을 보살이라 하고, 산이 물이라는 눈높이는 보살행의 기준이 된다.
그럼에도 여기에 머물지 않아..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이다'라는 답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면
'산은 다만 산이다'라고 일반인이 보듯 같은 눈높이로 보는 것 같은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첫 번째 나오는 '산은 산, 물은 물'에 의심을 품고 출발해 다소 안티적인 세계를 경험하고..
그것에서 벗어나 다시 '산은 다만 산'이란 결론에 이르렀다면
처음과 마지막은 같은 듯 한데
'다만' 이란 말이 들어가 있듯이 처음과는 비슷하지만 그 안에는 반전에 또 반전으로 매우 성숙하고 깊어져 있다.
이것은 외적으로 정반합인 변증법과 비슷하다.
변증법 예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찾을 수 있으니..
정: 처음 두 나라 관계는 평화로운 듯 지속되고 있다가
반: 러시아 푸틴의 침공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생기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합:결과는 다시 평화적인 모습으로 돌아오겠지만 두 나라는 전과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될 것이다.
이처럼 변증법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사회가 겪는 갈등과 결과로 증명이 되는 데 반해
'산은 산, 물은 물'에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이다'라는 가르침은 비유일 뿐
실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에서 생기는 극적인 변화로
그러기에 비록 보이지 않지만 변증법과는 다른 극심한 갈등과 반전이 있었고..
세번 째를 경험한 보살들이나 마지막을 깨친 분들임이 알려지면.. 세상은 그를 존경하고 배우려 온통 아우성을 친다.
세번 째를 경험하고 세상에 나온 이들 가운데 훌륭한 분이 적지 않으며 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분을 꼽으라면 기독교의 예수님이나 이슬람교의 무함마드님이 떠오르지 않는지?..
그리고 마지막인 '산은 다만 산이다' 인 경지에 이르러 세상에 다시 나온 분은 오로지 석가모니 한 분 뿐으로 인정한다.
다만 우리 눈에는 에베르트 산과 알프스 산이 만년 설 산으로 비슷하게 높은 산으로 보이듯..
부처님과 보살님의 차이가 눈에 띄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는 보살행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평소 "자기를 속이지 말라" 고 가르치시며 "이뭐꼬?"를 화두로 주신 성철 큰스님께서
"산은 산, 물은 물"이라 하신 것은
위 세가지, 네가지 모두가 포함된 법어가 아닐 수 없으나..
세상 사람들은 '산은 산' 이라는 자기들 눈높이로,
수행자는 '산은 산이 아니요, 산은 물이다' 라는 그의 눈높이로,
끝을 향해 정진하는 선승들은 말없이 '산은 다만 산일 뿐!' 임을 깨치려 수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 사회는 혼란스럽다.
전쟁이나 질병, 그전과는 다른 엄청난 피해를 일으키는 자연재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 그 속에 사는 우리는 공포와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럴 때 '산은 물' 임을 깨친 분이나 보살이 나타나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터인데
거짓 깨친 자들이 나타나 오히려 사회를 더욱 오염시키고 있다.
봄에는 예수 부활절이 있고 석가모니 오신 날이 있다.
지금 사회는 석가나 예수처럼 물질보다 마음을 치료해 줄 성인이 간절히 필요한 때인데,
아직 여명이 오지 않은 무명의 새벽처럼 어둡기만 하다.
어둠에 맞서서 빛을 보여줄 의인은 어디쯤 오고 계시려나..@..
ㅇ
첫댓글 나무관세음보살,,,
물질은 물질세계에서 빛나지만 마음의 세계에서는 마음이
밫이나지요,진리의 부처님 법,,,,,
언재부터인지..
맨날 받아만 먹고 살건가?..
하는 생각이 살며시 올라 옵니다 ().
물론 자신이 빛이 된다는 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수행해야 얻을 수 있는 결과일지..^^
나무 관세음보살 성불하십시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ㅎㅎㅎ^^
애쓰고 있지만..
복덕을 짓지 않아서
땀만 흘립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