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입산역사문화마을에서 워크숍을 마치고/안성환
사단법인 울산문화아카데미 운영위원 29명은 2026년 8월 8일부터 9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제14기 운영위원 워크숍을 실시하였다. 해마다 서원에서 진행해 오던 워크숍을 올해는 특별히 경남 의령 입산역사문화마을에서 개최하였다.
승용차 7대가 줄지어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모습 또한 이번 여정의 색다른 풍경이었다. 차량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이동한 덕분에 길을 잃거나 낙오하는 차량 하나 없이 무사히 일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새삼 문명의 이기가 주는 고마움도 느껴보았다.
이번 일정에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찾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정작 내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자칫 고향의 자랑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혹은 먼 길을 찾아온 회원들이 ‘이것을 보려고 여기까지 왔나’ 하고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이번 답사는 진주 지수면 승산부자마을을 시작으로 의령 충익사와 정암루, 관정 이종환 생가, 백산나라사랑너른마당과 입산역사문화마을, 일붕사, 호암 이병철 생가로 이어졌다. 크게 보면 연암 구인회, 망우당 곽재우, 관정 이종환, 백산 안희제, 호암 이병철 선생의 삶과 사상, 그리고 그들이 남긴 시대정신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다.
먼저 찾은 곳은 진주 지수면 승산부자마을이었다. 이곳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큰 교훈은 부의 크기가 아니라 ‘신뢰와 상생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구인회와 허만정, 두 가문은 혼인으로 맺어진 인연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 믿음과 원칙을 지키며 기업을 성장시켰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을 때에도 갈등보다는 존중과 배려를 선택하였다. 또한 교육과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기업의 이익을 사회와 나누며 부자의 책임을 몸소 실천하였다.
이들의 삶은 진정한 성공이란 혼자 앞서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믿고 함께 성장하며, 자신이 얻은 것을 사회와 미래 세대에 되돌려주는 데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승산부자마을을 뒤로하고 우리는 의령 충익사로 향했다. 충익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와 의병들의 충절을 기리는 곳이다. 곽재우 장군은 남명 조식 선생의 학문과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아 “경으로 자신을 바로 세우고, 의로 세상을 바로잡는다”는 실천정신을 이어받았다.
남명의 가르침은 서부 경남의 유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김면, 정인홍, 조종도, 이대기 등 수많은 선비가 의병장으로 나서는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남명과 곽재우의 삶은 지식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참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불의 앞에서 용기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오늘의 우리에게도 전하고 있었다.
충익사를 둘러본 뒤에는 5분 남짓 거리에 있는 정암루와 정암, 이른바 ‘부자바위’를 찾았다. 이 일대 반경 약 8㎞ 안에서 호암 이병철, 연암 구인회, 효성 조홍제 등 한국 경제사를 이끈 기업인들이 태어났다고 하여 사람들은 이곳을 흥미롭게 ‘부자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정암을 바라보며 한 지역의 자연과 문화, 교육환경이 사람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시원한 차 한잔으로 잠시 더위를 식힌 뒤, 첫날의 마지막 답사지인 관정 이종환 선생의 생가를 찾았다.
관정 선생은 “정도가 결국 이긴다”는 신념으로 기업을 일으키고, 평생 모은 재산의 97%를 인재 양성에 내놓은 진정한 실천가였다. 권력의 부당한 압력과 모진 시련에도 굴하지 않았으며, 빚에 의존하지 않는 건실한 경영으로 평생 자신의 원칙을 지켰다.
그의 삶은 성공의 진정한 가치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룬 것을 사회와 미래 세대를 위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배우며 바른길을 걸으라는 깊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도전 없는 성공은 없다.”
사람을 키우는 나눔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는 귀한 가르침을 관정 선생의 삶에서 배우고 돌아섰다.
일정을 마친 우리 일행은 숙소인 백산나라사랑너른마당으로 향했다. 짐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백산 안희제 선생이 걸었던 독립운동의 길을 되새기는 영화를 함께 감상하였다. 이후 신반 읍내로 이동해 저녁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운영위원 워크숍에 들어갔다.
진지한 논의와 열띤 발언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밤 10시가 가까워졌다. 긴 회의를 마친 뒤에는 잠시나마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함께 웃고 어울리며 무아지경의 즐거움에 빠져보기도 했다. 낮에는 역사를 배우고 밤에는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 이 또한 워크숍이 주는 소중한 의미가 아니었을까.
다음 날 아침, 우리 일행은 동이 트기 전 숙소를 나섰다. 고산재와 백산 안희제 선생의 묘소를 찾아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였다. 고산재는 조상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충효와 학문, 공동체 정신을 가르치던 문중 교육의 산실이었다. 이른 아침 고요한 고산재에 서니 옛사람들이 후손에게 무엇을 남기고자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여정에서 내가 가장 마음을 썼던 입산역사문화마을을 찾았다.
