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원래 매년 초부터 바빠지긴 하지만, 경제가 워낙 어렵다 보니 정부가 자금 조기 집행을 주문함에 따라 1월 중순이 아닌 초부터 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저는 일을 뒤로 미루는 건 화장실 갔다가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찜찜하게 느끼는 성격이라, 대부분이 경우 출장 당일 보고서를 씁니다. 예측 가능한 일도 미리 준비하는 쪽입니다. 그런데 1월 하순부터 며칠간 일이 밀려 버렸습니다. 공단 통합정보시스템 사용 권한을 매년 갱신해야 하는데, 그 시점이 설 연휴와 겹쳐 놓쳤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갱신할 때, 담당자에게 1년마다 갱신하는 게 규정상 어쩔 수 없다면 활동 중인 위촉위원에게 일괄 관련 서류를 받아 처리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나, 건의했는데 반영이 안 되었었지요. 제가 먼저 챙겨서 유효기간 연장을 신청했으면 될 일을, 잠시 그들 탓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직장 생활할 때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관리부서에 있을 때, 소관 공간이 십 수개 실이었는데, 실마다 있는 시계를 일일이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보니 어떨 때는 회의 준비하다 보면 회의실 시계가 멈춰있어 당황하였습니다. 그때 선배 한 분께서, 일일이 확인하기 쉽지 않으니, 전지가 아깝다는 생각 말고 한꺼번에 십 수개를 모두 바꾸고 이후에도 계속 하나가 멈췄을 때 일괄 바꾸면 전지 때문에 멈추는 시계는 없을 것이니 효율적이지 않으냐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후 이런 방식을 업무에 적용하니 관리 로스가 많이 줄었습니다. 통합정보시스템도 마찬가지, 공단 담당자가 일괄 처리해주면 최고이겠지만, 기대난망이라면 저라도 일이 없는 12월에 신청해 연장해 두었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제대로 잘 해야 한다는 걸 새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사회 초년병 시절에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면 통하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열심히' 하지 말고 '잘' 하라는 얘기로 바뀌었습니다. 도요타 생산방식이 도입되던 90년대 초반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열심히'만 해서 불량품을 양산하는 것은 빈둥빈둥하는 것만도 못하다는 얘기와 함께, 잘해서 양품만을 생산해야 한다는 논지였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하면 "잘하겠습니다"로 바꾸라는 주문도 따랐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지나면서 '열심히 잘해야 한다.'로 진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더욱 명확히 표현하자면 '열심히 제대로 잘'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는 자세, 태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본 생각이, 일에 임하는 태도가, 열정이 '열심'이라는 자세로 나타나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제대로'는 절차, 방법, 규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안에 따라 적확한 방법과 절차, 규정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잘'은 결과지향적인 표현입니다. 지나치게 결과 지향적으로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과정도 중요하지만, 어찌 되었든 결과가 '잘' 되어야 일이나 행위의 의미가 살고 과정이 빛이 나고 결과가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편 가르기가 양극단으로 굳어진 최근의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제 편들기를 하기 위해 ‘제대로’일을 처리하지 않고, 결과를‘잘’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정치꾼들을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그들의‘편가르기’에 올라타 중심을 못 잡고 레밍처럼 따라가는 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 한량없습니다. 하지만 아래 모셔 온 글과 같은 의미의‘편‘이라면, 저는 이미 ’편가르기‘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제가 열심히 제대로 잘하면 될 일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며, 잠시나마 남 탓을 했던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사에 대한 마음도 이와 같이 다스리면 심사가 조금은 편해질 것 같습니다.
편(모셔온 글)==============
내가 누구의 편이냐고?
그야 물론, 거룩한 정의의 편.
위대한 질서와 균형의 편.
우주와 물질의 편.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의 편.
꽃처럼 여리게 피어나는 용기의 편.
감추어둔 사랑의 편.
명사가 아닌 동사의 편.
영원이 아닌 변화의 편.
내일이 아닌 오늘의 편.
과장되고 왜곡되지 않는 믿음의 편.
흘러가는 물과 바람의 편.
조각난 시간의 편.
그야 물론
부서지기 쉬운 것들과 사라지기 쉬운 것들의
문 이쪽과 저쪽을 나누고 있는 경계의
비밀의
그리고 무엇보다
너의 편.
----황경신의 '생각이 나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