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가지원금 빼돌려 제 주머니 채운 파렴치 시민단체들
중앙일보
입력 2023.05.17 00:09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 1월 17일 '복지 분야 국고보조금 관리 강화 추진단' 영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원 감사로 드러난 국고보조금 횡령 실태
윤석열 정부가 ‘편향 지원’ 관행 뿌리 뽑아야
감사원이 어제 10개 비영리 민간단체의 73명을 수사 의뢰하면서 밝힌 비리 행각은 충격적이다. 국고보조금을 빼돌려 손녀의 말 구매 자금으로 쓰는가 하면 인건비를 허위로 지급한 뒤 되돌려 받는 횡령 범죄 수법을 서슴지 않았다. 이번 감사에서만 17억4000만원의 범죄 금액을 밝혀냈다. 정부가 사회의 구석구석을 살피기 힘든 현실에서 시민단체의 활동은 중요하다. 특히 소외계층을 돕고 정부와 공공기관을 감시하는 역할은 소금과 같다. 이런 기여가 있기에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련한 지원책을 사리사욕으로 오염시키는 일부 단체의 비리는 시민사회 신뢰의 근간을 무너뜨린다. 국고를 빼돌려 자신과 가족·친지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일부 인사는 시민운동의 영역에서 퇴출해야 마땅할 시간이 됐다.
단, 한 번의 감사에서 10개 단체의 불법이 드러날 만큼 비리가 만연할 때까지 정부는 어떤 감시활동을 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귀한 세금이 부정한 단체 인사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동안 방지 노력을 과연 충분히 기울였는가. 민간단체에 지급한 보조금은 문재인 정부 5년간 연평균 4000억원씩 늘어 연간 5조원을 넘어섰다. 2019년 부정수급 적발 과정에서 나랏돈 빼먹기 관행의 실태가 드러났는데도 발본색원하지 않았다. 이번에 적발된 횡령 행태를 보면 애써 외면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허술한 구석이 많다.
2021년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민간 보조금의 실태를 개탄하면서 “서울시의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현금지급기)으로 전락했다”고 발언해 진보 진영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파문이 일었다. 그런데 일부 단체 대표는 이 무렵에도 문화공연 행사 비용 1200만원을 부풀려 수의계약을 체결한 뒤 딸 명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의 도덕 불감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선진 사회로 갈수록 시민의 자발적 활동의 중요성은 커진다. 정부와 지자체가 보조금을 통해 정책의 빈틈을 메우는 노력은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시민단체는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한 지원금을 귀하게 여기고 빈틈없이 관리해야 선순환이 이어진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홈페이지에 ‘정부나 기업의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다’며 재정적 독립성을 강조한다. 비록 완전한 재정적 독립은 어렵더라도 가급적 시민의 자발적 후원금을 활동의 근간으로 삼아야 목소리가 더 당당해진다. 정부는 이번 감사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그동안 소홀히 해 온 국가보조금 관리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과거 정부들이 정치적 성향에 맞는 시민단체에 지원을 몰아줬다는 비난을 받은 만큼 윤석열 정부에서는 어떤 단체에서도 보조금으로 자신의 배를 불리고, 손녀의 말까지 사는 행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