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과 상허 이태준 尙虛 李泰俊 생가 수연산방(壽硯山房)에 다녀왔다.
간송미술관은 입장료가 없어 좋았고, 산책할 수 있는 마당이 있어 더 좋았다. 일년에 봄. 가을 2주씩 불과 4주밖에 일반 공개를 안 하는 미술관이니 때를 잘 맞춰 온 것이 무지 기쁘다. 언덕 위 숲 속엔 통일신라 때의 부도도 몇 개 있고 삼층석탑도 있다. 저 위 양지 바른 단층집엔 간송의 후손이 사는가? 햇살가득 받고 서 있는 넓은 바나나? 잎과 너른 마당이 평화스럽다.
간송(澗松) 산골 물 간澗 소나무 송 松 - 산골 물과 소나무라... 좋다~!!
전형필(全鎣弼)은 일제강점기 위험을 무릅쓰고 국보급 문화재 유출을 막기 위해 사비로 문화재를 수집한 분으로 유명하다. 특히 자칫하면 사라질 뻔한 '훈민정음 해례본 訓民正音解例本' 을 전 재산을 털어 구한 사실은 후대 길이길이 높이 살만하다.
부서진 세상을 잘못 타고난 불운의 화가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전시를 하고 있었다. 겸재(謙齋) 정선(1676~1759), 관아재(觀我齋) 조영석(1686~1761)과 더불어‘삼재(三齋)’ 로 일컬어지지만, 진경산수화풍과 풍속화풍을 각각 창안하며 중국과는 차별적인 조선 고유의 색을 찾아 나선 겸재와 관아재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갔고, 역적가문으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평생을 주류사회로부터 소외된 채 중국화첩 속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뭔 눈에 뭐만 보인다고 그림 제목이 죄 사자성어 한자로 된지라 그림보다 더 유심히 봤다.
수연산방 壽硯山房
당호는 문인들이 모이는 산속의 집이란 뜻으로 이태준이 지었다고 한다.
목숨 수(壽)의 벼루 연(硯)이 왜 文人들을 뜻할까
벼루를 목숨처럼 사용한다는 뜻인가
벼루에 목숨을 걸었다는 뜻인가
공부하는 자들의 숨결이란 뜻인가
아담한 대문을 들어서니 고즈넉한 두 채의 집에 알맞은 정원이 어우르듯 감싸고 있다. 규모 작은 오래된 집이 주는 편안함. 반질반질 윤이 나는, 넓지는 않지만 그리 좁지도 않은 툇마루. 좌측엔 새로 지은 집이라니 상허 생전엔 우측 고택만 있었을 터. 그리 넓지 않은 마당 한 견엔 아직도 자그마한 우물이 있고 그 우물에 물도 있다. 맨드라미를 비롯해 정원 여기저기엔 백일홍 등등 가을꽃이 한창이다. 맨드라미는 닭의 볏과 비슷한 꽃부리의 모양 때문에 계두화(鷄頭花) 또는 계관화(鷄冠花)하고 한다.
구인회에 몸담고 있었으니 이상과 김유정도 이 집엘 드나들었던 것은 혹 아닐까? 어지럽고 불행했던 시대 대한민국의 먹물 먹은 지식인 문인들이 모였는데 한 잔 술이 없으면 되겠는가? 그들은 이 집 어느 자리 어떤 자세로 무슨 술을 먹으며 시대와 개인의 아픔을 토로 했을까? 유정은 손에 잡히지 않는 박녹주를 그리워하고, 시대를 앞서간 이상은 금홍이와 "아아~ 쓰벌..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했을거나? 암튼, 보존지역인데 출입을 금하지 않고 오래된 집에 마음 놓고 앉아있다 오는 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햇살 가득 마당에 금국이 노랗게 부서진다.
정원마당 편한 자세로 이 가을 잠시 상허 고택에 머물다 왔다.
아무 일도 없음이 참다운 고요 아니요...
새큼한 오미자 한 모금엔 풋 시절을 그려보고
달콤한 모과차 한 모금 머금고는 잘 삶아진 달걀을 그리네
마지막 쌉쌀한 松茶론
설악산 오세암 깊은 솔숲을 거닐다 왔네.
오세암(五歲庵)
구름과 물 있으니 이웃할 만하고
보리(菩提)도 잊었거니 하물며 인(仁)일 것가.
저자 멀매 송차(松茶)로 약을 대신하고
산이 깊어 고기와 새 어쩌다가 사람을 구경해….
아무 일도 없음이 참다운 고요 아니요
첫 뜻을 어기지 않는 것 진정한 새로움이거니.
비와도 그떡없는 파초와 같다면
난들 티끌 속 달려가기 꺼릴 것이 있겠는가. - 한용운
첫댓글 시안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글 솜씨가 여전하군요. 한줄 한줄 읽다보니 눈을 뗄 수가 없네요.참 마음에 드는 분들이 많은 산토피아방입니다.
아! 포졸투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요즘도 힘차게 달리시는지요? 잡글인지 졸글인지 몇 자 끄적여놓고 보면 늘 부끄럽습니다. 늘 행복과 함께 건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