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235) - 송년행사로 바쁜 날들
대설을 전후하여 많은 눈과 함께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한파가 몰려왔다. 광주에도 10여cm의 눈이 내렸고 영하 6도의 강추위가 몰아쳤다. 혹독한 추위에 몸은 움츠러들고 에너지 당국은 비상인데 눈이 쌓인 산야를 돌아보는 마음은 포근하다. 차에 덮인 눈을 치우러 밖으로 나오니 꽁꽁 언 바닥은 미끄럽고 바람은 매섭다. 나이든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빙판길을 조심조심 걷는 모습이 위태로워 손을 잡아 가까운 곳에 있는 노인당까지 모셔다 드렸다. 외출하여 점심을 드는 날이라서 망설이다가 나온 참이라며 고마워한다.
남녘에는 첫눈인 셈이어서 백설에 덮인 풍광에 가슴이 설렌다. 전날 통화한 지인은 만날 때 눈이 오면 좋겠다고 소녀처럼 밝은 음성이었는데 그날 오후에 눈발이 흩날리자 즉시 무등산자락으로 달려가 소복하게 내리는 설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며 기뻐한다. 서울에서 만난 친구는 북한산에서 나무에 송골송골 핀 눈꽃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처음으로 실감하였다며 찬탄하고. 아내랑 기차타고 서울로 오는 길은 온천지가 눈밭이어라.
12월에 접어드니 송년행사로 바빠진다. 우리 교회에서는 해마다 연말이면 광주지역의 복지시설 두세 곳에 성금을 기탁하곤 하였다. 금년에도 연말을 맞아 어린이복지시설 성빈여사와 노인요양원 전남성노원을 찾아 금일봉과 함께 갓 구운 빵을 한 아름씩 전달하며 '항상 건강한 가운데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날들을 가꾸며 이루기'를 염원하였다. 두 곳의 책임자들은 같은 여건에 있는 복지시설 안의 작은 교회가 베푸는 성원에 크게 감격하는 표정이다. 하나님도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가난한 자의 엽전 한 푼을 더 귀하게 여기셨거늘.
이날 저녁 아내와 함께 옛일을 회상하며 뿌듯함을 되새겼다. 결혼하던 날, 바쁜 시간을 쪼개 고아원과 양로원을 방문하여 떡 한 말씩 전해주었는데 같은 일을 수십 년 지나서도 되풀이할 수 있음을 기뻐하면서. 그때의 행보가 우리를 양로원봉사자로, 유니세프 등 여러 곳의 후원자로 이끌어주었는지 모른다. 20년 넘게 봉사하는 천혜경로원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은 연하장을 보내왔다.
'쉬운 일이 아닌데요. 그 많은 후원금을 정성을 다해 꼬박꼬박 챙겨주시니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요. 큰 힘이 되고 있지요. 부디 두 분 주님의 은총가운데 강건하시고 복된 새해를 맞이하옵소서.'
강은수 원장은 수백 명의 후원자들에게 시간에 쫓겨 황급하게 연하장을 보내는 것이 결례라고 여겨 한 달여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을 담아 인사말을 적어서 11월말에 일괄하여 발송하였노라고 술회한다.
천혜경로원 안에 있는 우리 교회 식구들은 매주 예배 후 경로원 식당에서 점심을 든다. 지난주일의 점심메뉴는 생선매운탕으로 그 맛이 고급음식점의 비싼 음식 못지않게 시원하고 담백하다. 부산의 한 독지가가 세 차례나 많은 양의 생선을 보내주었다. 그가 생선을 보낸 사연은 이렇다. '1967년경, 할아버지가 천혜경로원에 몸을 의탁하여 말년을 보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이었던 어린 시절의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다. 수십 년 변함없이 어려운 이들을 모시는데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서 싱싱한 생선을 보내드린다.'
며칠 전에는 어머니를 의탁한 또 다른 보호자가 씨알이 굵은 조기를 여러 상자 차에 싣고 왔다. 이곳을 방문 중에 식당에서 조리하는 조기를 보니 작은 것들이어서 더 크고 싱싱한 것을 조달하고 싶은 마음이어서. 다음날 그 조기로 탕을 끓여드렸더니 모두들 맛있게 잘 잡수셨다는 박영숙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경제가 어렵고 세상이 어수선하여도 송년에 즈음한 일상은 부산하고 활기차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는 입석까지 만원이고 백화점과 터미널은 추위에도 많은 인파로 북적댄다. 11월말과 12월초에 송년을 겸한 행사가 광주에서 네 차례, 서울에서 세 차례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일정이 겹쳐 참석하지 못한 곳도 여럿이다. 토요일 오후에는 30여명의 동창부부들이 강남의 매가박스에서 '늑대소년'아라는 영화를 보고 저녁을 함께 하였다. 빙판이라 멀리 움직이기 어려워 인근의 식당을 예약하려는데 많은 인원을 수용할 곳을 찾기 어렵다. 가까스로 예약한 곳은 30여명이 들어서니 꽉 찬 본죽 체인점, 작은 식당의 조촐한 식탁이 전날 저녁의 고급음식점보다 운치가 있다.
동창모임의 회장은 건배사에서 방금 보고 온 '늑대소년'의 메시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것은 그리운 옛정이 아닐까, 우리 모두 수십 년 지속한 우정을 잘 간직하자며 '위하여'를 선창하였다. 내게 다가온 영화의 메시지는 '기다려, 다시 올께'라고 낡은 종이에 적은 짧은 글, 수많은 사람들이 전장의 피란길과 고단한 삶의 여행길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한 애타는 사연들을 안고 있지 않은가?
금년 11월은 10년래 가장 추웠고 12월에도 강한 추위가 여러 차례 몰아칠 것이라는 예보다. 급강한 기온으로 온몸이 움츠러드는 때에 따뜻함을 더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변에서 일어난 송년행사의 몇 가지 사례들을 적었다. 예년보다 더 추운 겨울, 모두들 따뜻하고 보람된 날들을 누리셨으면.
추신,
저녁식사 후 광주행 고속버스를 타러 가는데 친구부부가 배웅에 나선다. 시간여유가 있어 백화점의 VIP휴게실에서 차 한 잔 나누며 오누이처럼 다정한 우정을 되새겼다. 이 자리에서 아내가 영화의 사연을 떠올리며 고속터미널 지하철에서 살핀 시 한 구절을 읊었다.
기도
서정란
기도하지 마라
떠난 사람은 돌아와도
떠난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린 손 가슴에 얹고
삼백 예순 날 기도한다해도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떠난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 떠난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 떠난 사랑도 돌아오면 좋을 텐 데.
첫댓글 떠난 사랑은 돌아오면 안 될텐데요ㅛㅛㅛㅛ 복잡해질건데요 그리워하면서 사는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오늘처럼 을씨년스러운 날씨엔 '첫.사.랑'이라는 글자도 가슴 속에 더 깊이 새겨지는 듯...요^^