안호종 대종손의 안내로 마을을 둘러보며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입산마을은 단순히 오래된 고택이 남아 있는 마을이 아니다. 호국과 독립운동, 선비정신이 살아 숨 쉬는 역사문화마을이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교육과 기업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하고 민족의 미래를 밝히는 데 헌신하였다. 수파 안효제 선생 또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올곧은 삶으로 시대의 양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화재로 소중한 문화유산을 잃은 종손가의 현장에서 안호종 대종손의 설명을 듣는 순간, 회원들의 가슴은 먹먹해졌다. 함께한 한 선생님께서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한순간에 사라진 안타까움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하셨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입산마을의 진정한 자랑은 부유했던 고택이나 재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필요로 하는 큰 인물을 길러낸 정신과 교육에 있는 것이 아닐까. 문화란 옛 건물을 보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뜻과 삶의 가치를 오늘에 되살려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과연 선조들의 뜻을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는가.
내가 뛰놀던 고향의 골목과 옛집을 천천히 돌아보며 나 자신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입산마을이 전해준 깊은 여운을 가슴에 안고 우리는 일붕사로 향했다. 일붕사는 자연 암반을 활용해 조성한 거대한 동굴법당으로 유명하며,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간직한 의령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그러나 이처럼 성스러운 공간에서 멀지 않은 궁류면 일대에서는 1982년 우범곤 총기 난사 사건이라는 참극이 일어났다. 수많은 주민이 희생된 비극의 역사를 떠올리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성스러운 공간과 아픈 역사의 현장이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생명의 존엄과 공동체의 안전은 결코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일 것이다.
이번 워크숍의 마지막 답사지는 호암 이병철 생가였다. 이곳에서는 심광열 학생회장님과 김영우 운영위원님께서 협찬해 주신 망개떡을 함께 나누며 의령의 별미까지 맛볼 수 있었다. 여정의 마지막을 더욱 정겹게 만들어 준 고마운 마음이었다.
호암 이병철은 의령의 선비정신과 검소한 가풍 속에서 성장하였다. 한때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나 가족을 돌아보며 삶을 다잡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고 한다. 이후 ‘사업보국’과 ‘인재제일’의 철학을 바탕으로 시대의 변화를 읽으며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삶은 좋은 터에서 태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절제와 원칙이며,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임을 보여준다. 또한 기업의 참된 가치는 단순히 부를 축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고 나라와 사회에 기여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이렇게 1박 2일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우리가 만난 이 지역의 정신을 되짚어 보았다.
남명 조식은 사람을 길렀고, 망우당 곽재우는 나라를 지켰다. 백산 안희제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으며, 호암 이병철은 기업을 일으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관정 이종환은 자신이 일군 부를 다시 사람을 키우는 데 내놓았다.
시대와 방법은 달랐지만 그들의 삶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여정에 함께한 황두환 부원장님의 말씀도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사람들은 흔히 태어난 “해, 달, 날, 시”를 뜻하는 ‘사주(四柱)’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여기에 태어난 고향, 즉 ‘향(鄕)’을 더한 ‘오주(五柱)’ 또한 중요하다고 하셨다. 사람의 삶에는 언제 태어났느냐뿐만 아니라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정신과 문화를 품고 자랐느냐도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이 유난히 가슴에 와닿았다. 내가 태어난 고향의 역사와 정신을 회원들과 함께 나누고, 나 또한 미처 알지 못했던 고향의 가치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번 워크숍은 단순히 명승지와 생가를 둘러보는 여행이 아니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을 내놓은 사람, 기업을 통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 그리고 평생 모은 재산을 미래의 인재를 위해 기꺼이 내놓은 사람들의 삶을 만나며 오늘의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처음 고향으로 회원들을 모시고 가면서 가졌던 걱정도 어느새 사라졌다. ‘이것을 보려고 여기까지 왔나’ 하는 아쉬움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신 하나씩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는 여정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고향은 사람이 태어난 곳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 사람의 생각과 품격을 길러내고, 때로는 삶이 나아갈 방향을 일깨워 주는 정신의 뿌리이기도 하다. 이번 여정에서 만난 선현들의 삶과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나 또한 그 뜻을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제 고향을 떠나며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나는 고향으로부터 무엇을 받았으며, 그 고향과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그 물음 하나를 가슴에 품은 것만으로도 이번 워크숍은 내게 충분히 값진 여정이었다.
2026년 8월 9일 워크숍을 마치고, 안성환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